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두 번 재림하시는가요?

(종말예언에 대한 해석 기준)

 

[질문]

 

마지막 예수님이 재림 하실 때 모습이 성경 곳곳에 나오는데요. 특히 나팔소리가 등장하는데 마태복음24장. 고린도전서15장, 데살로니가전서 4장과 요한계시록 천사의 7번째 나팔이 불리는 의미가 다른가요? 저는 예수님의 재림이 한번이라 생각 했는데 교회의 휴거를 위한 나팔소리와 7년 환난 후 구원받은 유대인을 위한 나팔을 구분해야 한다고 해서 너무 복잡합니다.

 

[답변]

 

종말에 관해 목사님들마다 해석이 조금씩 달라서 많은 신자들이 아주 혼란스러워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종말에 관한 예언을 해석하는 원칙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목회자들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그 원칙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상기 질문에 대한 답변도 신자들이 간단하게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질문자께서 예수님의 재림이 한번이라고 생각했다는데 그것이야말로 종말 예언 해석의 가장 중요한 원칙입니다. 바꿔 말해 그런 원칙과 뭔가 상충 모순되는 의미가 있다면 일단 틀린 해석으로 보시면 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종말 예언에 관해 어떤 기준을 갖고 접근해야하는지를 정확히 아셔야 합니다. 성경해석학적으로 설명할 내용이 아주 많지만 신자들이 꼭 정리하여서 적용해야 할 원리 몇 가지만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종말 예언의 해석 원칙

 

구원은 오직 예수님이 주관하십니다. 성삼위 하나님의 합동 사역이긴 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 대속 죽음과 부활승천으로 구원의 길을 열었고 또 당신께서 때가 되면 다시 오시어 마지막 심판을 주도하시므로 예수님이 실제적인 주역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구원과 심판을 나누는 기준도 오직 하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완전한 제물로 바쳐진 은혜를 온전히 받아들였는지 아닌지로 나뉩니다.

 

주님은 스스로 자기를 낮추는 죄인들을 구원하고 이 땅에 당신의 거룩한 통치가 역사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고 이천 년 전에 비천한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또 언젠가는 스스로 자기를 높이고 있는 의인들을 심판하러 주님은 다시 강림하실 것입니다.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벌을 받은 모든 피조세계도 완전히 새롭게 바꾸고 하나님 나라의 건설과 신자들의 구원을 완성시키는 것이 재림의 목적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여부로만 구원과 심판이 나눠진다면 신자 개인적으로는 죽은 이후에 제 2의 기회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인류 공동체적으로도 초림 때의 십자가 사건이 한 번만 있었듯이 재림 때의 심판도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제 2의 심판은 있을 수 없습니다. 초자연적이고도 엄청난 모습으로 홀연히 이뤄질 것입니다. 두 번의 재림처럼 시차를 두고 심판하면 죄인들이 두려워서 짐짓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인데 그런 불상사(?)는 원천 봉쇄된다는 뜻입니다.

 

심판의 주역도 예수님이시므로 마태복음 24장처럼 예수님이 직접 예언한 것이나 요한계시록 중에 당신께서 직접 계시한 내용만이 종말에 관한 절대적인 해석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말하자면 서신서의 종말에 관한 사도들의 가르침은 주님이 하신 예언을 자신들의 신학적 고찰과 신앙 체험에 입각하여 나름대로 부연 설명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삼년을 기거하며 배우고 이적까지 목격 체험한 제자들도 구약성경의 예수님 초림에 대한 수많은 예언들이 자기 스승과 그 사역에 대한 말씀이라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다가 지혜의 영인 성령이 강림하여 깨우쳐줌으로써 비로소 그 예언들을 구체적으로 예수님께 적용하며 신약성경을 저작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에 남아 있는 마지막 날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예언들도 그 때 가서야, 재림 전이 아니라 재림 하시어 모든 것을 완성시킨 후에야, 비로소 구체적으로 알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재림, 심판, 천국 등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시기, 장소, 모습까지 설명하는 것들은 일단 무시해도, 아니 아예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삼층천에 가서 너무나 엄청난 계시를 받고 온 바울도 신자들이 잘못 오해할까봐 전혀 간증하지 않았습니다.(고후12:1-7)

 

초림과 재림에 관한 예언이 그것들이 완성이 되어야만 알 수 있는 이유는 그 예언들이 주로 상징적 묵시적 표현으로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해 그 진술들을 문자적으로 그대로 해석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천국 지옥 재림 종말 같은 예언을 오늘날 우리가 오감(五感)으로 인지할 수 있는 물리적 물질적 가시적 구체적인 모습으로 바꿔서 설명해선 안 된다는 뜻입니다.

 

문자적으로 읽어선 안 되는 상징적 표현 중에 대표적인 것으로는 하늘과 천체들의 비상(非常)한 움직임에 관한 예언입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3:10) 하늘은 떠나갈 수 없고 만약 인간의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져버리면 심판이나 구원으로 완성시킬 대상이 없어집니다. 단순히 초자연적인 모습의 재림이 있으면 신자는 신령한 육신으로 부활할 것이며 세상 모든 것들을 공평과 정의로 심판할 것이라는 뜻으로만 이해해야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때에 특별히 더 조심해야 합니다. 여러 해석 방안이 있어도 구체적인 현실과 일체화시키지 말아야 하며 이미 말씀드린 대로 연대와 지역과 상황 등을 계산 예측해선 안 됩니다. 무엇보다 계시록은 당시 로마의 박해를 받으며 고난 중에 있는 신자들에게 부활 소망을 붙들고 끝까지 인내하여 승리하라는 위로의 서신입니다. 예수를 온전히 믿는 신자는 영원한 구원이 보장되어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에 저자의 방점이 있지, 마지막 대환난의 끔찍하고 비참한 상황을 묘사해서 공포심을 심어주는 것과는 전혀 무관한 책입니다.

 

말씀드린 종말예언에 관한 해석원칙을 정리하자면, 1) 예수님 말씀이 절대적 기준이어야 하고, 2) 재림은 단 한 번 홀연히 있을 것이며, 3) 그 구체적인 모습은 아무도 알 수 없으므로 물리적 설명을 하려 들어선 안 되며, 4) 계시록을 비롯한 종말에 관한 예언을 현실의 시기와 상황에 일치시키려 해선 안 되며, 5)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성품과 인류역사를 주관하시는 통치원리 등에 상충 모순되는 해석을 해선 안 되며, 6) 무엇보다 예수님을 온전히 구주로 영접한 참 신자는 세상의 것과 비교될 수 없는 아름다운 장막이 천국에 마련되어 있기에 종말 예언에 대해 어떤 두려움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재림과 경고의 나팔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초림은 이스라엘이라는 제한된 지역에서 이뤄졌지만 재림은 인류에 대한 마지막 심판이기에 전 지구적으로 일시에 행해질 것입니다. 구체적인 방식이나 시간 등은 도무지 짐작도 못하고 할 필요도 없지만, 하나님의 엄청난 권능으로 순간적 초자연적으로 이뤄질 것입니다. 당시에도 남아 있을 불신자들에게 제2의 회개기회가 생길만한 점진적인 심판은 결코 아닙니다.

 

나팔의 의미가 다른지 질문하셨는데 종말예언의 해석원칙에 따라서 나팔 또한 상징적 의미로 봐야 합니다. 고대에는 나팔은 왕의 행차를 선포, 국가적인 길흉사의 알림, 전쟁이나 재앙을 미리 경고하는 일 등에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자 심판주로 재림하실 것이라는 의미로 나팔 소리와 함께 임하신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24:29-31)

 

예수님께서 직접 당신의 재림에 대해 예언한 말씀입니다. 먼저 천체와 하늘이 어두워지고 흔들린다는 것은 공중 권세 잡은 사탄의 세력이 완전히 멸망당할 것을 뜻합니다. 인자가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천군천사를 동원해 큰 나팔소리와 함께 임하신다는 것은 초림과 달리 공개적으로 모든 이가 심판주이심을 분명히 알 수 있게 엄청난 권능을 드러내며 오신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하게는 택하신 자들에겐 한 명도 빠짐없이 구원의 완성을 주신다고 합니다. 반드시 주목해야 할 사항은 주님 당신께선 두 번 오시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전혀 없다는 사실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전15:51,52) 고린도전서 15장은 십자가 복음의 핵심은 부활 승리이므로 그 부활의 신령한 의미와 비밀에 대해서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이미 예언하신 내용을 그대로 인용해서 부연 설명한 것이라 특별히 어려운 의미는 없습니다.

 

반면에 계시록에서의 일곱 번의 나팔소리(계8:6-11:19)는 이와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일곱 천사가 일곱 번을 부니까 일단 단 일 회뿐인 예수님의 재림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계시록에 대한 해석법은 아주 어렵고 복잡해 간단히 설명드릴 수는 없습니다.

 

본 질문의 주제와 관련해선 한 가지 사실만 알면 됩니다. 일곱 인을 떼고, 일곱 나팔을 불고, 일곱 대접의 재앙이 있습니다. 이처럼 문학적으로 공교하게 의도된 구문이기에 따로 해석하는 법을 배워야하나 주의할 사항이 있습니다. 흔히 생각하듯이 일곱 번씩의 큰 재앙을 세 세트로(무려 27번) 받기에 신자들이 엄청난 고난에 빠지게 된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대신에 인간이 죄악을 탐닉하며 영적타락으로 점진적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과 또 그에 대해 하나님이 인류 역사 속에서 알게 모르게 여러 번에 걸쳐 징계하신다는 의미로만 이해하시면 됩니다. 계시록에서의 나팔은 마찬가지로 상징에 불과하되 다른 구절처럼 재림 시에 왕의 행차에 대한 선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단순히 계시록 본문 말씀을 통해 신자에게 죄로 타락해가는 역사에 대해 주시는 경고의 나팔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두 번의 재림이 있는가?

 

질문하신 구절 중에 마24장, 고전15장, 계시록 일곱 나팔의 의미는 분명하나 문제는 데살로니가전서 4장의 나팔소리입니다. 일단 전제할 것은 고린도전서와 동일저자인 바울이 마찬가지로 주님의 재림과 부활에 대해서 주님의 예언을 근거로 가르친 내용이며 나팔 소리 자체는 같은 의미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6,17)

 

이 구절이 주님의 재림이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 두 차례가 있을 것이라는 억지 해석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먼저 이 구절이 포함된 문맥에서의 뜻부터 잘 살펴야 합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원치 아니하노니”(13절)라고 시작합니다. 그럼 그 이후로는 “자는 자들에 관해서 교인들이 궁금해 하는 내용”에 대해 설명해주겠다는 뜻입니다. 그럼 또 당시의 데살로니가 지역의 교인들이 무엇을 궁금해 했는지부터 살펴야 합니다.

 

먼저 자는 자들이란 뜻을 아셔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죽음 이후에 음부(스홀)에 들어가 마지막 날의 부활 때까지 누워 자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죽음 이후의 상황은 이와 다릅니다. (이에 대해선 본 성경문답의 “죽은 후 부활 때까지의 상태는?”의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마16:28)고 하신 말씀 때문에 제자들은 자기들 당대에 주님이 재림할 것이라고 오해했습니다. 원래 성경에는 장절의 구분이 없기에  곧바로 이어지는 기록에서 보듯이 주님이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변화산에서 영광스럽게 변모되는 사건을 예언한 것입니다. 또 확대 해석하면 주님이 종말에 행하실 당신의 왕권에 관해 밧모 섬에 유배되어 있는(사도 중에 유일하게 순교하지 않은) 요한 사도에게 계시해 줄 것이라는 예언이었을 뿐입니다.

 

주님이 또 종말의 징조에 관해 예언하시면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마14:34)고 하셨기에 더더욱 그런 오해가 생긴 것입니다. 그러나 ‘세대’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부모 자식으로 이어지는 one generation 뿐 아니라, 창세기가 열 가지 계보(세대)로 구성되었듯이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 특정한 기간도 뜻합니다. 초대 교회에 종말이 온다는 예언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목격하고 생전에 그분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로선 자기들 당대에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이라는 소망을 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참고로 데살로니가전서가 바울 서신 중에 가장 먼저 기록된 것이라, 제자들이 여전히 그렇게 오해하고 있는 상황이 그 배경이었습니다. 자기들 당대에 주님이 다시 오시면 예수 십자가 구원 이후에 주님을 영접하고 믿었으나 이미 죽은 신자들도 많이 있었는데, 필연적으로 그들의 부활은 어떻게 될지에 대해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울은 지금 그런 궁금증에 대해 살전4:13-18에서 변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4절에는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예수를 믿었지만 이미 죽은 자들)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고 즉, 부활승리에서 누락되는 법이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또 15절에서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고 즉, 살아 있다고 해서 부활에 우선순위가 있는 것이 아니며 먼저 죽은 자와 똑 같이 동시에 부활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어지는 상기의 16,17절의 의미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해야 합니다. 주님 재림 시에 죽은 신자나 살아있는 신자나 동시에 홀연히 부활할 뿐 아니라 “동일하게 영광스런 모습으로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주의 호령, 천사장의 소리, 하나님의 나팔, 하늘, 구름 속, 공중 등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영광과 초자연적인 현상의 상징일 뿐 그대로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만약 그렇게 해석하려면 같은 문맥 안에 “자는 자”도 죽음 이후에 스홀(음부)에 들어가 영원한 잠으로 빠진다고 문자적으로 해석해야만 합니다. 그럼 주님이 십자가상의 강도에게 구원에 관해 직접 말씀하신 내용과 상충됩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요컨대 상기 살전 4:16,17절은 마지막 때의 부활은 이미 죽은 자나, 당시에 살아있는 신자에게나 순서는 물론 그 영광스런 모습에서도 전혀 차이가 없다는 것을 변증하는 내용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두 번 있고 심지어 공중 휴거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도 아닙니다. 홀연히 단 번에 이뤄지는 심판이라는 의미에서의 휴거가 있을 것이라는 점은 인정되지만 그 구체적인 모습을 함부로 예측 해석해선 안 됩니다. 참고로 휴거는 성경적 용어도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지금도 죽은 자가 회개하는 것 같은 제 2의 기회가 없듯이, 일차로 공중 재림하여 신약교회만 구원하고 유대인들을 7년 환난으로 버려두면서 그들에게 제2의 기회를 주었다가 다시 지상 재림한다는 것은 성경 전체가 말하는 바와 예수님의 십자가에 드러난 하나님의 구원 경륜과 전혀 일치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에 십자가에 죽으신 그 숭고하고 완전한 대속 구원을 완전히 허사로 만드는 세대주의자들의 잘못된 해석이니까 전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결론을 맺자면 마24장, 고전15장, 살전4장의 나팔 소리는 홀연히 단번에 끝날 예수님 재림 때에 심판주로 오신다는 선포의 의미이며, 계시록의 나팔 소리는 세상의 타락에 대한 경고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누차 강조하지만 예수님의 재림은 단 한 번만 있습니다. 종말에 관한 성경의 해석은 그 한 번의 재림이 신자에겐 구원의 완성을, 불신자에겐 심판의 완성으로 끝난다는 진리만 알고 계시면 됩니다.

 

7/11/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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