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트렌드에 하나님이 역사하는가? (성령질문1/5)

조회 수 633 추천 수 20 2013.10.23 19:35:41
교회 트렌드에 하나님이 역사하는가? (성령질문1/5)


[질문]


교회에도 트렌드(trend)가 있는지 '제자', ‘리더십', '내적 치유', '방언' 등이 키워드로 내세워지더니 지금은 '성령' '가정교회' '이스라엘'을 앞세우는 것 같습니다. 왜 이런지? 교회가 경쟁적으로 경영하는 시대라서 그런지? 이런 일들 가운데 정말로 하나님의 일하심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진리와 트렌드


교회는 절대적이고 완전하며 영원한 진리를 가르치는 곳입니다. 또 진리가 갖는 그런 특성 때문에 신자도 그 배운 진리가 자신의 존재와 삶과 인생에 평생토록 선하게 반영되어야 합니다. 그 진리 안에서 그 진리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 진리 위에 견고히 서있음으로써 세상의 풍조, 문화, 철학, 사상, 종교 등에 의해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말아야 합니다. 최소한 영적인 혼란이나 흔들림은 없어야 합니다.

그 영원한 진리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과 그분의 십자가 구속의 의미를 밝혀주는 ‘성경’ 둘입니다. 따라서 신자들로 성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게 하는 것이 교회의 근본 임무입니다.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고, 십자가 은혜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하며, 예수님의 은혜와 권능에만 의지하여 살게 하며, 또 그 받은 은혜와 권능을 여전히 사단에 미혹되어 있는 주위 사람들로 알게 만들어야 합니다.  

반면에 트렌드란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좋아해서 참여는 하되 오래 가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가 트렌드를 좇아가면, 우선에는 아무리 의롭고 영성이 깊어 보여도, 벌써 그 자체로 교회 스스로 모순을 범하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성경에 있는 진리를 정확히 분별해서 가르치고 삶에 적용 시키는 일만 해도 시간이 모자라는 판에 트렌드를 좇아가면 염려하신 대로 신자들로 혼란만 주게 됩니다.

그런데 진리란 반드시 삶을 이끌어가는 방향이자 능력으로 작용되어야만 참 진리가 됩니다. 진리를 배웠지만 머리로만 알고 어떤 형태로든 삶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진리가 아니라 지식을 배운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인이 붙들어야 할 두 진리인 예수님과 성경을 삶에 실현시키는 차원에선 질문자님이 인용한 여러 키워드가 등장하게 마련입니다.

쉽게 말해 신자가 기도와 말씀에 전무해야 하지만 어떤 제목으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기도 후에 응답을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지, 또는 성경은 어떻게 읽고 묵상하고 적용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이 생깁니다. 그래서 교회는 제자훈련, 기도학교, 전도훈련, 큐티 훈련, 리더쉽 교육, 영적 은사의 바른 이해와 적용, 등등의 주제에 대해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훈련시켜 신앙생활에 실현토록 해야 합니다.  

교회의 본질상 교회가 행하는 모든 사역에는 오직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만이 명확하게 드러나야 합니다. 교회 사역에 참여한 신자들이 반드시 그분의 빛과 향기를 맛보아 자신과 자기 인생을 거룩하고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결실을 맺어야 합니다. 현실의 삶에서도 그 결실을 통해 주위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를 맡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실천신앙과 트렌드의 구분

결국 교회 사역을 대별하면 성경 진리를 삶에 적용시키는 목적으로 행하는 경우와, 단순히 교계내의 트렌드만 좇는 두 경우로 나뉩니다. 전자는 선한 것이고 마땅히 열심히 행해져야 하지만, 후자는 심각히 재고해봐야 합니다. 그런데 트렌드를 따르는 경우라도 그 가르쳐지는 내용은 선하고 좋기 때문에 이 둘을 올바르게 구분하기 애매합니다.  

먼저 진리를 적용하는 사역은 교회 자체 내의 필요에 따라 이뤄져야 하고 당연히 영적 성숙만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예컨대 교인들이 점차 늘게 되면 당면하는 과제 중의 하나는 목회자들이 모든 사역을 다 감당할 수 없기에 평신도 지도자를 양성해야 할 필요가 생깁니다. 그럴 때는 당연히 리더쉽 교육을 해야 합니다. 단 예수님이나 성경 인물들의 리더쉽을 배우거나, 성경이 지지하는 내용의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또 많은 교인들이 종말에 대해 궁금해 하거나, 좀 더 구체적으로 베리칩이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짐승의 표인지 혼란스러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럼 그 주제를 갖고 가르쳐서 의심과 혼란을 제거해주어야 합니다. 나아가 교인들의 영적 상태를 가장 잘 아는 담임 목사가 그  신앙성장을 위해 세운 계획대로, 혹은 긴급한 상황이 벌어졌기에 특정 주제에 대해 교육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실천 신학적 교육과 훈련은 그 특성상 어차피 일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 새로운 교인들이 늘어나고 동일한 필요와 질문들은 계속 발생하기에 반복적으로 시행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교회는 자기 고유의 신앙성장훈련 프로그램을 갖는 것이 좋습니다. 구원의 진리를 배우고, 영적으로 성숙케 하고, 평신도 지도자 사역자가 되게끔 해야 합니다.

그 대표적 예가 흔히 말하는 제자훈련(내용적으로 천차만별이긴 하지만)입니다. 그 훈련은 오직 신자로 정말로 복음 안에서 거듭나고 그 복음이 생명력을 갖게끔 신자 개인의 변화에 치중해야 합니다. 단순히 지식적으로 배워서 예수님이 아닌 교회와 목사에게 순종하는 교회 멤버를 양산하는 절차나 의식이 되어선 안 됩니다.

영적 성장을 위한 교인들의 자발적인 의문, 필요, 소망에 따라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담임 목사의 독단적 욕심이 앞선 경우는 같은 제자 훈련이라도 트렌드가 됩니다. 교회를 그저 양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대형 교회에서 성공한 사역을 무분별하게 답습하는 것입니다. 또 질문하신 그대로 일종의 트렌드처럼 모든 교회가 하니까 자기 교회가 하지 않으면 신앙교육에서 뭔가 모자라고 또 교계에서 뒤처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행하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유행 따라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적 하나님입니다. 신자를 인격적으로 대우하십니다. 그분의 역사는 모든 신자, 모든 교회마다 다 다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교회마다, 신자마다 동일한 방식으로 은혜와 권능을 베푼다면 자판기 신앙이 됩니다. 동전을 넣고 단추를 누르면 원하는 물건이 튀어나오듯이, A라는 방식을 따르면 반드시 a라는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럼 개별적으로 기도하거나 성경 진리를 배울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 방식만 외워서 그대로 실행만 하면 됩니다.

다른 교회에서 성공한 것을 그대로, 또 지금 트렌드니까 무조건 따르는 것은 하나님의 풍성하고도 신비롭고 완벽한 권능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의 프로그램 안에 묶는 것입니다. 기계적 하나님으로 전락하며, 심지어 그 프로그램이 하나님의 역할을 하는 지경에까지 이릅니다.

요컨대 비록 사역의 내용이 동일해도 그 목적하는 의도에 따라 즉, 교회와 목사와 신자의 심령의 중심에 따라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또 교회나 목사가 양적 성장에 주목하게 되면 그동안 순전하게 시행되어 오던 교회 사역들마저 어느 순간 트렌드화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공장에서 동일한 물건을 대량으로 생산해 내듯, 신앙도 획일화, 형식화, 지식화, 방법화 하는 것이 양적 성장의 첩경입니다. 결국 트렌드를 좇아가게 마련입니다.

교회는 숫자에 관계없이 온전한 십자가 군병을 양성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거의 대부분의 경우 단 한 명의 온전한 믿음의 사람을 통해서 이뤄집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만나더라도 십자가 복음 안에 있기에 결코 흔들리지 않은 숨겨진, 정확히 말해 하나님 당신께서 남겨놓은,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는 것입니다. 또 성도 한 명씩 변화 성장시키면 양적 성장도 조금 더딜지 몰라도 자연히, 필연적으로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올바른 부흥이자 참 된 성장입니다.

트렌드도 결과적으로는 좋은 것 아닌가?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의 입장에선 정말로 최선을 다해 섬겼는데도 교회가 성장이 안 되고, 더 중요하게는 기존의 신자마저 영적으로 성숙해지는 모습이 안 보이면 너무나 갑갑해집니다. 그래서 신자가 변화만 될 수 있다면 어떤 방안이라도 시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다른 교회에서 성공했다니까 그대로 적용해 볼 수는 있습니다.  

만약에 정말로 교인들의 성장을 위한 순수한 목적이었다면 목사님부터 그 방식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교인들에 앞서 솔선해서 먼저 교육과 훈련을 받으면서 성경 진리에 부합한지, 과연 참 은혜와 생명이 넘치는지 정확히 분별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 교회에 꼭 필요하다고 확신이 든 후에 시행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역사도 반드시 따를 것입니다. 자기 교회와 신자들 상황에 맞지 않다고 여기면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라도 시행을 보류해야 합니다. 또 그러면 하나님은 다른 방식으로 지혜와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무조건 양적 성장을 목표로, 신자를 자기 말 잘 듣는 양떼(?)로 바꾸고 싶어서 무분별하게 트렌드를 따르면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것도 담임 목사가 완전히 소화한 후에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외부 강사와 프로그램에만 의존하면 잠시 은혜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일회용 행사에 그쳐 버립니다. 거기다 겉으로는 뭔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변화하는 것 같아도 나중에 반드시 그 부작용과 폐해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절대로 그렇게 만만하고 시시한(?) 것이 아닙니다.

어쨌든 가르쳐지는 내용이 선하기에 안 배우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라고 강변해선 안 됩니다. 선한 것과 하나님의 진리가 항상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적, 현실적으로 선한 것은 항상 상대적일 뿐 아니라 하나님과 반대편에 서는 경우도 많습니다. 선한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하나님의 신자와 교회를 향한 근본 뜻은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당신의 진리 안에서 당신의 자녀답게 거룩하고 아름답게 변하고 자라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변화된 자들이 삶의 현장에서 개별적으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 한 알의 썩는 밀알이 되는 것입니다.

그 일은 유별난 프로그램에 의해서 이뤄지는 일이 아닙니다. 오직 복음의 참 생명력으로 진정으로 변화된 신자가 스스로 기꺼이 모든 희생을 감수하며 그런 역할을 감당할 때에 일어납니다. 누가 시키거나 강요하지 않아도 자기가 속한 모든 공동체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냅니다. 구태여 교회가 전체적 방식으로 일률적으로 교육 훈련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요컨대 신자로 성령의 열매가 맺히게 하라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지금 성경이 말하는 성령의 열매는 전부 신자 개인의 내적, 영적 성숙이지 않습니까? 단체로 모여서 거창한 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또 금지할 법이 없다고 합니다. 성령의 역사이기에 정말로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면 그런 열매가 반드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럼 자연히 교회가 온전한 하나로 연합하여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높여진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교회에서 하는 행사나 사역에 신자들이 아무 여과작업 없이 무조건 참여하고 따라선 안 된다는 뜻입니다. 신자가 교회나 담임목사의 하는 일에 일일이 시시비비를 따지라는 뜻은 물론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높아지는가, 하나님의 영광이 더 드러나는가, 그래서 죽어가는 불신자의 영혼은 물론 일시적으로 침체에 빠진 신자의 영혼도 함께 살려내고, 또 거룩하고 아름답게 성장되는 일에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지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행사를 위한 행사이거나, 교회나 목사의 이름을 자랑하려 하거나, 신자를 예수님이 아닌 교회의 종으로 묶어 충성 시험을 하려 하거나, 질문하신 대로 유명 대형 교회가 하니까 본받으려고, 또는 현재 가장 키워드로 떠오르는 트렌드이기에, 등등의 이유로 한다면 심각히 재고하여 성경적으로 옳고도 분명한 이유와 근거를 대면서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은 아주 어렵습니다. 우선 대부분의 한국 교회들이 언로가 막힌 상명하달 식 체제입니다. 또 그렇게 문제를 제기하면 마치 하나님께 불충하는 것처럼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확한 성경적 근거를 제시하라고 한 것입니다. 교회를 성경대로 이끌어가자고 하는 데 하나님이 절대 반대할 리는 없지 않습니까? 신자는 교회와 목사에게 충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그래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적 근거를 대자니 목사님보다 더 잘 알지 못합니다. 또 목사가 그럴싸한(?) 변명을 하면 반론할 근거도 잘 찾지 못합니다. 그럼 아주 좋은 방안이 하나 있습니다. 그러니까 목사에게 트렌드를 좇지 말고 성경부터 철저히 배우자고 요청하면 됩니다. 그 요청을 거부할 목사는 없을 것 아닙니까? 그와 동시에 교인들도 교회와 목사에게만 의존하지 말고 성령께서 깨우쳐주는 은혜가 임하도록 간절히 기도하면서 성경을 파고들어야 합니다. 서두에서 교회가 성경의 진리를 배우고 실천하는데도 시간이 모자란다고 말씀드린 까닭입니다.

교회의 키워드가 바뀌어야 한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8:29) 예수님조차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할 때에 성령이 혼자 두지 아니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성령의 내주와 역사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거듭난 이후로 성령님이 신자에게 영원토록 내주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 즉, 성령의 역사는 항상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자 열망, 헌신, 순종, 실천해야만 그러합니다.

신자와 교회가 행해야 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은 하나뿐입니다.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뛰어나게 하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여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는 것입니다.(엡1:10,21,22) 그리스도만이 역사의 주인이자, 모든 사람의 처음이자 끝임을 세상으로 알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하시는 기본 역할도 그것입니다.(고전12:3, 2:11)      

사단이 공중권세 잡은 세상은 항상 그리스도의 빛을 거부하고 약하게 만드는 일에만 주력합니다. 마지막 심판의 날이 닥칠 때까지 더욱 기승을 부리며 완악하게 예수님을 부인하고 거역할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신자로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가까이 알게 하여서 그런 사악한 영적 흐름에 잘 적응토록 대비시켜야 합니다. 성경의 진리를 깨닫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진리대로 살아서 세상의 죄악과 보이지 않는 흑암의 세력에 당당하게 싸워 이기게 만들어야 합니다.  

요컨대 교회가, 기독교가 내세워야 할 키워드는 영적 흐름에 대한 경고와 깨우침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교회나 기독교 교세를 키우는 것에 국한해선 안 됩니다. 그런 것들이 중요치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작금 기독교의 키워드의 대부분이, 그것이 순수한 동기이든 트렌드를 따르든 간에, 교인과 교회의 성장만을 목표로 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내적 성숙과 충실의 목적은 달성할 수 있어도 막상 신자가 세상을 책임질 제사장 직분을 감당케 하기는 많이 부족합니다. 또 그래서 기독교는 자기들만 의로워지려 한다고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습니다.

그런 키워드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영적 흐름을 올바르게 세우는 방향의 키워드가 나와야 할 것입니다. 예컨대, 십자가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자, 종교개혁 때처럼 성경의 진리로 돌아가자, 자유주의 다원주의 기복주의를 배격하자, 성적 타락을 철저히 회개하자, 북한이나 아프리카의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자, 지구의 오염을 신자가 나서서 예방하고 대비하자 등등이 교회의 키워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간단한 단어로 줄이면 진리, 성삼위 하나님, 구원, 십자가, 복음, 그중에서도 예수입니다.  

진리의 특성이 무엇입니까? 모든 세대의 모든 신자와 모든 교회에 동일한 권능과 은혜로  역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아무리 따르는 사람이 적어도 진리는 절대 변화 수정되지 않고 영원히 진리로 남습니다. 나아가 진리 자체에 권세가 있기에 한 사람이라도 그 진리대로 살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교회들이 여러 키워드나 트렌드를 좇는 데는 나름대로 선한 동기와 목적이 분명 있습니다. 교인들의 영적 성장과 기독교의 부흥입니다. 그러나 착각하고 있는 것은 그 일은 하나님의 진리가 이루는 것이지, 트렌드로선 불가능합니다.

진리에서 나오는 키워드들은 절대로 한두 번 외치거나, 일시적으로 배워 부분적으로 적용할 주제가 아닙니다. 교회가 존재하고 있는 한 내외부적으로 항상 헌신 실천해야할 사항들입니다. 성경이 밝히는 하나님의 거룩하고 온전한 뜻이자 그 뜻의 적용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교회들이 그런 키워드에 집중한다면 하나님의 선한 역사도 절로 임할 것입니다.  

10/23/2013

운영자

2013.10.23 19:38:34
*.205.40.53

한 자매님이 이멜로 개인적으로
현재 한국 교회들이 행하는 여러 사역들에 관해,
특별히 성령의 역사와 연관해서 이해가 안 되는 점 다섯을 질문해 주셨습니다.
상기는 첫 질문입니다. 준비되는 대로 차례대로 올리겠습니다.
다 함께 고민해보고 또 한국교회와 목회자를 위해서 기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샬롬!

낭여

2020.10.28 02:48:14
*.127.209.195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8:29) 예수님조차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할 때에 성령이 혼자 두지 아니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성령의 내주와 역사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거듭난 이후로 성령님이 신자에게 영원토록 내주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 즉, 성령의 역사는 항상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자 열망, 헌신, 순종, 실천해야만 그러합니다.

 

고민하던 부분인데 해답이 되었어요.

모루두개

2024.04.16 02:01:38
*.38.27.11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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