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눅1:36에는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구절입니다.
○ 이유는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친척관계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의 육신적 혈통은 유다지파입니다. 비록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족보에 상이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마태의 족보는 주님의 부계(요셉)혈통으로, 누가의 족보는 주님의 모계(마리아)혈통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학자들의 견해가 옳다면 마리아는 유다지파의 여인입니다! 아무튼, 요셉의 혈통을 따르든 마리아의 혈통을 따르든, 예수님이 유다지파의 자손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 이에 비해 세례 요한은 분명 레위 지파입니다. 눅1:5절에는 세례 요한의 부모인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혈통이 너무도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부친은 아비야 반열의 제사장입니다. 역대상에 보면 노년의 다윗이 여러 가지 통치분야를 재정비하여 솔로몬에게 왕위를 인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중에는 종교분야도 포함됩니다. 즉, 다윗 당시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 후손 족장은 16명이고 이다말 후손 족장은 8명이었는데, 다윗은 이들 24가족의 순서(반차)를 정하여 제사장의 임무를 수행토록 정리하였습니다(대상24장). 10절을 보면 아비야는 24 반차 중의 여덟 번째 제사장임을 알 수 있습니다(대상24:10). 결과적으로 아론→이다말→……→아비야→……→사가랴→세례 요한의 계보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 한편, 율법에 따라 제사장들은 이스라엘 태생의 처녀들과 결혼해야 했으며 가능하다면 제사장 딸과의 결혼이 권장되었습니다(레21:7-14). 따라서 제사장인 사가랴는 레위지파의 처녀와 결혼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을 뿐 아니라, 눅1:5절은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아론지파임을 확정하고 있습니다. 결국, 세례 요한의 혈통은 레위(아론)의 후손인 것입니다.
○ 한국의 경우, 가까운 혈족을 친인척(親姻戚)으로 구별합니다. 친척은 부계혈족으로서 보통 8촌까지를 포함하며, 인척은 모계혈족으로서 4촌까지를 그 범위로 합니다. 이 범위를 넘는 혈족은 그냥 ‘일가’(一家)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 이제, 그렇다면 눅1:36절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가 짐작될 것입니다. 즉, 여기서 “친족”(Relative)이라는 혈족관계가 성립될 수 있는 가능성은 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입니다!
- 36절은 천사가 마리아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네”는 ‘마리아’에 대한 2인칭 대명사입니다.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친족” 관계가 성립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 그런데,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마리아(유다지파)와 엘리사벳(레위지파)은 부계가 확실히 틀리므로 ‘친척’일 가능성은 전혀 없다 하겠습니다.
- 이제 남은 것은 모계에 의한 ‘인척’의 가능성뿐입니다. 한국의 인척은 4촌 이내로 한정됨을 고려한다면,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가까운 인척관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이 두 여인이 이종4촌이 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즉, 마리아의 모친과 엘리사벳의 모친은, 유다지파가 되었든 레위지파가 되었든, 반드시 친자매지간이어야만 합니다.
- 그렇다면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간신히 인척관계가 성립되므로, ‘친족’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는 있지 않을까 추정됩니다!
- 한편, 학자들은 ‘친족’ 또는 ‘친척’으로 번역된 헬라어 ‘수게네스’가 ‘피붙이, 혈육’을 의미한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촌수인 이종4촌을 넘는 관계까지 ‘피붙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지만, “친족”이라는 단어를 유대민족 전체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했을 경우입니다. 유대민족은 아브라함 한 사람으로부터 유래되었으므로 당연히 단일민족이며(물론 이방민족의 피가 전혀 섞이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막연히 “친족”이라 부를 수는 있을 것입니다(롬9:3, 11:14, 갈1:16 참조). 그러나 치밀한 누가의 성격상, 이처럼 모호한 의미로 “친족”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 또 눅1:39절 이후의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만나는 모습은, 유대민족이라는 의미를 넘어, 상당히 가까운 친인척 관계인 듯한 뉘앙스를 풍깁니다. 어떤 학자는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살던 곳은 약 150㎞ 정도의 거리였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가까운 이웃 동네든 150㎞ 떨어진 먼 동네든, 이전부터 서로 왕래하며 잘 알고 지내던 사이 같다는 느낌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생판 모르는 집에서 3개월을 머물 수는 없습니다.
- 따라서 가까운 친인척 관계가 아닌데도 막연히 같은 민족이라는 의미에서 “친족”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 참고로, “예수님과 세례 요한이 4촌이다.”라는 견해를 주장하는 분들이 있는데(예 : 마크 부캐넌 목사 / 보이지 않는 것에 눈뜨다 / 규장 / p.139), 나름대로 전승 내지 신학 자료에 근거한 주장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분들의 주장에는 치명적 난점이 있습니다. 이것입니다. 예수님과 세례 요한이 4촌(친4촌/이종4촌/고종4촌/외4촌 등) 이내의 혈족이 되기 위한 조건은 하나입니다. 즉, 예수님의 부모(요셉/마리아)와 세례 요한의 부모(사가랴/엘리사벳) 중에서 누군가는 반드시 친형제/친자매/친오누이 관계가 성립되어야 합니다. 살펴본 대로, 성경은 이들 4명 중에서 요셉/사가랴/엘리사벳의 지파를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친형제자매가 아님이 분명합니다). 다만 마리아는 조금 불분명합니다. 저는 앞에서 마리아가 유다지파일 것으로 추정했었습니다(학자들이 누가복음의 족보를 마리아 계보로 보는 이유와 동일한 이유입니다). 제 추정이 틀려서, 마리아가 레위지파라면(엘리사벳의 친동생), 예수님과 세례 요한은 이종4촌이 됩니다. 만약 이 주장이 맞는다면 다른 분들이 설명하는 누가복음의 족보(마리아 계보=마리아도 유다지파에 속한다는 것)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됩니다. 따라서 저는 “예수님과 세례 요한의 4촌설”을 강력히 반대합니다.
○ 좀더 살펴보고 싶으나 유대인의 족보와 신학 자료에 대한 지식이 제한되는 평신도에게는 벅찬 일인 듯 싶습니다. 따라서 아쉽지만,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이종4촌일 것이라는 추정을 제기하되, 추정에 대한 정확한 논거는 미해결의 의문으로 남겨 두도록 하겠습니다.
✳ 물론, 주님은 성령님에 의해 잉태된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하나님 본체이심으로), 세례 요한과의 육신적 친인척 관계를 일일이 규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성경에 기록된 문자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이해를 목적으로 한번 생각해 본 것입니다.
☞ 의문 : 예수님과 세례 요한은 정말 이종6촌지간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