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꼭 해야 할 세 가지 일

조회 수 889 추천 수 38 2009.12.22 02: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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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꼭 해야 할 세 가지 일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살전1:3,4)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 서두에서 바울은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세 가지를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그 교회는 그 셋에 아주 모범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모든 세대의 모든 교회가 꼭 해야만 할 세 가지 일이라는 뜻입니다.  

우선 믿음이 역사한다고 합니다. 믿음이 실제 삶에 적용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참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약2:17,21,22)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라면 그와 일치하는 행함이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교회가 아무리 성경 공부를 열심히 시켜도 신자들의 행함이 없으면 믿음만 있고 믿음의 역사는 없으며 온전치 않은 믿음인 셈입니다.

둘째는 사랑의 수고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수고(手苦, labour)란 직접 힘들게 행한다는 의미입니다. 당연히 자신의 노력과 희생이 따를 뿐 아니라 반드시 실행되어져야만 합니다. 수고와 함께 실천되지 않는 사랑이란 아예 사랑이 아닙니다. 물론 사랑을 받을 구체적인 대상도 존재해야 합니다. 머릿속으로 일방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남녀 간의 짝사랑에만 해당될 뿐입니다. 아주 작은 실천이라도 나타나야 비로소 사랑이 사랑으로서 성립됩니다. 교회 안팎에서 성도가 동료성도나 불신자들에게 행할 사랑은 수고를 동반하기 마련입니다.
  
마지막으로 소망으로 인내하고 있다고 합니다. 소망이란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장래에  성취될 어떤 좋은 일에 대한 바람입니다.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정도의 일로서는 온전한 소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단순히 예상, 추측, 몽상이거나 확률을 붙드는 도박일 뿐입니다. 소망이 참 소망이 되려면 확률 100%의 기대여야 합니다.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은 완전 제로입니다. 지금 현재로서 모르는 것은 단지 그 때와 방식일 뿐입니다.  

또 그래야만 그 소망에 의지하여 제대로 인내할 수 있습니다. 완전한 가능성이 아니라면 당연히 인내도 불완전해집니다. 말하자면 일어나면 더 좋고 일어나지 않아도 그만인 상태로 어떻게 온전히 인내할 수 있겠습니까? 밑져야 본전이니까 그런 소망을 안 가지는 것보다 가지는 것이 정신건강상 여러모로 좋다고 간주할 뿐이지 않습니까?

신자가 가진 온전하고도 확정적인, 더 정확하게 말해 “이미 보장된” 소망이 무엇입니까? 천국에 올라가 완성될 영화로운 구원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이미 죽은 자나 당시까지 살아 있는 자나 마지막으로 몸의 사망마저 정복하고 신령한 육신으로 부활하여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그분과 세세토록 왕 노릇하는 것입니다.

또 그 이전에 이 땅에서부터 성령님의 인도와 고침을 받아 주님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신자로 천국 자녀가 되기에 합당한 모습으로 당신의 열심과 능력으로 깎고 바꾸며 자라게 해줄 것입니다. 날로, 날로 자신의 존재와 삶과 인생에 믿음이 크게 역사하여서 사랑의 수고를 자기가 속한 모든 공동체의 구성원에게 끼치게 될 것입니다.

요컨대 성도로서 이 땅과 천국 양쪽에서 온전한 성도답게 변하는 소망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 소망은 단순한 가능성이 아니라 이미 확정된 사실(fact)이기에 어떤 환난에도 인내할 수 있고 나아가 세상 죄악과 사단과 사망과도 당당히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온전한 비유는 아니지만, 신자란 놀이공원의 청룡열차에 이미 올라 타 있는 셈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두렵더라도 일단은 출발하여 달리다보면 종착역에 반드시 도착하게 마련입니다.  우리의 실상에 더 적합한 비유는 입장료를 지불하고 공원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어떤 기구라도 본인이 원하기만 하면 다 탈 수 있습니다. 공원 밖에 있거나 청룡열차에 탑승하지 않은 자와는 전적으로 다릅니다. 끝까지 게을러 타지 않을 수는 있어도 말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영적 상태가 우리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뛰어났다고 여겨집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세 가지 일에 본을 보일 수 있는 근거를 바울이 어떻게 설명합니까?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그분의 사랑을 입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도 그러하지 않습니까?

반대로 그 근거가 너무나 당연한 것 같아도 큰 잘못입니다. 곰곰이 따져 보십시오. 천하 만물을 만드시고 인생 만사를 주관하시는 우주의 주인께서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나를 사랑하시어 택해주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나 천국에서나 당신 자녀답게 그분께서 완성시켜 주실 확률이 온전한 100%이므로 절대로 수정, 왜곡, 변질, 취소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도 엄청난 진술입니까?

내가 그분을 택한 것이 아니라 그분이 먼저 나를 택해주셨습니다. 또 내가 그분을 사랑하기 이전에, 아니 오히려 미워하고 있을 때에도 그분의 우주 전체를 망라하는 사랑 가운데 내가 항상 잠겨 있었고, 있으며, 있을 것입니다. 이 엄연한 사실을, 절대로 인간이 생각해 낸 사상이거나 종교적 수사가 아님, 절감하십니까?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 어떤 일에 부딪혀도 그분이 바로 내 곁에 그런 사랑과 함께 계심을 확신, 아니 체험할 수 있습니까?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그러했습니다. 예수님께 듣고 또 그분을 보고 만졌습니다. 직접 얼굴로 대면하지 않았던 자라도 영원히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과 성령님의 인도 가운데 실제적 대면이 일어났고 또 그분의 지시대로만 따랐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역사하고 사랑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으며 소망 가운데 어떤 환난과 핍박도 인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중 대부분이 생각으로만 주님을 간접적으로 믿는다면, 그들은 몸으로 직접 믿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짝사랑하거나 우리가 그분을 짝사랑하는 둘 중 하나라다면, 데살로니가 교인과 주님은 진짜로 항상 동행하면서 열렬히 사랑했습니다. 그 사랑의 열매가 어찌 위에 열거한 세 가지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지 않다면 더 이상한 것 아닙니까?

교회가 성도들과 세상 앞에 반드시 가르쳐야 할 요체는 결국 천국 소망 하나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성도에게 보장된 영육간의 완전한 부활입니다. 이미 확보된 구원의 완성입니다. 그 소망이 이미 확보된 까닭도 하나님이 성도를 사랑하셔서 택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어떤 것도 아닙니다. 나아가 그 소망은 반드시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에 근거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한마디로 교회는 교인들로 골고다 언덕에서 출발하여 천성을 향해 걸어가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 길은 외길입니다. 비록 좁고 협착해도 다른 길이 없습니다. 천국에서의 보장된 완성이 있기에 주님은 우리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으면 절대로 그 완성을 맛볼 수 없습니다. 반면에 십자가만 통과하면 이미 천국에 들어온 것입니다. 영생은 확보된 것입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에 신자들이 지금처럼 연약한 모습을 보일 까닭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교회가 성도로 천국복음 대신에 다른 것을 가르치거나, 또 이 세 가지 일 외에 다른 일을 하도록 독려하지 않는 한에는 말입니다.

12/21/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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