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3:9-12) 땅의 일도 믿지 못하는 신자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구원 토론 (5)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3:9-12) 

 

서로 다른 두 질문

 

예수님은 구원의 길을 물으러 온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가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느냐고 되묻자,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하면서,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소리는 들린다는 비유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성령이 한 사람의 영혼을 거듭나게 해주는 구체적인 과정은 모르지만, 거듭난 후에는 그 사실을 본인은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또다시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라고 반문했습니다. 언뜻 어리석게 보여도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상식이나 이성으로 쉽게 알 수 있는 일들은 굳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꼭 전해야 할 진리만 골라서 기록합니다. 요한 사도가 같은 맥락처럼 보이는 질문을 두 번 언급했다면, 그가 알고 싶었던 내용이 각기 다르다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답변 내용도 각 질문에 따라 달라진 것입니다.

 

니고데모로선 주님의 처음 가르침이 금시초문인 데다 대뜸 ‘사람이 거듭나야 한다’라고 주어를 사람으로 사용했기에, 스스로 말도 안 되는 질문인 줄 알면서도 사람이 거듭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으냐고 되물은 것입니다. 말하자면 거듭나는 방법이 궁금했던 것입니다. 인간의 육체가 다시 출생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인간의 영을 변화시킨다는 주님의 설명을 듣고선 충분히 이해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주님으로부터 성령의 거듭남에 관한 설명을 듣는 중에 구약성경에 능통한 바리새인이므로 구약의 계시들이 자연스레 떠올랐을 것입니다. 요엘과 에스겔 선지자는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영이 사람을 새롭게 변화시킬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지금 자기에게 성령으로 거듭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로선 아직 마지막 날이 온 것 같지 않은데, 자기에게 그런 해답을 제시해 주니까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매우 궁금해졌을 것입니다. 지금이 과연 세상의 마지막 날인가, 만약 그렇다면 세상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또 어떻게 성령이 역사하여 사람들을 구원해 줄지 물어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대화 주제의 전환

 

예수님도 분명히 니고데모가 어떤 이유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아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에 달리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성령에 관해 가르친 내용을 그에게도 말해 주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주님은 성령이 오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서 세상을 책망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신을 믿지 않는 것이 죄이고, 당신께서 하나님의 보좌로 올라가면 하나님의 의가 실현될 것이며, 그럼으로써 세상의 왕이 심판받을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요16:8-11) 만약 그렇게 설명해 줄 겨를이 없었다면 최소한 당신의 십자가 사역을 다 마친 후에 성령이 올 테니까 그때를 기도하면서 잠잠히 기다리라고 대답해 주었어야 합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고 다그쳤습니다.(10절) 삼 년간 동고동락하면서 천국 복음을 가르친 제자들에겐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자세히 풀어주었는데, 생전 처음 그런 가르침을 접하는 니고데모에겐 곧바로 야단부터 쳤습니다. 주님이 바리새인에 대한 평소 감정이 좋지 않아서 그렇게 한 것일까요? 아니면 같은 질문을 반복하니까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짜증이 났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당신께 찾아와서 겸손히 상담을 요청하는 자를 냉정하게 야단친 적이 없었습니다. 

 

주님과 니고데모 간의 대화의 전체 흐름을 잘 살펴보면 그를 꾸중했다기 보다는 제자들에게 가르친 내용을 그에게도 다른 방식으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우선 니고데모의 반문은 그의 마지막 질문이었습니다.(9절) 그 이후 이 문답이 끝날 때까지 예수님의 일방적이지만 자세한 가르침이 이어집니다.(11-19절) 니고데모의 둘째 질문의 의미가 마지막 날에 영혼이 새로워지는 일에 대해서 정확히 가르쳐 달라는 뜻이었으므로, 주님도 성령으로 거듭나는 구원 진리에 관해 더 풀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날 신학교로 치면 조직 신학 시간에서 구원론 강의를 하는 셈입니다. 

 

사실은 니고데모의 첫 질문부터 그 수업은 시작되었습니다. 전반부 1-10절은 학생과 교수 간의 질의응답을 통해서 성령 하나님이 주도권을 갖는 구원이 강의의 주제로 떠올랐습니다. 후반부 11~19절에선 하나님이 이루시는 그 중생에 대한 신자 쪽의 합당하고도 올바른 반응, 즉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믿음을 주님 혼자서 설명해 준 것입니다. 후반부는 또 그래서 세 가지 주제로 나눠집니다. 주님은 첫째로 믿음이 없는 니고데모의 불신앙 문제를 다루었는데(11, 12절), 오늘 살펴볼 내용입니다. 둘째는 그 불신앙을 그가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설명해 주었고(13~17절), 마지막 셋째는 불신앙의 결과(18~21절)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따라서 후반부에선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은 사라지고, 대신에 ‘믿으라’(believe)라는 단어가 일곱 번이나 등장합니다. 그런 문맥상의 흐름에 따라 오늘 본문의 의미에 대한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주님은 이스라엘의 스승인 니고데모가 성령으로 거듭나는 구원을 ‘지식적인 앎’으로 접근했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순전한 믿음’을 가져야 구원을 얻고 또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의 첫째 역할이 당신을 믿지 않은 죄를 책망하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니고데모도 아직 당신을 믿지 않는 상태라 구원받지 못한 죄인이라고 말하는 셈입니다. 당시에 여호와를 믿고 따르는데 가장 앞섰던 니고데모에게 주님이 믿음이 없다고 말했다면, 과연 오늘날 우리의 믿음은 어떠한지 주님의 뜻에 비추어서 제대로 점검해 봐야 할 것입니다. 

 

아는 것을 증언함

 

주님은 가장 먼저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지금 니고데모와 일대일로 대화하는 중인데 ‘우리’라는 복수 주어를 사용해서 우리가 이미 증언했는데 너희가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너희’는 당연히 니고데모 같은 바리새인을 포함한 유대인 전부일 것이나, ‘우리’가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우선 천국 복음에 대한 증언을 이미 유대인들에게 했다고 하므로 우리는 당연히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앞뒤 문맥을 따지면 세례 요한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과 본 것을 증언한다고 했습니다. 보았으니까 당연히 알게 된다고 단순하게 이해해선 안 됩니다. 주님이 아는 것을 먼저 말씀하셨으니까,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실제로 보게 되었기에 그대로 증언했다고 해석하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우리 안에 제자들과 세례 요한이 포함되므로 같은 유대인인 니고데모도 알고 있는 내용을 말한 것입니다. 설명드린 대로 마지막 날에 메시아가 와서 하나님의 영으로 사람을 새롭게 변화시킨다는 구약의 예언들입니다. 주님의 뜻은 그 예언이 실현되는 것을 우리가 봤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엄청난 이적을 많이 일으켰고 제자들이 지켜봤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닙니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는 마지막 때에 유대인 모두가 대망하는 메시아가 오는 일에 대해서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4:5.6) 이는 구약성경의 마지막 말씀이라 메시아가 오기 전과 후의 두 시대를 이어주는 하나님의 뜻을 계시한 것입니다. 당연히 니고데모도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예언대로 메시아의 오심을 선포하면서 그 길을 예비했던 엘리야 같은 선지자가 바로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요한 본인도 그 계시대로 요단강에서 유대인들에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선포하면서 죄를 회개시키는 물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향해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라고 칭하면서 자기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는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줄 것이라고 증언했습니다. 

 

그렇게 메시아의 오심을 알리기만 하는 인간 선지자 요한에게 메시아이신 주님이 세례를 받으려 하자 요한은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말렸습니다. 그런 그에게 주님은 이렇게 해야만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 있다고 깨우쳐 주면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당신께서 아무 죄가 없으시나 죄인의 자리에까지 완전히 낮아져서 십자가에서 인간의 죗값을 대신 갚는 제물로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또 그런 낮아짐의 세례를 받은 후에 당신의 공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주님이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자 성령이 비둘기같이 주님께 임하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보았습니다. 바로 그때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3:17)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성령의 계시를 이미 받았고 실제로 그 계시대로 이뤄지는 것을 직접 목격했기에, 본문의 주님 말씀처럼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요1:33.34)라고 고백했습니다. 주님이 본 것을 증언한다는 ‘우리’ 중에 세례 요한이 핵심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당신의 공사역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4:17)라는 말씀을 선포하면서 시작했습니다. 구약에서 예언된 마지막 날의 하나님 왕국이 당신의 오심과 함께 이 땅에 이제 도래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십자가 사역으로서 이 땅에 그 나라를 세우시겠다는 뜻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약이 예언한 마지막 때로서 그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주님은 니고데모가 두 번째 질문으로 알고 싶었던 바로 그 내용을 답변해 준 것입니다. 너희 바리새인들은 정치 경제 종교적 기득권을 잃어버리기 싫어서 마지막 때, 즉 주님이 실현시킬 새 시대의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너희도 알고 있는 예언이 지금 실현되고 있다고 계속 증언했는데도 너희는 믿지 않는다고, 사실은 일부러 완악하게 거부하고 있다고 깨우쳐 준 것입니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거꾸로 너희는 우리를 핍박하려 들지 않느냐, 그런데도 네가 이스라엘의 선생이 될 자격이 과연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그 선생

 

주님은 지금 그를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치켜세우면서도 반어법적으로 질책했습니다. 원어로는 그에게 정관사 the를 붙였기에 “바로 그 선생”이라는 뜻이 됩니다. 일반적인 랍비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최고의 선생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니고데모가 아주 명망이 있고 올곧은 랍비라는 사실을 나중에 요한복음이 증명합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믿는 자는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칠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주님은 당신을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말한 것이나 그 난해한 말씀으로 인해서 유대인들 사이에 쟁론이 일어났습니다. 대제사장은 나사렛 예수 일당을, 율법을 어기면서 유대 사회를 어지럽히는 이단으로 정죄하고서 가뜩이나 미워했기에 하속들에게 주님을 잡아 오지 않았다고 야단쳤습니다. 그때 니고데모는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고 대제사장에게 대놓고 반박했습니다. 율법은 죄인에게 공정한 재판을 받을, 즉 죄인이 재판정에서 자신을 변호할 권리를 보장했는데, 율법을 가르쳐야 할 우리가 오히려 율법을 어기지 않느냐고 야단친 셈입니다. (요7:37-50) 

    

그런 이스라엘의 최고 선생으로 너도 알고 있는 말라기의 예언이 지금 실현되고 있다고 우리가 보고 증언했는데 왜 믿지 못하느냐고 주님은 깨우쳐 준 것입니다. 율법을 훨씬 잘 모르는 갈릴리 어부들인 당신의 제자들도 새 시대를 증언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비록 네가 그 현장에 참여하지 못했어도 세례 요한의 사건과 주님의 사역에 관해서 들리는 이야기를 구약성경과 연결해서 다시 잘 생각해 보라고 그를 아끼는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낸 것입니다. 

 

어쩌면 니고데모도 어렴풋이 마지막 때의 천국이 도래했음을 짐작하고 있었기에 주님을 직접 만나서 확인하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주님에게 “당신이 하나님께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라고 칭했을 것입니다. 주님도 그래서 의도적으로 그를 이스라엘의, 즉 땅에선 최고 선생이라고 칭해준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가 밤중에 몰래 찾아올 만큼의 영적 갈증을 가진 것을 보고서 처음부터 성령으로 거듭나면 하나님의 친백성이 되어서 그분의 나라에 동참할 수 있다고, 유대 지도층으로선 최초로 구원론의 결론부터 가르침을 받은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에 대해 어렴풋이 신뢰했으나, 다른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은 마지막 때가 시작되었고 성령이 사람을 거듭나게 하는 새 시대가 시작되고 있음에도 거꾸로 그런 증언을 하는 주님과 세례 요한과 제자들을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만큼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의 영적 안목이 극히 제한적이고 부정적이다 못해서 완전히 부패 붕괴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도 그래서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면 구덩이에 빠진다고 대놓고 그들을 야단쳤습니다. 

 

주님은 덧붙이길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이 또한 그를 질책만 하는 의미가 아닙니다. 설명드린 대로 니고데모가 먼저 주님을 하나님께로 온 선생이라고 하자, 주님은 그를 이스라엘 땅의 최고 선생이라고 칭해주었습니다. 네가 인정하는 대로 하나님께로 온 선생인 내가 땅에서 최고 선생인 너에게 지금껏 땅의 일을 증언하였어도 제대로 믿지 못했으나, 이제부터 하늘의 일을 말해 줄 터이니 정신 바짝 차리고 들으라는 뜻입니다. 

 

하늘의 일

 

하늘의 일이란 한마디로 당신의 십자가 구원이 이 땅의 물질계가 창조되기 전의 태초부터 삼위 하나님이 계획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나중에 성령을 받고서 그 하늘의 일에 대해 정확히 깨닫고서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1:1-5) 한마디로 하늘의 일은 예수님이 빛으로 하나님이고 그분이 죄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러 어두운 이 땅에 직접 오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래서 이어지는 말씀에서 니고데모에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라고, 그 하늘의 일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작은 성경”이라고 불리는 성경 66권의 내용을 한 마디로 줄인 십자가 복음의 정수를, 어쨌든 성경 기록상으로는 역사상 최초로 다른 누구도 아닌 니고데모에게 가르친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라고 두 번째로 물어본 질문에 대해 정확한 해답을 준 것입니다. 네가 궁금해하듯이 마지막 때에 있을 성령이 사람들을 새롭게 시작하는 일이, 우리가 세례 요한의 사건을 비롯해서 지금껏 증언해 왔듯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네가 지금 질문하고 있는 상대인 눈앞의 이름 없는 나사렛의 랍비 당신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래서 당신께서 지금 마지막 때를 열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요컨대 그것이 바로 하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서두에서 본문의 주제는 니고데모의 불신앙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 온전히 믿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자기 스스로 주님을 하나님께로 온 선생이라고 말로는 칭했으나 온전히 믿지 못하고 있기에, 처음부터 성령으로 거듭나서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는 구원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도 제대로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알기 쉽게 말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본체라고 확신한다면 그분 하나님이 말하는 것을 어찌 믿지 못하겠습니까? 

 

기독교 신앙은 이런 차원에서 착한 자가 천국을 간다는 행위 구원을 가르치는 다른 모든 종교와 완전히 다릅니다. 그런 종교인들은 어떻게 하면 착하게 살 수 있는지 그 계명들을 먼저 열심히 배워서 최선을 다해서 그대로 따르려고 노력합니다. 그 종교의 교리를 정확히 알아야만 그 종교가 가르치는 믿음을 가질 수 있으며 또 그런 후에야 구원의 길도 믿을 수 있게 됩니다. 

 

반면에 주님이 니고데모에게 가르치는 구원 진리는 그 순서가 정반대입니다. 오직 예수님이라는 한 인물이 하늘에서 이 땅으로 내려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온전히 믿어야만 합니다. 그분은 구세주를 넘어서 이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세상은 그분을 위해서 창조되어서 그분에 의해서 운행되고 있다는 진리를 온전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후에 그분께 자기 전부를 온전히 의탁하고 그분의 뜻대로 따를 때 비로소 그분의 가르침도 정확히 체험적으로 알게 됩니다. 어그스틴도 그래서 믿기 위해서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알기 위해서 믿는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성령의 거듭남이 먼저다.

 

그러니까 기독교의 구원은 성령이 먼저 거듭나게 해주는 것입니다. 또 그래서 주님이 대뜸 니고데모에게 구원론의 결론부터 가르친 것입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다는 그 은혜를 온전히 믿음으로 받아들인 후에야 비로소 참된 회개가 따르며 그분이 가르치신 계명대로 참된 선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산상수훈을 가르친 내용부터 그런 의미였습니다. 말로 형제를 바보라고 욕해도 살인한 것이며, 마음으로 예쁜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으면 간음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형제에게 빚진 것이 있으면 호리라도 남기지 말고 다 갚은 후에 하나님의 제단에 나오라고 했으며, 눈이나 손이 죄악으로 이끌면 차라리 그것들을 잘라 없애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형벌을 면하라고 가르쳤습니다.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해 주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합니다. 이런 계명들은 아무리 열심히 배워도 절대로 온전히 실천하지 못합니다. 

 

산상수훈을 가르친 주님의 뜻은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의 의의 기준에 합격할 자는 아무도 없다는 점을 정확히 깨닫게 해주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목적도 한 명의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이 당신의 진노 아래 죽어 마땅한 극악한 죄인임을 알게 해주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최고 선생 니고데모가 아무리 율법에 의로웠어도 구원의 확신이 없어 주님을 몰래 찾아왔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의 최고 스승이 몰랐다면 다른 모든 이도 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요한이 세상에 온 참빛을 그분의 백성마저 거부했다고 선포한 것입니다.(요1:4) 

 

역설적으로 말하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야만 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모든 인간의 영적인 상태는 왜곡된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부도 파산이 난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오직 형통하고 출세하는 일만, 그것도 자기들은 가만히 있고 하나님이 대박처럼 일으켜 주는 표적만 바랬습니다. 주님이 이 음란한 세대가 표적만 구하고 표적이 따르지 않으면 믿으려 하지 않는다고 야단친 까닭입니다. 

 

그리고 율법에 따라 하나님을 성실히 섬기려는 소수의 사람은 자기 노력으로 구원에 필요한 합격점을 얻을 수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실제로 기도 구제 금식에 성실히 임해서 사람들의 칭찬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같은 유대인 형제들마저 율법은 물론이고 안식일 규례 같은 부차적인 전통과 관습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라고 정죄하고서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재물과 권력과 명예에서 우월한 지위를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그들의 위선적이고도 가식적인 행태를 꿰뚫어 보시고 회칠한 무덤이라고 저주하며 야단쳤습니다. 

 

심판받을 쭉정이

 

예수님이 오시기 전의 이 땅은 모든 인간이 자기 발로 지옥 심판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는 형국으로 그대로 두면 아무 소망이 없었습니다. 인간 사회에서 하나 부족한 것 없어서 모두가 부러워하는 니고데모도 영적 갈등과 궁핍을 도무지 해소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베풀어주시는 십자가 사랑뿐입니다. 무조건적인 용서를 먼저 베풀고서 그 은혜 앞에 진심으로 겸손히 엎드리는 자들로 이전과 달리 정말로 의롭고 가치 있는 새로운 삶을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문제는 모두가 영적인 시체라서 자신에게 무조건적 용서는 필요 없다고 완악하게 거부하니까, 구원을 주기로 작정한 자에게 성령이 거듭나는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를 때도 당신의 가르침을 지키라고 하지 않았고 단순히 당신을 따르라는 초대부터 했습니다. 지금 니고데모에게도 구원에 대해서 알려고 하기 전에 당신을 전적으로 믿고 당신께 너의 존재 삶 인생 전부를 의탁하라고 초대하고 있는 중입니다.  

 

문제는 지금 이 세대가 예수님 당시보다 영적으로 더 심하게 부도나서 회복 불능할 정도로 완전히 파산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는 잘못 믿고 잘못 알았어도 어쨌든 하나님께 구원받을 필요성은 인정했습니다. 지금은 아예 하나님의 실존조차 부인합니다. 아무도 자기를 죄인이라고 인정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주인이고 자신이 절대적 진리이자 선이고 자기를 반대하면 비진리이고 악이 되었습니다. 그런 판국에 하나님의 아들이 죄에서 구원해 주려고 십자가에서 우리 죗값을 다 갚으시고 대신 죽으셨다고 하면 콧방귀도 뀌지 않고 미친 사람으로 취급할 정도까지 되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한 엘리야였던 세례 요한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는 메시아가 오면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리라”(마3:12)라고 선언했습니다. 쭉정이와 알곡을 함께 두었다가 마지막 날에, 지금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 정확히 구분해서 심판한다고 합니다. 교회에 알곡과 쭉정이가 함께 모여 있다는 뜻이므로 정작 문제는 이 세대의 세상 사람보다 쭉정이 신자들입니다. 예수님 당시 일반인처럼 표적만 구하는 교인입니다. 현실적 형통과 출세를 보장해 주어야만 주님을 믿고 따르는 자입니다. 또 바리새인처럼 자기 의를 자랑하며 도덕적 수양으로만 믿음을 소진하는 혼자만 의로운 교인입니다. 

 

반면에 알곡은 순박했던 갈릴리 어부 제자들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보기를 갈망하고 주님이 따르라는 말씀 한마디에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만 순전하게 따르는 교인입니다. 주님을 알고 나서 믿기보다 주님을 먼저 믿고서 알아 나가는 교인입니다. 물론 성령이 먼저 역사하여 주님을 믿게 하는 은혜를 주셔야만 가능하기에, 바울처럼 말씀과 기도 가운데 살아계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대면하여서 그 영이 거듭난 신자입니다. 그 반대로 쭉정이 신자는 이천 년 전에 이 땅에 이미 일어난 일을 당시 사람들이 증언했는데도 예수님이 완전한 하나님이심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자입니다. 그분의 십자가 죽음의 은혜를 개인적 체험으로 알지 못하는 자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주님을 믿고서 알아 나갑니까, 아니면 잘 알고 나서 믿으려 합니까? 바리새인처럼 땅의 일만 생각하느라 하늘의 일에 관심이 없습니까, 아니면 하늘의 일을 알기에 땅의 일에도 주님이 지칭한 ‘우리’처럼 거룩하게 대응하면서 주변에 주님과 그 십자가를 증언하고 있습니까? 혹시라도 아직도 이도 저도 아닌 본문의 니고데모 같은 상태라면 간절하게 성령의 거듭나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와 동시에 성경 말씀을 통해 살아 역사하시는 예수님이 직접 증언하는 하늘의 일을 깊이 배워나가십시오. 

 

(2/16/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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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3:9-12) 땅의 일도 믿지 못하는 신자.

(요3:9-12) 땅의 일도 믿지 못하는 신자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구원 토론 (5)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진실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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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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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3:6-8) 예수님도 설명할 수 없는 성령의 거듭남

(요3:6-8) 예수님도 설명할 수 없는 성령의 거듭남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구원 토론 (4)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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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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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1:12-14) 주의 종이 갖추어야 할 첫째 가는 자질 [2]

오늘 (2/3, 월) 이곳 엘에이 소재 미주장신대(장로교 신학대)의 신학생 채플에서 전한 설교입니다. (실제 설교는 대화체라 아래 원고와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 ******************************* (빌1:12-14) 사역자가 갖추어야 할 첫째가는 자질 미주 장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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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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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3:6-7) 육에 머무는가? 영으로 났는가?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25)

(요3:6-7) 육에 머무는가? 영으로 났는가?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구원 토론 (3)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요3:6-7) 육에 머문 니고데모 구원의 확신이 없었던 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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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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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3:4-5) 예수님과 선(禪)문답을 해본 적이 있는가?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25)

(요3:4-5) 예수님과 선(禪)문답을 해본 적이 있는가?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2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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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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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3:1-3) 천국 열쇠를 사용하고 있는가?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23)

(요3:1-3) 천국 열쇠를 사용하고 있는가?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23)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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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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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2:1-3) 매일 반복되는 하나님의 시험 - 새롭게 읽은 구약 성경 (21) [1]

(창22:1-3) 매일 반복되는 하나님의 시험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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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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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14:1-3) 진심만으론 많이 부족하다.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20)

(호14:1-3) 진심만으론 많이 부족하다.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20)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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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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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8:31-34) 올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받았는가?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22) [2]

(롬8:31-34) 올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받았는가?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22) / 2024 송구영신 예배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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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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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1:6-11) 초림보다는 재림을 기념하는 성탄절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21)

(행1:6-11) 초림보다 재림을 기념하는 성탄절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21) / 2024년 성탄 주일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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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22
  • 조회 수 292

(행1:6-8) 혼란한 비상 시국에 신자가 취할 행동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20)

(행1:6-8) 혼란한 비상시국에 신자가 취할 행동 새롭게 읽는 신약성경 (20)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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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15
  • 조회 수 364

(느2:17-20) 하나님을 청소부로 만드는 신자들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9)

(느2:17-20) 하나님을 청소부로 만드는 신자들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9)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또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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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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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1:4-9) 가짜 감사가 넘치는 추수감사절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9)

(고전1:4-9) 가짜 감사가 넘치는 추수감사절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19) - 2024년 추수감사절 설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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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24
  • 조회 수 240

(롬1:16-17)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8)

(롬1:16-17)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새롭게 읽는 신약성경 (18)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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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17
  • 조회 수 273

(합1:2-6) 북한군을 빨리 죽여 주십시오.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7) [1]

(합1:2-6) 북한군을 빨리 죽여 주십시오. 새롭게 읽는 구약성경 (17)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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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10
  • 조회 수 422

(왕하9:5-7) 북한보다 남한을 징벌하실 하나님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6) [2]

(왕하 9:5-7) 북한보다 남한을 징벌하실 하나님 새롭게 읽는 구약성경 (16) “그가 이르러 보니 군대 장관들이 앉아 있는지라 소년이 이르되 장관이여 내가 당신에게 할 말이 있나이다 예후가 이르되 우리 모든 사람 중에 누구에게 하려느냐 하니 이르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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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03
  • 조회 수 393

(마10:1-7) 열두 제자 선택에 숨겨진 비밀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7) [1]

(마10:1-7) 열두 제자 선택에 숨겨진 비밀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7)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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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27
  • 조회 수 303

(창2:25 & 3:7) 원죄가 무엇인지 모르는 신자들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5) [2]

(창2:25 & 3:7) 원죄가 무엇인지 모르는 신자들 새롭게 읽는 구약성경 (1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rdq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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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20
  • 조회 수 410

(막1:14-20) 참 믿음인지 판단하는 기준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6) [1]

(막1:14-20) 참믿음인지 판단하는 기준. 새롭게 읽는 신약성경 (16)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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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13
  • 조회 수 378

(창26:1-6) 평안하고 형통한 인생을 사는 비결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4)

(창26:1-6) 평안하고 형통한 인생을 사는 비결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4)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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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06
  • 조회 수 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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