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4:4,5 즉석 과자 가루가 실패한 이유

조회 수 473 추천 수 24 2009.09.19 17:3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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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석 과자 가루가 실패한 이유


미국의 한 제과회사가 물만 부어 굽기만 하면 되는 혁신적인 즉석 과자 가루를 개발했다. 쵸코렛 가루, 달걀 분말, 설탕, 이스트 등이 미리 다 들어 있어서 주부가 재료를 따로 사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맛도 좋고 만들기 쉽다는 평가를 받았고 광고도 충분히 해 소비자들에게 인지도도 높았다. 당연히 선풍적인 인기를 끌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기대와 다르게 판매가 부진했었다.

도저히 이유를 알 수 없어 전문적인 시장조사 기관에 의뢰해 알아 봤더니 소비자들이 불편을 느꼈다는 것이다. 아무 하는 일이 없으니 도대체 과자를 만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달걀 성분을 빼고 계란 노른자를  섞어  구어라고 다시 광고했더니 비로소 판매가 급신장했다고 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으면 불안해한다. 무엇인가 자기 손으로 직접 해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제 눈으로 확인해야 속이 시원하다. 이런 인간의 본성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죄에서 구원 받는 문제다.

기독교 구원의 진리는 하나님이 "일을 아니할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다"(롬4:5)는 것이다. 인간의 선행과 공적으로 구원을 취득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에 우리 대신 돌아가신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믿는 자에게 은혜로 구원을 주신다.

그러나 자연인에게 이 원리를 아무리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한다. 간혹 인간 스스로 자신의 죄를 도저히 없앨 수 없다고 이성적으로 인정하는 이조차 마음속으로는 무엇인가 불편함을 느낀다. 쿠키 굽는 일도 아니고 죄에서 구원 받아 영원한 운명이 결정 되는 일에 인간이 아무 하는 일 없이 공짜로 구원 받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다.

구원이란 죄에서 구원이다. 각자가 죄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자기가 생각하는 구원의 방법은 달라진다. 대부분의 불신자들은 겉으로 드러난 잘못된 행동과 말을 죄로 본다. 간혹 조금 사려가 깊은 사람은 그런 것을 유발한 마음속의 비뚤어진 생각까지 죄의 범주에 넣는다. 그러나 생각하는 것도 사실은 자신의 행동이므로  자기가 잘못한 모든 행동을 죄로 보는 셈이다.

그래서 인간이 실수하고 잘못해 죄를 지었으므로 인간 스스로 그 행동을 얼마든지 책임지고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세상에서 착하게 사는 자가 천국 갈 수 있다는  구원관을 믿는다. 가만히 앉아 선한 일도 하지 않았는데 이천년 전에 자기와 아무 상관없는 한 유대 청년의 십자가 죽음으로 구원을 주겠다는 것에 마음이 편해질 리가 없다.

기독교에서 보는 죄의 성격은 그것이 아니다. 인간이 이 세상의 주인이므로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 것이 죄의 본질이다.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거룩한 뜻이 제거되자 인간 혼자서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교만에 빠졌고 인간끼리 경쟁하고 다투었다.  간단하게 하나님 없이 인간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죄다.

죄가 그렇다면 구원은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며 하나님만이 우주와 인생의 주인임을 알게 해 주어야 이뤄진다. 그런데 이미 죄 아래 있는 인간이 스스로 거룩해질 수 있다고 믿고 있는데 ‘인간 스스로 거룩해질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며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영으로 그 생각 자체를 바꿔주시는 방법 말고는 없다.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기도와 봉사를 일로 하는 신자

그런데 불신자가 구원 받는 것은 하나님의 몫으로 당신이 선택하신 영혼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구원은 당신이 책임지신다. 문제는 사실 불신자가 아니라 신자다.  신자가 오직 은혜에 의한 구원을 받고도 구원 이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으면 무엇인가 불편한 마음을 갖는다. 종교적 행사에 참여하든지 사회에서 선하고 의로운 일을 하든지 혼자서 말씀을 보거나 기도를 하든지 겉으로 드러나는 어떤 행위라도 하고  있어야 불안하거나 부족한 느낌을 해소할 수 있다.  

오해는 마셔야 한다. 신자는 당연히 선행과 기도와 봉사를 성실히 해야 한다. 그러나 신자는 그런 것들을 일로써 할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해야 한다. 그렇다고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삼상17:47)이라는 말씀을 오해하여 신자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하나님이 해 주시는 것만 구경하고 있으면 된다는 식은 아니다. 골리앗과 목숨을 걸고 싸운 것은 다윗이었지  기도만 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던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신자가 선행 대신에 믿음으로 구원 받았다는 원리에 너무 집착하여 일과 은혜에 대한 기준이 잘못 서 있다. 일이라고 할 때 단순하게 세상에서 현실적 과업을 계획하고 진행시켜 그에 적합한 외형적 결과를 맺기 위한 모든 행동이라고  쉽게 단정해 버린다. 대신에 기도하고 말씀 보는 것은 어떤 방법, 무슨 마음으로 하던 일이 아니라 믿음에 속한 것이라고 착각한다.

성경에서 일이라고 했을 때 근본적인 의미는 그 행동의 목표하는 바가 세속적인가 종교적인가로 따지지 않는다. 로마서4:5를 바로 앞 4절과 함께 다시 보자.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경건치 아니하는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구원을 은혜로 받아 들여 믿는 자(기독교 신자)와 자기의 경건에 대한 당연한 대가로 여기는 자 즉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을 얻는다고 믿는 자(불신자와 타 종교인)를 대비했다.

후자의 경우 특별히 일을 하여 삯을 받는 자라고 표현했다. 따라서 일을 하는 자란 자기가 한 일에 대해 하나님이 마땅히 은혜를 주어야 한다 -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이 그 일한 자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다. 따라서 신자가 기도하고 봉사하면  하나님이 당연히 신자에게 복을 주어야 된다고 생각하면서 기도나 봉사를 하면 그것은 일로 하는 자다.

인간 스스로 무엇인가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심리란 역으로 말해 일을 하면 불안이 없어지고 대가가 생길 것이라고 기대하거나 믿고 있다는 뜻이다. 신자가 기도나 봉사 같은 종교적, 도덕적 일을 했으니 당연히 그에 따른 결과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자기가 한 일로 맺히게 될 결과가 불안을 없애주는 역할을 하지 하나님 당신이 신자를 강건케 해주는 산성과 피난처가 되지 못한다.  

죄의 본성의 실체

구원 이후의 신자에게도 죄의 본성은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다. 악하고 방탕한 짓을 하고 싶은 충동이 남아 있거나 포악한 기질이 숨겨져 있다는 뜻이 아니다. 경건하지 않은 자를 의롭다고 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가 경건해져서   하나님의 의를 따 내려는 것이다. 은혜를  진정한  은혜로 받지 않고 자신의 일로 대가를 지불한 후 받으려 한다.  

완전히 준비된 즉석 과자 가루에 또 다시 쵸코렛, 설탕, 이스트 가루를 더 넣는다고 빵이 더 맛있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맛만 버릴 뿐이다. 기도와 말씀과 금식과 구제와 선행 등이 더 보태지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가 더 은혜스러울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야말로  신자가 가장 먼저 없애야 할 죄의 본성이다.

신자가 기도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완전히 믿고 맡기기 위한 것이다. 내가 기도를 간절히 하고 말씀을 열심히 보면 하나님이 나를 위해 하시는 일에 뭔가 보탬이 되어지고 그 결과가 더 나으리라 기대하는 마음으로 해선 안 된다. 하나님의 은혜를 일에 대한 삯의 수준으로 떨어트리는 것이 된다. 은혜란 그 고유의 성격상 받는 자가 반드시 은혜로만 받아야 온전한 은혜가 된다.

하나님은 신자를 창세 전부터 택하시고 주님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해 주셨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택하신 이상 우리에 대한 은혜는 평생을 받고도 남을 만큼 이미 다 예비해 놓으셨다. 신자 각 자의 먼 장래의 계획까지 세밀하고도 풍성하게 마련해 두셨다. 모세는 80년을 준비한 후에 부르셨다. 역으로 말하면 80년 뒤에 그가 이스라엘의 구원자 역할을 할 것을 다 계획 해 놓으신 것이다. 마찬가지로 바울도  십자가의 극렬한 반대자 사울의 단계를 거치게 한 후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셨고  주님마저 공생애 3년을 위해 30년을 준비시키셨다.

신자의 기도란 이미 준비 되어 있는 하나님의 예정된 코스에서 내가 벗어나지 않기 위해 점검하는 작업이다. 내가 과연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 안에서 제대로 그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 매일 성령님과 함께 확인해야 한다. 은혜를 은혜로 받는다는 것이 무조건 최고 낮은 자리에서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최대한도의 겸양으로 떠받드는 자세로 주님 앞에 서라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은혜로 구원해 주신 그 뜻이 내 삶과 인생행로에서 제대로 은혜답게 살아나도록 하라는 것이며 그것은 주님의 계획안에서 내가 이탈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이 경건치 않은 자를 경건하다고 쳐 주시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경건치 아니하니까 경건한 자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위에 하나님이 주신 그 경건을 소개하고 나눠주라는 것이다. 신자는 오직 그 일로만 선택되고, 부름 받았고, 지금도 인도와 보호를 받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일은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이미 완전히 포장되어 훤하게 뚫린 길로 우리 앞에 놓여져 있다. 그 길 위에 바로 서 있으면 은혜가 자동적으로 은혜가 되며 반드시 일생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게 된다.

반면에 내가 그런 길 위에 서 있다는 인식이 없거나 인식은 있는데 그 길에서 벗어나 있으면 아무리 기도하고 찬양하고 말씀 보아도 은혜가 우리에게 미치지 못한다.  그러니까 신자가 된 이후에도 자꾸 은혜를 일로 바꾸어 대가를 주고 찾아 먹으려는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영원토록 당신만의 은혜다. 은혜를 나의 일로서 쟁취하려 해선 헛수고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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