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환님이 다음의 글을 올리는데 문제가 있다고 해서 운영자가 대신 올립니다."

-  다음  -

다음 글은 Herold Camping 이 쓴 Wheat and Tares 라는 책 중에서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성경해석에 관한 설명인데 혼자 만이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같이 고민해 봤으면 합니다. 십여 페이지의 분량이라서 제가 나름대로 필자의 주장에 충실하도록 주의하며 간추려 보았습니다. 원본을 원하시면 www.familyradio.com  에서 Literature 를 보시면 찾을 수 있습니다 (pages 51-67). 저의 맞춤법은 엉망입니다. 관용해 주십시오.



성경해석학은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옳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 해주기 위해서 확립된 법칙들에 관한 학문이다.

교회 시대를 되돌아 보면 초대교회시대에 신학자 중에서 Origon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AD 185년에 태어나서 그의 고향 Alexandria에서 성경을 가르치다 나중에 Ceasarea에 성경학교를 세웠다.  1959년 판 The Encyclopaedia Britannica 에서 한 교회 역사가는 Origen이 어거스틴이 예외일 수는 있지만, 고대교회의 모든 신학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나며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라고 쓰고 있다. 이 역사가는 Origen 의 성경해석학을 특별히 언급하면서, Origen 이 성경의 세가지 측면의 의미들, 즉, 문법적-역사적 의미, 도덕적 의미, 영적인 의미를 구분하면서 이 중 영적인 의미를 적절하며 최고의 것으로 여긴다고 설명한다. 기록에 의하면 Origen 이 가르친 교리들의 일부는 완벽하게 성경적 이지는 못 했지만, 그의 성경해석방법은 전적으로 옳아 보인다.  그러나 Origen의 성경해석방법을 적용할 때 비성경적인 결론에 이르는 것을 막기위해 세심한 주의가 요한다.

첫 단계인 문법적 역사적 가르침은 보통 자명하다. 두번째 단계인 도덕적 가르침은 쉽사리 얻어지지 않을 수 도 있지만, 이 단계의 이해가 성경의 가르침과 상반되는 경우는 많치 않다. 그러나, 셋째 단계인 영적인 해석은 심각한 비성경적인 결론을 내리기가 쉽다. 이러한 오류를 막기위해 적어도 다음의 세가지 원리를 준수할 필요가 있다.

1.       세번째 단계인 영적인 의미는 반드시 복음과 연관되어야 한다. 우리가 성경의 역사적인 설명을 보고서 그것을 정치적인 나라들, 혹은 어느 과거 또는 현재의 세속적 현상과 동일시 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서는 안된다.  그 영적인 의미는 성경에서 설명되어 지는 복음의 어느 면과 일치되어야 한다.

2.       성경이 한 역사적인 상황에 대한 설명을 줄 때, 그 성경적 설명에서 사용되어 지는 단어나 구절의 영적인 의미는 반드시 성경으로부터 유도되어 저야한다.

3.       성경의 역사적인 설명으로부터 유도되는 영적인 결론은 하나님의 복음의 계획에 관한  성경의 모든 다른 가르침과  일치해야만 한다. 만약 성경의 가르침에 상반되는 결론에 이르렀다면, 우리는  그 구절의 영적인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즉시 알아야 한다.

우리는 성경의 모든 부분이 예수님과 그분의 놀라운 구원계획에 관한 무언가를 가르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성경 전체와 그 모든 부분이 영적인 책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고린도 전서 2:13이 말씀하시길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spiritual )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어느 성경구절의 영적인 혹은 복음적인 의미를 찾는 것이 무척 어려울 수 도 있다. 그것은 일부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많은 이해를 요하며, 장시간의 철저한 성경의 탐구, 진리에 대한 우리의 영적인 눈을 열어달라는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끊임없는 기도, 성경의 원어의 모든 단어  하나 하나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로 그 단어들이라는 원리를 철저히 준수하고, 그러므로, 성경의 모든 단어와 구절들이 중요하게 고려되야 한다는 자세 등을 필요로 한다.

성경해석에 관한 상기의 방법의 근거는 성경 자체에서 발견되어진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입에서부터 나온다.

예레미야 36:2

너는 두루마리 책을 취하여 내가 네게 말하던 날 곧 요시야의 날부터 오늘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와 열방에 대하여 나의 네게 이른 모든 말을 그것에 기록하라

사무엘하 23:2

여호아의 신이 나를 빙자하여 말씀하심이여 그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또한 예수님께서 가르치실 때 계속해서 비유를 사용하셨음을 우리는 안다.

마태복음 13:34-35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간단히 말해 비유는 천국의 의미를 가지는 세상이야기 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요한복음 1 장을 기억하자.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성경의 기록된 모든 것은 예수님의 말씀임을 확신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이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신다” 고 이야기 할 때,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성경전체에서 나오는 많은 역사적 사건들 중에 숨겨져 있는 복음의 의미를 발견할 때 까지 우리는 성경의 모든 부분에 내재해 있는 풍성한 영적인 축복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록된 교회의 역사를 통해 일찍부터 이러한 성경해석방법이 심각하게 남용되어지기 시작했음을 볼 수 있다. Origen 후 약 200 년, 로마 카톨릭 교회의 저명한 비샾이었던 어거스틴의 시대가 되어서는 교회의 욕구에 상응하기 위하여 성경구절들의 영적인 이해가 비뚤어지기 시작했고, 성경의 진실한 이해는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후로 종교개혁의 시기까지 옳바른 성경해석의 이해는 계속해서 나빠진다.  

약 1455 년 경 Gutenberg성경을 시작으로 성경의 인쇄가 가능해 졌다. 이전까지는 모든 성경은 손으로 쓰여졌기에 무척 귀하고 비쌌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맹이었다. 보통 한 교회 혹은 한 신학교가 한권의 성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인쇄술의 발명은  모든 것을 바꿨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소유하게 되고 ,스스로 읽게 되었다. 그들은 당시까지 주도권을 쥐고 하나님과 구원에 관하여 자기네들이 가르치고 싶은대로 가르쳤던  교회 지도자들에게  더 이상 속아넘어가지 않았다. 종교개혁이 시작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교회의 영적인 횡포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Calvin, Luther, Zwingli 등 당시의 확립된 교회에 잘못을 지적하는 용감한 사람들을 일으키신다.  인쇄술의 발명은 종교개혁을 일으킨 하나님의 훌륭한 도구가 된다. Calvin, Luther 같은 사람들이 기존교회의 잘못을 지적하고, 이 내용들이 인쇄되어 널리 읽혀진다. 그리하여, 많은 개신교의 신앙고백들이 쓰여진다. 예로써,  the Belgic Confession, the Canons of Dort, the Heidelberg Catechism, the Augsberg Confession, the Westminister Confession, the Baptist Confession 등이 있다.  이러한 신앙고백들은 지역교회들과 교단들이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아마도 그 당시에 만들어진 가장 중요하고 의미있는 문서를 하나 꼽는다면 the Cannons of Dort( 1618-1619 ) 일 것이다. 첫글자를 딴 TULIP 이라는 단어가 이 고백에서 설명되는 요점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T (Total Depravity: 모든 인간은  죄로인해 영적으로 죽어있어서 자신의 구원에 전혀 기여할 수 없다)

U (Unconditional Election: 창세이전부터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그가 구원하실 자를 선택하셨고 이것은 택함을 받은 자들의 어떤 특별한 가치있음과 무관하다)

L (Limited Atonement: 예수님의 죄값의 지불은 택한 자들만을 위한 것이다 선택받지 못한 자는 심판을 받아야 하고 결과로 유죄판결을 받아 하나님의 진노아래 영벌을 받는다)

I (Irresistible Grace: 구원의 선물은 하나님께 택함받은 각자에게 주어지며 비록 자신들이 구원을 결코 원하지 않을 지라도 이 구원을 결코 거절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절대적으로 그들의 구원에 완전한 주권을 가지신다)

P (Perseverance of the saints: 구원받은 자는 결코 자신의 구원을 상실할 수 없으며 그에게는 영생이 주어 졌으며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가 예수님에 의해 죄값이 치루어 졌다)

이상의 다섯가지 요점들은 구원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잘 이야기 한다.

그러나, 그 당시에 쓰여졌던 신앙고백들 중에서 이미 모순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두가지의 신약시대의 세례법들 (ceremonial laws ), 침(세)례와 성찬이 성례( sacraments ) 라고 불려졌고, 이것들을 준수하면 실질적인 영적인 유익 ( spiritual merit ) 을 가져다준다고 가르쳐 졌다. 이것들이 영적인 실체( spiritual substance )가 아닌 단지 실제적 영적인 의미를 설명해 주는 세례법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물 침(세)례가 그 참여자를 구원으로 봉인한다고 가르쳐졌고, 신앙 후보인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으로 이끄는 하나님의 도구가 된다고 가르쳐졌다. 이러한 오류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단지 하나님만이 한 사람을 구원할 수 있고, 어떠한 사람도 자신의 구원에 아주 사소한 기여도 할 수 없다는 성경적 복음의 진리가 거의 모든 교회에서 가르쳐지고 있지않다.

이제 Origen 과 그의 성경적 가르침을 되돌아 보자.  성경 안의 모든 것은  영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그의 가르침은 매우 성경적이었으나, 초대교회가 이를 심각하게 남용하고 부패시켜서 종교개혁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교회의 성경해석의 가르침은 세심한 바로잡음이 필요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종교 개혁자들이 교회의 남용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으로 채택된 결론이 교회의 죽음의 씨앗이 된다. 성경해석에 관한 Origen 의 입장을 실현하고 (realizing) 그것을 보호하기위해 성경적 법칙들을 세심하게 조정하는 대신에, 개혁자들은 그가 가르친 모든 것을 버리고 전적으로 비성경적인 성경해석학을 발전시켰다.

교회의 신학자들은 성경이 성경의 모든 페이지에 스며져있는 하나의 중심적인 메시지를 갖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 했다. 그 성경의 중심 메시지는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의 계획 (God’s Gospel plan of salvation)이다. 예수님이 이 계획의 중심이기에 성경의 모든 페이지에서 예수님을 보아야만 한다. 다시말해, 성경안의 모든 역사적 설명은 절대적으로 진실하며 신뢰할 수 있는 역사의 사실이고 복음의 일면이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대신에 캘빈과 루터를 시작으로 종교개혁동안 계속하여 성경의 문자적 해석 (literal interpretation) 이 대두되어진다  Things to Come 이라는 책에서 저자 Dr. Dwight Pentecost 는 Literal Translation 의 일반적인 정의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문자적으로 해석할 때와 비유적으로 해석할 때에 관한 하나의 법칙은 Cooper 에의해 세심하게 설명되어졌다. 그가 말하기를:  성경의 분명한 의미가 상식적인 의미를 부여할 때 다른 어떤 의미를 찾지 말고 관련된 구절들과 교훈적이고 근본적 진리에 비추어 연구했을 때 그 즉각적인 전후상황의 사실들 (the facts of the immediate context) 이 분명하게 달리 말하고 있지 않는 한 모든 단어들의 일차적 보통의 문자적 의미를 취한다.

이것이 해석자의 표준이 됨이 마땅하다.”

Pentecost 는 더 말하기를: 종교개혁은 이 문자적 해석에 기초한다. 종교개혁 당시 성경진리의 설명자로서 위대한 두 사람의 이름이 두드러진다. 루터 와 칼빈이다. 이들 두사람은 문자적 해석에 대한 그들의 강력한 고집으로 특징되어 진다..

또 다른 교회역사학자를 인용하면서 Pentecost 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Schaff 는 캘빈의 공헌에 관하여 쓰기를: “캘빈은 문자적 해석법( the grammatico-historical exegesis )의 창시자이다. 그는 성경의 저자들이 모든 다른 저자들 처럼 독자들에게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단어들 속에 하나의 분명한 생각을 전달하기를 원했다는 건전한 성경해석학을 확언했고 수행했다. 한 구절이 문자적 혹은 비유적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동시에 두개의 의미를 가질 수 는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진장하며(inexhaustible) 모든 시대에 적용할 수 있지만 설명과 적용에는 차이가 있으며 적용은 설명과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

문법적 역사적 해석법( grammatico-historical method )이라고도 불리는 문자적 해석법에 따르면, 요한복음 11 장에서 읽는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으로부터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유일한 진리는 하나님께서 한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셨고,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한 사람을 유신적인 죽음에서 육신적인 생명으로 일으키실 능력을 가지셨다는 사실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을 하면 이 기적에서의 중요한 영적인 가르침 즉 하나님께서 나사로에게 육신적 생명을 주시기 위해 모든 역사를 이루신 것처럼,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 모든 역사를 이루신다는 사실을 볼 수가 없다.  그리하여 문자적인 이구절의 해석은 이 구절의 본질적인 복음의 의도와 내용을 비워버린다.

문자적 문법적-역사적 해석법의 하나의 구실로서 성경의 명료성의 원리가 주장되어진다. Pentecost 는 다른 교회역사학자를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루터 또한 성경의 명료성을 주장한다……그는 때때로 성경도 다른 어느 책처럼 해석되어져야 한다는 현대인들의 주장에 가까이 가곤 했다.

명료성( perspicuity )이라는 단어는 분명하게 표현됬다 혹은 투명하다는 뜻이다. 불행하게도 현재 아주 흔하게 가르쳐지고 있는 성경의 명료성은 완전히 성경에 반하는 개념이다. 예를들어 사도행전 16:31의 간수에게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하신 말씀은 이해하기에 아주 쉬워보인다. 그러나, 이명령을 자세히 볼 때 우리가 영적으로 죽어있고, 우리 스스로가 예수님을 믿을 수 없음을 가르치는 많은 다른 성경구절들의 조명아래 이 명령을 곰곰히 생각해볼 때만이 옳바로 이해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실제로 우리가 예수님을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구원하셨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명료해 보이는 이 성경의 선언이 전혀 명료하지 않다.

아마도 성경의 명료성에 대한 가르침은 구원 받기 위해서는 왜 우리가 구원이 필요하며 어떻게 우리가 구원 받을 수 있는지를 이해해야 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독자들이 이러한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성경이 쓰여졌다는 생각에 의해 조장됬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로마서 10:17에서 하나님께서 구원에 이르는 길을 설명하실 때, 믿음은 이해함에서 나며 이해함은 그리스도의 말씀이라고 하지 않으셨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더라면, 아주 어린아이나 두살짜리 지능을 가진 사람은 결코 구원 받을 수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강조는   들음(hearing)에 있다. “믿음은 들음( hearing )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이니라”

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육신적으로 귀가 멀거나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다고 할지라도, 만약 그가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자라면, 적절한 시기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영적인 귀를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의 삶에 적용시켜서  부활된 영생하는 영혼을 주실 것이다. 이사실은 아주 지적인 사람 뿐만 아니라 어린 아이에게도 적용된다. 구원 받기 전에 성경에 대한 약간의 이해가 있을 수도 혹은 전혀 없을 수 도 있다. 그러나, 구원후 성령께서 구원 받은 자의 마음을 더욱 열어주시고,  그가 정신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성경을 점진적으로 더욱 이해하게 될 것이다.  

성경이 전혀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사실에 좀더 세심하게 주목해보면, 하나님께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택한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아주 성공적인 방법으로 지역교회라는 제도를 이용하실 수 있었던 이유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많은 교단들이 성경에 충실하지 않은 많은 교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선교사를 파송했을 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증거를 보이는 것은 무었 때문인가?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원리를 기억하자. 많은 교회들과 선교사들이 약간의 잘못된 교리를 가르쳤지만, 회중이나 선교현장의 개개인들이 자신들의 언어로된 성경을 소유하고 읽도록 소원했다. 이것은 가능한 모든 곳에 성경을 배치하는 것이 목표인 기드온과 같은 선교단체가 하나님의 구원 프로그램에 훌륭한 기여자가 됬고, 세계의 모든 언어로 성경을 보급하기를 원하는 위크리프 번역자들이 하나님의 복음화에 훌륭하게 사용되어 졌고, 하나님이 일으키신 많은 성경협회가 엄청난 축복을 경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이 FamilyRadio 사역의 초점이다. 우리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 전 세계에게 성경을 읽도록 권유해야 한다.

일단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구원하시면 그에게 영적인 귀를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도록 하신다. 그리하여, 그 사람은 영원하게 안전하다. 그 사람이 약간의 비 성경적인 가르침을 주는 교회의 멤버가 됬을 지라도 이 사실은 유효하다. 그러나, 구원의 순간에 새로 부활된 영혼이 그에게 주어졌음으로 그는 성경으로부터 그 교회의 잘못된 가르침을 알게되고 점점 불편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매우 비성서적인 성경해석에서 기인하는 많은 심각한 잘못들을 발견한다. 또한 성경이 이해하기 쉽다는 보편화된 가르침이 참신자들을 매우 댱혹스럽게 한다. 참신자들은 성경의 진리를 발견하기위해 부지런한 성경연구가 요구됨을 더욱 인식하게된다.  한 성구에서 보여지는 즉각적인 외견상의 진리가 성경의 나머지 부분에 비추어 읽을 때 전혀 옳지 않을 수가 있다.

대부분의 지역교회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잘못된 성경해석의 결과는 또 다른 측면에서 보여진다. Louis Berkhof 라는 저명하고 매우 존경받는 신학자가 Dwight Pentcost 의 책  Things to come 에서 인용된다. Dr. Berkhof 는 수년동안 매우 보수적인 개혁 칼빈 신학교의 학장이자 변증학 교수였다. 그 인용은 아래와 같다.

1.       역사적 해석의 기본적 가정

a.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적인 방법으로 기원했고 따라서 역사의 관점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b. 한 단어는 살아있는 단어로써 즉 그 단어가 그 저자의 영혼에서 기원했던 상태로 이해될 때 까지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c. 성경의 저자가 적절한 역사적 배경하에 이해되지 않는 한 그 저자와 그의 말들을 옳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

    d. 장소 시간 환경 및 그 시대의 세계관과 일반적 인생관이 그러한 조건하에서 기록된 글들에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친다

2.       해석자에의 요구사항들

이러한 가정을 토대로 역사적 해석법은 해석자에게 다음의 사항들을 요구한다

a.  그는 그가 설명하려고 하는 저자를 알도록 노력한다: 저자의 출생, 인격,

성격, 지적 도덕적 종교적 특징 및 저자의 삶의 외적 환경.

b.  수집된 역사적 자료들과 역사적 가정들로부터 해석하려는 기록이 기원하는 환경, 즉, 저자의 세계를 재구성 하는 것이 긴요하다. 해석자는 그 책이 기록된 땅의 물리적 특성과 그 책의 기록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성격 역사 관습 도덕 및 종교를 숙지해야 한다.

c.  해석자는 연구되는 기록의 특성을 더욱 직접적으로 결정짓는 여러가지 요인들, 예를들어, 최초의 독자들, 그 저자의 심중의도, 저자의 나이, 마음의 틀, 기록된 특별한 환경 등을 고려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d.  더욱이, 해석자는 정신적으로 자신을 A.D. 일세기로 동양적 환경으로 전이시켜야 한다. 그는 자신을 그 저자의 입장에 서서 저자의 영혼속으로 들어가지를 구해야 한다. 그래서 마치 그가 그 저자처럼 살고 그 저자처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말해 해석자는 그 저자를 현재로 전이시켜 이십세기의 언어를 말하게하는 꽤 흔한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Dr. Berkhof 가 성경의 유일한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과 성경은 전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법률서라는 사실, 성경의 원어의 모든 단어가 조심스럽게 하나님에의해 짜여져 있다는 사실, 성경의 모든 각각의 단어에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가지시므로 우리가 성경을 공부할 때 두렵고 떨림으로 대해야 한다는 사실, 예수님이 신약에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처럼 구약에서도 비유로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같다.

Dr. Berkhof 의 가르침과 같은 것들이 오늘날 신학교에서 가르쳐 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지역교회의 목사님들이 성경의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우리가 영적인 진리에 이를 때까지 성경의 모든 부분을 성실함으로 연구해야 한다. 예를들어, 우리가 룻기를 읽을 때 숨겨져있는 복음의 메시지를 보지 못하고 단지 역사적인 기록으로만 읽는다면 성경의 의도와 내용을 심각하게 비워버리게 된다.

             이제 종교개혁자들이 행했던 것의 심각한 결과로 되돌아가 보면, 종교개혁 당시의 교회에 존재했었던 잘못된 성경해석을 바로 잡으려는 열심으로 그들은 비유적인 말로하자면 목욕물과 함께 애기도 버려버렸다. 즉 Origen 의 초대교회 시대의 건전한 성경해석법을 이해하는 대신 역사적 문법적 문자적 해석이라는 전적으로 비성경적인 해석법을 도입한다. 결과로 그들은 실제적으로 많은 성경구절의 옳바른 이해에 이르는 문을 잠그로 그 열쇠를 버려버렸다.

             이제 비유에 관하여 언급하는 마태복음 13 장의 함축된 의미를 더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비유로 말씀하심으로 많은 자들이 이해하지 못하게 되지만 비유는 믿는 자들을 도와서 진리를 이해하게 한다고 선언하신다.

마태복음 13:10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마태복음 13:34-35 에서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그리하여 예수님은 계속하여 비유를 들어 가르치셨고, 신약성경은 여러가지의 예들을 보여준다. 예수님께서 마 13:10의 제자들의 질문에 아래와 같이 대답하신다.

마태복음 13:11-14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 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았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라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러한 구절들로 볼 때 비유의 사용은 참신자에게 영적인 진리를 가져다 주기위한 하나님이 사용하신 한 방법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앞서 배운 바와 같이 전체 성경이 예수님의 말씀이다. 때때로 하나님은 비유의 사용이 매우 중요한 가르침의 방법임을 보여주는 예를 제시하신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갈라디아서 4:22-31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서 이스마엘을 낳은 하갈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하갈은 여전히 영적인 묶임 가운데 있는 예루살렘을 예표한다

잠언서의 잠언( proverbs ) 이라는 히브리말은 빈번하게 비유라는 말로 번역된다 ( 하나님이 이 책의 제목을 정하셨다 ). 그러므로 우리는 잠언서의 모든 구절에서 영적인 혹은 복음적인 의미를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책의 모든 구절이 비유 혹은 은유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시편 78:1-2에서,

내 백성이여 내 교훈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찌어다 내가 입을 열고 비유를 베풀어서 옛 비밀한 말을 발표하리니.

             우리는 또한 피의 제사 번제 제칠 안식일 등등을 결정하는 구약의 모든 의례법들이 비유 혹은 예표와 같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모든 경우 그 물리적 행위는 하나님의 복음계획의 어떤 면을 예표하였다.

             상기외에도  성경에 있는  많은 다른 예들을 통해 하나님이 성경을 기록하신 방법을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모든 비유 혹은 직유의 성경적인 예에서 천국의 혹은 영적인 의미를 부여하시며, 이 의미는 언제나 하나님의 복음계획의 일면을 설명한다.

             모든 성경구절에서 영적인 혹은 복음적인 의미를 찾아야 할  성경적 당위성을 보여주는 한 예가 마가복음 16:17-18이다 :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문자적 해석법을 따르는 신학자들은 이 구절이 하나님이 사도들에게 능력을 주어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몰아냄으로 성취되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고후 12:12에서: 사도의 표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더욱이 바울이 메리데섬에 파선되었을 때, 땔깜나무를 모으다가 뱀에 물리지만 손을 흔들어 떼어버릴 때 상함을 받지 않는다. 이것을 막18:18의 성취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신학자들의 결론의 문제점은 이 결론이 막16:17절 “믿는 자들에게는 이러한 표적이 따르리니” 와 일치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성경은 이러한 표적이 사도들에게 따른다고 하지않고 믿는 자들에게 따른다고 말씀한다. 즉 이러한 표적은 믿는 자들이 발견되는  어느 곳에서나 증거로서  존재할 것이라는 말이다.

             마가복음 4 장과 마태복음 13장에서 유도되고 설명되어지는 원리, 즉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고 비유가 아니고서는 그들에게 말씀치 않았다는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이 구절들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마가복음 16장의 상당 부분이 성경에 속하는 것을 의심하는 것이 사실이다. 만약 우리가 17,18절을 문자 그대로 이해한다면 이러한 견해에 동조하기가 쉽다. 문자 그대로 이 구절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들 다섯 가지의 표적에 숨겨져 있는 영적인 의미를 발견할 때, 우리는 나머지 성경과의 조화를 발견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만이 이 구절들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으로 이 구절들이 정경의 한 부분임을 확신하게 된다.

             믿는 자들에게 따를 첫번째 표적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다. 이것은 믿는 자들에 의해 복음이 증거되어질 때 구원받게될 사람들을 예표한다. 모든 믿지 않는 사람들은 사탄의 통치권 하에 있다. 한 사람이 구원 받을 때 이것은 마치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쫓겨나가는 것과 같다. 즉 그 사람이 더 이상 사탄의 권세아래 있지않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으로 이전되어진 것이다. 사탄의 권세에서 사람들이 구원받는 기적은 신자들에의해 복음이 선포되어지는 모든 곳에서 일어난다. 참으로 이 표적은 믿는 자들을 따른다.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두번째 표적은 그들이 새로운 방언을 이야기 한다는 것이다. 이 비유의 영적인 의미는 각 나라가 고유의 언어를 가졌다는 사실에서 찾아진다. 정치적인 언어에 상관없이 구원 받지 못한 자들의 언어는 사탄세계의 언어이며 믿는 자들의 언어는 하나님 왕국의 언어이다. 비록 동일한 영어 불어 독어들이 두 왕국에서 사용된다 할지라도 신자의 언어는 불신자의 언어와 다르다. 단어들이 동일하다 할지라도 그것들의 의미와 적용이 아주 다를 것이다.

             시편 40:3에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게 주셨으니….”

또한 시편 98:1에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우리는 참으로 믿는 자들이 발견되는 어느 곳에서나 그들이 새 혀(new tongues)로 이야기하는 것을 발견한다.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세번째 표적은 그들이 뱀을 집을 것이라는 것이다. 성경에서 뱀은 사탄을 예표한다(계 12:9). 우리가 구원 받기 전에는  사탄의 권세아래 있어 사탄이 우리를 지배하지만 우리가 구원받으면 우리가 사탄을 지배한다. 막16:18의 비유를 사용하자면 우리는 뱀을 집어드는 뱀조련사와 같다. 믿는 자들은 어느 곳에서나 사탄의 집으로부터 구원받게되는 사람들을 노략질함으로써 사탄을 지배하게 될것이다.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네번째 표적은 그들이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구원받으면 우리는 복음의 순전한 물을 마신다. 거짓 복음에 귀기울이는 것이 독을 마시는 것이다. 예로서, 신명기 32:32-33에서 구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꾸짖으신다: “그들의 포도나무는 소돔의 포도나무요 고모라의 밭의 소산이라. 그들의 포도는 쓸개포도니 그 송이는 쓰며 그들의 포도주는 뱀의 독이요 독사의 악독이라”  거듭난 자들은 그들의 구원을 상실할 수 없으므로 거짓복음에 귀를 기우리므로 독을 마실지라도 그들의 구원은 안전하게 지켜질 것이다.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다섯번째 표적은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는 것이다. 영적으로 신자들이 복음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때 그들은 영적으로 병든 사람에게 사역하는 것이 된다. 믿는 자들의 증거를 통해 성령님에 의해 적용되어진 복음은 영적인 치유를 가져온다. 벧전 2:24에서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다”고 말씀하신다.

             이와 같이 상기의 다섯가지 표적은 말 그대로 믿는 모든 자들을 따르지만, 우리는 이들을 영적인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다는 성경적 원리를 적용할 때,  상술한 아름다운 해석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성경에서 그 자체로서는 복음과 연관이 없는 역사적인 기록을 대할 때 상기의 원리가 심각하게 고려되어 져야한다는 확실한 증거를 가질 수 있다. 상술한 바른 성경해석법이 없이는 성경의 많은 부분이 봉인된 채로 남겨져 있어 그 안의 복음의 메시지는 결코 이해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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