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날 하나님을 대면했을 때 이 땅의 죄로 벌을 받나요?
[질문]
훗날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과 대면했을 때 신자가 이 땅에서 잘못한 일들과 죄에 대해 신자로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혼내시지 않는가요? 만약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어느 정도 죄에 대해 꾸중 듣고 벌 받을 수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답변]
예수를 믿었다는 첫째 의미는 신자라는 한 존재 한 인격체 전부가 그분의 자녀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그렇게 됨에 알다시피 인간 쪽의 자격 능력 공로 하나 없었습니다. 쉽게 말해 누구도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의 의에 도무지 합격할 수 없었고 또 지은 죄를 스스로 씻거나 고칠 수도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1:13)는 말씀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섭리에 따라 그분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바꿔 말해 윤리적 행위적 죄가 구원과 심판의 잣대가 절대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한 죄인이 예수 십자가 앞에 자기 전부를 던져서 진정으로 겸손히 엎드리는 것만이 구원의 기준입니다.
당시로선 가장 의인이라고 할 수 있는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요3:3) 바울은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로서 이전 것은 지나갔고 새것이 되었다고 선언합니다.(고후5:17) 하나님을 거역한 원수의 신분이었으나 그분의 사랑 받는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완벽한 성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다른 이보다 심지어 하나님보다 높임으로써 윤리적인 죄들을 지을 수 있는 본성은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지도 두려워하지도 않고 오히려 자기 인생의 방해자로 여겼다가 이젠 그분을 기꺼이 자발적으로 찾고 그분 뜻대로 살려고 결심하게 된 것입니다.
구원 이후의 신자는 그래서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워야 하닙다. 그 거룩히 되는 일에서 수시로 실패하고 제대로 회개하지 않으면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심판이 아닌 징계는 받습니다.(히12:1-13) 그 징계는 하나님이 심판자로서 주는 벌이 아니라, 구원자이자 부모로서 당신의 자녀들이 더욱 거룩하게 성장하길 바라면서 때리는 사랑의 매일 뿐입니다.
신자가 되면 자연히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는 것을 목표로 하여 이 땅에서부터 비록 그 실천이 더딜지라도 자발적으로 헌신 노력합니다. 이 땅에서 그 누구도 성화의 완성은 안 되고 또 불가능하지만, 생을 마칠 때는 불신자 시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룩한 상태가 되어서 천국으로 올라갑니다.
그럼 하나님이 이미 당신의 자녀가 된 신자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 땅에서의 실수, 허물, 잘못, 죄에 대해서 또다시 꾸중하겠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결코 죄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당신의 아들을 대신 죽이시고 구원을 선물로 주셔놓고 다시 그 죄를 문제 삼는다는 것은, 신자가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아예 말도 안 됩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다른 종교에선 그렇게 가르칩니다. 그러나 다른 종교가 가르치는 그런 하나님은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습니다.
천국은 그래서 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곳입니다.(free from the presence of sin) 하나님은 더럽고 추한 것과는 단 일 초도 공존(共存)하지 못합니다. 그분은 소멸하는 불로써 구원 전의 인간이 그분을 직접 대면하면 그 자리에서 죽습니다. 반면에 그분이 택하여 당신의 자녀로 삼은 자들은 구약의 모세처럼 직접 대면해도 죽이지 않습니다. 신자가 천국에 들어가서 그분을 직접 대면할 수 있는 근거도 예수님의 보혈의 의로 이미 덧입혀졌기 때문입니다. 신자에게 그 외의 공로는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부활이 없다고 믿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계대 결혼한 자들이 천국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지 물었습니다.(마22:23-33) 율법은 자식을 낳지 못하고 남편이 먼저 죽으면 시동생이 형수와 결혼해서 가업을 이어가도록 했습니다.(신25:5,6) 그런데 형제 일곱이 다 자식이 없이 죽으면 형수가 일곱 명의 형제들과 부부관계였는데 천국에서 누구와 남편이 될 것이냐고 질문한 것입니다. 그럼 아주 이상야릇한 관계가 형성될 것이므로 현실에서 거의 불가능한 것을 빌미로 부활이 없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주님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한다고 그들을 꾸중하셨습니다. 천국에는 아예 죄 자체가 없기에 부정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관계가 없음은 물론 그런 감정도 생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늘에 있는 천사처럼 된다고 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만을 세세토록 찬양 감사 경배하는 곳입니다. 마지막 날에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주님의 영원한 통치에도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천국 신자는 모두가 너무나 영광스러운 그런 신분과 위치로 바뀌는데 어찌 꾸중과 벌이 또 따르겠습니까? (계4 장, 5장 참조)
그래서 천국에는 오직 둘만 있습니다.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진리입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13) 바울 사도가 성령님께 받은 은사를 오직 사랑으로만 실현하라고 권하는 내용입니다. 또 교회 안에서 교인들이 갖추어야 할 필수 세 가지 덕목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이 땅에서의 표상입니다. 이 말씀을 천국에 적용하면 그곳에는 믿음과 소망마저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그분 앞에 서는 성도도 이 땅에선 실현 불가능했던 완전한 참사랑을 실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까 계대 결혼의 어색함마저 없어지고 세세토록 찬양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바로 앞의 고린도전서 13:12는 또 어떻게 말합니까?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방언 같은 은사가 언젠가는 없어진다는 설명이지만 마찬가지로 천국에 대한 설명도 됩니다.
주님을 얼굴로 맞대면하면 이 땅에서 어린이처럼 부족하게 알았거나 깨닫지 못한 것들을 온전히 알게 된다고 합니다. 예컨대 너무나 착하고 믿음이 신실한 자가 왜 황당한 사고로 혹은 핍박만 받다가 요절하게 되는지, 왜 불구로 태어나 예수를 알지도 못하고 평생 고통 속에서 죽어가야 하는지 등도 주님과 대면하는 천국에선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완전한 사랑만 있으니 부정적인 것은 전혀 생각나지도 않습니다. 실은 완전한 사랑이 바로 완전한 진리입니다. 신자는 유일하고 절대적이고 완전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십자가에 드러난 하나님의 구원 경륜을 알기에 이 땅에서부터 천국의 삶을 부분적으로 맛보며 살 수 있습니다. 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는 말씀을 구원 이후에 그대로 실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의 신자의 삶부터 그럴진대 어떻게 천국에서 추가의 벌이나 꾸중이 있을 수 있습니까? 참 신자라면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만 들을 뿐입니다.
12/18/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