하나님은 왜 사탄의 유혹을 막지 않으셨는가?
[질문]
어제 제가 오래 전에 전도했던 자매를 만나서 이야기하던 중에 오래도록 풀리지 않는 문제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 내용인즉,
“천사(루시엘)의 타락이후 하와에게 접근한 사탄을 하나님께서는 왜 그냥 두셨느냐? 인간의 창조 목적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고 하나님과 인간의 사랑과 교감 형성에 있었다면 타락 천사의 접근을 아예 차단하실 수도 있었을 텐데?”라는 의문이었습니다.
얼버무려 대답한다는 게 우스운 일이고 해서 목사님께 여쭤봅니다.
[답변]
범주의 오류
답변드리기 전에 먼저 전제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 질문은 일종의 범주의 오류(mistake of category)에 속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저 총각의 아내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원천적으로 잘못된 질문입니다. 총각이란 결혼하지 않은 사람을 뜻하므로 아내가 있을 수 없는데 아내가 누구인지 물었기 때문입니다. 문의한 범위가 모순되고 부정확해서 질문으로 성립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타종교에는 이런 질문들을 거의 하지 않는데 유독 기독교 신앙과 성경의 기술에 관해선 아주 많습니다. “하나님은 누가 만들었는가?”,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기 전의 태초에는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가?” 따위의 질문입니다. 타종교는 인간이 고안해낸 도덕적 종교적 사상이기에 인간 이성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에 난해한 질문이 생길 근거가 없습니다. 반면에 기독교는 영원하고 신령한 하나님의 절대적 계시이므로 어리석은 인간으로선 제대로 이해할 수 없으며 이해가 안 되기에 말도 안 되는 질문이 꼬리를 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자존(自存)하시는 창조주로서 피조물이 아닙니다. 그분을 누가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또 그분은 시간과 공간을 만드셨기에 그것들로 어떤 제한과 영향도 받지 않으십니다. 태초보다 이전이라는 인간이 유추할 수 있는 시간대 안에 묶어서 파악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크리스천 조크이긴 하지만 이런 유의 질문을 하는 사람들을 벌주려고 지옥을 만들고 있었다고 답합니다.
본 질문은 그런 오류의 일종이라고 했습니다. 완전히 황당한 질문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타락한 사탄을 막지 못한 하나님이 잘못한 것 아니냐고 따졌다면 그런 유의 질문이 됩니다. 거룩하시고 진선미(眞善美)에 완전하신 하나님에게 잘못이 있다고 가정하는 것 자체가 오류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질문자는 단지 그렇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욥이 황당 중에 당한 자신의 고난에 대한 이유라도 알아야겠다고 깊이 고뇌하며 하나님께 따져든 것처럼 얼마든지 물어볼 수 있는 질문입니다.
그럼에도 엄밀히 말해 일종의 범주 오류에 속하는데 그 이유는 여럿입니다. 우선 하나님은 천사장이 타락하는 것부터 묵인하셨을 뿐 아니라 땅으로 쫓아내었습니다. 그럼 그 후에 사탄이 이 땅에서 인간을 대상으로 활동하는 것을 묵인하겠다는 뜻도 이미 내포된 것입니다. 거기다 사탄의 유혹을 왜 막지 않으셨는가라는 본 질문은 필연적으로 그 직전상황과 연결되는 추가 질문을 제기합니다. 왜 사탄을 땅으로 쫓아내셨는가? 그럼 또 왜 천사장이 타락하는 것을 막지 않았는가? 나아가 왜 그런 천사를 만들었는가? 등등 끝이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어떤 반발을 합니까? 하나님은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을 줄 알면서도 왜 선악과를 만들고선 먹지 말라고 금했느냐고 따집니다. 아예 선악과 자체를 안 만들었으면 인간이 범죄하는 일은 없었을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 질문도 어디까지 이어지는가 하면, 그럼 인간을 악은 아예 모르고 오직 선만 사고하고 행동하는 존재로 만들라는 요구가 됩니다. 그럼 로봇이지 인간이 아니며, 또 선에만 제한되면 선인 줄도 모릅니다.
꼬리 무는 질문에 대한 답변
어린아이는 부모에게 자꾸 왜?, 그것은 또 왜? 식으로 바로 앞의 것은 물론 앞의 앞에 것에 관해 끝없는 질문을 합니다. 아이들이 그런 질문을 계속 퍼부어올 때 부모는 어떻게 합니까? 처음에는 차분히 대답해주지만, 아이가 설명을 못 알아먹겠다 싶으면 거기서 그칩니다. “네도 어른이 되면 다 알 수 있어!”라는 한마디로 일방적으로 종결시킵니다. 질의와 응답이 아이의 이해 수준을 넘어서면 이미 토론 자체의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대한 범주오류성의 질문들을 계속하다 보면 종국에는 황당한 결론에 이릅니다. 아예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지 말았어야 하며, 나아가 인간과 천지자체를 창조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주장, 아니 생떼가 되어버립니다. 본 질문도 실은 하나님은 사탄을 아예 만들지 말았어야 하고, 그럼 영적 세계 자체가 없어야 하며, 나아가 영적 전투는 아예 존재조차 않거나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뜻과 통해버리지 않습니까?
욥이 하나님에게 의심, 반발, 질문 공세를 파상적으로 퍼붓자 하나님도 그의 입을 막아버렸습니다. 거꾸로 욥에게 자연의 신비로운 이치에 대해 그가 도무지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퍼부었습니다. 말하자면 아이가 스스로는 아무래도 알 수 없는 문제를 제기했기에 크면 다 알 수 있다고 잘라버리는 부모처럼, 욥더러 너도 하나님이 되어보면 깨달을 수 있다고 대답한 셈입니다.
하나님은 욥더러 마침내 이런 고백을 하게 한 것입니다.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욥42:2,3)
욥의 이 고백에 대해 자칫 몇 가지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우선 무조건 맹목적으로 하나님을 믿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해 알려고도 해선 안 된다는 것도 아닙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이 백성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망한다고 했지 않습니까? 너무 어렵기에 파고들면 들수록 오히려 골치가 아프고 신앙성숙에 도움이 안 되니까 적당히 은혜로 넘어가라는 뜻도 아닙니다.
대신에 신앙상의 모든 의문은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데다, 인간의 생각과 길과 다를 수 있으며, 무엇보다 그분의 모든 행사는 절대로 완전하고 선하고 거룩하며 인간에게 유익하다는 믿음의 바탕에서 탐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고 비판, 반대, 불평, 불만, 의심 심지어 호기심만으로 질문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그분을 깊이 알아서 기꺼이 그분을 경배 감사 찬양하겠다는 믿음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물론 본 질문을 제기하신 분께서도 다분히 그럴 것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께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이유가 궁금해서 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질문이 일종의 범주의 오류일 뿐 아니라 질문자마저 미처 몰랐던 불신앙의 요소가 그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죄의 기원은 결코 하나님과 사탄이 아니다.
본 질문은 궁극적으로 죄의 기원을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탄을 막지 않았기에 이 땅에 죄악이 들어오고 인간의 불행이 생겼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그럼 또 그렇게 된 책임이 사탄은 물론 하나님에게도 일부 있다는 뜻이 됩니다. 질문자로선 순수하게 단지 그 이유를 알고 싶었겠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께 죄의 탓을 돌리고 있는 셈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사탄의 시험이 없었다면, 다른 말로 하나님이 막았다면, 인간은 타락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은 죄의 기원이 하나님께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하나님은 죄를 고안하거나, 적극적으로 만들 만큼 악한 분이 절대 아닙니다. 이 질문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실체가 부인되기에 엄밀히 따져서 범주의 오류에 속하게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죄의 기원은 누구에게 귀속됩니까? 바로 아담입니다. 마침 마태복음 강해 #145로 예정론에 대해 설교한 내용에 들었던 비유가 이 주제에 적합하기에 다시 인용, 보완해보겠습니다. 급한 볼일이 생긴 선생님이 숙제할 문제지를 내주면서 자율학습을 시키고 외출했습니다. 그런데 종일 외출했다 돌아왔더니 아무도 숙제한 학생이 없었습니다. 왜 공부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창문 너머로 같은 또래의 갱들이 신나게 먹고 마시며 놀고 있는 모습이 보였는데 너무 부러워서 같이 신나게 놀다보니 그랬다는 것입니다.
비유에선 항상 비유가 상징, 예표하는 핵심적 주제만 고려해야 합니다. 선생은 하나님이고, 학생은 아담이며, 자율학습을 시킨 것은 자유의지를 주어서 하나님 뜻대로 순종하라는 뜻이며, 창밖의 갱들은 사탄입니다. 선생의 명령을 거역하고 실컷 논 것은 하나님께 불순종한 죄입니다. 그러나 그 죄를 지은 것이 선생과 갱 탓은 아니지 않습니까? 오직 학생 탓 즉, 인간에게 그 기원이 있는 것입니다. 자율학습 시킨 선생에게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또 같이 놀자고 꾄 갱에게도 근본책임은 없는 것입니다. 자율적 의지를 이미 가졌기에 충분히 그 시험을 거절할 수 있었고 또 학생이라는 신분을 제대로 인식했다면 숙제를 했어야 합니다.
대신에 하나님이 아담에게 자유의지를 주고 선악과 금령을 내린 것은 너무나 놀랍고도 큰 은혜이자 사랑입니다. 인간을 절대 동물이나 로봇 수준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여 준행할 수 있는 독립된 하나의 인격체로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만들어 당신과 교통하고 이 땅을 그분 대신에 다스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또 그래서 선악과 금령을 주신 것입니다. 위반하면 벌주겠다는 뜻이 아니라, 당신의 품 안에서 당신과 계속 교제하며 순종하는 것이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유일한 근거이자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선생이 외출하는 바람에 교실에 안 계셔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뿐이지 엄연히 선생은 있고 또 그 선생 말씀대로 자율학습하는 것이 학생의 축복이듯이 말입니다. 죄의 기원이 전적으로 인간인데도 하나님에게 그 탓을 돌렸기에 이 질문이 범주의 오류에 속하는 또 다른 이유인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성경과 하나님에 대한 범주의 오류에 속한 질문들이 단순히 인간의 영적 어리석음에 기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인간의 원죄를 반증하는 증거가 됩니다. 질문자는 미처 의식하지 못하지만 인간 세상의 모순을 궁극적으로 자꾸만 인간보다 하나님 쪽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피해자이고 하나님이 가해자처럼 여기는 것은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나온 것입니다. 인간 중심의 사고가 바로 죄의 본질이지 않습니까?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하나님
하나님이 사탄의 타락을 묵인하시고 그에 동조한 악한 천사들과 함께 땅으로 쫓아내셨다면, 그분의 완전하시고 영원하신 계획 가운데 사탄이 땅에서 맡을 역할이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또 그 역할은 성경이 기록하는 대로 바로 아담을 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라곤 없습니다. 인간 이성으로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해도 욥의 마지막 고백대로 “하나님의 이치를 인간의 무지한 말로 가릴” 수는 없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화가 꼭지까지 차서 사탄더러 더 이상 꼴도 보기 싫으니 이 거룩한 영계에 머물지 말고 물질계인 지구로 내려가라고 고함치며 쫓아낸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달리 순간적 감정에 좌우되어서 마음에도 없었던 일을 충동적으로 하는 법은 없습니다. 충동적으로 하지 않았다면 사전에 정한 특별한 의도가 있었거나, 최소한 전후 사정을 알고 그 대응책까지 미리 마련하신 후에 묵인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사탄으로 인간을 꾀어서 죄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고 해서 절대 오해하지 말아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탄과 공모해서 죄악을 만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아예 인간을 처음부터 죄인으로 만들려 창조한 것도 아닙니다. 인간을 자유의지를 갖춘 온전한 인격체로서, 피조물 가운데 가장 아름다고 온전한 하나님의 청지기로 온전히 세우려 했습니다.
그분은 죄는 당신께서 죽기까지 철두철미 저주하십니다. 또 그 죄인은 당신께서 죽기까지 한 없이 사랑하십니다. 그분의 뜻은 비록 최초 인간 아담이 타락하여 그 후 모든 인간이 죄인으로 태어나는 한이 있어도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어서 로봇이나 동물로 만들지 않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넘치는 기쁨과 감사와 경배와 찬양 중에 당신을 자발적으로 따르고 동행해주길 원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그런 당신의 남은 자를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도 비록 타락을 했을지언정 기계나 짐승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이며 큰 은혜입니까? 그 외의 방안은 인간이 악만 알고 행하는 사탄 내지 그 부하 같은 존재가 되거나, 아니면 오직 선만 알고 행하는 하나님이나 천상의 선한 천사 같이 만들어야 합니다. 둘 중 어느 쪽도 인간이 아니라 영계에 속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또 다른 영적 존재를 창조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당신과 교제하면서 이 땅을 아름답게 다스릴 당신의 대리인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은 물론 최초 인간이 타락할 줄도 다 아시고, 묵인하셨고, 또 미리 예정하셨습니다. 인간이 보기엔 태초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이 이해되지 않고 차라리 사탄을 막아주었더라면 싶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으로 죄에서 빠져나와 선을 실현토록 만드는 당신만의 계획이 따로 있었습니다. 또 그 계획은 더 완벽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십자가가 예정되어 잇지 않았다면 지금 질문이 아주 훌륭한 질문으로 성립될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께 얼마든지 불평 원망해도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마저 대꾸할 답변이 없을 것입니다. 아이가 너무 똑똑해서 도무지 대답 못할 질문을 하면 부모가 “이제 그만 귀찮게 해! 질문 그만해!”라고 고함치는 것과 같은 상황이 됩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 때문에 “내가 지혜 있는 자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사29:14)라는 하나님의 예언이 하나 어김없이 성취된 것입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어른이 되면 다 알 수 있어!”라고 답하듯이 십자가를 알면 인간 타락의 전말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만유를 충만케 하시는 예수님.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3:15) 성경에서 가장 먼저 십자가 복음을 드러내는 구절입니다. 아담을 타락으로 이끈 사탄에게 하나님이 내린 저주입니다. 여자의 후손은 당연히 동정녀에서 탄생하실 예수님입니다. 또 사탄은 주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함으로써 승리했다고 잠시 착각할지 몰라도, 주님의 발꿈치를 상하게 한 것밖에 안 됩니다. 주님은 사흘 후에 부활하심으로써 인간을 죄의 노예로 묶고 있는 사탄의 철장권세를 완전히 깨트리고 인류를 구속할 길을 활짝 열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하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나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1-4) 태초 즉, 인간을 창조하기 전부터 말씀이신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하시다가 나중에 인간에게 생명의 빛으로 올 계획이 있었다고 합니다. 인간 창조 전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먼저 예정된 것입니다. 문제는 그 빛이 세상에 왔으되 흑암을 더 좋아한 인간들이 배척한 것입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가 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1:15-17) 하늘의 보이지 않는 보좌, 주관, 정사, 권세들은 악한 천사를 포함한 영적존재입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십자가가 예비 되어있었기에 하나님은 사탄이 당신을 배반한 것도 묵인했다는 뜻입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4:4,5) 태초에 십자가가 계획되어 있었지만 시공간에 제한 받는 이 땅에서 실현되는 일은 하나님의 일정표대로 따르게 됩니다. 사탄의 꾐, 인간의 타락, 죄악의 확산, 이스라엘의 선택, 율법의 수여, 다윗 후손과의 언약, 메시아를 대망,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 죽음 등등, 모두가 하나님의 때에 따라 이뤄진 것입니다.
인간의 역사가 눈으로 보기는 인간의 자유의지로 다 행한 것 같지만 실은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였다는 것입니다. 인간 역사 전부가 필연적으로 골고다 언덕의 절정을 향해 집중되도록 하나님이 이끄신 것입니다. 역사는 그분의 역사(His-story) 이야기이자, 그분의 인간구속사(Salvation History)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역사는 진행될 수밖에 없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 마지막 날의 악인의 영원한 불 못 심판과 동시에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의인의 부활과 구원의 완성 등은 그 시기만 문제일 뿐 반드시 이뤄질 것입니다. 지금은 모든 피조물이 예수님의 구속과 그 완성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지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1:17-20)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1:7-12)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이 땅의 모든 것이 인간의 눈에 보이는 대로 모순, 상충, 불공평, 불합리, 왜곡, 거짓, 허망, 등등 한마디로 완전히 헛되고 헛될 뿐입니다. 태초부터 예비된 십자가의 사랑과 권세가 있기에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영원토록 신실하신 사랑 안에서 다시 회복되고 온전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의 은총과 권능 없이는 인간이 제대로 의로워질 수도, 선을 행할 수도 없으며, 심지어 참 인간다워질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탄의 타락은 물론 인간을 유혹하는 것을 묵인하신 뜻은 태초부터 영원토록 일관되게 “인간으로 순수한 자의에 의해 진심으로 당신을 기뻐하며 찬양하며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8/29/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