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나지 못 한 인간은 영적으로 시체 입니다
이 영적 시체인 사람은
순종할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고 회개할 수도 없고 스스로 거듭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택할 자유 의지 또한 없으며 예수님을 찾지도 않습니다
혹시 예수님을 찾는다고 해도 영생을 아닌 다른 목적으로 예수님을 찾게 됩니다
따라서 인간이 거듭날려면 100 % 하나님의 은혜 즉 하나님의 유효하신 부르심을 받아야 합니다
즉 인간은 자기 자신을 즉 스스로를 거듭나게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예정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아닙니다
예정은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제 질문을 이해를 못 하신 것 같은데요
제 질문은 이겁니다
어떤 복음주의자는 기도와 말씀으로 예수님을 간절히 찾으면
하나님이 그 찾는 자의 마음을 변화시키신다고 합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인간이 무엇을 해야 구원을 받느냐는 것 입니다
로마서 10장 10절을 보면
마음으로 믿어... 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을 원어로 바꾸면 마음으로 " 믿어져서 " 라는 뜻 입니다
즉 하나님이 예수님 안의 믿음을 택자에게 주셔서 ( 이 믿음은 복음에 대한 믿음 )
택자가 그 복음에 대한 믿음을 받는 즉시 예수님께 굴복하고 주님으로 그리고 구원자로
믿게 되어 구원을 받습니다
제각 궁금한 것은 구원으 받는 확실한 방법이 무엇이냔 말 입니다
제가 위에서 적었듯이
하나님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은혜로 주셔야 구원을 받게 되는데
그렇다면
대체 인간은 뭘 해야 그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냐는 것 입니다
정말 기도와 말씀으로 예수님을 간절히 찾으면
하나님이 그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켜서 구원 받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니까 제 질문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성경적으로 무엇이냐는 것 입니다
제가 아침 운동을 하러 잠시 나갔다 온 사이에 Walker 님과 Kavelik님 사이에 많은 논의가 있었네요. 그리고 제 이전 답변 댓글이 너무 간략해서 Walker님이 제 의견에 대해 조금 오해하신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 제가 형제님더러 알기 쉬운 예정론의 글들을 천천히 읽어보라고 권면드린 까닭은 예정론을 믿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 글들 안에 하나님의 구원으로 택하심과 인간의 믿으려는 의지가 상충되지 않는다는 설명이 있기에 주신 질문에 대한 간접적인 답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주신 네 가지 질문들을 제가 다 읽지 않은 것이 아니라 형제님이 결국은 한 질문으로 모인다고 했기에, 그에 대한 답이 될만한 글을 이미 홈페이지에 올렸으니 그것으로 답변을 대신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성경 구절에 대한 해석은 따로 준비되는 대로 올리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 어쨌든 최종적인 상기 질문에 대해 아주 간략하게 답변드리자면:
"자연인 상태의 인간은 예수 십자가 복음을 알려고도 하지도 않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영적시체입니다. 그런 상태의 인간을 하나님이 택하여서 성령이 간섭해주면 예수님에 대해 열린 마음이 생기고 믿어보려 노력도 하고 성경도 공부하고 교회도 출석하게 됩니다. 당연히 믿음의 결단까지 이끄십니다. 어느 샌가 모르게 사람에 따라 각기 다 다른 방식으로 구원의 확신을 심어주시고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려고 결단 헌신하게 됩니다. 인간이 영적 시체라는 뜻은 성령이 간섭하기 전까지의 상태이며, 성령이 그런 죄인에게 언제 어떻게 간섭 역사하는 지는 제삼자는 물론 본인도 온전히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택함 받은 인간이 가만히 있는다고 믿음이 곧바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믿어보려는 소원 생각 노력까지도 성령의 역사이므로 그런 역사가 임한 자는 온전한 믿음을 가지려고 자연히 노력하게 되고 또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신자로선 하나님의 영이 자신의 영에 역사하는 동안은 전혀 모르고 지정의로 인식한 후에 그것으로 인삭하는 부분에 한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믿어진 후에 자기가 십자가 복음을 믿어진 것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인간 쪽에서 믿기로 결단해야 한다 또는 믿어야만 구원을 선물로 준다라는 표현도 성립되는 것입니다. 이 때의 믿음은 인간 쪽에서 스스로의 노력으로 갖게 되는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수단과 조건과 자격과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한 자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시는 통로일 뿐입니다."
- 이런 거듭남의 원리를 여러 각도로 설명한 글들이 Kavlik님이 이미 말씀하신대로 제 성경문답 사이트의 [구원] 항목 안의 글들이며, 또 지금 연재하는 알기 쉬운 예정론의 글들이니까 종합적으로 참고 하시면 좋을 것이라고 답변드린 것입니다.
- 그리고 마침 로마서10:10의 말씀에 관해선 곧 올리려고 초안이 완성된 예정론 다음 글에 자세히 설명해 놓았습니다. 샬롬!
질문자님의 구원에 대한 갈급함이 너무나 처절하게 들려와서 도움이 되는 목사님글을 통째로 들고 왔습니다. 기독교의 구원은 말씀보고 믿는차원(?)을 능가하는 자기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썩어 빠지고 추악한, 쉽게말해 지구상에 최악의 죄인임을 자각하는것 부터가 시작입니다. 그것이 전제되지 않은면 구원도 요원해집니다. 부디 질문자님께 성령님의 구원의 은혜의 역사하심이 있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자신이 지옥에 가는 것이 마땅하다는 사실을 먼저 확신할 때까지는 어느 누구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존 에버렛-
더 많은 죄가 구원의 조건이다.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리로다.”(롬5:16,17)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기독교 구원관은 너무 단순한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싱겁기까지 합니다. 그러다보니 작금 이 구원이 너무 쉽게 마치 바겐세일 하듯이 소개되고 또 그렇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는 말씀에는 구원을 아무에게나 싸구려로 팔아넘긴다는 뜻은 전혀 없습니다.
다윗은 시편65:3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죄악이 나를 이기었사오니 우리의 죄과를 주께서 사하시리이다.” 그는 자기 죄악을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어서 주께서 용서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복음의 단순한 원리는 바로 이 같은 고백이 전제가 되어야만 합니다. 세상 어느 누구도 자기 죄악을 이길 수 없다면 하나님이 용서해줄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럼 모든 자를 무조건 다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용서나 구원에 아무 가치와 의미가 없습니다. 무슨 죄를 짓든 모든 자를 다 용서해 준다는 것은 다른 말로 어느 누구도 용서 받을 필요가 없다는 뜻도 되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가 집 안에서 무슨 난장판을 벌려도 부모가 무조건 다 용서해준다면 용서가 구태여 필요 없으며 또 아이도 따로 용서를 구할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무조건 용서해 줄 수 없으니까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준다는 조건을 단 것입니까? 아니면 그 죄를 회개하는 자만 구원해 주기로 한 것입니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된 것같이 보이지만 이 또한 싸구려 구원으로 전락할 소지가 있습니다. 믿기로 한 결단이나, 자기 죄를 회개한 그 자체로는 구원의 전제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재삼재사 말하지만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만이 구원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자 근거입니다.
믿음이나 회개가 구원의 전제가 되면 그것으로 죄 사함의 조건이 충족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어쨌든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 죄를 이기고 그 죄과를 처리한 셈입니다. 하나님도 단순히 믿음과 회개의 진정성만 보고는 바로 구원 허가서에 사인해준 셈이 됩니다. 그러나 믿어보려 결단하고 자기 죄를 회개하는 데 가식으로 하는 자는 거의 없습니다.
말하자면 단순히 자기 죄를 회개하는 것으로는 구원 얻기에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회개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자기 죄를 고치려 드는 회개와 아무리해도 그 죄가 고쳐지지 않더라는 회개입니다. 전자의 경우는 스스로 죄를 고칠 수 있고 또 고쳐 나가겠다는 회개인지라 자기 죄를 자기가 이길 수 없더라는 다윗과 같은 고백이 나올 수 없습니다.
후자의 회개는 다릅니다. “나는 죄에게 꼼짝도 못하고 당했다. 너무나 자주 무참하게 당했다. 수도 없이 많이 회개해봤지만 도저히 어쩔 수 없더라. 조금 나아지는 것 같더니 또 동일한 상황이 닥치면 손 한번 못 써보고 어이없이 또 죄를 범했다. 급기야는 습관이 되었고 오히려 죄를 즐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너무나 부끄럽고 말이 안 되어 치를 떨었다.” 처절하게 죄를 이겨보려 몸부림 쳐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하여 완전한 절망의 나락에 떨어진 체험이 있은 후에 저절로 따라 나오는 고백입니다.
예수님이 복음의 첫 메시지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전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단순히 행동, 말, 생각으로 지은 윤리적 죄를 반성하고 고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 마음 전부를 천국 지향적으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인생의 가치관을 인본주의에서 신본주의로 완전히 바꾸라는 요구로서 그러기 위해선 죄를 스스로 회개하고 이길 수 있다는 생각에서 도저히 그럴 수 없다고 생각을 바꿔먹어야 합니다.
불신자도 죄를 회개하며 고치려 노력합니다. 단순히 죄를 회개한 것으로 구원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불신자는 얼마든지 자기 죄를 자기가 이길 수 있다고 믿는 자이며 신자는 철저하게 그 반대인 자입니다. 자기에게 죄악을 이겨낼 힘이 아예 없기에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 없이는 자기는 천만번 죽어 마땅하다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도 단순히 교리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체험에서 절로 우러나온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다가 아닙니다. 그렇게 마음을 바꿔먹고 또 그런 고백을 한 것은 분명히 본인이지만, 자기 스스로는 도무지 그런 고백조차 할 수 없었다는 인식도 따라야 합니다. 죄가 자기를 무참하게 이겼다는 고백이 스스로 죄를 고칠 수 있다고 믿는 자에게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 아닙니까? 불신자의 도덕성, 종교성, 영성으로는 스스로 십자가 앞에 항복하는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 깨우침조차도 하나님의 너무나 큰 은혜였음을 자각하고 겸손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다윗이 죄악을 이길 수 없었다고 고백한 후에 바로 이어서 어떻게 말했습니까?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오직 주님이 자기를 택해서 은혜를 주셨기에 그런 고백을 할 수 있었으며 또 그런 은혜에 든 자만이 참으로 복을 받은 자라고 하지 않습니까?
본문에선 바울이 또 뭐라고 예수님의 구원을 설명하고 있습니까? “은사(공짜로 주는 구원의 선물)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아담으로 인해 모든 자가 죄의 진노 아래 있게 되었고 또 예수로 인해 그 많은 죄인이 구원의 은혜 안에 들어올 수 있었다는 대조가 근본 뜻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인류 전체로나 개인적으로나 많은 죄를 범한 후라야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이 그 정당성과 효력을 갖게 된다는 말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자기 죄가 누더기처럼 온 몸에 잔뜩 붙어 있어서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떼어내려야 낼 수 없을 만큼 많다고 고백하는 자를 구원해주십니다. 그 수많은 죄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당신이 흘린 모든 피로 다 감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그 모든 죄와 당신의 생명을 맞바꾸었습니다. 그분의 핏 값으로 사신 구원이 어찌 단순히 인간의, 그것도 죄에 빠져 있는 자의 믿음과 회개로 취득될 만큼 싸구려일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말씀도, 본인이 자기 죄를 무거운 짐이라고 처절하게 깨달아 그 짐을 더는 것이 너무 수고스럽다고 여기는 자를 오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지는 멍에를 메어야 합니다. 십자가 구원의 진리 앞에 자신의 그 더럽고 추하고 부끄러웠던 모든 것을 바쳐서 완전히 항복하고 그분의 이끄심대로 따르며 거룩한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한 마디로 나에게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것이 오직 예수로 인한 것이었다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현실의 외형적 변화가 절대 아닙니다. 이 땅에서의 인생과 매일의 삶과 자기라는 존재에 대해서 그 때까지 자기가 품고 있던 마음이 완전히 뒤집어엎어지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과정과 이유를 도무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자기는 이전의 불신자 시절과는 전혀 달라졌는데 그 일이 오직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택하셔서 먼저 찾아와 주신 일로만 말미암았다는 살아 있는 체험적 고백이 있어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 죄를 내가 이길 수 없고 죄에 졌다는 고백입니다. 그 죄를 이길 수 있고 해결해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의 십자가뿐이라는 확신입니다. 또 그 고백은 구원을 얻은 이후에도 날마다 순간마다 변함없이 동일해야 합니다. 십자가 외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소망이라고는 아예 없습니다. 모두 죽은 시체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십자가가 바겐세일로 팔린다면 교회와 신자는 권능이 줄어든 아니 없어진 껍데기에 불과할 뿐입니다.
진짜...모순되는게 영적 시체에 스스로 거듭날수 없다고 고백하시면서도..구원에 있어서 자꾸 인간이 무언가를 함으로써 마치 구원에 공로를 더할수 있진 않느냐의 질문으로 밖에 안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