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1:16 복음이 진정 부끄럽지 않는가?

조회 수 705 추천 수 21 2009.09.19 17: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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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 진정 부끄럽지 않는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롬1:16)


전도를 하려면 예수님이 자랑스럽고 십자가 복음이 유일한 구원의 진리로 떳떳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위대한 사도 바울이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크게 외쳐야 할 판인데도 단순히 부끄럽지 않다고만 말했습니다. 마치 마지못해 부끄러운 정도는 모면했다는 뜻같이 들립니다.  

물론 원어적으로 반어법을 사용해서 더 강조하는 뜻입니다. 본문의 전체 내용도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여서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구분 없이 구원을 주시기에 아주 자랑스럽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얼마든지 다르게 표현할 수 있었을 것임에도 구태여 부끄럽지 않다고 한 것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예수님이 이 땅에서 이루신 구원사역이 부끄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정말 세상적으로는 부끄러운 사람들만 상대하다가 아주 부끄러운 모습으로 죽으셨습니다. 세리, 죄인, 창녀와 교제했고 병자와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주었고 가난한 자들을 먹였으며 무식한 자들을 가르쳤습니다. 세상의 어떤 부귀영화권세도 거들떠보지도 않고 수치스런 죄인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행악자들과 함께 달리셨습니다.

바울이 회심하기 전에는 그런 자를 많은 사람들이 추종하고 메시야로 믿는 것이 도무지 마땅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은 전혀 안중에도 없는 듯 행동하고 희생 제사 대신에 당신을 믿기만 하면 누구나 구원을 준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뿐 아니라 이방 족속까지도 말입니다. 바울로선 예수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자의 표본이었습니다.

그러다 예수님이 부활 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런 이단을 그냥 둘 수 없어 의분에 가득 차 그들을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천상의 얼굴을 하고 돌을 던진 자들을 용서해주었습니다. 결정적으로 바울 자신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사흘간 영적으로 완전히 죽었다 되살아나는 체험을 했습니다.

그때 비로소 그에게 예수님과 그분의 구원의 길은 전혀 부끄럽지 않게 되었던 것입니다. 복음은 인종, 종교, 문화, 국경을 초월하여 십자가 앞에 나오는 자는 다 구원하시되 그것도 인간의 공로, 자격 하나 없이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일방적 은혜로, 또 너무나 자랑스러운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에게 다가왔습니다. 하나님 앞에 진짜로 부끄러웠던 자는 바로 교만에 가득 차서 인간이 구원을 독점하고 인간 스스로 구원을 나눠주려는 바로 자기 같은 세상의 모든 종교인들과 도덕군자들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예수를 모르는 자들은 세상과 사람 앞에 부끄럽게 되는 것을 가장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부끄러움을 어떻게 하든 감추려 듭니다. 재물, 명예, 권세, 지성, 교양, 매너, 심지어 가식과 위선으로 사람들 사이에 인정과 존경을 받으려 듭니다. 내면에 어떤 부끄러움이 얼마나 많이 차 있던 말입니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정작 하나님 앞에는 얼마나 부끄러운 짓인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예수를 만나고 나선 그랬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졌습니다. 스스로 죄인이 아니라고 강변하면서도 사실은 죄를 감추기에 급급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위한다고 열성을 바쳐서 많은 일을 했어도 사람 앞에서 자신을 높이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선 그러는 자신이 얼마나 낮아지는지도 전혀 알지도 못하고 말입니다. 바울은 자신이야말로 죄인 중의 괴수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부끄러움에 가득 차서 예수님 앞에 온전히 꿇어 엎드렸더니 성령이 자신의 영혼을 새롭게 변화시켜서 더 이상 부끄럽지 않게 되는 참으로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세상과 사람과 심지어 하나님 앞에도 감추려 들었을 때는 도저히 그 부끄러움을 없앨 수 없었는데, 이제 예수님에게 자신이 부끄럽다고 솔직히 있는 그대로 인정했더니 자신이 부끄러운 존재라는 것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게 여겨진 것입니다.

나아가 더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자기가 자신을 바라 볼 때는 예수를 믿은 후에도 여전히 수치와 두려움 속에 있습니다. 허물이 없어지지 않았고 때로는 부끄러운 짓도 범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부끄럽다고 예수님 앞에 입술로 자백만 하면 성령의 씻음이 임하여 그분의 십자가로 인해 더 이상 정죄함이 없다는 확신이 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온갖 비난과 핍박도 이제는 전혀 두렵지 않고 오히려 자유함과 평강과 위로가 따르는 것입니다. 또 오직 예수님을 위해서 진정으로 아무 가식 없는 거룩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요컨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여 복음 안에 들어온 자는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하나님 당신이 부끄럽지 않게 여겨주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이전에는 바울 스스로가 복음을 부끄럽다고 여겼던 마음이 있었는데 복음 안에 들어왔더니 그랬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는데 그것마저도 주님이 깨끗케 해주신 것입니다. 부끄럽지 않은 복음이라는 이 표현은 단순히 십자가 구원에 대한 객관적 진술이 아니라 바울 자신의 주관적 체험에서 나온 것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럼 이제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진정으로 복음이, 즉 아무 공로 없이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은 것이 단순히 좋기만 합니까? 부끄럽지 않다고 절실히 여깁니까? 말하자면 예수 믿기 전에는 사람과 세상 앞에 내 부끄러움을 감추려만 했는데 이제는 그랬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다고 확신합니까? 우리의 수치와 두려움은 오직 예수님만이 없애 줄 수 있기에 예수님과 함께라면 세상과 사람 앞에 전혀 부끄럽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특별히 세상 사람들이 부끄럽다고 여기는 그런 상황으로 이끌더라도 말입니다. 요컨대 머리 둘 곳이 하나 없어도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까?

4/24/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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