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형제님의 질문에 대한 목사님이 답변을 '성경문답'에서 읽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심심찮게 나누게 되는 질문들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 부러지게 한 마디로 답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수년전 소그룹 모임에서 나누기 위해 이 문제(신자의 복)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이는 브루스 윌킨슨의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의 내용에 대한 반대견해를 피력하신 분이 계셔서
꼭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니다라는 차원에서 다루었던 것입니다.

충분한 내용은 아니지만 작은 부분이라도 나눈다는 기대를 가지고 게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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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이란?(야베스의 기도를 중심으로)

※ 본문(대상4:9-10):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 들어가기
   ⊙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 중에 가장 으뜸인 것은 아마도 ‘복’이라는 말일 것입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에 기분 나빠 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도 조금이 아니라 듬뿍 받기를 원하는 것이 복입니다. 복 - 참 좋은 것인 듯합니다. 그리고 많이 받는 것이 더 좋은 것 같기도 하구요.
   ⊙ 이는 성도들에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도 ‘예수 믿고 복 받으세요’라곤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분명 복을 받습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복의 의미입니다. 전하는 자나 전함을 받는 자나 모두 ‘복’의 세상적인 개념을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가급적 많이 주어지면 더없이 고마울 마냥 좋은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 ‘브루스 윌킨슨’이라는 분이 본문 말씀을 가지고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을 썼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저도 더 깊은 은혜를 얻을 수 있는 참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일부 성도들 중에는 이 책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분들도 있었습니다. 저자의 논지를 ‘자기중심의, 다시 말해 내가 잘 되고 복 받는 것을 미화한 책’이라고 오해함으로써 나타난 반응일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수준의 신앙에 불과할 뿐이라고 폄하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분들의 주장에 수긍되는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더라도 그분들의 주장은 무언가 이해의 부족에서 기인된 것이 아닌가라는 아쉬움이 남았었던 기억이 납니다.    
   ⊙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이든, 이 책에 대해 약간의 이해부족을 비친 성도들이든,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은혜를 받은 성도들이든, 우리 모두는 ‘복’이라는 용어 내지 개념에 대하여 상당한 오해를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복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단순히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의미할까요? 또 성경은 무엇을 복이라고 말씀하고 계실까요? 세상이 말하는 복과 동일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을까요?    
   ⊙ 사실 성경은 복에 대해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 중에 빠지지 않는 것이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28:6)는 말씀일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인간에게 복을 주시면서(창1:28) 성경 곳곳에서 “복 받으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단순한 약속 차원이 아니라 명령 차원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복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복은 많이 그리고 확실하게 받아야 합니다.
   ⊙ 그런데 그 복은 세상이 말하는 것과 같은 복이 아니라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위의 책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성도들이 생각하는 것과도 같지 않습니다. 성경의 복은 하나님과 관련된 개념입니다. 성경 몇 곳을 참조하며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다만 오늘은 본문에 대한 해석은 위의 책을 참조하기로 하고, 다른 시각에서 묵상하기로 하겠습니다. 일반적인 묵상방법과는 약간 다른 방법이 될 것입니다.

▣ 세상의 복은 자기중심적이고 상대적입니다.
   ⊙ 단언하건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복을 싫어할 사람은 없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처럼 복을 좋아하는 민족도 없을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숟가락에도 밥그릇에도 베개에도 가구에도 모두 모두 ‘복’입니다. 온통 복으로 넘쳐납니다.    
   ⊙ 세상이 좋아하는 복은 사람마다 다소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 자신이 처한 특정한 상황을 반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주 다양할 수 있습니다.
   ⊙ 그러나 예로부터 일반화된 동양의 복은 통상 오복(五福)이라고 부릅니다. 장수(壽), 재력(富), 명예(貴), 건강(康寧), 자손(多男)을 말합니다. 이 정도면 불평할 것이 거의 없다고 할만 합니다. 나쁜 것이므로 거절해야 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좋은 것들이지요.
   ⊙ 학문적으로 뛰어난 분들은 나름대로 복의 개념을 달리하기도 합니다. 맹자 같은 분은 ‘복’이라는 말 대신 ‘낙’(樂)이라는 용어를 쓰기는 했지만, 좀 특이한 복을 이야기합니다. 즉, 인생의 3가지 즐거움(人生三樂)을 「하늘과 땅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는 것, 부모형제가 무고하게 잘 지내는 것,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일반인의 복의 개념보다는 상당히 고차원적이라 하겠습니다. ☞『앙불괴어천 부불작어인 제일락야, 부모구존 형제무고 제이락야, 득천하영재 교육지 제삼락야(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第一樂也 父母久存 兄弟無故 第二樂也 得天下英才 敎育之 第三樂也)』
   ⊙ 평범한 범부든 위대한 성현이든, 복에 대한 개념의 차원이 높든지 낮든지, 범위가 좁든지 넓든지의 차이에 상관없이, 세상이 말하는 복은 거의 대동소이하다 하겠으며 그 요지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하겠습니다.
      ○ 먼저 지극히 자기중심적입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 보다는 오직 자기만을 생각합니다. 맹자 같은 분은 훨씬 낫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상당합니다. 그러나 오복을 보십시오. 남을 배려하는 것이 조금도 없습니다. 오직 자기뿐입니다. 하지만, 맹자든 오복이든 자기중심성을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타인과의 비교의식이 깔려 있습니다. 남보다 내가 나아야 한다는 것이 속내입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는 속담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합니다. 세상의 복은 자기중심성, 자기우선성이 그 특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 다음으로, 상대적입니다. 절대성이 없습니다. 기껏해야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약간의 편의를 제공할 수 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양보할 수 없는 진리라 할 수 없으며 사후의 영혼을 위탁할 수 있을만한 신뢰도 없습니다. 복을 받아봐야 영혼의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철저히 이 세상에 관한 상대적 가치일 뿐입니다.  
      ○ 끝으로, 자기중심적이고 상대적이다 보니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분리와 대립을 조장할 수밖에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일단 내가 우선일 수밖에 없고 다른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더 소유해야 합니다. 이것이 안 될 때는 시기와 질투로 나타나게 되고 대립하고 나뉘게 됩니다. 세상을 하나 되게 하기는커녕 투쟁시킵니다.  
      ○ 이상이 세상 복이 지니는 한계입니다.

▣ 성경의 복은 절대적이고 타인중심적 입니다.
   ⊙ 위에서는 세상이 말하는 복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이제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계시는지를 알아볼 차례입니다.
   ⊙ 성경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성경이 말씀하시는 ‘복’이라는 용어의 의미부터 알아보겠습니다(복의 종류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두 가지의 복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 분복(分福:One's Lot)입니다. 타고난 복을 말하며 때로는 ‘상속, 분깃, 기업’이라는 말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신학자가 아니므로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물질적 번영 혹은 번성’을 뜻하는 (히) ‘베라카’의 의미를 분복으로 받아도 크게 잘못은 아닐 것입니다. 사실 분복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만 허락하신 특별은혜라기 보다는 모든 사람에게 허락하신 일반은혜로서, 노력하는 자가 얻습니다(잠6:6-11, 10:4 참조). 아마 세상 복과 가장 흡사한 성경용어일 것이므로 상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 지복(至福:Beatitudes)입니다. 히브리어로는 ‘아쉬레’라고 하고, 헬라어로는 ‘마카리오스’라고 하는데, 신학사전에서는 ‘하나님의 의와 관련된 용어로서 의는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한다는 의미를 지닌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지복은 특별은혜입니다.
      ○ 여하튼 성경에서는 특별히 ‘분복, 상속, 분깃, 기업’이라는 말로 표현하지 않는 한, 복이라는 용어는 거의 ‘지복’을 의미하고 있다 하겠습니다(물론 예외는 있습니다.=수15:19).  
   ⊙ 성경에는 ‘복’에 대해 너무 많이 말씀하고 있어서 다 정리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곳으로는 시편 제1편, 마태복음의 산상수훈(팔복), 계시록의 칠복 등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한번씩 읽어 보기 바랍니다. 그런데요, 제가 영성이 낮아 그렇겠지만, 저는 시편이나 마태복음이나 계시록의 복을 읽으면 ‘복’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복 같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드는 것입니다(저만 그런가요?). 하지만 사실입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복은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적 복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생각으로는 나쁜 것 또는 바라지 않는 것을 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신구약에서 살펴봐야 할 곳이 무척 많으나 오늘은 구약에서 한 곳, 신약에서 두 곳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 먼저 구약입니다. 족장시대는 물론 그 이후에도 세상적 복을 누린 성도는 많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도 아주 부유했고, 다윗이나 솔로몬은 거부였습니다. 그러나 이분들에게 부를 비롯한 세상적 복은 그다지 중요성을 지니지 못했습니다(전도서 참조). 있으면 좋고 감사할 일이지만 없어도 그만 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욥입니다. 욥은 처음에 엄청난 갑부였습니다. 공연히 하나님이 사단과 내기를 하시는 바람에 재물도 잃고 자식도 잃고 부인마저 떠났습니다. 게다가 육체의 병까지 얻었습니다. 그의 아픔은 욥기 전체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런 것 때문에 믿음을 배반하지는 않습니다. 고통에 신음할망정 하나님을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후일 자식과 재물을 다시 얻습니다. 그런데 욥은 이런 회복 때문에 하나님을 다시 믿게 되었다는 말씀이 전혀 없습니다. 세상의 복과 관계없이 신실하게 하나님을 신뢰한 욥은 그래서 참 믿음의 사람이라는 증거를 받았던 것입니다. 욥은 세상 복(부/건강/다남 등)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자체만으로 복 받은 사람입니다.  
   ⊙ 다음은 신약입니다.
      ○ 먼저,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입니다(눅16:19-31). 부자는 이 세상에서 부러울 것 하나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나사로는 평생 거지로서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누가 복 받은 자입니까? 당연히 부자입니다. 사실 부자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기 쉬우나, 성경에 나타난 것만으로도 이 부자는 상당히 괜찮은 사람임이 입증됩니다. 이 부자는 종교생활도 열심히 했을 것이며 구제도 많이 했을 것입니다. 나사로가 그의 문 앞에서 얻어먹으며 살 수 있었으니까요. 뿐만 아니라 가족에 대한 애정도 깊었습니다. 비록 자신은 구원 받지 못하더라도 형제들은 구원받기를 소원했으니까요. 이 부자는 샤일록과 같은 피도 눈물도 없는 망나니가 결코 아닙니다. 행위적으로 본다면 오히려 나사로보다 공적이 더 많은 그런 사람입니다. 반대로 나사로는요? 우리는 그가 사후에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다는 것 때문에 그의 삶 전체를 미화하기 쉬우나, 실제 그의 이 세상 삶은 공적이 하나도 없습니다.  전도? 구제? 헌금? 간증? 우리가 주님께 영광이 되리라 여기는 그 어떤 공적도 나사로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가 한 일은 오직 빌어먹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나사로는 평생 기도 외에는 다른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주여, 제발 곤고한 저를 생각하소서.’  자, 누가 복 받은 사람입니까? 성경은 무어라 말씀하십니까? ‘부자는 지옥에, 나사로는 낙원에 갔다’는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부자가 아닌 거지 나사로가 복 받은 사람입니다.
      ○ 다음은, 사도 바울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다른 사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만, 특히 바울은 엄청난 박해를 받은 분입니다. 고전4:11-12절에는 바울의 박해가 나열되어 있습니다. 굶주림, 목마름, 헐벗음, 매 맞음, 정처 없이 떠돎, 수고하여 일함, 후욕 당함, 핍박, 비방 등등을 말하고 끝에 가서는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라고 결론을 내려 버리고 맙니다. 사도행전과 다른 서신 등에서 동일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도 신분인 바울이, 그것도 가장 열성적으로 충성을 다한 바울이, 지금 ‘더러운 찌꺼기’로 대접받으며 살고 있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세상적으로는 결코 복스러운 삶이 아닙니다. 오히려 저주받은 자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요, 바울은 13편의 편지 어느 곳에서도 자신이 ‘복 받지 못한 자’라는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가장 많은 복을 받은 자라는 믿음만 확인할 수 있을 뿐입니다. 바울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 간략하게 살펴본 바와 같이, 성경의 복은 세상의 복과 많이 다릅니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세상 복까지를 포괄하지만 그 이상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하나님 관계적 개념’이라고 부릅니다(혼자만 쓰는 용어입니다). 은혜, 형통, 복 등등 모든 성경 용어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이해해야 바르게 이해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형통’이라는 성경 용어를 인간의 용어로 바꾼다면 ‘고통’으로 바꾸어야만 할 것입니다. ‘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생각과 기대와는 다름이 있습니다. 그 다름의 한 가지는, 복이 잘 먹고 잘 사는 것과 무관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나사로와 바울의 예를 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므로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 에베소서 1장 3절은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보면 일단 복은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과 관련되지 않은 것은 복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늘에 속한 것이라고 합니다. 땅에 속한 것이 아니랍니다. 세상적인 복과는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또 그것은 신령하답니다. 영적인 것이라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복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랍니다. 세상이 주는 것은 복이 아니라는 뜻도 됩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씀하시는 복이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 ‘예수님 안에 있고 하늘에 속하고 신령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한마디로 한다면 뭘까요? 예, 구원입니다! 복은 곧 구원입니다(=영생=시133:3b). 하나님의 뜻은 천국의 완성입니다만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그것은 구원입니다. 구원이 없는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구원은 기독교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입니다. 이것이 복입니다. 그 복을 누리는 자의 모습이 시편 1편이고 산상수훈의 팔복이며 계시록의 칠복인 것입니다. 이것을 제외한 것(우리 인간이 좋아하는 복)은 분복으로서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것은 아니라는 것이 성경의 본 뜻입니다. 구원 받은 자는 곧 복 받은 자입니다. 부자와 나사로를 보십시오. 그게 전부입니다. 그 이상은 없습니다. 이 진리를 붙잡을 때, 우리는 복에 대한 온전한 의미를 깨우치게 되는 것입니다. 분복을 누리면 좋고 누리지 못해도 감사할 수 있는 모습 - 성숙된 성도의 모습일 것입니다.      
      ○ 브루스 윌킨슨 박사는 이 정도를 이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복이란 사람의 힘으로 얻지 못하는 초자연적인 은혜’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정확합니다. 옳은 결론입니다. 따라서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은 성경의 깊은 뜻을 헤아린 영성의 책인 것입니다.  
   ⊙ 성경의 이러한 복의 개념은 사람이 이해하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은 이해할 수 없고, 심지어 성도들이라 하더라도 쉬운 것은 아닙니다. 아주 유명한 목사님 중에 ‘삼박자 축복론’을 주장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요한3서 2절 말씀을 가지고, 예수 믿으면 영혼만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세상 복도 받아 잘 먹고 잘 살아야 하며 이것이 성경의 바른 뜻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서 못 살면 하나님께 영광될 것이 없다는 주장입니다. 그분의 책을 읽어보면 성경구절을 자유자재로 인용하며 타당한 논리로 설교하고 있어서, 도통 흠잡을 곳이 없을 정도로 옳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요, 저는 그분의 설교를 들으면 왠지 피상적이고 깊이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예수 믿어 잘 살 수 있습니다. 결코 나쁜 것 아니고요. 그렇게 되면 좋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에는 그보다 더 깊은 것이 있습니다. 위의 목사님은 그것까지를 보지는 못하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변론할 필요는 없으나 한 가지 이견만 제기하지요. ‘예수를 믿지만 가난한 사람은 잘못 믿는 것인가? 나사로도 바울도 잘못 믿은 것인가?’ 성경적 답변이 기대되는 바 있다 하겠습니다.
   ⊙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성경의 복은 세상의 복과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복’이란 세상의 ‘분복’보다는 ‘지복’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복의 개념이 훨씬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성경의 복은 곧 구원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참 믿음과 그 결과인 구원을 성경은 ‘복’이라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3절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복(구원)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으므로 절대적입니다. 누구도 줄 수 없고 또 누구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기만 위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타적입니다. 성경은 이를 다른 말로 ‘사랑’이라 말씀하십니다. 사랑도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입니다만 그 뜻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바로 성육신(成肉身:Incarnation)입니다(별도 묵상인 ‘사랑’을 참조하십시오). 독생자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의 결실이 무엇인지는 다 아시지요? 예, 바로 구원입니다. 결국 사랑도 구원도 모두 모두 하나님의 신령한 복인 것입니다!

▣ 나가기
   ⊙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말을 듣고 예수를 믿었는데, 왜 이토록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야 하는가? 성경이 말씀하시는 복은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인가? 적어도 창조주를 믿는 사람에게는 세상 사람들보다 더 많은 복을 누리는 것이 합당하지 않은가?’   힘들게 세상 삶을 살아가고 있는 많은 성도들이 제기할 수 있는 질문들은 많습니다.
   ⊙ 있을 수 있는 질문이겠으나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분복을 허락하셔서 마음껏 누릴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성경의 복은 더 깊은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복 즉, ‘지복’을 의미하며 바로 ‘구원’인 것입니다.
   ⊙ 예수 믿으면 복 받습니까? 예, 분명 복 받습니다. 그런데 그 복은 분복을 뛰어넘는 지복(즉 구원)이라는 것이 성경의 증거입니다!
   ⊙ 그렇습니다. 주님을 믿는 우리는 우리 주님을 단지 세상 복을 주시는 알라딘의 램프로 이해해서는 아니 됩니다. 세상 복을 누릴 수 있으면 감사하고 행여 누리지 못하더라도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올바른 성도라 할 것입니다. 나사로를 생각하며 바울을 보고 배우며 좀더 크고 비밀한 신령한 복을 사모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도 합니다. ♥

김 계환

2005.11.16 13:06:27
*.132.10.2

What a woderful insight this is! I agree with you wholeheartedly. I believe the biblical and spiritual doctrines have to hinge on this biblical truth! But, nowadays, many churches, especially pentacostal churches (as you mentioned about a pastor in your essay) are teaching a big fat lies about this material blessings to intrigue many spiritually blind people. I used to go to the church. But, by His grace, I came to understand the real spiritual blessing of God in Jesus Christ! I am grateful that I found a brother of the same mind in Him.
The Charismatic movement is spreading like a wild fire in the current christian world. They are teaching about speaking in tongues, miraculous healings, material blessings which people in nature like to hear about. This is one of the big signs of the end time Mathew 24 and 2 The 2 are teaching about, I believe ( false prophets showing signs and wonders to deceive even the elects!, man of sin sitting in the temple!). I have to develop a lenghy biblical explanation to support this statement, but, due to my lack of time today, I put it off for next chance. Anyway, I am also curious about your understanding on speaking in tongues. Would you write about it some day please? Thank you. ( I don't have Korean keyboard at wor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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