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사도행전17절 30절)
저는 오직 하나님만 생명이고 길이시니 하나님을 믿지는 않으면 죄사함을 받을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전인 BC경에 살았던 사람도 마찬가지고 하나님의 존재도 성경도 단 한번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고조선쯤에 살았던 우리 한국의 조상도 다른나라 고대인들도 마찬가지로 죄사함을 못받았겠구나 싶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전혀 몰랐기때문에 억울한 부분도 있지만... 오직 예수님전 BC에 살았던 고대인들의 죄사함을 결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현재로써는 아무도 100% 확신으로 딱 이분법으로 하나님을 몰랐던 고대인들은 천국갔다 혹은 지옥갔다라고 말할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 아시죠.
그런데, 사도행전 17장 30절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을 몰랐던 고대인들은 봐줘서 죄사함을 얻었다는 뜻인가요?
로마서 1장 18절부터 32절까지 읽어보았는데요, 그래도 이해 안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당시 이동수단이 지금처럼 발달된게 아니라서 예수님이 오시기전에는 이스라엘 주변에 있는 중동국가 즉 시리아, 이집트, 요르단, 사우디 아라비아와 유럽의 몇몇 지역과 아프리카 지중해랑 가까운 북쪽지역 외에는 하나님을 알수있는 방법이 무엇인가요?
기원전의 한국, 일본, 북미지역, 남미지역은 당시 하나님을 전문적으로 알리는 선지자도 없었고, 자동차나 비행기가 없음으로 도저히 갈 엄두조차도 할수없고, 심지어 이 머나 먼 곳에 대륙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습니다... 대체 어떤 방식으로 어떤 길로 이스라엘부터 이 머나 먼 거리에 있는 고대인들이 하나님을 알수있다는건가요?
만약 아담의 후손들이 대대로 긴 시간에 걸쳐 한국땅까지 온다음,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구전방식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고 가정한다고 하더라도 분명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기록이 나무나 돌에 새겨서 후손들에게 전승되어야 하는데 여태까지 고조선시기에 이스라엘 하나님에 관한 기록은 단 한건도 발견된게 없습니다.
지금 근본적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도 반드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그것도 성경을 통해서 믿어야만 구원을 얻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럼 말씀하신대로 가나안 땅 인근을 제외하고는 아예 구조적으로 믿을 수도 구원 받을 수도 없습니다.
창세기 1-12장까지는 이스라엘이 생기지도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야곱이 열두 아들을 낳고 그 후손들이 사백삼십 년간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가 모세가 탈출 시킨 후에 비로소 생긴 나라입니다. 이스라엘 전에도 창조주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순전히 믿고 경배하며 전적으로 의지한 아담과 이브,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과 족장들을 구원해주셨습니다.
다른 지역 다른 민족의 사람들은 창세기 11장까지의 그런 상황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에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스라엘, 구약성경, 여호와를 몰랐어도 창조주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얼마든지 믿을 수 있고 또 마땅히 믿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고 선포한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다시 로마서 특별히 1:18-23을 천천히 잘 읽어보십시오.
바울은 또 인간이 창조된 후에 예수님 오시기 전까지의 이방인의 영적 상태는 롬 1:18-32에서, 유대인의 영적 상태는 롬2:1-3:8에서 설명해 놓았습니다. 그 둘을 합쳐서 롬3:9-20에서 결론을 내리길 하나님을 찾거나 두려워하는 자가 아무도 없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래서 율법 외에 또 다른 의이신 예수님이 나타나셨고(롬3:21) 그분이 행하신 일 즉, 십자가 복음에 대해서 설명을 이어간 것입니다.
1, 그럼, 참 하나님을 들을적도 구약을 본적도 없던 고대인은 본능적으로 창조주 참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있었다는 뜻인가요?? 마치 무실론자가 병으로 때문에 임종에 가까워질때쯤 사람이라면 본능적으로 신을 찾고 낮길 기도하고 이런거처럼... 그냥 참 하나님의 존재를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의지했다는 뜻인가요??
2, 사람자체가 참 하나님의 존재를 본능적으로 알고 본능적으로 의지하게 만들어졌다면요.... 그럼, 한국의 조상들이 참 하나님을 들은적도 구약을 본적도 없이 참 하나님의 존재를 하늘을 만들고 땅을 만드신 '천지신명(天地神明)'으로 이름을 칭하고 이 존재를 밤에 물떠놓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라고 빌었다면 이 기도가 하나님한테 가는건가요? 분명 우리 조상님도 참 하나님을 들을적도 없고 구약을 본적도 없지만, 세계를 창조한 참 하나님을 의지하고 싶고 찾고싶은 마음은 분명할거 같습니다.
1. 롬1:19,20이 인간이 나자마자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지어졌으므로 아담이 타락했어도 그 형상의 흔적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남아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1)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18절) - 인간 내면에 하나님을 알만 한 것(may be known) - 알 수 있는 가능성만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입니다. 태어나자마자 누구나 알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가능성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피조물 인식과 양심입니다. 피조물 인식은 인간이 그냥 우연히 태어난 것이 아니며 물질계에 제한 받은 유한성을 갖고 있기에 창조주가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또 도덕적으로(비록 상대적이고 불완전한 선이긴 하지만) 의롭게 살려는 경향이 모든 이에게 있기에 그 또한 물질에서 진화된 것이 아니라 선하신 절대자가 그렇게 만들어 주셨다고 인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말로 자신의 기원과 특성에 대해 고민해 본 사람은 하나님이 계심을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2)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19절) - 마찬가지로 능력과 신성이 보이지 아니한다고 했다가 나중에 보여 알게 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은 물체가 아니라 그분의 속성이므로 가시적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만드신 만물을 통해서 보이고 알게 된다고 합니다. 18절이 인간 내면의 본성에 대한 설명이라면 19절은 인간 외부의 자연과 그 질서를 말합니다. 엄청난 규모인데도 너무나 질서정연하고 조화롭고 정미하게 생장 운행되고 있는 모든 자연을 보면(창조때에 이미 완벽하게 그렇게 해두셨음-아담 이후 모든 인간에게 적용됨) 절대로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1)과 2)의 이유와 근거로 해서 사람들이 인간과 세상과 하나님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보면 그분을 알게 되고 그래서 그분께 진정한 감사와 경배를 올릴 수 있는데도 사람들이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도 여호와, 율법, 이스라엘 등이 없어서 하나님을 몰랐고 믿지 않았다는 핑게는 댈 수 없다는 것입니다.
2. 모든 사람들이 대신에 사람과 짐승과 버러지(벌레) 형상으로 우상을 맏들어 섬겼다고 합니다.(21절) - 썩어질 물질(하나님 그분이 아닌 그분의 피조물, 피조물 중에 인간이 최고임에도)을 신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고대의 한국조상도 본능적으로 참 하나님을 안 것이 절대 아닙니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찾았으면 알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천지신명이라는 용어의 뜻부터 창조주 유일신이 아니고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신들 같은 존재 혹은 모든 크고 엄청난 자연현상을 말합니다. 예컨대 큰 바위나 나무들이 어떤 신령한 힘이 있다고 믿고 성황당을 지어놓고 그 앞에서 빌었습니다. 서양신화(사실은 모든 지역)에서 보듯이 바다의 신, 폭풍의 신, 천둥의 신, 술의 신, 사랑의 신, 전쟁의 신 등등 자연과 지역과 인생사 등을 세분해서 극히 작은 영역만 담당하는 신들을 스스로 가상해서 만들어내어 스스로 섬긴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오직 이 땅의 현실에서 복만 받고 액땜하려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의 둘째 계명은 "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어 섬기지 말라고 명한 것입니다.
성경(롬3:9-18)은 구약시대의 모든 사람들의 상태를(이방인과 이스라엘 둘 다 합쳐서) 하나님을 찾지도 두려워하지도 않고 깨닫는 자도 하나도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예수님 오시기 전의 모든 인간들은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안 것도 아니고 진지하게 찾으려 하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이땅의 현실적 복만 달라는 목적으로 스스로 신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으로선 이스라엘 외의 지역에도 당신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탐구하면 당신을 알 수 있도록 인간 내면과 외면에 충분한 힌트 계시 등을 주어 놓았으나 인간은 이땅에서 형통만 바라며 찾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비록 인간보다 더 큰 힘을 가진 신적인 존재들이 있다고까지는 인정했어도 그 신들마저 자기들 요구대로 해주어야 한다고 고집하며 인간 스스로 각 분야에 이런저런 신들이 있어야 한다고 만들어서 섬긴 것입니다. 신들마저 인간이 부려먹으려 든 것이 바로 아담이 타락한 죄의 본질입니다.
성경에는 때로 혼자서 아무리 읽어도 쉽게 또 정확히 뜻을 알 수 없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성경과 기독교교리 공부모임(정통복음주의)에 반드시 또 적극 참여하여서 체계적으로 배우시길 바랍니다.
행복님 안녕하세요.
이 질문에 대한 적절한 설명인지는 모르지만 예를 들어 참고정도는 될까하고 저의 개인적인 경우를 빗대어 간략히 말씀드려봅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때 성경의 하나님과 예수님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전까지 전혀 몰랐습니다. 저희 집은 종교가 없던 불신자 집안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주님을 알기 이전 소시적에도 가령, 키우던 병아리가 죽거나 아무개집에 누가 병이들어 아파한다거나 길을 가다 육교같은 곳에서 자판을 깔고 나물같은 것을 파시는 할머니를 보거나 기타등등 무슨일이 있을때마다 '하느님'한테 기도하곤 했었습니다. 병아리가 천국가서 행복하게 살게 해달라고, 아픈 병 낫게 해달라고, 가난하고 불쌍한 할머니 부자되어 행복하게 해달라고.. 순수하게 빌던 그대상이 정확히 성경의 하나님은 아니었지만 이세상을 만든분, 또 못할것이 없는 분이 하늘에 계실거라고 막연히 생각하며 하늘을 보며 빌곤 했었습니다.
아마 저 말고도 많은 분들이 적어도 어렸던 소시적에 이런 경험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모습은 어떻습니까?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롬1:18-32)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님과 하나님을 몰라도 일말의 양심은 그래도 남아있어 "이러면 천벌받을텐데.." 하면서도 저러지 않습니까? 정말 표현을 해도 어쩌면 직접 본것처럼 너무나도 정확하게 서술하고 있어 놀랍습니다. 아마도 시대만 다를뿐 인간 공통의 속성을 여실히 꿰뚫는 말이라 그러한듯 합니다.
우리 조상들 역시 세상만물을 만드신 절대자 대신에 인간 스스로 신이 된 불교를 숭배하며 불상과 또 온갖 잡신을 형상화해서 모시지 않았습니까? 이는 과거뿐 아니라 현재의 오늘날까지도 무당과 점집이 성행하며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직접 본것은 아니므로 모르긴 해도 과거 모든 시대의 모든 인간들 대부분이 다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지했던 시대에는 눈감아 주셨지만, 이제는 어디에서나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명하십니다."(표준새번역) 우선 눈감아 주셨다고 했지 심판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무시하다 주의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그들로 우상 신들을 섬기도록 그냥 방치해두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아데네 사람들에게 전도하고 있는 중에 그들을 설득하려는 말씀이라는 것부터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절대 진리를 하나님이 직접 선포하거나 성령의 영감으로 교리로 기록케 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특별히 바로 앞에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는 제단을 본 후에(23절) 복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런 무지의 시대가 아니라고 했고 그래서 31절에서 누구나 쉽게 믿을 수 있는 증거(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사건)을 받았으니 제발 회개하고 믿으라고 간곡히 당부한 것입니다.
만약 구약시대에는 복음을 몰랐기에 심판하지 않았다는 뜻이 되려면 구약 인류 전부, 가인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의 모든 대적이 다 구원 받았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 말씀을 하고 있는 바울이 예수님 오시기 전에도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증거를 모든 이에게 충분히 주었기에 심판 받아도 핑계될 수 없다고 로마서 1장 후반부(18-32절-꼭 다시 읽어보십시오)에서 자세히 설명해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