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0:29-30이 기복신앙을 옹호하는가요?

조회 수 2331 추천 수 18 2010.07.05 20: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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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0:29-30이 기복신앙을 옹호하는가요?

[질문]


마가복음 10장에 보면 예수께서 젊은 관원을 보시고 재물을 다 버리고 나를 쫒으라고 하나 관원은 근심을 띠고 돌아갔다는 말씀이 나오고 그 다음에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여기까지는 사람이나 국가나 시대나 부유할수록 믿기가 어려워진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하지만 부자나 가난한 자나 다 하나님의 역사로 구원할 수 있다는 말씀이 27절에 나옵니다.

정작 문제는 10:29-30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복음을 위해 형제, 자매,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영어성경, ...now in this time) 백배나 받는다고 합니다. 물론 핍박을 겸하여 받는다고는 되어있지만 언뜻 믿음을 위해 인간관계나 재물을 버린 자는 반드시 이 현세에서도 관계나 재물을 백배 (혹은 여러 배)를 받지 못할 자가 없다고 이해되어집니다.

그럼 앞 절들에 언급된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예수님을 쫒을 수 있고 하늘나라에 간다고 하신 말씀과 뉘앙스가 달라집니다. 많은 설교에서 이 구절을 잘 믿으면 현세에서 재물을 백배나 받는다는 기복신앙을 옹호하는 구절로 사용됩니다. 호크마 주석서를 보았으나 명확하게 설명이 되어있지 않습니다. 균형 잡힌 해석을 부탁합니다.

[답변]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今世)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10:29,30)

이 과제를 해결하려면 예수님의 표현법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말하자면 비유, 대조, 강조 등의 수사법이 사용되었음을 알고 해석해야지 단순히 문자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 이와 비슷한 성경의 다른 용례와도 비교 검토 해보아야 합니다. 나아가 어떤 해석에 도달하면 최종적으로 성경이 일관되게 말하는 진리에 비추어 그 상충여부를 따져보아야 합니다.

버리라는 의미

이런 맥락에서 가장 먼저 전제할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이 집, 형제, 자매, 어미, 아비, 자식, 전토를 버리라고 한 것이 현실적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라는 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집 팔고 논 팔고 부모와 의절하고 형제들이 어떤 처지에 빠지든 외면한 채 오직 종교 생활에 몰두하라는 권면이 아님은 상식만으로도 판단이 가능합니다. 실제로 예수님과 제자들의 공동체에도 돈을 관리하는 회계가 따로 있었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뜻은 삶의 중심과 인생의 목표를 오직 당신께만 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예수님이 최우선 목표이고 나머지는 부차적 목표라는 우선순위 차원으로 다루어서도 안 됩니다. 그럼 자칫 재물을 추구하는 일보다 교회생활에 시간과 노력을 조금이라도 더 투자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여전히 세상의 것을 최선을 다해, 논리적으로는 차선이지만 실제는 온 힘을 다하게 됨, 추구해도 된다는 의미가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 땅을 사는 동안에 자신의 안전, 만족, 행복, 충만, 자유, 평강 등등이 예수님을 따르는 일 외에선 결코 얻을 수 없음을 절감 실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신자는 오직 주님과의 영적관계를 신실하게 유지할 때만 올바른 삶을 살 수 있고 하나님 보시기에도 바람직한 인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 없이는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그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젊은 부자 청년은 인생관 내지 가치관의 완전한 전도(顚倒)에 실패한 것입니다. 부자들이 하늘나라에 가기 힘들다는 뜻도 그들 가운데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맺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무래도 돈이 자기를 보호하고 삶의 만족을 줄 수 있다고 확신해야만 부자가 되고 또 돈 맛을 들인 자는 그 생각을 버리기가 여간해선 힘들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버리라”는 의미가 완전한 결별이 아니라면 당연히 “백배나 받는다.”는 표현도 문자적 의미로서 그것들을 그만한 양으로 보상 받는다는 뜻이 아니게 됩니다. 또 백배나 받는 것들에서 삶의 안전, 만족, 행복 등을 얻을 수 있다는 뜻도 자동적으로 부인됩니다. 위에서 말한 대로 그런 보상은 오직 예수님에게서만 받을 수 있지 다른 것들에선 전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백배나 받는 것은 어쨌든 예수님을 온전히 믿고 따른 자에게 돌아오는 보상임에는 틀림없지만 단지 결과적 추가적 보너스 같은 성격일 뿐입니다.  

비슷한 표현들  

성경에는 문자적으로는 동일한 용어를 사용했지만 그 의미가 다른 예들이 있습니다. 본문의 해석에 결정적 힌트가 되는 예들입니다.

“제자 중에 또 하나가 가로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마8:21,22)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전자는 당연히 육신적으로 죽은 자가 아니며 후자가 그러합니다. 전자는 다만 영적으로 죽은 자를 뜻합니다. 똑 같이 “죽은 자”라는 용어를 대조해서 사용했지만 그 의미는 전혀 다릅니다.

이 인용문을 혹시라도 부모의 장례식마저 무시하고 종교에 전념하라는 뜻으로 오해해선 안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영적으로 죽은 자여선 절대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또 예수를 따르지 않는 자는 육신으로 살아 있어도 영적으론 죽은 자라는 것입니다. 당신의 제자가 되어 영적 참 생명을 얻는 일은 세상의 어떤 일보다 시급하다는 것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인지라 반드시 주님부터 믿고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 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창12:1,2 13:14-16)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내어 복의 근원으로 삼으시며 주신 약속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따르기 위해서 버린 것과 나중에 그분을 따름으로써 받은 것은 문자적 의미로는 사실상 동일합니다. 현실적으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버렸는데 여전히 그가 행하는 모든 땅과 수많은 후손과 큰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럼에도 전자와 후자의 의미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습니다. 받은 것의 문자적 표현은 동일하지만 여호와를 알기 전의 그것과 알고 난 후의 그것입니다. 말하자면 갈대아 우르에서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은 자신의 안전과 행복을 보장받는 수단이었습니다. 아브람이 우상 숭배하던 때인지라 그것들이 없으면 안전과 행복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믿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버리고 갈 바 모르지만 당신께서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한 것입니다. 이제부턴 오직 인생의 안전 만족 능력 등을 오직 당신께로만 구하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전자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은 여호와 밖에 있을 때의 현실적 여건 내지 소유들이며 후자의 보이는 모든 땅과 큰 민족과 창대한 이름 등은 여호와 안에서 그분과 교제함으로 누리는 모든, 특별히 영적인, 축복들입니다. 실제로 아브라함이 죽을 때는 막벨라 굴 하나만 소장했고 아들도 이삭 하나뿐이었지 않습니까? 창대한 이름은 몰라도 문자적인 땅과 티끌 같은 후손은 얻지도 못하고 죽은 셈입니다.

바꿔 말해 후자의 것들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당신의 약속 안에서 먼 장래에 당신께서 이루실 인류 구속의 축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고 또 그 후손을 통해서 예수님을 보내시겠다는 것입니다. 동일한 문자적 의미의 용어를 사용했어도 그 의미는 하나님을 믿기 전과 후라는 전혀 다른 두 사안을 대조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부모형제와 전토

상기의 두 가지 전제 하에 본문을 해석해 보기로 합시다. 우선 단어 고유의 뜻대로 이해하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예수 믿은 후에 집, 형제, 자매, 모친, 자식, 전토를 백배나 받을 수는 결코 없지 않습니까?

예컨대 완전 성인이 되어서 믿었다면 형제가 백배로 늘어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모든 신자가 예수 믿은 후에 집과 전토가 백배나 되는 부동산 재벌로 삼아줄 리는 더더욱 없지 않습니까? 특별히 모친을 백배로 받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런데도 유독 집과 전토에만 즉, 현실적 재물에서만 백배의 축복을 받는다는 식으로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가르치는 것은 무슨 의도입니까?    

결국 이 문제도 삶의 중심과 인생의 목표를 어디에서 구하느냐의 관점으로 따져 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안전, 만족, 행복, 능력, 자유, 충만 등을 예수 안과 밖 어디에서 찾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전에 그런 것들을 집, 형제, 부모, 전토 등에서 구했다면 그런 가치관은 완전히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안에서 새로운 집, 형제, 부모, 전토 등을 그 이전보다 더 풍성하게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새로 얻게 되는 그런 보상에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 믿는 자가 가정 안에서 정말로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썩어진다면 이전보다 백배의(어디까지나 강조하는 수사법이지 문자적 의미가 아님) 사랑과 섬김이 넘치는 행복한 집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불신자 가족을 전도한다면 금상첨화이긴 하지만, 그렇지 못해도 신자가 된 후에 부모와 형제자매와 가정에 대한 생각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부모와 형제를 대하기에 신자로선 백배의 부모, 형제를 얻은 것과 같아지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 믿는 자의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막3:35)고 하면서 신자가 속할 가족의 범위를 크게 넓혀주었습니다. 예수 믿는 자의 공동체에 속한 자는 서로가 서로에게 형제, 자매, 모친이 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직전에도 제자 요한에게 마리아를 네 모친으로 모시라고, 또 마리아에게는 요한을 아들로 삼으라고 당부했지 않습니까?

따라서 예수 믿은 후에는 모든 이웃을, 특별히 신자의 공동체 안에서는 더더욱 하나님을 한 부모로 모시는 형제자매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신자는 만나는 누구에게나, 마땅히 자기 가정에서부터, 주께 대하듯이 해야 하며 그러면 백배의 형제와 모친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집과 전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의미가 적용됩니다. 우선 예수를 믿고 나면 신자 자신의 물질관(物質觀)부터 바뀌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물질이 인생의 목표였지만 이제는 주님의 나라를 이루는 수단에 불과하게 됩니다. 그것도 수많은 수단 중의 극히 작은 하나입니다. 또 예수를 몰랐을 때는 자신의 능력으로만 모든 일을 이뤘지만 알고 나선 모든 것이 오직 주님의 은혜일뿐입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방식으로만 돈을 벌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하게 됩니다.

나아가 풍족하지 않아도 일용할 양식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습니다. 이전보다 소유물의 양이 늘어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재물을 주시는 이도 주님이시오 걷어 가시는 이도 주님일 뿐입니다. 나아가 신자가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은 주님이 미리 아시기에 주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그 모든 것은 주님이 더해 주십니다. 공중에 나는 새도 천부께서 먹이시기에 하물며 신자는 더더욱 그러하다는 것을 확신하기에 이제는 물질에 묶인 인생에서 자유하게 됩니다. 바울처럼 풍부에 처하든 궁핍에 처하든 자족하며 살기에 실제로 백배의 축복을 받은 것과 진배없게 되는 것입니다.  

또 예수 믿는 공동체 안에서 궁핍한 성도를 물질로 섬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각자의 소유를 서로의 필요에 따라 나눠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자는 (부한 자라도)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에게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딤전6:17,18)가 된 것입니다.

한 마디로 본문은 예수 믿은 후에 현실적 물질적으로도 백배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와는 거리가 전혀 멉니다. 주님은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필요하다면 어떤 이에게는 물질의 풍부를, 또 다른 이에게는 궁핍을 당신의 뜻대로 주실 뿐입니다. 신자로선 세상 어떤 것에도, 특별히 믿기 전에는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부모형제 집 전토 등에 자신의 존재와 삶과 인생을 걸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주님만 온전한 주인으로 모시면 주님이 주시는 영적 축복은 충만해지며 그럼으로써 현실에서도 온전한 참 만족과 평강과 자유를 백배나 될 정도로 얻게 됩니다.  

7/1/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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