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떨림과 성령 임재에 관해?

조회 수 1168 추천 수 29 2011.02.24 00:20:24
손 떨림과 성령 임재에 관해?


[질문]


기도회 겸 찬양 예배 때 저의 마음이 뜨거워졌고 마이크를 쥐고 기도하는데 저도 모르게 손이 아래위로 떨리면서 기도가 술술 되었습니다. 처음 느껴본 경험이었습니다. 이런 게 성령이 임하셨다고 하는 걸까요? 분명 제가 의도적으로 손을 떤 게 아닌데 저도 모르게 손이 떨립니다. 그런데 왜 이러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멈추어야겠다는 생각은 안 들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너무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은혜를 받고 기분이 좋고 해도 결국엔 변한 게 없더군요. 그 직후 집에 와선 식구와 또 작은 마찰이 있었습니다.


[답변]

성경에서의 신체 떨림


우선 손 떨림 현상에 대해선 제가 뭐라고 판단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정말 성령의 역사였는지 아니면 단순히 일시적으로 신체적인 이상 현상이었는지 말입니다. 어쩌면 본인도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수전증이 신체 활력이 떨어지는 노인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피곤이 겹치면 청년에게도 쉽게 나타나니까 말입니다.  

의도적으로 떨려고 하지 않았는데도 떨렸다고 말씀하셨지만 사실상 어느 누구도, 어떤 경우에도 의도적으로 손을 떨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전에 각설이 타령하면서 구걸하는 사람들을 빼고는 말입니다. 생리적 현상이든 성령의 간섭이든 어떤 손 떨림도 스스로 의도해선 잘 떨리지도 않고 또 그러는 사람도 없습니다.  

오해는 마십시오. 질문자님의 영적 체험 자체를 폄하하려는 뜻은 전혀 없습니다. 신체적으로 아무 하자가 없었다면, 기분이 좋으면서 마음이 뜨거워졌고 기도가 술술 잘 나온 것은  어떤 영적 체험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성령이 충만히 임재하면 얼마든지 그런 현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신체적 떨림이나 감정적 충만이 동반되기만 하면 무조건 성령의 역사라고 판단해버리는 것은 잘못이라는 뜻입니다. 사탄이 역사할 때도 외적으론 비슷한 현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점쟁이들이 신을 불러 내리는 강신절차를 할 때에 가장 많이 떨지 않습니까?  

주지해야할 사항은 신구약 성경을 다 훑어 봐도 신자 개인의 떨림 현상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것입니다. 진동하는 대상은 그 전부가 산, 땅, 하늘, 바다, 세상, 열방 등입니다.  "내 마음이 진동하며 두려움이 나를 놀래며 희망의 서광이 변하여 내게 떨림이 되도다"(사21:4)라는 표현이 있습니다만, 마음에 두려움이 생겼다는 것이지 신체에 진동이 임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역사상 가장 충만하게 임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행2:2,3)라고 합니다. 방안에 바람 소리가 있고, 불의 혀 같은 것이 보였지 기도하는 자들의 신체가 떨리는 현상이 있었다고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물론 방안 가득한 영적 기운이나 능력에 따라 신체의 일부 혹은 전부가 떨렸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만약에 그랬다면 사도들이 그 현상에 대해 성경기록에 남겨 놓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가 밤중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미했더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여서 문이 열렸지(행16:25,26) 사도들에게 떨림이 있었다는 언급은 없지 않습니까?

성령이 임재 함으로써 신자에게 신체적 반응이 나타나는 예도 하나 있긴 합니다. "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가 일제히 소리를 발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 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가로되 선하시도다 그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대하5:13,14)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고 봉헌할 때에 지성소에 법궤를 안치했습니다. 제사장들이 반차대로 하지 않고 노래하는 제사장, 악기 부는 제사장 모두가 성전에서 일제히 여호와를 찬송했더니 그 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고 제사장들은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서서 섬기지 못했다"고 해서 꿇어 엎드린 것이 아니라, 그 영광에 압도되어 더 이상 일상적인 제사장 업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또 신체적 떨림이나, 그 자리에서 앞으로든 뒤로든 쓰러지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가슴 가득히 도저히 필설로 설명이 안 되는 감격으로 채워져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흔히 생각하듯이 기도나 찬양이 술술 잘 되는 식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마주 섰다면?

성령은 구원 받은 모든 신자에게 영원토록 내주합니다. 그럼에도 간혹 개인에겐 아주 강력하게 역사하고, 또 마가의 다락방 사건처럼 성도들의 공동체 전체에도 비상한 양태로 임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요컨대 하나님 그분이 우리 앞에 마주보고 서있는 셈입니다.

하나님과 직접 맞닥뜨렸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럼 우리에게 나타나거나 우리가 취할 반응이 어떨 것 같습니까? 제일 먼저 아무 말도 못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어버릴 것입니다. 물론 두렵고 떨릴 것입니다. 손발이 후들후들, 전신이 사시나무처럼 떨릴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 자리에서 폭삭 고꾸라져 엎드릴 수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에 반해 하나님의 입장은 어떨까요? 우리에게 충만하게 임재하시고선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로 두려움과 떨림에 잔뜩 붙들리게 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말하자면 성령의 하시는 역할이 은사집회에서 흔히 보듯이 사람이 벌렁 뒤로 넘어져 몸이 떠는 일뿐이겠습니까? 또 그렇게 해서 과연 하나님과 신자 본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그런 일이 없거나 안 생긴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령이 외적으로 강력히 역사하는 현상에 대해 어느 누구도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합니다. 인간이, 심지어 그런 은사를 시행하는 당사자조차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객관적 진리를 추론해낼 수 없습니다. 다른 말로 그런 외적 현상보다는 그 후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사람으로 두렵게 만드는 것은 사탄의 짓입니다. 하나님은 신자에게 부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면서까지 강력히 임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말로는 다 두렵다는 말로 통용될 수 있지만 영어로는 세밀히 분류해 더 정확히 표현합니다. 두려움의 감정에는 대표적으로 셋을 들 수 있습니다. 무서운 공포를 뜻하는 fear, 위대하고 신비함에 대한 경이로움인 wonder, 너무나 장엄한 광경에 완전히 압도되어 말이 안 나오는 awesome이 그것입니다.

물론 죄에 찌든 추한 인간이 하나님을 생전 처음 만나면 fear부터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아 십자가 은혜 안에 들어온 당신의 자녀라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믿은 후에도 죄를 짓긴 하지만 복음 안에서 자신의 바뀐 신분과 특권을 확신할 수 있기에 계속해서 무서운 하나님으로만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따르고 있는 신자로선 그분과 대면하면 오직 그 영광에 압도되고 감격하여 경외심으로 가득 차게 될 뿐입니다. 하나님으로선 진동을 일으킨다 해도 신체보다 그 영혼에(wonder와 awesome) 있게 하실 것 아닙니까?        

더 중요한 것은 그분과 만난 후의 결과입니다. 단순히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상태는 여전히 압도된 것에서 벗어나지 않은 순간적 현상일 뿐입니다. 재차 강조하지만 하나님이 인간으로 얼어붙게 만들려고 충만히 임재하지는 않습니다. 대신에 그분은 오직 당신의 뜻을 계시하고 또 그래서 신자더러 그 뜻에 따르게 하려고 강력히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단지 당신의 충만한 임재 체험만 하려고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분과 만나면 그분의 품성과 권능에 완전히 감화되어서라도 그분의 뜻에 순종하게 됩니다.

성경에 그분을 직접 만난 예를 보십시오. 모세, 사무엘, 이사야, 등 모두가 당신께서 먼저 불러내어 당신의 일을 맡기셨지 않습니까?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 충만히 강림할 때도,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는 주님의 약속을 실현키 위한 것이었지 않습니까?  

성령의 기본적 역할

성령이 신자에게 하시는 핵심적인 역할은 예수를 주라 시인케 한 후에 하나님의 사정을 깨달아 알아서 땅 끝까지 당신의 증인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즉 성령 체험을 하면 반드시 자신부터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려고 노력하며, 세상 앞에 그분의 증인으로 서겠다는 자발적이고도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헌신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런 헌신과 실천으로 결말 되지 않고 단지 감정이 뜨거워지고 신체가 떨리는 현상만 생긴다면 세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선 단순히 신자 개인의 신체적 감정적 현상이거나, 또는 악령이 작용했거나, 아니면 성령의 임재는 맞지만 그분과 더 깊은 교제 안에 들어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역으로 따지면 신자가 겪은 영적 체험이 성령 충만에서 기인한 것인지 아닌지 점검하는 기준이 됩니다. 먼저 손 떨림 같은 신체적 현상보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감이 가슴 가득히 차는지부터 따져야 합니다. 또 그런 충만한 감정이 단순히 자기 개인적인 기쁨으로 그치는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발로인지 살펴야 합니다. 정말 오직 예수님만을 위해 살겠다는, 최소한 그분을 닮겠다는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어쨌든 그분이 너무 좋다는 마음은 계속 들어야 합니다.

따라서 질문자님도 손 떨림보다는 가슴에 충만해진 기쁨에 더 주목해야 합니다. 또 그 기쁨이 나를 위로해주는 수준으로 그쳤는지, 정말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고 그분을 위해 충성하겠다는 헌신에까지 미쳤는지 따져보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낙심하고 지친 성도를 단순히 위로하려는 목적만으로 성령이 충만히 임재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성령이 역사하면 그 마음에 예수님에 대한 열망, 헌신, 최소한 그분에 대한 영적 갈증은 생기게 합니다.  

그런 체험을 하고나서 집으로 돌아가선 곧 바로 나쁜 일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바로 앞에 있었던 일이 성령 체험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주님과 더 깊은 교제에 안 들어갔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성령 체험을 시키는 것보다 당신의 자녀로 온전케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설령 상대가 화를 돋우었다고 해도 신자로서 관용과 사랑으로 대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질문자의 경우 오히려 상대에 말려들어갔거나 스스로 흥분했을 것이므로 영적 체험을 할 당시 주님과의 깊은 교제까지는 못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물론 생전 처음 겪은 현상이라서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그러니까 더더욱 성령 체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 체험에 대해 궁금증을 느껴서 이런 질문을 하게 된 것만도 성령의 역사임을 아셔야 합니다.) 기도모임, 찬양예배, 치유집회 무엇이 되었든 영적 체험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반드시 말씀으로 예수님의 복음이 증거 되어서 참석자 모두가 그분의 은혜와 권능을 더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기도, 찬양, 치유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선 안 됩니다. 예수님만이 신자의 처음이자 끝입니다. 그분을 닮고 그분을 증거하는 삶을 살라고 구원 후에도 천국으로 바로 데려가지 않고 이 땅에 여전히 놓아두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 체험이 별다른 효력이 없게 된 것은 신자를 붙들고 있는 죄의 뿌리가 그만큼 깊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죄에 매번, 완전히 승리할 수는 결코 없습니다. 또 바울이 선 줄 알거든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권면했듯이 오히려 영적으로 충만할 때에 교만 또한 가장 셀 때가 되어서 더 자주 실패합니다.

바꿔 말해 한 개인에게 성령 충만이 하는 역할은 넘어져 있는 신자를 바로 세우서 당신의 자녀답게 살겠다고 헌신하는 데까지만 제한된다는 것입니다. 품성을 거룩하게 변화시키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신자의 책임입니다. 또 그 일을 방해하는 죄와 흑암의 세력과는 평생토록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물론 성화나, 주님의 일을 하거나, 이웃을 사랑할 때에도 신자 혼자의 힘으로 해선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반드시 성령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으며 그분의 능력에 힘입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성령이 역사한다고 해도 현실 상황에서 일상적인 일을 통해서 이뤄집니다. 예컨대 불신자 이웃을 섬기는 일에도 성령의 외적인 신비한 현상만 일어난다면, 섬김 받는 자로선 당장에 광신자 취급 하거나, 그야말로 공포(fear)를 느껴서 다시는 상대하지 않을 것 아닙니까?

말하자면 성령은 주님을 갈급하게 원하는 신자 개인이나 마가의 다락방처럼 그런 성도들이 모인 공동체에만 충만하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비가시적 영적 모습으로만 말입니다. 신자의 신체보다 영혼을 진동시켜서 하나님과 그 독생자의 십자가 구원의 은혜에 대한 경외감에 압도되도록 말입니다. 신자는 성령의 외적 현상보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내면의 충만함을 소망하시고 무엇보다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예수님마저 이렇게 말씀하셨음을 필히 기억하셔야 합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8:29) 성자 하나님조차 성부 하나님의 기쁘신 일을 행할 때에 성령 하나님이 충만히 임재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한마디로 주님을 깊이 알아가고 또 그래서 그분을 위해 충성하는 것 이상의 성령 충만은 없다는 것입니다.  

2/23/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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