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가 회사 회식에서 취할 태도는?

조회 수 1819 추천 수 40 2010.12.14 19:26:51
신자가 회사 회식에서 취할 태도는?


[질문]


저는 사회 초년생이라서 술자리에 갈 기회가 많습니다. 술을 일부러 마시지 않지만, 사람들과 친분을 쌓아야 나중에 전도할 수 있기 때문에 술자리에는 잘 가는 편입니다. 다른 분들은 술을, 저는 음료수를 컵에 따라서 같이 건배하며 친목을 다졌습니다. 그런데 저는 다른 분들의 술잔에 술이 빌 때 술을 잘 따르는 편인데, 기독교인인 제가 안 마시는 술을 다른 사람의 술잔에 따르는 저의 모습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해 많은 반성을 했습니다.또 이와 비슷한 예가 있는데, 저는 제 주위의 사람들이 세속적인 주제로 대화를 하더라도 잘 들어주는 편입니다. 그런데 제가 세속적인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웃고 즐기고 있었던 제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많은 반성을 하였습니다.불신자들과 모임을 같이 하면서 어려운 순간들이 많이 있었는데, 과연 어느 선까지 저의 행동을 용인해야 하는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답변]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고전9:22b-23)

먼저 질문자께선 하등 잘못한 것이 없고 오히려 아주 잘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인은 술도 마시지 않고 통속적인 이야기도 잘 하지 않지만 나중에 전도를 위해 친교에 열심히 참여하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바울처럼 하나님의 면류관이 풍성히 예비 되어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그러면서도 술자리에서 술을 권하고 통속적인 이야기에 맞장구치는 것이 과연 신자다운지 염려한 것은 더더욱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믿음 안에 들어왔기에 죄에 대해 굉장히 예민해지는 반면에 거룩에 대한 열망도 함께 자라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정말로 악은 모두 버려야 하는가?

성경은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5:22)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엄연한 진리입니다.  악은 정말로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 해석과 적용에는 세밀한 주의를 기울어야 합니다. 우선 악의 의미를 정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본 주제에 대입하면 술을 마시고 권하는 것과 통속적인 대화가 과연 악인지 확실한 판단이 먼저 서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버리든지 취하든지 할 것 아닙니까?

술 담배, 통속적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로는 인간 사회의 도덕으로 따지면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는 가치중립적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기준과 인간의 기준이 전혀 다르다는 뜻은 아닙니다. 인간의 도덕도 하나님 형상을 닮게 지어졌던 흔적인 기본 양심에 따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양심이 불완전하게 변질되어서 절대적 기준에 훨씬 못 미치고 또 시대와 장소에 따라 상대적으로 달라지기에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모든 사회의 모든 도덕이 갖는 공통적 기준이 하나 있습니다.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된다” 즉, 인간 공동체의 유지에 방해만 안 되면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술 담배를 아무리 심하게 하여도(비근한 예로 동성애를 즐겨도) 타인에게 피해만 안주면 죄가 안 됩니다. 나아가 술 마시고 시비가 붙어 폭행사건을 일으켜도 술이 죄가 아니라(결과적으로 일어난 폐해의 원인은 될지언정), 폭행이 죄가 됩니다.

반면에 술 담배를 하나님의 도덕으로 따지면 어떻게 됩니까? 크게 세 가지 관계에서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자신과의 관계입니다. 건강과 정신, 특별히 하나님이 주신 육신을 아름답고 활기차게 유지해야 할 책임에서 따져야 합니다. 술 담배가 건강을 해치면 하나님이 주셨고 또 성령이 내주하고 있는 육신과 정신을 함부로 다룬 셈이므로 죄가 됩니다.

물론 술의 경우는 때로는 약이 되거나, 술 담배 공히 긴장을 풀어주는 좋은 면도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따져 건강이 나빠지는 단점을 긴장 해소와 즐거움을 주는 장점이 충분히 카버하고도 남는다면 문제 삼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항상 문제는 누구나 중독으로 건강에 해를 끼치게 되는데, 진짜 중독 안 되고 자유자재로 조절할 정도라면 괜찮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입니다. 기독교 신자니까 끊어야 한다는 단순한 논리가 아닙니다. 술, 담배를 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교제가 등한히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아무래도 기도나 말씀에 집중할 여유가 없어지며, 또 그 관심이 하나님보다 세상 쪽에 가있을 때에 술 담배를 하게 됩니다. 간단한 예로 술에 취해 기도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성경도 술에 취하지 말고 성령에 취하라고 하지 않습니까?(엡5:18)

물론 신자도 하루 스물네 시간 기도와 말씀에만 전무할 수는 절대 없습니다. 예수님도 포도주를 마셨고 궁극적으로 담배 아니 아편도 하나님의 창작품입니다.(단 이 부분의 의미는 더 세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음. 성경문답 사이트 #167 “술 담배와 죄의식”의 글을 참조바람) 때로는 과도한 긴장을 풀고 사람들과 친밀한 교제를 위해서 술을 조금 마신다고 해서 죄라고 할 수 없으며, 신자가 그래도 됩니다.  

세 째는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입니다. 기독교 윤리는 결코 남에게 피해만 안 주면 된다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신자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 받아 불신자로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말씀을 맡은 자입니다. 질문자처럼 언제 어디서 어떤 일로 누구를 만나도 복음을 전하여 주께로 인도할 평생의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한 것처럼 비록 술 담배 자체가 또 세속적 이야기가 윤리적으로 크게 하자 될 것이 없고, 잘 절제하면서 장점만 살려 하나님과의 개인적 교제에 방해가 되지 않으면, 즐겨도 되는 자유는 분명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신자와 연약한 신자들에게 예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생기면 이 또한 바울처럼 평생을 두고 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럴 때에는 바로 강진영 형제가 댓글에 단 내용이 그 판단 기준이 됩니다. 신자라면 아래의 질문들에 대해서 내 속에 계신 성령님께서 나에게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귀 기울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23-33)

1) 술을 마심이 나에게(내 경건과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유익한가?
2) 술을 마심이 상대방에게 덕이 되는가?
3) 술을 마심이 상대방에게 유익이 되는가?
4) 술을 마심으로 믿음이 연약한자가 시험에 들 수 있는가?
5) 술을 마심이 하나님께 영광인가?
6) 술을 마심으로 상대방의 구원을 얻게 할 수 있는가?

(“술을 마심” 대신에 질문하신 “세속적 이야기를 나눔”을 비롯해 신자의 모든 행위를 대입할 수 있습니다. 1)의 ( )는 위에 설명한 내용에 따라 제가 임의로 보충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남습니다. 상기질문 모두에 “어느 선까지?”라는 의문문이 하나씩 더 붙기 때문입니다. 즉, 1) “어느 선까지 술을 마심이 나에게 유익한가?” 식으로 질문 전부가 바뀐다는 것입니다. 정말 이는 모든 신자의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숙제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성경이 말하는바 답은 그 반대로 아주 간단명료합니다.

질과 양이 아니라 방향이다.

세계 최고 갑부 빌 게이츠가 신자는 아니지만 일 년에 수억 불씩 기부도 제일 많이 합니다. 그의 집은 시애틀 바닷가에 수천만 불 나가는 저택이며 틀림없이 최고급 자동차도 여러 대 갖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가 신자였다면 “신자가 벤즈 600 같은 고급차를 모는 것이 죄입니까?”라는 질문이 성립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오히려 아주 경건한 자로 칭송 받을 것입니다. 최고 갑부로 최고 많이 기부했으니 달란트 비유에 적용시켜도 다섯 달란트 받아서 다섯 달란트 남긴 셈입니다.

만약 그가 잘 믿었더니 이런 성공의 자리에까지 주님이 이끌어주셨다고 눈물로 간증하고 다니면서 쥐꼬리만큼만 기부한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는 사람들, 아니 신자들 사이에도 믿음이 뜨겁다고 칭찬받을지 모르지만, 하나님 보시기엔 다섯 달란트 받고도 땅에 묻은 자로 악하고 게으른 종이란 야단과 함께 내침을 당할 것입니다. 아니 진정으로 거듭난 신자라면 그 많은 재물의 복을 절대 혼자 향유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신자가 자꾸만 어느 선까지 즉, 믿음을 어떤 외적 행동, 현상, 결과에 대해 질적 양적 수치로 점검 판단하려 드는 것이 잘못이라는(나쁜 bad가 아니라 mistake 오류) 것입니다. 믿음은 방향, 소속, 위치에 관한 문제입니다. 불신자 시절과는 그 인생관, 세계관, 신관 등 모든 가치관을 정반대로 전환하여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신자란 예수님 보혈의 은혜로 흑암, 죄악, 사망, 사탄의 세계에서 빛, 의, 생명, 하나님의 영역으로 이미 옮겨진 것입니다. 더 이상 어느 선 즉, 질과 양에서 뒤쳐진다고 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끊어질 수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 어떤 일을 하던 그 중심에 예수님의 십자가만 소유하고 있으면 됩니다. 실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근거에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는 소원만 있어도 즉, 비록 그 실천이 더디거나 때로는 죄와 쾌락의 유혹에 넘어져도 회개의 마음이 사무치면 훌륭한 신자입니다.  

성경에서 죄의 의미는 과녁을 정확히 맞히지 못하고 빗겨난 것을 말합니다. 어떤 규정된 행동을 어느 선까지 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화살이 덜 날아간 것이 죄가 아니라 방향이 어긋났기에 딴 곳에 맞힌 것이 죄입니다. 가장 쉬운 예로 부부가 하루 저녁에 몇 번의 성관계를 맺든 서로 사랑이 깊은 것인 반면에 다른 상대와 키스 아니 손만 잡아도 음란의 죄를 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음에 음욕을 품어도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했지 않습니까?    

손잡은 것과 하루저녁 몇 번이나 성관계를 가진 것은 쾌락을 즐기는 질과 양으로, 다른 말로 어느 선까지 신자에게 허용되는지 결정하는 기준으로선 도무지 비교조차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전자는 방향이 틀렸기에 성경적으로는 죽어 마땅한 엄청난 죄이며, 후자는 방향이 옳았기에 성경적으로 크게 칭찬 받아야할 의로운 행위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래서 한마디로 신자는 어느 선까지의 행위를 문제 삼지 말고, 지금 서서 바라보고 있는 방향이 바른지만 따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방향만 바르면 조금 과도하다 싶어 보이는 선(線)이라도 괜찮은 것입니다. 혹시라도 이를 두고 목적이 옳으면 방법은 틀려도 된다고 이해한다면 큰 오류입니다.  

영화 대부처럼 마피아들도 조직원과 그 가족들의 안녕을 위한다는 선한 목적이 있지만, 그를 이루는 방안이 전부 살인 폭력 마약 매춘 도박 등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자가 교회건축이라는 선한 목적에 도박 탈세 등으로 번 돈을 헌금할 수는 결코 없는 것입니다. “창기의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아무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신23:18)

목적이 선하다고 방법이 틀려도 된다는 법은 없습니다. 두 예에서 보듯이 방법도 반드시 선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일단 신자가 되면 악하다고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취하지 않습니다. 설령 탈세로 번 돈을 헌금했다 쳐도 신앙양심에 분명 찔림이 있습니다. 어느 선까지가 문제가 아니라 이미 그 방향이 잘못되었음을 본인도 압니다. 만약 그런 찔림이 없다면 아직 온전한 신자가 되지 않았거나 잘못된 가르침을 받은 것입니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어느 선까지”라는 질문 자체는 윤리적으로 따져서 “그리 악하지는 않다고 생각되는” 아니면 “판단하기 애매모호한” 행위라는 뜻을 이미 내포하고 있습니다. 즉 분명히 악해 보이는 행위라면 신자로선 당연히 그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목적이 선하면 방법이 나빠도 된다는 논리는 신자에겐 전혀 해당되지 않습니다. 마땅히 방법도 선해야 함이 기독교의 절대 전제입니다. 성경에 마치 그런 것처럼 보이는 일도 하나님 당신께서 신비하고도 절대적 경륜에 따른 것입니다. 그런 일에 비추어 신자도 그래야 한다는 법은 절대 없습니다. 바꿔 말해 신자가 회사 회식과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 세속적 오락에 참여하는 것은 악한 방법이 아니고 단지 가치중립적인 방법일 뿐입니다.
  
먹든 마시든 주께 하듯 하라.  
  
그래서 상기의 6가지 질문을 자신에게 할 때마다 “어느 선까지” 해야 하는지 곤혹스러워지면, 무조건 그 “어느 선까지”라는 추가질문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혹시라도 내가 이런 것까지 해도 되는지 자꾸만 의심이 들면 그 일을  안하면 그만입니다. 단 그런 의심을 내 자신의 의나 인간의 도덕적 기준으로 따지지 말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정말로 도움이 되거나 필요한 일인지 따져 보라는 것입니다.

바꿔 말해 질문자께서 진정으로 상대를 나중에 전도할 목적이라면 술을 권하거나(심지어 절제하며 같이 마셔도), 또 세속 이야기에 동참하셔도 (악한 것만 아니라면 상대가 관심 있는 분야를 먼저 꺼내어도) 됩니다. 단 그런 진정성이 상대는 물론 그 자리에 동참한 다른 불신자나 연약한 신자에게까지 확실히 입증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전도하려고 혹은 분위기를 깰 수 없어서 이런 비(非) 크리스천 적인 일을 한다고 대외적으로 공표하고 그러라는 뜻이 절대 아닙니다. 그렇다고 나중에 전도하면서 상대에게 사실은 내가 전도 목적으로 술을 함께 마셨다는 식으로 실토하라는 뜻도 아닙니다. 그럼 아무리 서로가 윤리적으로 문제 삼지 않아도 상대에게 의도적으로 술수를 사용한 위선자라는 인식을 주며 무엇보다 그 전도 행위 및 내용의 정당성을 까먹어버립니다.  

신자가 회식에 동참해 술잔을 권하고, 세속 이야기에 같이 웃고 떠들려면 그 외의 다른 모든 측면에서도 더더욱 진짜 신자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업무 수행에서 우월성까지 보이면 더 좋겠지만 꼭 그럴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대신에 반드시 성실성 정직성 진지성은 드러내야 합니다. 무슨 일에나 온유와 관용으로 대하며 특별히 더럽고 추한 죄(질문하신 주제와는 달리 분명히 악한 것, 가장 대표적으로 회사 내에서 부정 비리 같은 일)와는 일절 등져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개인적 고난이 닥쳐도 감사하면서 최소한 담담하게 이겨내며 회사 안에서도 힘든 일은 개인적 희생을 무릅쓰고도 담대하게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요컨대 누가 봐도 인생에 대한 자세와 삶의 방식에서 진정한 신자임에 틀림없다는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술잔을 권하고 세속적 이야기에 동참해도 신자다운 자세를 흩트리지 않아야만 나중에 전도 시에 은혜와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심지어 가만있어도 불신자가 당장 교회 가겠다는 소리는 안 해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상담, 최소한 기도해달라고 먼저 부탁을 할 것입니다. 그럼 자연스레 전도 기회도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는 말씀이 먹고 마실 때마다 기도하라, 예배드리라는 계명이 아닙니다. 먹고 마심에 기독교라는 종교적 차원의 질과 양을 따지기보다는 참 신자로서 온전한 방향, 자세, 가치관에 따라 행하라는 것입니다. 정말 자신의 생각, 말, 행동, 제반 인간관계, 업무, 사역 등에서 나는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주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쪽만 따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유대인을 만나면 유대인처럼, 헬라인을 만나면 헬라인처럼 행하면서도 오직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는 일에만 전심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고 확신하기에 어느 선을 정해놓고 행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오직 예수만 바라봤다는 것입니다.

순전히 이해를 돕기 위한 목적으로 주님만 바라본다는 의미를 잘 나타내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분단 이후 최초로 상호 평화를 추구하는 남북공동선언을 만들기 위해 당시 L 정보부장이 비밀리에 대북특사로 파견됐습니다. 당시 김일성을 비롯한 북한 수뇌부와의 연회에서 그 부장은 술에 취하면 임무수행에 지장이 있기에 끝까지 지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모임에 참석한 수백 명 전원과 일대일로 건배했는데도 전혀 취하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보통사람이, 아니 아무리 술에 강한 그분도 평소에 그렇게 마셨으면 죽거나 큰 병에 걸렸을 것입니다. 오직 임무수행이라는 일관된 자세(방향)가 어느 선까지의 정도가 아니라 죽음의 선까지 넘어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 

불신자는 물론 연약한 신자와의 관계에서 신자의 행동지침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목숨까지 걸 정도로 주님의 영광만 드러내려 한다면 이미 어느 선까지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재차 강조하지만 분명한 악은 당연히 그 모양도 버려야 하고 또 참 신자라면 아무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목적이라도 그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런다고 그분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 그 나머지는 약간 애매모하거나, 가치중립적이거나, 분명히 선한 일뿐입니다. 그런 일들에서 신자가 설령 하나님이 허용하지 않는 어느 선(그런 기준도 사실은 없지만)을 넘어섰다고 해서, 그것도 전도할 목적으로 행했는데 하나님이 벌주시겠습니까? 오히려 상주시지 않겠습니까? 상이 뭐하면 나중에 다 합력해서 선으로 만드시고 신자로 무엇이 잘못인지 깨닫게 해주시어 더 큰 믿음으로 성숙케 해주실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시 말하지만 "어느 선까지”라는 의심이 들 때마다 곧바로 그 의심 자체가 쓸데없으므로 당장 지우라는 것입니다. 대신에 평소 정말 주님 자녀답게 사는지, 현재 이 일에서도 주님 자녀답게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목적으로 서있는지 그 방향과 자세만 점검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본인이 미심쩍고 자꾸 내키지 않으면 그냥 그 일을 안 하시면 됩니다.(이 또한 윤리적 선악간이나 하나님의 상벌과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어느 선을 꼭 정해야 직성이 풀린다면 자기 믿음의 크기와 각 상황에 따라 자기 원하는 대로 하면 그만입니다. 맨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이미 이런 의문을 가진 자체가 하나님 보시기에 아주 기쁜 일이며 평소 신자답게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12/14/2010  

(*)  혹시라도 이 예를 두고 신자는 술을 아무리 먹어도 전도 목적만 분명하면 된다고는 오해마십시오. 그러면 처음부터 나쁜 수단을 사용하는 경우가 됩니다. 이 주제에 관해선 성경문답 사이트  #41 "불신자와 함께 술먹으면서 전도해도 되는지요?(신자와 술담배)"의 글도 함께 참조 바랍니다.


성화

2010.12.15 15:33:39
*.192.30.52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라는 말씀을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기쁨의 날들

2010.12.17 08:14:04
*.176.226.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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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마시는 술은 취해서 뭔가를 잊기 위한 목적으로 마시는 술 같습니다.비몽사몽 헤롱헤롱해지면 몸과 마음의 감각이 사라지면서 통증을 잊게 되는데 그 마취되는 느낌을 위해서인것 같고요,
여럿이 있을때 마시는 술은 원래 사나운 본성을 가진 존재인 인간들을 가까이 마주하고 있음으로서 느껴지는 공포심과 불안감 그리고 어색감을 잊기 위해서인것 같습니다. 즉 톱니바퀴에 윤활유를 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지요.여럿이 술을 마시면서 자신도 무장해제를 하고 상대방도 그렇게 하기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홀로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을 마뜩찮아 하는 이유는 혼자 갑옷을 벗지 않고 옆구리에 찬 칼을 내려놓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마치 목욕탕에서 모두가 벌거벗고 있는 상황에서 옷 다 입고 안경쓰고 모자쓰고 양말까지 다 챙겨신고 들어오는 사람을 보는 것만큼 어색하고 생경하고 이해할수 없어야지요.
혼자만 멀쩡한 정신으로 그 자리에 앉아 있겠다는 의도를 모르겠다는 것입니다.그런데 기독교인이 기도교에서는 술을 안마시는 것이 계율과 같은 것이라 도저히 깰수 없다고 나오면 그들도 쓸데없는 오해를 거두겠지요. 혼자 멀쩡한 정신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취중에 한말까지도 다 마음에 담아두고 기억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기독교도들의 계율이 그렇다는데 뭐라고 하겠습니까?
스님과의 회식이 있다고 해서 강제로 고기 먹일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의 비음주에 대한 자유를 자꾸 트집잡는 것은 기독교인마다 음주에 대한 관점이 다 다르다는 것을 눈치 빠른 그들이 이미 간파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마다 회식장소에서 곤욕을 치르고 각개 전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다니는 회사내의 기독교인들이 따로 한번 모임을 가져서 (신우회를 정식으로 결성하면 가장 좋고) 음주나 빈잔에 술따르기 그리고 세속적인 이야기에 대한 반응들에 대한 입장을 통일하는게 어떨까요?
새로 사원이 들어올때 그 사원이 기독교인이면 그와도 합일을 보는게 좋겠고요.



모루두개

2024.03.04 21:59:17
*.230.44.2

성화의 본질은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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