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16:1-13 주야로 다른 신들을 섬기리니 10/18/2017
“알지 못하던 땅에 이르게 할 것이라 너희가 거기서 주야로 다른 신들을 섬기리니”(13절)
예레미야가 온 백성의 미움의 대상이 되어 완전히 낙심했고 심지어 선지자로서 사역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로 “백성 앞에 견고한 놋 성벽”(15:20)이 되게 해준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다시 힘을 얻었다. 그런데 혼자뿐이라 괴롭다고 하소연한 그에게 하나님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생각도 하지 말라고 한다.(16:1) 더더욱 외톨이가 되라고 한다. 가족에게서라도 쉼을 얻어야 할 텐데 모든 이가 죽는 엄청난 심판이 곧 임할 것이므로 결혼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또 홀로 사는 모습으로 그 심판을 경고하라는 것이다.
목자란 주님께 받은 소명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예레미야가 받은 고통은 소명을 수행하면 필연적으로 따르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더더욱 외로워지라는 말씀은 그 소명을 더욱 열심히 수행하여 그 고통을 더 많이 받으라는 뜻이다. 목자는 처음부터 외로워질 것을 각오해야 하고 더 외로워질수록 소명을 잘 수행하는 중이다. 현실의 삶은 힘들어도 심령은 기쁨으로 충만해야 한다. 지금처럼 유다의 멸망을 경고하고 회개를 촉구해야 할 경우는 기쁨 대신 슬픔으로 충만하겠지만 소명감만은 더욱 불타올라야 한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더러 결혼하지 말라고 명한 위에 초상집에 가서 애곡하지 말고(5-7절) 잔칫집에서 가서 함께 즐거워하지도 말라고(8-9절) 한다. 타락한 백성들과 교제하지 말며 그것도 이웃에게 기본적 예의도 갖추지 말라는 단순한 뜻이 아니다. 초상집 문상이나 잔칫집 축하나 이제 곧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문상을 금한 것은 모두가 다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너무 잔혹한 심판이므로 먼저 죽는 자가 차라리 행복하므로 애통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결혼축하를 금한 것도 앞으로 기쁜 일이 전혀 없을 것이며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까지 죽는 더 큰 불행을 겪을 것이기에 결코 축하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아가 모든 이들이 알지 못하던 땅으로 잡혀 간다고 한다. 이방 대적의 침공에서 죽음을 모면한 자들은 그 나라에 포로로 잡혀갈 것이라고 한다. 생명이라도 건졌으니 다행이거나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것인가? 결코 아니다. 그곳에서 주야로 다른 신들을 섬길 것이라고 한다. 우선 이 심판이 그동안 다른 신들을 섬긴 까닭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유다에서 그렇게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이 소원이었다면 우상의 본고장에서 정말로 양껏 주야로 섬기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대적의 침공 전에 죽은 자가 살아있는 자보다 절대 불행하지 않듯이, 하나님의 관점에선 살아서 계속 우상 숭배하는 자보다 차라리 심판 받아 일찍 죽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돌이키지 않으면 죄가 주는 모든 해악을 더 많이 겪으며 죽는 것이 심판이다.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의 원리는 참으로 엄중하지 않는가? 선지자는 소명을 실현하느라 따르는 고통을 더 겪게 해주고, 배역한 백성이 전혀 회개하지 않으니까 자기들 원하는 대로 실컷 배역케 만든다. 현실의 풍요 궁핍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세상에서 배척당하는 고통 속에 있는가? 기뻐해야 한다. 세상이 나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처럼 안일하고 풍요로운가?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의 형벌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