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얼굴도 예쁜 여자

조회 수 870 추천 수 72 2010.10.07 22:13:21
I. 참 신기하기도 하지, 쉰을 훌쩍 넘긴 여자가, 방금 잠에서 깬 맨 얼굴이 어찌 저리도 예쁠 수 있을까! 한참을 아무 말도 못 하고 뚫어져라 얼굴을 쳐다 보고 있자니, 저 사람이 꿈을 꾸다 일어 났나 아니면 뭐가 잘못 되기라도 한 건가 하고 아내도 제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다 봅니다. 혹시나 하고 물어 봅니다. 당신, 새벽에 일어 나 화장하고 다시 잠든 건 아니지?

곰곰 생각해 보니, 제 눈에 아내는 세월이 가면서 더 예쁘고 사랑스럽게 보이고 있습니다. 아내를 처음 보았을 때엔—그땐 그저 같은 교회의 비슷한 처지의 한 자매였을 뿐이었는데—예쁘다든지 사랑스럽다든지 하는 감정은 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몇 년 후에 다시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되면서부터 그녀가 예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듯합니다. 그러니까 그녀가 제 눈에 예뻐 보이는 정도는 그녀에 대한 제 사랑의 감정의 정도와 정비례 관계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아내는 전혀 변함이 없는데 내가 내 사랑에 도취되어 일방적으로 그렇게 보일 뿐인 것인가 하면, 그것은 아닌 듯합니다. 분명 아내 쪽에서도 여러 면에서 확실히 예전보다 더 개선되었습니다. 잘 한다 잘 한다 칭찬해 주니 더 잘 하고, 예쁘다 예쁘다 칭찬해 주니 더 예뻐진 것 같습니다. 더욱이 늦철이 들기 시작한 제가 그의 이상형이 되어 주리라 작정하고 난 후론, 아내도 눈에 띄게 제 이상형이 되어 가고 있는 듯이 느껴집니다.

불현듯 아내의 눈에 비치는 내 쌩얼이 염려가 되어 욕실로 들어 가 거울을 들여다 봅니다. 제 눈엔 아직은 괜찮아 보입니다. 아내에게 물어 보려다 그만 둡니다. 아내는 좋은 감정 표현에 약한 편입니다. 좋아도 좋다는 말을, 고마워도 고맙단 말을 잘 못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엔 어떨까? 자신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선 아내가 보지 못하는 제 속 얼굴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결심을 합니다. 제 속에 더러운 것들 다 닦아 내겠다 작정 합니다. 그 작정만으로도 얼굴빛이 다소 밝아 보입니다.

II. 친구 아들 딸의 결혼식을 자주 가게 됩니다. 예전엔 귀찮고 번거롭게 여겼는데 지금은 오히려 즐깁니다. 남의 결혼식을 보며 정작 제가 결혼을 다시 합니다.

나 김유상은 아내 캐런을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평생토록 괴로우나 즐거우나 가난하거나 부하거나 병들거나 건강하거나 어떤 환경 중에서라도 귀중히 여기고 사랑하기로 하나님 앞에서 굳게 다짐합니다. 아멘

아내의 손을 꼭 쥐고 마음 속으로 그렇게 다시 서약을 하면 아내에 대한 사랑으로 가슴이 뭉클해 옵니다. 정해진 순서 끝에 마지막으로 주례 목사가, “이제 이 두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부부가 되었습니다.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에 아멘으로 화답할 때엔 눈물까지 납니다.

주책이지, 나이 들은 탓일까? 남자는 철들면 죽는다더니—언젠가 그 말을 듣고 아내들에게 엄포를 놓았습니다, 남편 오래 살기 원하면 철들기 바라지 말라고—정말 내가 죽을 날이 가까웠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라, 결혼은 아내만이 아니라 하나님과도 한다는 것을 이제야 제대로 인식하기에 이른 것입니다—제가 이렇게 깨달음이 늦습니다.

부끄럽게도 제 결혼식에선 제 생각이 아내를 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증인일 뿐, 제 결혼 상대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더러 신부라고 하셨고, 교회를 예수님의 신부라고 하신 것은 비유적 표현이라고 가볍게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이제, 아내를 넘어 하나님께 생각이 미치고 하나님의 심정이 느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와 평생토록 괴로우나 즐거우나 가난하거나 부하거나 병들거나 건강하거나 어떤 환경 중에서라도 서로 귀중히 여기고 사랑하자 하십니다. 그리고 그 결혼은 결코 사람이 나눌 수 없다 하십니다. 아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나를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 . 내가 뭐라고. . .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인에게 언급한 그 큰,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비밀의 내용을 비로소 알게 됩니다. 우리 결혼의 중개인이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는 각자가 서로의 하나님과의 결혼의 중개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결혼하시기 위하여 우리의 육을 빌리시는 겁니다. 아니, 우리의 육을 공유하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저는 제 아내인 캐런과 결혼하는 동시에 하나님과도 결혼하는 것이며, 캐런 또한 저와 결혼하는 동시에 하나님과도 결혼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내와 저만의 결혼 생활이라 여겼던 것이 실은, 아내와 저 그리고 하나님, 이렇게 셋의 결혼 생활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내와 하나님이 한 몸이라는 건데—당연히 우리는 성령님의 내주로 인해 하나님과 한 몸이라는 교리를 알고 그렇게 믿고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관념적이고 개념적인 차원에서였을 뿐, 신기하게도 (또는 한심하게도) 그 “한 몸”이 이런 실체적인 한 몸으로는 한 번도 인식된 적이 없었던 듯합니다—혹시나 내가 아내의 몸을 함부로 다룬 적은 없었던지, 제대로 보살펴 주지 못한 것은 아닌지, 아내의 몸매에 대해 이런 저런 불평은 없었는지, 갑자기 걱정이 되어 하나하나 되짚어 봅니다. 그리곤 앞으론 더 곱게 잘 다루리라 다짐합니다.

III. 아내와 전 죽음이 우리를 갈라 놓을 때까지, 싫든 좋든 함께 살겠다 한 사이입니다. 그렇다면 “싫든”은 어떻게든 줄이고 “좋든”은 어떻게든 늘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방법 중 하나는 그녀의 좋은 점만 마음에 담고 나쁜 점은 바로 바로 심상에서 지워 버리기로 작정하는 것입니다. 함께 살고 계시는 하나님께서도 당연히 저희 둘이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기쁘실 터이므로 적극 도와 주실 겁니다. 그리곤 그녀가 바라는 남편이 되려고 힘쓰는 겁니다.  

그녀가 제게 바라는 남편은 돈 많이 벌어 주는 남편은 아닐 겁니다. 그런 남편을 원했다면 애당초 저와 결혼하지 않았겠지요. 그 때 제게 있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 그리고 지적 장애가 있는 아들 로빈 뿐이었으니까요.

그녀가 제게 바라는 남편은, 아마도 많은 아내들이 그렇겠지만, 자신을 존중해 주고 아껴 주고 보살펴 주는 남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존경하고 따를 수 있는, 하나님 앞에 바로 선 남편일 것입니다.

전자가 되는 것은 저로선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싶습니다. 돈 많이 벌어 와라, 몸짱이 되어라, 지금이라도 공부하여 의사나 변호사가 되어라, 아니면 동네 시의원이라도 되어라는 주문에 비하면 일도 아닙니다. 그러나 후자는, 끄응! 쉽지 않습니다. 차라리 앞의 힘든 주문을 이루는 것이 쉬울 겁니다. 하지만, 그녀의 요구가 있든 없든 어차피 그 일은 제가 정진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다행하게도 아내도 압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요구인지를. 그러므로 제가 그렇게 되도록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한, 빨리 이루어지지 않아도, 넘어지기를 거듭해도, 그렇게 채근하고 야단치고 실망하지는 않을 것을 믿습니다. 혹시 압니까? 어쩌면 아내 또한 제 좋은 점만 마음에 담고 나쁜 점은 바로 바로 심상에서 지워 버리기로 작정했을지도. 설령 아내는 그런 작정이 없었다 하더라도 아내와 한 몸 쓰고 계신 하나님께서 다 지워 주시겠지요.



2010년 10월 7일

mskong

2010.10.08 00:08:56
*.226.142.23

요즘 제가 사는게 너무 정신 없습니다.(사단의 장난같기도 합니다.??)
어제는 오랜만에 집사람과 회사근처에서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이틀후에 다가올 집사람의 생일을 깜박한것에 토라져 버려 그 뒷수습을
하고 있는데 아내분에 대한 글이 올라왔네요...
(어제 저녁 퇴근후 무릎 꿇고 싹싹 빌었더니 한번 웃어주더군요...)
처음에 글을 읽는 순간 제 몸이 오그라 들었는데... 읽어갈수록 깨달음이 큽니다.
하나님과의 결혼, 아내와 하나님은 한몸...
글을 읽으면서 실질적으로 다가 왔습니다. 이 아침에 감사를 드립니다.

정순태

2010.10.08 11:53:15
*.75.152.247

큰 남편의 샘플을 봅니다!
어떻게 따라가야 할지...............
조금씩 흉내라도 내려고 애써 보겠습니다. ^^

김순희

2010.10.09 04:18:46
*.165.73.38

역시,
대단하신 남편이십니다.

이선우

2010.10.09 07:53:45
*.222.242.101

유상 & 캐런 커플,
역시 저희 부부의 벤치마크로 삼기를 잘 한 것 같습니다.ㅋㅋ
오늘도 잘 배우고 나갑니다.

하람맘

2010.10.24 14:58:16
*.195.4.10

님의 글을 읽으면서 웬지 마음이 숙연해 집니다... 가끔씩 지난 일들이 떠올라 울화가 치밀어 오를때가 있고. 혼자 속상해 하면서 이를 깨물때가 있습니다... 아직 전 남편과 하나님과 한몸이 되지 못한것 같습니다... 집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처음엔 부러웠는데 이젠 부끄럽습니다... 전 제 남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저 처럼 부족한 죄인을 주님이 사랑해 주시고 그와 주님이 나와 동행하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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