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2/3) 신자는 결혼을 전제한 연애만 해야 하나요?

조회 수 5534 추천 수 24 2013.08.19 17:03:47
(질문 2/3) 신자는 결혼을 전제한 연애만 해야 하나요?


[질문]


두 번째 질문입니다. 크리스천의 연애관에 관한 것입니다. 많은 목회자 분들께서 연애는 결혼을 전제로 하고 만나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저도 이 부분에 동의합니다. 다만 의문점이 하나 생기는 것은, 결혼 적령기의 청년들이야 당연히 결혼을 전제로 하고 만나는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 결혼 적령기가 아닌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이나 나이가 어린 청소년들이 연애를 하는 경우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이 나이대의 청년, 청소년들은 결혼을 전제로 하고 만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25세 이전의 남녀는 연애를 해서는 안 되는 지요?

[답변]

모순된 질문


1번 질문과 추가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가 상당히 길게 작성한 까닭이 있습니다. 그 주제가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주권의 관계였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다시 언급하면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는 너무나 광대하고 완벽하기에 인간의 자유의지와 전혀 상충이 되지 않고도 당신의 뜻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역으로 말하면 신자가 하나님 중심의 가치관으로 완전히 바뀌어져서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던 그분의 자녀답게 살려고만 하면 자기 재량껏 판단, 결정, 시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자기 책임 하에 하는 일이라도 그 일을 하기 전부터 끝난 후까지 계속해서 주님의 올바른 인도를 바라며 그분의 더 온전한 뜻을 알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그 일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드러나길 소원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런 원칙은 2번, 3번 질문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1번과 추가질문의 답변을 숙지했다면 2번, 3번 질문의 답은 질문자 스스로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신자의 연애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은 정말로 하나님의 자녀다운 생각과 모습으로 연애하는 것입니다. 몇 살에 연애를 하느냐, 결혼을 언제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컨대 25세 이전이라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 중심의 가치관에 따라 연애를 하면 되는 것입니다.

죄송하지만 신자는 반드시 결혼을 전제로 연애를 해야 하기에 결혼적령기 25세 이전에 연애를 하면 안 되는가라는 질문은 그 자체로 사실상 모순입니다. 이 질문이 기본적으로 함의(含意)하는 것은 결혼적령기 이전의 모든 연애는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는 연애라는 뜻입니다. 즉 어렸을 때는 연애만을 위한 연애를 한다는 것입니다. 더 쉽고도 솔직하게 말해 이 상대 저 상대 바꿔가며 엔조이 하는 식의 연애를 한다고 단정한 질문입니다.  

질문에선 신자적인 연애와 불신자적인 연애를, 좀 우스운 표현이 되었지만,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나이입니다. 반면에 저의 답변은 신자적인 연애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신자가 평소에 갖고 있는 근본 사고와 태도라는 것입니다. 신자는 나이와 상관없이 육신적 정신적 순결을 유지하면서 한 사람의 상대에게 순수한 사랑을 쏟아 붓고 또 그 사랑이 필연적으로 결혼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예컨대 중고등학교 즉, 십대에도 연애는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동네에서 허물없이 친구처럼 지냈지만 초등학교시절부터 이미 사랑의 씨앗이 심겨져 있다가 언제부터인가 연애로  이어지고 결혼으로 열매 맺는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60, 70 대의 신자 홀아비나 과부도 정말로 순전한 사랑을 하느냐가 문제이지, 그 나이에 재혼(결혼)은 여러 사정상 힘들 것이 틀림없으므로 아예 연애하지 않겠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 아닙니까? 사랑은 그렇게 이성적 종교적 판단으로 제한할 수 있는 성질도 아닙니다.

이별의 신학(神學)

어렸을 때에 연애를 하면 아무래도 결혼으로 이어지기보다 헤어질 확률은 높습니다. 그래서 결혼하지 않을 연애를 했기에 잘못이 아닌지 의아해집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결과론적 판단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나이가 어릴 때 연애를 해도 헤어질 것을 전제로 만나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야말로 천하의 플레이보이 내지 음녀입니다.

연애하다 헤어졌다는 것은 서로가 결혼할, 최소한 계속 사랑해야 할 상대가 아니었음을 확인했다는 뜻입니다. 역으로 따지면 잘못될 결혼을 미리 방지한 것으로, 결과적으로 결혼을 전제로 한 연애와 동일한 효과를 낸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연애는, 더 정확히 말해서 사랑은 반드시 결혼을 전제로 하는 것이긴 하지만 결혼 자체가 아니니까 헤어져도 됩니다. 아니 결혼을 전제로 하기에 더더욱 헤어져야할 때는 과감히 헤어져야 합니다. 사랑은 불청객으로 불시에 찾아오지만 신자가 결혼할 상대는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제대로 선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어려서 연애를 해도 헤어질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오직 상대의 잘못으로 이별을 겪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이별이 두려워서 미리부터 연애하지 않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연애하다 헤어지는 것은 어느 쪽에 원인과 잘못이 있던지 간에 모든 인간이 온전치 못하며 연약하다는 증거입니다. 결혼적령기가 넘어도 그 불완전함과 어리석음은 크게 나아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신자가 연애하다가 헤어지는 것은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배우자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 당신께서 보시기에 합당치 않은 배우자이기에 헤어지게 만든 그분의 간섭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두 측면이 신자가 미리 알거나 의도적으로 계획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가 전혀 상충하지 않는다는 1번의 답변이 여기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신자의 연약한 점을, 심지어 잘못한 것까지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으로 바꿔주신다는 것입니다.  

연애하다 이별하는 일에도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는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우선 자기 와 상대의 여러 부족한 면을 보면서 인간적 성숙이 이뤄집니다. 상대방 이성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게 됩니다. 온전한 사랑과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뜻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인간을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그분의 아가페 사랑에 대한 더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결혼은 연애와 달리 하나님과 교회 앞에서 평생을 두고 헤어지지 않겠다고 언약하는 신성한  제도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마19:4-6)

따라서 신자는 연애보다는 결혼 후에 더더욱 영육간의 성결을 유지해야 합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마5:28,29) 예수님의 이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아 결혼 후에는 정말로 주님의 온전한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며 아름다운 가정을 가꿔나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연애 때는 아무렇게나 사랑해도 된다는 뜻은 당연히 아닙니다. 사랑에 불순물이 개입되면 이미 사랑이 아닙니다. 신자는 연애 때나 결혼 이후에나 순수하고 온전한 사랑을 하면 됩니다. 재차 강조하지만 크리스천의 모든 연애는 나이와 상관없이 결혼을 전제로 하는 연애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순결하게 사랑한다면, 그래서 그 사랑을 끝까지 이어가고 싶다는 근본 마음이 있다면 언제 연애하느냐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남녀 간의 연애는 하나님의 뜻이자 그분의 너무나 귀한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나중에 이별할 것이 두려워서 즉, 결혼도 하지 않고 이 상대 저 상대 만남으로 인해 하나님 앞에 죄 지을 것 같아 아예 연애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해서 이별을 전제로 하는 것은 사랑 없는 연애를 하겠다는 잘못된 정욕입니다.

믿음대로 행하라.

다시 말하지만 현실의 일상적인 문제들은, 성령의 간섭으로 구원을 받은 후의 모든 삶에서, 신자의 자유의지에 따른 재량에 맡겨져 있습니다. 주의할 것은 신자의 자유의지란 불신자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불신자는 어느 누구의 참견이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만 행합니다. 반면에 신자의 자유의지란 누차 강조하지만 하나님 중심적으로 이미 바뀐 가치관에 입각하되 쉬지 말고 기도하면서 선하게 이끌리는 마음에 따라 판단, 결정, 시행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자기 믿음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상기 답변과 달리 정말로 결혼할 상대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나이의 수치적 제한까지는 안 두더라도, 연애하지 않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렇게 해도 됩니다.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고전7:8,9) 바울이 독신주의가 더 낫다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당시에는 예수님 재림이 그 세대 안에서 있을 것이라고 보고 독신으로 있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재림이 임박해도 바울의 생각과는 달리 독신보다 혼인이 낫다고 여겨지면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자가 연애보다 결혼이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면, 이런 표현은 엄밀히 따져 모순된 말이지만, 자기가 기도하여서 정한 배우자의 조건에 맞는 자를 계속 찾아야 합니다. 혹은 하나님이 마련하신 배우자를 하나님의 방식으로 만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바꿔 말해 사랑과 상관없는 중매결혼 같은 즉, 뜨거운 감정이 동반하지 않기에 의지적으로 사랑하려 노력하는 결혼을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그 또한 신자가 자기 책임 하에 자기 믿음대로 판단대로 하는 것이므로 그렇게 해도 무방하고 선한 것이긴 해도 말입니다.    

그러나 그처럼 결혼이 전제 안 된 연애는, 이 또한 성경적으로 모순임을 잊지 말아야 함,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시행하면 자연발생적으로 생기는 연애의 감정을 어떻게 해석하고 처리하느냐는 문제가 필연적으로 발생합니다. 상대가 그런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느냐는 문제도 생깁니다. 뜨겁게 사랑하는 감정 없이 신앙적 이유로만 결혼하는 것이 배우자에 대한 정신적 배신이 아니냐는 의문에 대해 온전한 답이 준비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침 동일한 믿음을 가진 상대를 만나면 그야말로 다행이고 그 자체가 하나님의 뜻일 것입니다만...

이렇게 따져보니까 어떤 결론에 이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딱 부러진 정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성경이나 예수님의 가르침이 불완전하거나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에 모든 인간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선 여전히 공중 권세 잡은 흑암의 세력이 설치고 죄에 빠진 인간들끼리 서로 시기 경쟁 분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써 구원 받은 신자도 절대로 완전할 수 없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신자의 연애와 결혼에서 자기 자유의지에 따라 믿음대로 선하게 행하면 된다는 원칙보다 더 중요한 요소가 나타납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신자끼리의 만남(연애)과 결합(결혼)이라도 완전한 성자가 아닌 불완전하고 어리석은 죄인끼리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정말로 서로를 불쌍히 여기며 사랑해야 합니다.

신자는 뜨거운 감정만으로, 지성적 판단만으로, 의지적 노력만으로, 신앙적 순종만으로 사랑해선 안 됩니다. 감정, 지성, 의지, 믿음의 순종 모두가 필요합니다. 거기다 그 모든 것이 복합적 균형을 잡으며 제대로 작용해도 온전한 사랑을 못합니다. 우리 모두가 너무나 불완전하고 어리석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언제 어디서 무슨 경우가 닥치더라도 자기를 부인하며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가면서 주님이 채워주시는 그분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 사랑이 처음부터, 어려서부터 아니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불가능하기에 연애하다 헤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입니다. 역으로 따지면 연애를 통해서 그런 온전한 사랑의 훈련을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헤어지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고 순수한 사랑을 하는 한에는 말입니다. 피치 못해 헤어지더라도 영육 간에 순결을 온전히 유지해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이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나중의 온전한 결혼을 위한 성숙해져 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아가페 사랑이 정작 절실히 필요한 때는 결혼입니다.

제가 나이 관계없이 순수한 사랑이라면, 최소한 그런 온전한 사랑을 해보고 싶다는 진정한 소원이 있다면, 얼마든지 연애해도 좋다고 답변한 또 다른 그리고 더 중요한 이유입니다. 연애와 결혼 뿐 아니라 신자의 현실적 삶 모든 부분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온전케 만드는 것 또한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뿐입니다. 그 복음의 온전하고도 절대적 진리와 은혜 안에서 먼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그래서 쉬지 말고 말씀과 기도에 전념한다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배우자가 될 사람을 즉, 결혼을 전제로 하는 사랑을 나이와 관계없이 그분이 마련해주실 것입니다. 또 그것이 바로 믿음으로 행한다는 올바른 뜻입니다.

8/18/2013  

운영자

2013.08.19 17:07:36
*.190.210.70

박 명한 형제님
답변이 상당히 늦어져 죄송합니다.
개인적으로 바쁜 일도 있었지만,
답변에서 살짝 비췄지만 형제님께 다시 생각해볼 여유를 주고 싶은 뜻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늦어진 답변 다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남은 하나의 질문은 곧 바로, 또 더 간단하게(?)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샬롬!

박명한

2013.08.20 05:06:53
*.70.53.214

아닙니다 목사님^^
사실 첫 번째 답변을 듣고, 저도 많이 생각을 했습니다.
이 질문도 첫 번째 것과 상충되는 것 같아 답변도 어느 정도 예상됐구요.

이제 제가 궁금했던 문제들이 퍼즐이 맞춰지듯이 풀리는 것 같아
너무 기쁩니다. 그럼 다음 답변도 기대하겠습니다^^

낭여

2021.08.08 01:05:54
*.127.209.205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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