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비올라의 책은 읽을 때마다 알싸한 아픔을 동반합니다. 지난번의 “교회가 없다.”도 그랬고 금번의 이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갓피플몰에 등록된 몇몇 평가는 혹평과 호평으로 양분되는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의 판단 기준을 지닌 독자로서는 당연한 현상일 것입니다.

일면 교회를 향한 무책임한 비난으로 평가하여 경계하시는 분들의 충정은 이해됩니다만, 저자의 마음속에는 ‘성경적 교회를 향한 또다른 고뇌’가 담겨있다고 생각되기에, 저는 크게 호평하고 싶습니다.

물론, 이 글 말미에 간략히 언급되는 것처럼, 온전한 대안 제시가 미흡했다는 점은 지적되어야 합니다만, 그래도 우리가 깊이 숙고해야 할 면들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경시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저자는, 초대교회를 ‘유기체적 교회’로, 중세교회를 ‘제도 교회’로 정의하면서, 종교개혁 이후의 현대교회 역시 ‘제도 교회’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고 주장합니다.

중세교회는, 성경이 밝히는 ‘만인제사장’ 원리를 알지 못한 체, 성직주의에 함몰됨으로써 필연적으로 제도 교회 형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만인제사장 원리는 종교개혁자들이 겨우 깨우친 성경원리임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현대교회는 마땅히 종교개혁자들의 만인제사장 원리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었어야 하지만, 불행하게도 실패했다는 인식입니다. 즉, 중세교회의 한계를 극복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시 중세교회의 ‘성직주의’로 회귀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탈로부터의 회복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라는 것이 저자의 진단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전적인 공감을 표합니다. 기실 저도 오래전부터 현대교회의 리더십 개념으로는 거의 소망이 없다는 인식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현대교회의 목사(특히 담임목사)는 구약의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와 신약의 사도와 감독과 장로 등 성경에 나오는 모든 리더십의 총체인 것처럼 왜곡되어 있습니다. 마치 전능자 내지 슈퍼맨과 방불한 존재로 말입니다.

주변의 현대교회 목사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성경을 빙자하여 자아실현 욕구 달성을 추구하는 자들이 대다수임을 알게 됩니다. 성공하면 대단한 능력자로 인정받아 최고의 자존감을 누리고, 실패하면 ‘탈진’이니 뭐니 하며 엄살 피우기에 급급한 모습들을 무수히 발견하곤 합니다.

성공한 목사든 실패한 목사든, 현재 우리 주변의 이러한 리더십 유형들은 성경에 제시된 바가 전혀 없고 성도들도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또 이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인간이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오로지 성직자(목사) 스스로의 욕심에 끌려 헛고생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성경은 목사라는 슈퍼맨의 활약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소자들의 합력을 명령하고 계십니다. 교회의 많은 일들은 목사들만의 독점적 시혜가 아닌 모든 성도들의 자발적 헌신을 필요로 하는 것들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인식을 성경에 비추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은 극렬한 반대를 각오해야만 합니다. 현대교회의 성직주의에 익숙해진 종교관이 바른 이해를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저자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 장에서 내가 말한 내용이 현대의 성직주의 시각으로 성경을 읽는 분들에게는 틀림없이 매우 부담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하게 말 할 것이 있다. 현대 성직자 체계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부과하는 한계점은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결코 적지 않은 큰 문제라는 사실이다. 나는 비판하려는 시각만이 아닌 교회를 위하는 충심으로 이 글을 썼다. 그러므로 내가 말한 것에 대한 성급한 대응이나 무조건적인 동의, 둘 다 바라지 않는다.”(p.115).

그렇습니다. 저자의 주장이 단순한 과장만은 아닙니다. 심하게 왜곡된 체제는 기존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개혁할 수 없습니다. 개혁이란 ‘틀 깸’을 전제한 행동입니다. 주님도 당시의 정통종교인 유대교를 통한 교회 설립을 시도하지 않으셨으며, 종교 개혁가들도 기존 천주교 체제 안에서의 개혁에 성공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개혁은 불가불 기존체제의 부정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는 진실을 인정한다면, 이제 현대교회의 진면목을 어떻게 진단하느냐에 따라, 저자 주장에 대한 동의와 부동의 여부가 결정될 것입니다.

저는 저자의 주장에 흔쾌한 동의를 표시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지난번 ‘교회가 없다’와 마찬가지로, 저자의 마지막 권고의 부담감입니다. “성직자 지배 구조의 기독교를 떠나라는 명령”(p.233)이 성경에 부합되는 올바른 방향이라면, 성도들이 취해야 할 구체적인 실천방안은 무엇인가를 저자에게 다시 묻고 싶습니다. 저자가 제시한 ‘가정교회’는 성경적 방향은 될 수 있을지언정 현실적 실현 차원에서의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레그 옥덴 목사의 “새로운 교회개혁 이야기”(미션월드)와 함께, 반드시 읽어보시기를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

※ 추신 : 허경조 형제님께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했기 때문에 급히 독후감을 써서 올립니다. '새로운 교회개혁 이야기'와 비슷한 관점의 주장입니다.

허경조

2007.03.21 11:36:16
*.80.180.68

예 이미 사서 읽고 있는 중입니다.
근자에 미주 한인 장로회 소속의 뉴욕 소재 3대 대형 교회중에서 1교회는 1년 넘게 목사와 장로간에
분규에 휩쓸렸고 다른 한교회는 담임목사가 여신도와의 간음으로 사임하는 사건이 벌어졌읍니다.
이분은 금년 미주 총회에서 총회장이 되살 분이고 한국에도 꽤 알려진 분이라서 현재 충격이 대단합니다.

이런 일들이 제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현재의 교회 제도적 모순으로
복음의 전파에 큰 지장을 초래하고 기존 신자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입니다.

자연 환경의 변화나 세상 도덕의 타락내지는 변화로 말세의 징후는 점점 농후해지는데
꺠어 등불을 밝히지 못하고 구태 의연한 제도에 아직도 연연하며 도리어 세속화되어 힘을 잃어가는
제도 교회는 바뀌어야 합니다.

그 방법은 이 사이트에 들어 오시는 여러 분들이 서로 기도하며 의견을 나누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읍니다.
물론 좌장은 정순태 형제님이 되셔야겠죠.

허관

2007.03.22 04:21:10
*.86.207.233

정순태 형제님과 거의 비슷한 깨달음과 영감을 받았습니다.
하워드 스나이더의 "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와 피터 와그너의 "교회의 지각변동" 을 함께 읽고 묵상하시면
대안에 대한 뚜렷한 해답까지는 아니더라도(이 문제는 단기간내에 쉽게 해결될 것 같질 않네요) "균형" 있는
시각을 가질 수 있으실 겁니다.
교회는 "하나님 백성(구약적 맥락) 의 공동체(신약적 맥락)" 이라는 하워드 스나이더 교수님의 말씀이 대안적인(아니 성경적인)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이루어나가는데 출발점이 될 것 같습니다.
어떻게들 생각하시는지요 ?

허경조

2007.03.22 12:49:34
*.80.180.15

저 역시 교회가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라는데는 이의가 없으나 현실적으로는 그것이 아무런 의미나 힘이 없어 답답할 따릅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위에서 말한 교회의 담임목사의 징벌에 하나님의 공동체가 취할 수
있고 의결할 권리는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담임목사의 참회 고백은 단순한 고백이 아니라 변명같은 뉘앙스가 풍기며 지교회의 법이 없으므로 의결과 중재는 노회로 넘어갔고 그 결과는 명약관화합니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 - 세례 교인으로 이루어진 공동의회가 설 자리는 어디입니까 ?
목사로 이루어진 노회의 중재 결과는 뻔하고 그 교회의 교인들은 두파로 나누어져
수십년의 형제자매가 원수로 변하여 이전투구를 하다가 세상 법정으로 가서야
결론이 끝나는 수순들.
그 과정에서 상처와 증오로 변해가는 하나님 백성들의 아픔은 누가 어떻게 해결할 수 이다는 말입니까? 그저 답답할 따릅입니다.

운영자

2007.03.22 13:11:57
*.104.225.110

허경조님의 언급을 보니까 현실적인 대안이 하나 있긴 한 것 같습니다.
지교회가 헌법과 정관를 가지고 있어서 그 법대로 진행시키는 것입니다. 그 법에 담임 목사의 청빙과 사임과 해임에 관한 아주 구체적인 절차를 교회 설립 때에 이미 정해 놓아야 합니다.

예컨대, 목사의 비리나 이단성이나 전횡이 문제가 되어 도저히 교인 중 대다수가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어 영적지도자로 섬길 수 없을 때는 투표권을 가진 교인, 즉 공동의회에 참석 자격이 있는 교인(이런 것도 법에 명기해 놓아야 함)의 과반수가 목사 해임에 관한 발의를 할 수 있고 또 그럴 경우는 의사 정족수와 의결 정족수를 정확하게 채워서 적법한 회의절차(발제, 소명, 토론, 투표 등)를 거쳐서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을 공동의회에 주는 것입니다.

(제 자랑으로 여겨지는 마시고, 유학생 목회를 할 때에 실제 그렇게 규정한 자체 헌법을 만들었고 모든 교회 치리를 그 법대로 했던 적이 있습니다. 다행히 해임 건의안이 나오지는 않았고 제가 먼저 사임했습니다만....)

또 사실 미국은 모든 교회를 법인화해서 주정부와 국세청에 등록하고 또 그 때에 교회의 헌법과 정관도 함께 등록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교회의 문제를 그 등록된 개별교회의 법에 따라 해결하도록 합니다.

이곳의 이민 교회들이 분쟁이 생겨 미국법정에 들고 갔을 때에 바로 미국 관청에 신고되어 있는 법대로 했느냐를 가장 먼저 따집니다. 그래서 때로는 서류상 법통을 가진 자가 순전히 Paper Work만 잘해서 실제 정의와는 상관 없이 소송에 이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미국의 법절차에 관해 한국교인들이 익숙하지 못한데다 교회 일은 무조건 은혜로만 진행시켜도 된다는(현실적인 법절차를 더 엄격하고도 정확하게지켜야 함에도) 잘못울 범해 그렇습니다.

나아가 한국인들은 법을 만들어 놓고도 법을 안 지키려 드니까, 교회와 담임목사는 더더욱, 사실은 그런 개별 교회의 헙법이 있어도 문제는 여전히 남습니다만.... 그래서 교회 헌법에 헌법개정절차도 아주 세밀하게 규정해 놓아야 합니다. 대다수의 교인들이 합의하면 목사 청빙, 사임, 해임에 관한 절차 뿐 아니라 다른 규정도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단 신앙고백은 바꿀 수 없다든지 하는 조건은 있어야겠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작금 한국교회들이 개혁을 해야 한다는 소리들이 높아지는데 이런 부분에서도 정확하게 해놓고 또 시행할 필요가 충분히 있다고 믿습니다. 샬롬

운영자

2007.03.22 13:25:40
*.104.225.110

하나 빠드렸습니다. 그런 헌법과 정관에 따라 교회가 치리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반드시 새교우 교육 때에 주지시켜야 하고, 또 교회 헌법과 정관은 등록 교인 중 세례 받은 교인으로 일년 이상 본교회에 출석한 교인(제가 섬겼던 교회의 헌법상 투표권을 가지는 교인으로 규정함)은 언제든 그 법을 열람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교인들이 항상 우리 교회는 문제가 생기면 자체 헌법대로 해결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도록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일도 저희 교회에선 시행했습니다.)

물론 교회에 발생하는 문제를 일일이 법으로 다 규정할 수 없지만 예상 가능한 중요한 문제들을 규정할 수 있고 또 일반적인 운영원리만 규정해도 세세한 문제들은 그 원리에 따라 관리가 가능할 것입니다. 특별히 담임 목사 청빙, 사임, 해임에 관한 하나만이라도 정확하게 하면 교회 문제의 반 이상은 해결되지 않겠습니까?

또 반드시 모든 회의와 치리와 운영은 성령님의 인도에 따르되 법을 문자적으로가 아니라 그 만든 정신(화합과 공정함을 동시에 이룰 목적)에 따라 법을 잘 지키고 그럴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부터 해야 함은 두말 할 것도 없습니다.

허경조

2007.03.22 17:33:33
*.80.180.15

박목사님의 댓글이 저와 똑같음에 힘을 얻읍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고 상황에 따라 변합니다.
그러므로 지교회 헌법이 정확히 있어야 되며 ,그러면 노회의 중재는 필요도 없고
그분들은 개입할 명분이 없는 것입니다.

운영자

2007.03.22 19:03:52
*.104.225.110

혹시 제 댓글에서 오해를 할까 하는 노파심에서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붙입니다.
투표권 가진 교인의 과반수가 공동의회를 소집하여 담임목사 해임건의안을 발의는 할 수 있지만
해임 의결은 등록 교인의 2/3 이상의 찬성이 있도록 했습니다.
일부 교인들이 세몰이하여 목사를 쫓아내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점에서 오해 말기 바랍니다.

아무리 세몰이에 능한 교인이 득세하는 교회라 해도
영적으로 올바른 지도를 하고 있는 목사를 등록 교인의 2/3 찬성을 얻어 해임하기는 힘들 것이고
설령 그 일에 성공한다면 목사가 잘못이 아니라 그렇게 된 교인과 교회의 책임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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