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연약한 교회라 주일 날 아침마다 교회소식지를 집에서 직접 인쇄 하고 있다. 복사기가 소형이다 보니 힘이 약해 뒷면 인쇄 때는 심심하면 종이가 기계에 걸려 복사가 중단되곤 한다. 그래서 그리 많지 않은 양이라 수동으로 하는 것이 망치는 종이도 적고 더 빠를 것 같아 뒷면 복사 때는 직접 손으로 기계에 종이를 넣는다. 그래도 가끔 망치기는 마찬가지인 것이 손으로 종이를 넣으니 기계가 종이를 빨아들이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주일 아침이라 마음이 급해 빨리 하려고 서두르다 또 종이가 걸린다. 한 템포 죽여 종이 투입하는 간격을 일정하게 하면 미스가 없다.
말하자면 복사기를 기계적으로 정확하게만 작동하면 절대 종이가 걸리는 법이 없다. 아무리 피곤해도 쉬지 않고 작동한다. 토너가 떨어지든지, 램프가 가열이 되어 터지든지, 부품이 망가지지 않는 한 중단하는 법이 없다. 복사기는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한다. 아니 쉬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 모른다. 왜 자기 몸에 열이 나다가 전구가 터지고 연기가 나면서 작동이 스톱이 되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이 기계이다.
인간은 그렇지 않다. 인간이 기계와 다른 유일한 점은 쉬고 싶을 때에 쉴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쉽게 말해 자유의지(自由意志)다. 하나님은 첫째 인간 아담이 타락할 줄 알면서 왜 자유의지를 주었고 결과적으로 그가 선악과를 먹음으로 모든 인간이 원죄의 멍에 아래 있게 되었지 않느냐고 자유 의지를 신학적으로 어렵게 따질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신 뜻은 인간이 열심히 일하다 피곤해 쉬고 싶을 때에 언제든지 쉴 수 있게 하고 싶으셨던 것뿐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을 기계로 만들고 싶지 않으셨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불신자가 아니라 원죄의 교리를 믿는 신자들이다. 아직 자유 의지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종이를 기계적으로 넣기만 하면 오류 없이 인쇄되는 복사기처럼 신자의 삶도 내가 기도하고 헌금하고 봉사한 양만큼 하나님의 축복이 비례해서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전을 넣으면 축복이란 캔이 자동으로 떨어져야 한다면 신자 스스로 인간이기를 거부하고 기계임을 인정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인간이 기계가 아니듯이 하나님도 절대 축복 자동판매기가 아니다.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여 또 그에게 부종하라”(신30:15,20)
8/11/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