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4:1-11)) 예수님 대신에 메시아가 되려는 사탄

죄인 구원 담화 (10)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마4:1-11)

 

메시아 사역에 대한 시험

 

예수님이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받은 사건을 단순히 윤리적 종교적 차원으로 이해하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사십일 금식 후에도 이겨냈으니 그 의로움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예수님 개인의 승리로만 간주합니다. 예수님이 이 시험을 완벽하게 이겨내지 못했으면 십자가 대속 구원의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을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 중에 지혜와 능력이 가장 뛰어나서 천상에서 하나님을 몰아내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려 했던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과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문화 명령을 주시며 선악과 언약을 맺으신 뜻까지 다 파악했습니다. 인간이 선악과 금령을 온전히 지키면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 영계에서 이 땅으로 쫓겨난 사탄이 설 곳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이브를 유혹할 때도 마찬가지로 단순히 개인적으로 도덕적 종교적 죄를 짓게 만들려는 의도가 아니라, 인간 대신에 이 땅을 차지할 욕심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때는 도덕과 종교에 대한 개념조차 생기기 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상의 피조물 중에선 최고 지혜롭게 만드시고 이 땅을 당신 대신에 거룩하게 다스리라는 축복까지 주었습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의 모든 과일을 맘껏 먹도록 모든 좋은 것으로 충족하게 공급해주었습니다. 사탄은 이미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넘치도록 누린 인간에겐 어지간한 유혹으로는 쉽게 넘어가지 않으리라고 판단하고서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되어서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할 수 있다고 부추긴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이 인간을 타락시키려는 모략을 미리 다 아셨으나 창조 전부터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을 예비해 놓았습니다. 장차 여자의 후손이 와서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한 후에 마지막 때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인간을 영광스럽게 완성 시키고 사탄도 멸할 계획이었습니다. 창조 목적을 완성하는 그 일은 사탄을 두고도 얼마든지 달성할 수 있고, 나아가 사탄이 있어야 인간을 더 완벽하게 의롭게 바꿀 수 있으므로 인간의 타락은 물론이고 그 후로 사탄에 미혹되어 죄의 노예로 묶이는 것마저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에덴 이후로 이 땅의 주인행세를 하고 있었지만 언제 어디서 여자의 후손이 나타나서 자기 머리를 상하게 할지 항상 예의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때가 차매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났다는 사실을 알고 곧바로 헤롯 대왕을 부추겨서 살해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천사가 요셉의 꿈에 경고해주는 바람에 실패로 끝났고 예수는 평범한 목수의 아들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랍비로 활동할 수 있는 삼십 세가 되자 주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며 하나님의 아들로서 취임식을 마쳤고 그 후 곧바로 사탄을 만나러 광야로 찾아왔습니다. 

 

사탄에겐 다행스럽게도 주님이 자기를 멸하려 하지 않고 사십 일간 금식하며 기도만 하고 있었습니다. 사탄으로선 예수님이 앞으로의 당신의 메시아 사역을 위해서 기도했다고 쉽게 짐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전제한 것은 예수 개인이 아니라 이브의 후손을 구원하러 온 메시아로서 시험해보겠다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다운 능력이 있는지 확인해보려는 차원이 아닙니다. 능력으로는 주님의 상대가 도무지 될 수 없음을 알기에 어떻게든 예수님의 메시아 사역을 훼방하려고 마음먹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메시아 사역을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바꿔 버리면 자동적으로 인간을 계속해서 죄의 노예로 마음껏 조종 농간하며 이 땅에서 왕 노릇 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살펴본 대로 주님은 당신을 인간의 위치로 낮추어서 시험을 받았는데 이미 그 자체로 사탄의 의도는 빗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브와 똑같은 방식의 시험을 이겨냄으로써 원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했습니다. 앞으로 당신을 믿고 따를 여자의 후손도 사탄의 후손과 원수가 되겠지만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넉넉히 이겨낼 수 있다고 사탄에게 엄중히 경고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주님이 완전한 인간으로 사탄에게 대응했지만 그 시험을 다 무산시킴으로써 사탄이 원래 의도했던 메시아에 대한 시험도 자동으로 이겨낸 것입니다. 이제 이 세 시험이 왜 또 어떻게 메시아 사역에 훼방이 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돌을 떡으로 바꿔주는 메시아

 

첫째로 예수님더러 돌들에게 명하여 떡으로 바꿔보라고 했으니까 하나님의 아들이라서 쉽게 행할 수 있다고 인정한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람들에게 돌을 떡으로 만들어주는 방식으로 메시아 됨을 증명하라는 것입니다. 메시아라면 사람들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부터 해결해 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지금의 예수님처럼 오래 굶주려서 죽기 직전의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래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는 너무나 선한 일이라 쉽사리 거부할 수 없는 제안입니다. 성부 하나님부터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분이지 않습니까? 사탄은 지금 주님더러 그런 분의 아들로서 마땅히 행할 일을 하라고 요구한 셈입니다. 

 

이처럼 사탄은 대부분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아주 비상한 경우나 최후의 방안으로만 기괴하고 무서운 형상을 띄고서 공포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일상적인 상황에서 그런 사악하고 기괴한 모습이면 아무도 속아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거짓의 아비로 매번 거짓을 진리인 것처럼 속여야 하므로 더 의로워 보이는 매력적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지금도 마치 자기가 메시아인 양 행세하며 예수님에게 올바른 메시아 교육을 시키겠다고 나선 꼴이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고 일언지하로 거절했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고 야단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했으니까 떡으로 사는 것도 중요하다고 인정한 것으로 사탄의 제안이 완전히 틀렸다는 뜻도 아닙니다. 대신에 모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떡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으로 반드시 행해야 할 첫째가는 일이 그분이 명하신 말씀을 삶에서 실천하는 것인데 다시 말하지만 죄 안 짓고 착하게 살라는 단순한 차원이 아닙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지어진 인간에게 양심이 남아있어서 그분에 대한 믿음과 상관없이 상당한 수준의 선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하고 완벽한 뜻에 따라 말씀으로 이 땅과 만물을 창조했으며 각 개인의 삶도 당신의 뜻대로 주관하십니다. 따라서 자기 인생의 모든 차원을 그분의 절대적 주권과 완벽한 섭리 안에 두고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먹고 마시는 것을 주시는 이가 바로 하나님이므로 언제 어디서나 그분과의 관계부터 순전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먹고 마실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고 당신의 백성들더러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고 명했습니다. (마6:33) 먼저 구하라고 했으니 마찬가지로 먹고 마실 것도 구해야 하지만 그 전에 반드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어지는 설명에 따르면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가 도덕적 종교적으로 거룩한 일과는 무관했습니다. 

 

내일 일을 미리 염려하지 말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매일의 삶에 최선을 다하라 뜻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은 장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먹고 마실 것을 최대한 많이 쌓아두려 하지만 하나님을 따르는 백성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안전과 행복을 보장해주는 근거가 인간적 노력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싹이 터서 시들어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창조법칙만 따르는 들의 백합화의 영광이 자신의 정치적 역량으로 역사상 최대의 버킷리스트를 달성한 솔로몬 왕보다 더 낫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께 치유 받고 말씀을 듣느라 들판에서 종일 굶은 남자만 오천 명이 넘는 군중을 떡 다섯과 물고기 두 마리만 가지고 배불리 먹게 했습니다. 돌에게 명하여 떡으로 만들라는 본문의 사탄의 유혹처럼 떡과 물고기를 공중에 들고 축사했으므로 사실상 그것들에 명하여서 백성들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를 채워주었습니다. 먹고 마실 것 없는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굶지 않게 한 모세처럼 동일한 여건에서 동일한 이적을 베푼 것입니다. 모세 같은 선지자가 메시아로 올 것이라는 예언(신18:18)과 맞아떨어져 백성들이 당장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했으나 주님은 그런 의도를 아시고 그 자리에서 피신했고 강 건너 동네로 옮겨가 버렸습니다.(요6:14,15) 

 

백성들의 생존을 책임지는 것이 왕의 의로운 임무인 것은 분명하나 예수님은 세속적 왕이 되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마리아가 십자가에 달리시려고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예수님에게 비싼 향유를 병째로 주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곁에 있던 제자들이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분하게 여겼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요12:7,8) 가르쳤습니다. 

 

마리아는 이제 곧 십자가에 죽어서 죄인을 구원해줄 당신의 장례를 미리 기념했다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다고 했습니다. 빈곤의 문제는 너희가 해결해야 하며 그전에 인간끼리 육신의 정욕을 채우느라 빈곤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빈곤을 해결하는 일이 중요치 않은 것은 아니나 죄에 찌든 인간이 변화되지 않는 한 빈곤 문제는 항상 생긴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으로서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왔지, 인간이 살아가는 외부 여건을 풍요롭게 바꿔주러 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외부 여건은 하나님이 창조 때부터 풍요롭게 마련해서 인간더러 다스리라고 맡겨 놓았으며 노아 홍수 심판 후에도 그 청지기 직분에는 전혀 변함이 없습니다. 죄에 찌들어 육신의 정욕만 채우려는 인간을 하나님은 먼저 당신을 우선적으로 진심을 다해 사랑하는 자로 바꿔서 그들로 자발적으로 이웃도 진정으로 사랑하게끔 해야만 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먹고 마실 것이 풍요해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면 썩어 없어질 쓰레기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면 아무리 간소하고 적은 음식이라도 영원한 가치와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은 앞으로 메시아로서 공사역을 할 때 떡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기보다 심지어 지금 당신처럼 굶어 죽을 판국인 자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전하겠다고 대답한 셈입니다. 신자들이 환난이 닥쳐야 하나님을 찾듯이 떡이 풍요하다고 사람을 절대 경건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오히려 하나님과의 교제가 해이해져서 타락으로 이끄는 지름길이 됩니다. 대표적인 예로 사방 대적을 파하고 여유가 늘어나자 다윗이 부하 장수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하고 그 남편까지 죽이는 큰 죄를 범했지 않습니까?

 

표적만 보여주는 메시아

 

메시아에 대한 첫째 시험에 실패한 사탄은 둘째로 주님을 거룩한 성의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고 유혹했습니다. 성전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천사들이 와서 받쳐주므로 전혀 다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럼 성전은 물론 예루살렘 성에 모인 모든 사람에게 너무나 보암직할 것이므로 그들이 당장 열정적으로 추종하지 않겠느냐고 부추긴 셈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더러 사람들에게 큰 기적으로 은혜를 베푸는 메시아가 되라는 뜻이었습니다.

 

능력의 한계를 넘어선 불치병이나 환난의 고통에서 구해주는 기적은 하나님만이 일으킬 수 있습니다. 신자가 간절히 기도하면 때로 기적적인 은혜를 받을 수 있고 드물긴 해도 신자도 신유와 능력의 은사를 받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사탄은 그런 모습으로 메시아 사역을 수행하라고 유혹했고 예수님은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면서 거절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현대의 첨단 의학 기술로도 고치지 못하는 병들을 치료해주었을 뿐 아니라 귀신 들린 자들을 말씀 한마디로 고쳐주고 죽은 자도 살려주었습니다. 

 

오병이어 사건은 네 복음서가 다 기록하고 있는 유일한 표적인데 사람들에게 주는 감동이 제일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주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이튿날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 건너까지 쫓아 왔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예수님 당신)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라고 확고하게 거절했습니다.(요6:26,27) 육신의 떡을 배불리 먹으려고, 그것도 자기는 가만히 있고 주님이 다 마련해주는 떡을 먹으려고 주님을 찾는 자는 당신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양식도 중요하지만 금방 다시 배고파지고 인생의 버킷리스트를 달성해도 갈급하긴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모든 이가 죽음 앞에 하나님과 일대일로 마주 설 수밖에 없는 그때 이 땅에서 얼마나 풍요롭게 살았느냐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당신을 중심에 두고 살았는지만 문제 삼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당신이 바로 생명의 떡이므로 당신께 진정으로 겸허하게 나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않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다고 선언한 것입니다.(요6:35)

 

요한은 주님이 베푼 이적이 너무 많아 책으로 다 기록도 못 하기에 일곱 개만 선별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1) 하나님께 기적적 도움을 넘치도록 받는 것보다도 예수를 믿어서 죄에서 구원받아 영생을 얻는 것이 모든 인간이 반드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예수님의 새 생명이 자신의 왕 노릇하게 하는 길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예수님은 당신의 공사역 초기에서부터 당신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그런 표적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회당에서 주님이 말씀을 강론하자 귀신 들린 자가 먼저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고 그 정체성을 알아보고 우리를 멸하려 왔나이까라고 소리쳤습니다. 예수님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하여 귀신을 쫓아내 주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도 고쳐주자 그 소문이 갈릴리 지역에 순식간에 퍼지고 사람들이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들을 데리고 와서 고침을 받았습니다.(막1:21-34) 다음 날 새벽 해뜨기 전에 주님이 평소대로 기도하고 있는데 제자들이 사람들이 주님을 찾는다고 전해주었습니다. 어제처럼 많은 이들이 기적적인 치유를 받으려고 새벽부터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은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막1:38) 하시며 그 중환자들을 외면하고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마리아 향유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병자는 항상 너희와 있지만 당신께서 얼마 후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이므로 복음을 전할 여유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천국 복음을 전하는 것이 불치병을 고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시급하다는 것입니다. 당신께서 일일이 고쳐주지 못해도 불구를 갖고서 천국에 가는 것이 멀쩡한 몸으로 지옥 가는 것보다 더 좋다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에서 여자를 보고 마음으로 음욕을 품어도 간음한 것이라고 가르치면서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마5:29)라고 비록 비유이긴 하지만 그런 뜻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혹시 이왕이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인간의 질병 고난을 다 해결해 주면 더 좋지 않겠는가 그럼 더 열심히 믿고 더 잘 헌신할 텐데라는 기분이 듭니까? 인간이 얼마나 치사하고 완악한지 아직 모르는 탓입니다. 예수님이 열 명의 문둥병자를 고쳐주자 돌아와서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린 자는 딱 한 명뿐이었습니다. 저도 귀신 들린 자가 모든 방안을 다 동원해도 쫓겨나가지 않아서 너무 괴로우니까 마지막으로 교회를 찾아와 축사 기도를 받고 깨끗이 나았는데도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 자기 욕심대로 살아가는 자를 직접 봤습니다. 이스라엘만큼 하나님께 큰 기적을 받은 나라도 없는데 수시로 죄를 범해 하나님의 형벌도 가장 많이 받았지 않습니까? 

 

한 눈을 잃더라도 천국 가는 것이 좋다고 해서 천국 백성의 숫자 늘리려는 뜻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그러고 싶지만 인간 실정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넘치는 기적을 베풀어도 문둥병자의 치유에서 보듯이 지옥이 더 좋다는 자가 90%라는 것입니다. 원죄로 타락했다는 것이 도덕적 종교적으로 사악해진 것이 아닙니다. 이 땅이 전부라고 믿고 자신의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채우는 것만이 인생의 목적이 된 것입니다. 또 그것을 평생 충족시켜주지 않는다면 몇 번의 기적을 받아도 전혀 감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자기만 높이려 들며 그 일을 훼방하면 하나님도 대놓고 대적하는 존재가 된 것이 원죄입니다.

 

인간사회에선 환자가 새벽 일찍 찾아왔다고 모른 척하고 자기 볼일부터 처리한 의사는 면허 취소를 당하고 벌까지 받습니다. 인간을 지으시고 인간에 대해서 그 본인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만이 인간에게 가장 시급한 일부터 행할 것입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항상 악한 것이 인간과 인간사회의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입니다. 그럼 인간의 영혼부터 완전히 새롭게 고쳐야 하지 인간의 육체와 외부 여건만 고쳐주는 기적은 근본 해결책이 결코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때로 질병을 고치는 일을 외면한 까닭도 인간을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인간에게 가장 유익한 최선의 방안은 당신께로 나와서 생명의 떡부터 받아먹으라는 뜻이었습니다. 

 

사탄은 지금 단순히 표적만 일으키라는 것이 아니라 그럼으로써 주님더러 성부 하나님을 제쳐두고 주님 당신의 이름만 높이라고 부추긴 것입니다. 반면에 주님은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말만 들을 것이며 시험도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최후의 만찬 때에는 당신이 십자가에 죽음으로써 아버지가 아들로 인해서 영광을 받으시고 또 제자들도 그런 영광에 동참케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요17장) 삼위 하나님이 이 땅을 창조하시고 인류 역사를 이끌어가시는 목적과 지향점은 십자가 예수님의 사랑 하나뿐입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이 없다면, 정확히 말해서 인간이 그분의 사랑을 받아 누리며 함께 나누지 않으면 이 세상 전부가, 그런 중환자들도 포함해서 차라리 없느니보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정치적 메시아가 돼라. 

 

주님이 사람들의 질병이나 고난을 기적으로 고쳐주는 것이 메시아가 할 일이 아니라고 하자 사탄은 최후의 카드를 꺼냈습니다. 자기에게 절하면 천하만국의 영광을 주겠다고 노골적이고도 가장 매력적인 제안을 했습니다. 말하자면 이 땅에서 성부 하나님과 의논할 필요 없이 성자인 네가 성부의 위치에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실감 나게 말해서 만국을 다스리는 정치적인 메시아가 되라는 뜻입니다. 만약 주님이 실제로 다스린다면 이 땅이 얼마나 살기 좋은 의로운 세상이 되겠습니까?

 

당시 히브리인들은 유대 성전과 로마 당국에 이중으로 세금을 내어야 하고 로마의 경제적 수탈이 심해서 아주 궁핍해져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어서 빨리 메시아가 와서 로마 압제에서 해방해주고 다윗 왕국 때의 영광을 재현해주길 학수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갈릴리 지방에서 희망찬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한 젊은 랍비가 불치와 불구를 고쳐주고 죽은 자도 말 한마디로 살려주고 폭풍우도 잠재웠고 도시락 하나만으로 이만 명을 배불리 먹고도 열두 광주리에 넘치도록 남게 했습니다. 그 제자들도 귀신을 쫓아내었다고 합니다. 그런 분을 왕으로 모시고 군대를 결성하면 얼마든지 로마와 상대해서도 이길 수 있겠다고 여겨졌습니다. 얼마 전에 메카비 혁명으로 헬라 제국에게 승리한 경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병이어 기적 후에 왕으로 삼으려고 열광적으로 따랐으나 주님이 당신의 피와 살을 먹지 않으면 당신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했습니다. 거기다 당신은 이 땅에 남아있지 않고 아버지가 있는 하늘로 곧 돌아갈 것이라고 하니까 너무 어렵다면서 사람들이 많이 떠나갔습니다. 그러다 세 번째 유월절을 지키려고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직전에 죽은 지 나흘이나 되는 나사로를 살려내자 모두가 다시 주님께 열광했습니다.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는 다윗의 후손이라고 종려나무를 깔고 실제로 왕이 입성하는 것처럼 찬양하며 환영했습니다. 이제야말로 로마와 맞대결해서 드디어 유대인의 자존심을 살려주나보다 잔뜩 기대했습니다. 제자들마저 스승이 세울 새 나라에서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까지 다퉜습니다. 

 

이스라엘이 로마에서 독립하여 자주 국가가 되는 것은 아주 선한 일입니다. 지금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탐욕적이고 일방적인 침공을 물리치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온 천하만국의 영광은 이미 예수님의 것으로 당신께서 창조하시고 통치해오신 것입니다. 새롭게 사탄에게 물려받을 일이 전혀 아닙니다. 사탄의 의도는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아로 만들어서 사람들로 세상에서 오는 세 가지 욕망에 계속해서 묶이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 궁극적인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막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인간이 좋아하는 세속적인 제도와 인간적인 윤리를 그대로 유지토록 해야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모세를 통해 가나안 땅을 받으면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로 섬기겠다고 피의 맹세를 했습니다. 막상 가나안에 들어와선 주변 이방 국가들에게 정치적으로 계속 시달리는 바람에 전쟁을 잘 치러주는 왕을 달라고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요구를 했습니다. 사탄은 지금도 예수님에게 바로 지금 같은 때에 네가 왕이 되어서 로마를 물리쳐 달라는 백성들의 열망을 이뤄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행간의 숨겨진 의미로 다그친 셈입니다. 그러나 로마를 물리치려면 로마보다 더 강력해야 합니다. 그럼 이스라엘이 로마를 대체할 뿐 아니라 그렇지 않다 해도 다시 로마 같은 사악하고 타락한 나라가 반드시 등장하기 마련입니다. 인류 역사 내내 지금까지도 세계 곳곳에 약소국들을 수탈하는 독재 정권이 그렇지 않은 나라보다 훨씬 더 많지 않습니까? 

 

예수님에게 로마를 물리칠 충분한 능력은 당연히 있었습니다. 마지막 겟세마네 동산에서 당신을 체포하러 온 관원들을 향해서 베드로가 칼을 휘두르자 주님은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마26:52-54)라고 야단쳤습니다. 재물과 기적도 그렇지만 무력은 더더욱 인간 사회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원시 복음은 실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사탄을 섬기는 신자들

 

주님을 위해 생명까지 바치며 끝까지 충성하겠다고 맹세한 수제자 베드로는 주님이 예언한 대로 정확하게 새벽닭이 울기 전에 스승을 세 번 부인 배반했습니다. 주님이 아무런 항거도 하지 않고 십자가에 죽을 것 같으니까 자기 혼자만 살겠다고 발뺌한 것입니다. 주님의 능력을 이용할 수 있으리라 믿은 것이 무산되자 바로 곁에서 주님을 인간적으로 가장 사랑했던 제자가 제일 먼저 배반했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이므로 당시로선 가장 의롭고 천국 문 앞에 1번 티켓을 받아쥔 베드로마저 그러하니까 모든 인간의 영적인 실체는 그와 같거나 그보다 못하다는 뜻입니다. 

 

그 전에 주님이 십자가에 죽어서 이 땅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니까 베드로는 절대로 그런 헛된 죽음을 할 수 없다고 가장 먼저 나서서 말렸습니다. 그때 주님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고 야단쳤습니다. 베드로로선 이스라엘이 로마로부터 경제적 정치적 자유를 획득하는 것이 누가 뭐래도 인간사회의 최고의 선이라고 굳게 믿었고 그에 대해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수제자인 자기가 국무총리 자리를 차지해야 당연하다고 기대했던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일은 독생자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맞바꾼 당신의 백성들로 하여금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어주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어주는 구원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과 지난 삼 년간 동고동락하면서 불치 불구자 귀신 들린 자를 치유해 주었습니다. 유대 사회에서 사람 취급도 못 받은 비천한 신분과 죄인들과 교제 상담 기도하며 천국 복음을 가르치며 구원해주었습니다. 장차 이 땅에 세워질 당신의 십자가 교회의 모습을 미리 훈련시켰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수제자 베드로는 여전히 세상 즉 사탄이 심어주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묶여서 세속적인 나라를 세우려는 욕심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것입니다. 주님이 베드로가 권유한 대로 십자가에 죽지 않으면 지금껏처럼 사탄의 나라가 존속되니까 사탄아 물러가라고 야단친 것입니다. 모든 인간에게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필수적인 그 세 가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정치적으로 선정을 베푼다고 해서 인간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세상에서 부족한 것 없이 풍족하게 재물 명예 권력 다 누린 사람들이 세상 죄악을 주도하며 가장 많이 범하지 않습니까? 

 

지금 광야에서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으로서 인간이 세상에서 가질 수밖에 없는 가장 기본적인 세 욕망을 충족시키라는 사탄의 시험을 하나님과의 관계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고 물리쳤습니다. 인간의 모든 죄의 원천을 봉쇄한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자 메시아로서 죄에 빠진 인간을 그 세 정욕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다시 화목시키는 방식으로만 메시아 사역을 수행하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아무리 현실 형편이 궁핍해도 주님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 정말로 인간이, 신자가 받을 복이자 본인에게도 가장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유월절에 예수님을 그렇게 열광적으로 환영하고도 주님이 그 세 가지 욕심을 채워줄 기미를 전혀 안 보여주자 2-3일 만에 돌변하여 십자가에 처형시킨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입니다. 주님은 그마저도 미리 아시고 십자가에서 사탄의 세 시험을 이기신 본문의 의미를 정확하게 드러냈고 그럼으로써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했습니다. 그런 십자가를 보고도 진정으로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는다면 심판이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진지하고도 간단하게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신앙을 가진 첫째 목적이 예수님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만 채워주기를 바라면, 쉽게 말해서 하나님의 능력만을 위해서 자신의 풍요와 안일만을 충족시키려 한다면, 그 신자 안에서 주님이 본문의 시험에서 졌다는 뜻이 됩니다. 그럼 그런 신자는 실질적으로 사탄을 숭배하는 꼴이 되지 않습니까? 신자도 매일의 삶에서 사탄에게 이 세 가지 시험을 받을 수밖에 없으나 예수님처럼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이겨낼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사탄이 광명한 천사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서 세속적인 의로움과 인간적 충만함으로 현혹하면 자기도 모르게 내용상으로는 사탄을 숭배하지 않는지 항상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10/2/2022)


날마다순종

2022.10.03 16:16:20
*.14.99.253

날마다 나를 부인하고 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쫒는 가장 기쁘고 축복받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님 그리 인도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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