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히 기도했어도 낫지 않는 이유는?

조회 수 4537 추천 수 5 2014.10.17 18:32:52
간절히 기도했어도 낫지 않는 이유는?


[질문]


저는 지나친 여드름으로 8년이 넘게 괴로웠고 대인관계 기피증의 아픔까지 있습니다. 좋다는 화장품 의약품 수많은 걸 써봤지만 나아지지 않습니다. 주님께 기도해봤어도 마찬가지입니다. 피부 깨끗이 하는데 드는 수백만 원을 아끼려고도 기도했습니다. 응답을 결단코 의심치 않았으며 그래서 계속 실망하며 왜 내게만 이러지라고 의심한 적도 많습니다. 누구는 기도해서 암을 낫게 해주고 누구는 사소한 여드름조차 낫지 않게 해주니 왜 그런 걸까요? 성경에는 큰 산을 옮기는 믿음을 가지라고 말한 걸로 기억합니다. 하나님이 힘 하나 안들이고 낫게 해주실 것 같은데 아직 아무 답이 없어요. 저는 돈 명문대학 명예 권력보다 그냥 여드름 없는 깨끗한 피부를 원하는데 구하고자 하는 자에게 왜 주지 않으실까요?

왜 굳이 나중에 돌아보고 나서야 결국 하나님이 해준 것이었다고 깨달아야 할까요? 그냥 기도하고 눈앞에서 바로 제 피부가 깨끗해지면 얼마나 불신자들도 놀랄까요? 결국 주님이 해주었다고 하면 불신자들은 우연이니 신에게 돌리지 말라 고 합니다. (욥기에 욥처럼 생각할 수 없을까요?) 믿음 좋은 교회 친구에게 문의했더니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는 말씀을 곰곰이 묵상해보라고 합니다. 솔직히 이 말씀의 뜻도 잘 모르겠습니다.

[답변]

기도인가 주문인가?


짐 켈리 주연의 오래 된 미국 코미디 영화 “Bruce All Mighty”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신(神)을 대신하여 이 땅을 다스리게 된 주인공에게 많은 신자들로부터 슈퍼로또에 당첨되게 해달라는 기도요청이 쇄도합니다. 누구는 당첨시키고 누구는 낙첨되게 할 수도 없어 전부 다 응답해주었습니다. 결국 당첨자가 너무 많아 일등 당첨금을 나눴더니 일인당 몇 십 불도 받지 못하는 해프닝이 벌어졌습니다. 풍자적 가상이긴 하지만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하나님이 신자가 소원하는 대로 다 이뤄준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라는 것입니다.

어떤 신학자가 신자가 원하는 대로 다 이뤄주면 모두가 일찍 죽었거나 교도소에 가있을 거라고 지적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신자라도 죄의 본성과 탐욕이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기에 만약 기도하는 대로 다 응답되면 점차 하나님의 뜻과는 아무 상관없이 개인의 형통과 출세만을 위해서 기도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또 그러면 그렇게 쉽게 얻은 재물, 권세, 명예 등이 신자를 의롭고 건강하게 바꾸기는커녕 오히려 그 반대로 죄와 죽음으로 내몰 것이라는 뜻입니다.    

만약에 신자가 기도하는 대로 응답이 되면 하나님은 신자의 노예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가 됩니다. 당신의 뜻과 계획대로 이 땅과 인간을 이끌지 못합니다. 인간이 이 땅의 주인이 됩니다. 아무리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고 해도 하나님 그분과의 교제는 뒷전이고 오직 그분의 능력만, 그것도 자기만을 위해 이용하려 드니까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기도만 하면 응답되는 것은 자동판매기에 동전을 넣으면 원하는 물건이 나오는 꼴입니다. 기도가 아니라 주문입니다.

그럼 기도는 기계에 집어넣는 현금에 해당됩니다. 기도를 더 뜨겁게 더 오래 더 많이 하면 응답이 잘 되리라 믿습니다. 기계에 지불하는 현금이 많아질수록 좋은 것을 얻게 되는 이치입니다. 하나님도 돈의 액수에 따라 무조건 자동적으로 작동되는 기계입니다. 이런 경우  원하는 것을 갖게 되는 수단과 능력은 사실상 돈입니다. 말하자면 인간의 기도가 어떤 일을 이루는 힘의 원천이 되며 심지어 하나님을 대신하는 역할까지 하는 셈입니다.

여드름을 없애달라는 기도는 선한 뜻의 기도이긴 합니다. 하나님도 근본적으로 신자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고통을 없애주기를 원하십니다. 암 같은 치명적 질병도 기도하면 때로 치유해줍니다. 그러나 정확한 통계를 내지 않았지만 기도하여 암이 나은 것보다 낫지 않고 죽은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은 상식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질문을 주신 까닭도 응답이 안 되는 경우가 많더라는 뜻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기도 응답의 원칙

하나님은 당신의 절대적 주권과 뜻 안에서만 이 땅과 인간을 이끄십니다. 그 외의 어떤 것도 그분에게 협력, 개입, 영향을 끼칠 수 없습니다. 그분의 뜻은 당신의 영광을 더 높이는 것 하나 뿐입니다. 그럴 수 있는 길은 신자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와 권능이 더 많은 이들에게 베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한 죄인이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참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렇게 거듭난 신자가 주님처럼 자기는 썩어 없어질지라도 자기가 속한 공동체를 거룩하고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나눠주어 모든 이로 그리스도의 거룩한 이름 앞에 무릎 꿇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사를 이끄는 원칙이 이러하다면 기도 또한 그 뜻이 실현되는 방향으로만 응답될  것입니다. 신자가 당면한 큰 고통에서 구해주기를 간절히 기도한다고 해도 그분의 뜻이 진작되는 것과 별다른 연관이 없다면 응답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신자가 기도하는 대로 응답된다면 이 땅에 암환자는 물론 여드름도 다 없어져야 합니다. 세상 모든 이가 하나님을 순전히 고통치료제로만 여길 것입니다. 온전하고 순수한 믿음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회심한 후에는 평생토록 그리스도의 이름이 높아지는 일에만 목숨까지 걸며 헌신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지병으로 큰 고통을 겪었으며 그 병을 없애달라고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지만 응답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병이 간질이었다는 것이 학자들 간의 정설인데 사도가 발작을 하면 복음 전파에 얼마나 큰 장애가 되겠습니까? 그는 단순히 병을 낫기 위해서라기보다 전도를 잘하기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음에도 치유되지 않았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7-10)  

바울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은 이유는 그가 교만해지지 않게 하려는 뜻이었습니다. 응답되지 않은 상태임에도 그는 하나님의 은혜는 충분하다고 고백합니다. 질병을 지녔다고 복음이 전파되는데 방해가 되지 않고 오히려 더 확장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 것도 바울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능력이 바울에게 머물렀기 때문이라고 실토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약한 것을 자랑하고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능욕 핍박 곤란을 기뻐한다고 합니다. 그가 그런 치명적 병을 지녔음에도 평소에는 건강한 이보다 더 거룩하고 의로운 성령의 열매와 능력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진리를 온전히 전하고 가르칠 뿐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부터 실현했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던 유일한 이유는 자신의 무능과 무지를 겸손히 인정하고 낮아질수록 주님의 권능이 더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질문자더러 반드시 바울과 같이 되라는 뜻은 아닙니다. 한참 외모에 민감한 시기에 여드름은 아주 큰 고민거리가 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치료되고 안 되고는, 다른 말로 하나님이 기도 응답해주시고 안 되고는 복음전파와 사실상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전도할 때 전도자의 외모를 보고 상대가 믿을 결심을 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전도는 오직 성령님이 주관하는 것이며 바울과 고린도 교회의 예에서 보듯이(고전1:26-2:5) 하나님은 주로 외모가 볼 것 없는 자들을 당신의 종으로 삼아 역사하십니다.  

맹장염은 기도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여드름과 같은 질병은 사실상 기도할 범주가 아닙니다. 인간의 의술로 치료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질병입니다. 엄밀히 말해 질병이 아니라 자연적인 신체 반응입니다. 사람의 연령과 체질과 식습관에 따라 여드름이 많이 혹은 적게 나타날 따름입니다. 질병이라 해도 상처가 생기거나 배탈이 나거나 맹장염이 발병했을 때처럼 기도하기보다 통용되는 의술에 의존해야 합니다. 치료나 수술이 의사의 실수 없이 세밀하게 진행되고 회복도 빨리 되게 해달라는 기도는 할 수 있고 해야 하지만, 실제 치료는 의술이 행하는 것입니다.

암이 기도해 낫는 것은 아주 드문 경우입니다. 그런 중병도 응답되는데 여드름 같은 간단한 것은 더더욱 응답이 쉽게 빨리 되어야하지 않는가 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잘 모르는 탓입니다. 하나님이 마련해놓으신 자연적 물리적 법칙에 따르면 암이 많이 진행되었다면, 특효약이 발명되기 전이라, 죽는 것이 정상입니다. 기도해서 암이 낫게 되는 것은 당신의 법칙을 깨는 것으로 기적에 해당됩니다. 기적이 일어나는 이유를 성경이 어떻게 설명합니까?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기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0-31)

예수를 믿어 생명을 얻게 하려는 목적이라고 합니다. 바꿔 말해 기적은 암을 낫게 해서 고통을 없애주는 것 자체가 결코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그리스도의 이름이 높여지는 방향으로만 하나님이 기적이든 기도 응답이든 하신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간절한 기도를 응답하지 않은 일차적인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이미 예수님의 사도가 되었기에 또 다시 이적을 보일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드름도 인간육체의 자연적 반응 즉, 하나님이 만든 질서의 일종입니다. 질문자의 기도에 응답하여 치유되는 것은 기적입니다. 모든 기도의 응답이 사실은 다 기적입니다. 질문자도 이미 예수를 믿었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구태여 형제님만을 위한 이적을 일으켜줄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말로 일반 치유방식에 의존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자신의 기도가 하나님으로부터 거절 되었어도 예수님을 위한 능욕과 핍박을 기꺼이 감수하고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선교 여행을 다니면서 일반인이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한 번만 맞아도 자칫 죽기까지 한다는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습니다.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는 등 엄청난 고초를 겪었습니다.(고후11:23-27)

그런데 그 때마다 그가 기도하여 그 모든 상처를 치유하고 건강을 회복했을까요? 결코 아닙니다. 정상적인 치료 방식에 따랐습니다. 그의 선교 여행에 의사 누가가 항상 동행했습니다. 디모데가 비위가 약하고 위장병으로 고생한다고 하자 약으로 포도주를 쓰라고 즉, 일반 민간요법에 의존하라고 조언해줄 정도였습니다.(딤전5:23) 그 위대한 사도도 자신의 질병은 단순히 의사를 통해 치료 받았습니다.

상기에 인용한 간질의 예는 의술이 발달하지 않은 당시에는 사탄의 짓이라는 의식이 있어서 기도에 의존한 것입니다. 주님이 기도 외에는 그런 류가 나가지 않는다고 하신 말씀에 따랐던 것인데 주님으로부터 그것마저 넘어서는 응답을 받았던 것입니다. 치료하지 않고 그 질병을 평생 지닌 채로도 복음이 더 확장되게 해주겠다는 응답이었습니다. 자기가 기도한 것과 정반대 방향임에도 더 완벽한 하나님만의 방식으로 응답 받은 것입니다.  

바울은 그래서 오직 사나 죽으나 예수를 위하는 삶만 살았습니다. 복음이 확장된다면 자신은 어떤 모습이 되어도 좋았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엄청난 고통을 겪는 중에도 본인이 더 염려한 대상은 교회와 성도들이었습니다. “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11:28)

산을 움직이는 믿음의 기도

작금 많은 한국교회들이 기도에 대해 너무나 잘못 가르치고 있습니다. 강하고 간절한 믿음으로 기도하면 모든 것이 응답된다고 말입니다. 아무리 천일 제단을 쌓아도 하나님의 뜻과 상치되는 것은 응답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지간한 믿음이 있는 신자도 매번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든 기도를 해야 하되 기도해나가는 과정 중에, 대개의 경우는 기도한 한참 후에나 그분의 뜻을 깨달을 수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의 모범이 어떻게 시작합니까?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린 후에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10)라고 기도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임재하시어 당신의 뜻을 이루소서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뜻이 실현되는 것이 기도하는 첫째 목적입니다. 개인적 기도는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것뿐입니다. 당시는 세끼 밥을 먹는 것이 생존과 직결된 일이었습니다. 외모를 가꾸는 것은 생존과 무관한 일입니다. 이 둘 외에 신자가 기도할 내용도 본인과 다른 이들이 죄를 씻고 거룩하게 바뀌며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에 실현되게 해달라는 것뿐이었습니다.

강한 믿음만 있으면 기도하여 산이 바다에 빠지는 큰 기적도 일어난다는 단순한 가르침은 부족하다 못해 틀린 것입니다. 산이 바다에 빠트려지는 것은 어디까지나 비유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당시의 배경도 아셔야 합니다.(마21:18-22) 형식적 가식적으로 바뀐 공허한 유대교가 열매 없는 무화과처럼 말라 죽을 것이라는 가르침과 함께 그 말씀을 하셨습니다. 단순히 기도의 능력만을 강조하는 가르침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대화를 나눌 때에 제자들의 눈에 보였던 산은 헤롯 왕궁과 로마 경비대가 솟아있는 언덕이었습니다. 그 왕궁과 경비대가 멀리 보이는 갈릴리 호수에 빠트려진다는 것입니다. 헤롯과 로마는 우상을 숭배하는 세속의 죄악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이 땅의 타락상을 고치려는 간절한 소원으로 기도한다면 하나님이 고쳐주신다는 것입니다. 엄청나게 큰 이적도 강한 믿음으로 기도하면 일어난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찌라.”(대하7:14) 신자는 자신이 드리는 기도가 과연 이 하나님의 말씀과 부합되는지 또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대로 하고 있는지 대조해봐야 합니다.

기도란 내 요구를 하나님이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하나님의 뜻에 내가 순종해나가는 씨름이어야 합니다. 어린 자녀가 성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무조건 자기 요구대로 부모가 해주길 바라며 부모도 아이가 철이 들 때까지는 그렇게 해줍니다. 그러다 자녀는 차츰 부모가 바라는 대로 육체와 정신이 성숙해지도록 자신을 갈고 닦지 않습니까?  

신자는 바울처럼 자신의 현실적 형편이 어떠하든 일차적으로 연약한 교회를 위해서, 또 복음이 더 많이 번져나가는 일만을 염려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럼 하나님은 아무리 완악하고 사악한 죄인이라도 십자가 복음으로 새 사람으로 바꾸어서 당신의 자녀로 삼아줍니다. 또 아무리 타락하고 죄에 찌든 주변 환경도 신자의 기도를 통해, 더 중요하게는 기도로 변화된 신자의 거룩한 삶을 통해서 깨끗하게 바꿔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더러 바로 그 일을 위해 온전한 믿음을 갖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럼 헤롯 왕궁과 로마 경비대라도, 인간 사회에선 도무지 무너뜨릴 수 없는, 일거에 무너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철옹성 같던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이름 없는 작은 동독교회의 기도 모임이 발단이 되어 그 보잘 것 없는 기도 불씨가 전국으로 열화같이 번져나가 이뤄졌듯이 말입니다.

우연의 일치가 겹치면 필연이다.

불신자들은 기도할 줄 모릅니다. 간혹 천지신명에게 비나이다, 비나이다라고 간구하지만 자기가 비는 대상이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치성을 많이 드릴수록 응답이 빨리 잘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바로 자동판매기식 간구입니다. 무엇보다 오직 자신의 영달과 출세를 위한 기도만 합니다. 예수님이 먹고 마시는 것을 구하는 기도는 이방인의 것이라고 말한 까닭입니다.(마6:32) 대신에 신자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해야 합니다. 먹고 마시는 것은 일용할 최소한의 것만 구하면 됩니다. 지금껏 설명 드린 내용입니다.

또 많은 불신자들이 신자의 기도가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고 매도합니다. 그들이 알지 못하는 점은 그 우연의 일치는 기도할 때에 훨씬 자주 많이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같은 맥락과 방향으로 우연들이 겹치면 그것은 필연입니다. 필연은 반드시 사전에 의도된 계획과 뜻이 있습니다. 살아계시어 신자 인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미리 마련된 계획에 따라 이끄시는 하나님과 일대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신자의 기도입니다. 마치 자녀가 부모에게 모든 것을 보고, 상의, 순종하듯이 말입니다. 단순히 내 요구만 들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의 응답이 아주 늦게 되거나, 기도한 대로가 아니게 응답되거나, 아예 응답이 안 되어도 모두가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입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이 신자들은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이라고만 둘러댄다고 비난해도 신자가 상관할 바는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며 또 아무런 관계도 없기에 기도를 모르며 제대로 할 수도 없습니다. 기도를 하고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면 이미 믿음이 상당한 수준이 된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 온전한 관계를 맺는 길은 예수님의 십자가뿐입니다. 신자의 기도가 그리스도의 이름이 높여지는 일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말씀드린 까닭입니다. 기도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기도하게 하여서 주님의 사랑과 권능을 함께 누리게 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그러려면 불신자에게 기도를 이해시키기 전에 복음이 먼저 전해져야 합니다. 자신의 삶과 인생을 주관하는 이가 하나님임을 확신하게 되어야 그런 비방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깨달게 되고 강요 권면하지 않아도 저절로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이왕이면 기도가 신자가 원하는 대로 빨리 잘 응답되어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면 좋을 것인데 같은 바람도 부질없는 일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돈이 너무 많아 무엇이든 다 돈으로 해결해준다는 어리석은 자랑밖에 안 됩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아름답고도 충만한 관계는 문제나 고통을 해결해 주는 것 외에 사랑, 순종, 존경, 감사, 등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요소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 아버지의 돈보다 나와 아버지 사이에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끊을 수 없고 갈수록 더 깊어져가는 사랑의 관계를 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들로 예수님에 대한 관심과 부러움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불신자가 모르는 마음의 평강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신자의 기도하는 자세와 하나님의 기도 응답에 대한 원칙을 정확히 설명해놓은 구절입니다. 우선 신자는 아무 염려도 하지 말고 모든 일에 감사함으로 구하라고 합니다. 그 이유가 신자가 구하는 대로 응답해주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주님의 산상수훈의 가르침대로 자신만을 위해 먹고 마실 것(질병과 고난 포함)을 염려하는 이방인처럼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신에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해야 합니다. 자신이 소원하는 대로 형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통해 반드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실현되고 궁극적으로 그분의 영광이 드러날 것임을 확신하기에 저절로 감사가 우러나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도를 응답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문제가 해결되고 고통이 끝이 난 것이 아닙니다. 신자의 마음과 생각 속에 하나님의 평강이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일차로 염려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자신의 기도가 언제 어떻게 응답될지 몰라도 하나님은 모든 지각에 뛰어나기에 기도를 들으셨고 신자의 모든 사정을 다 아시고 장래 계획까지 수립해 놓았기에 당신만의 방식과 때에 응답할 것임을 신자가 확신한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어떻게 응답하던 결국 내 자신에게도 가장 유익하고 나를 성숙한 신자로 변화시키며 또 그런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될 것을 알기에 평강해지는 것입니다. 바로 이어지는 구절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8,9절)

신자가 기도하면서 혹은 한 후에 생각할 내용이 무엇입니까? 범사에서 본인이 참되고 경건해지고 옳게 행하고 정결하며 남을 사랑하며 칭찬하고 덕을 세우고 기림(도덕적 영적 칭찬)을 하는 일들입니다. 또 주님이 가르치시고 십자가 복음에 계시된 대로 순종하며 행해야 합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여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기도의 응답이자 목적지라는 것입니다. 바울처럼 세상에선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만 받더라도 그리스도께 충성하면 반드시 겪어야 할 일이자 그리스도가 높아지기에 괴롭기보다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 이르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기도의 본질은 하나님의 능력만 빌려서 내 요구나 소원을 이루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면 오히려 질문하신 것처럼 염려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금방 쉽게 응답되어야 하는데 왜 안 되지, 언제 응답되지, 내 믿음이 약한가, 기도를 잘못했는가, 오직 응답받는 데만 신경이 쏠리고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어린애가 아빠가 사탕 사줄 때까지 계속 떼쓰며 우는 꼴입니다. 불신자가 천지신명에게 비는 것에서 하나도 나아진 것 없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신자가 그분의 성숙한 일군으로 자라가며 실제로 그분의 의를 드러내는데 충성하는 사역입니다. 지금 내가 소원하고 기도하는 일을 통해서 꼭 그대로 응답이 안 되더라도 하나님이 나를 어떤 방식으로든지 당신의 일꾼답게 거룩하게 변화시켜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또 내가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슨 일을 하던 이 기도한 내용을 근간으로 해서 그리스도의 이름이 높아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반드시 드러날 것이라고 온전히 믿는 것입니다.

믿는 정도를 넘어서 바울처럼 지난 체험으로 그분의 역사하는 방식에 이미 익숙해져 있기에 그분과 그분의 뜻을 잘 알아야 합니다. 기도로 그분의 평강이 내 생각과 마음에 온전히 채워지면 세상에서 어떤 것도 그분과 나의 관계를 끊을 수 없음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에 예비 된 면류관만 바라보며 순교의 자리까지도 묵묵히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첫걸음이 기도로 시작되며 세상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신자만의 기쁨이자 특권입니다.  

10/17/2014

운영자

2014.10.17 20:38:41
*.63.152.149

신수홍 형제님
상기 설명이 조금 어려울지 모르겠습니다만
질문하신 내용에 맞추어서
기도에 대한 아주 중요한 원칙 몇 가지를 진술한 것이므로
천천히 묵상하며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거나 추가적인 의문이 생기면
언제든 부담 없이 다시 질문해 주십시요. 샬롬!

신수홍

2014.10.18 17:13:49
*.141.179.204

오홍.....

정말 이해가 잘 되었습니다.

저도 사실.... 제 얼굴이 잘생겼다고 생각하거든요....^^(인정도받았다고요 하하!!)그치만 사도바울처럼 여드름이 난 이유도 자만하지 말라는 이유인가... 생각은 해보았습니다.(사실 그래도 안채워지는게 욕심이긴하잖아요...^^딱 하나의 결점이 보이면 채우고싶다는 그 욕구)

어쨌든 저는 여드름이 난 이후로 사람들의 내면을 더욱 더 보기 시작했어요. 얼굴이 이상하다고 비판하지도 않고 못생겼다고 계속 쳐다보지도않고 여드름이 있는 사람이 오히려 불쌍하고 연민마저 생기더라고요. 또한 누가 더 잘생기고 이쁘고 이런 비교마저도 사실 무색해지더라고요....(실제로 그 이후로 고3이 됐을때 얼굴이 못생기고 뚱뚱했는데 마음씨가 굉장히 착한 친구를 만나서 아 이래서 얼굴만 중요한게 아니구나... 라고 생각도 했고요.)

일례로
저는 중학교때 공부를 나름 상위권을 유지했어요. 철이 덜 들었는지 공부를 못하는 친구들에게 시비가 걸려오면 공부 못한다고 비난하고 무시하고 해서 친구들이 저를 싫어했지요.

고등학교에 진학할때에 저는 이 자만심을 가지고 계속 S대에 진학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게 생생하게 기억에 나네요.

저의 이러한 자존심을 주님은 3년내내 밟아서 내리막길을 걷게했습니다.
노력이라면 세상의 제일일거라는 우물안 개구리의 가치관이 박살나는 기간이었죠....
결코 노력과 성적은 직결되지 않았습니다. 이리하여 노력과 성적은 비례하지도 않음을 알았죠.... 한두번 성적안나와서는 안됐던지 계속 성적이안나왔습니다. 물론 고3때에는 공부를 덜 했지만, 1학년 2학년때에는 정말 열심히했거든요. 남들에 비해서 항상 쇠빠지게 노력을 했지만 이상하게 성적이 안나왔습니다. 왜인지 몰랐지만
돌아보면 그가 제 자만심을 없애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실제로 몇 번만 안나왔을때에는 그래도 내가 잘하지 라는 마음이 사라지지않고 있더군요. 겸손이 뭔지 몰랐습니다. 물론 지금 겸손이라고 표현하기에도 제 실력은 형편없지만요...^^ㅎㅎ)

하지만 주님은 저를 너무나 사랑하셨는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노력한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는 탓에 고개를 숙이며 자기비하를 하며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제 자신이 너무 싫었고 죽고싶다 자살하고 싶다를 계속말하며 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비하가 처음이 아닌건 잘 알고있었곤 했지만.... 어머니가 말했던 너가 없으면 내삶이 무의미하다는 말이 떠올랐기에 더욱더 자살을 못하곤 했습니다.(박신목사님께서 쓰신 신자의 자살여부에 대한 것도 읽었습니다. 실제로 중학교때 너무 힘들어서 차에 좀 치여 달라고 기도했던게 기억이 나서 감동먹었습니다.)

그러다가 머리에 문득 떠올랐습니다.
내가 이렇게 비하해서 나아지는게 뭐가 있지?
결국 이렇게 비하하면 저만 아픈게 아님을 알고있었습니다.(그 예로 자식이 자기비하하면 부모도 가슴이 아픈경우죠. 애인에게서 느껴지는 열등감으로 스스로를 비하하면 사랑하는 이와 받는이의 가슴 모두를 아프게하는것처럼....)
그렇게 점점 저는 아파하다가 잠시 멈춰서 숨을 쉬었습니다. 하아~..... 공기 좋다...

하나님 아버지 숨을 쉴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응??(순간놀람) 저는 이때부터 사소한거에 감사함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물 웅덩이에 발이 빠지면 발이 있어서 감사하다고 했고 종이에 손이 베이면 손이 있어서 이러한 아픔을 느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아픔을 느낌으로써 성숙해질 기회를 주시는 것조차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이후로도 사소한걸로 기쁠 때마다 하나님아버지께 감사하다고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때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고3되기전쯤 친구를 따라 교회를 가니깐 몇 개월 뒤에 교회에서 감사카드를 쓰더라고요. 교회에서 시켜서 쓰는 감사와 아픔을 통해 깨우친 감사의 깊이가 다름을 발표를 들어봄으로 인해 느꼈습니다. 그때의 놀라움은 엄청 컸습니다.

사소한거에 감사하면 부질없이 돈갖고 싸울일이 줄어들며, 자살할 일도없습니다. 힘들어도 사소한거에 감사하면 그 기쁨이 충만해지기 때문이지요. 사소한거에 감사할 줄 안다는건 현대인들이 인식못하는 문제중의 하나인데 제가 이런걸 깨닫게 된건 엄청난 메리트였습니다.

또한 목사님께서 중간에 말씀해주신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문제가 해결되고 고통이 끝이 난 것이 아닙니다. 신자의 마음과 생각 속에 하나님의 평강이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일차로 염려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자신의 기도가 언제 어떻게 응답될지 몰라도 하나님은 모든 지각에 뛰어나기에 기도를 들으셨고 신자의 모든 사정을 다 아시고 장래 계획까지 수립해 놓았기에 당신만의 방식과 때에 응답할 것임을 신자가 확신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표시면..... 저는 이미 이루어졌습니다.(목사님이 말하는 범주에서만 보면.)
수홍 형제는 박신 목사님께서 보신거와 마찬가지로 감정기복이 매우심했고 조울증세를 앓고있는 환자입니다.

어느날 성경을 읽고 의문점을 친구에게 문자로 주고받는데(이때가 잠시 광신도였을때입니다....재림문제로 사탄의 베리칩 짐승의 표 666해서 두려운게 많았었죠....모든게 부질없어 보였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 라고 그 친구가 자주 말해주곤 했습니다. 결국 사탄의 권세도 당신의 계획 아래에 있다고요... 그때부터인지 저는 조울증세가 나아졌던 것 같습니다. 내가 아무리 바닥을 기고 힘들어도 결국 지금 돌아보면 엄청난 성숙으로 이루어져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돈 외모 권력 명예보다 의롭고 선한자가 되려고 하는게 좋았거든요. 이상하게 그런쪽이 더 구미가 당겼습니다. 성숙하면 할수록 더욱더 많은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으며 화를 안내는게 제 삶의 목표인 저로써는 기분이 많이 좋았습니다.

조울증세도 없어지고 결국 하나님아버지께서 내 삶을 이미 설계해놓으시고 알아서 책임져 주실거라고 기도하고 또 그렇게 믿다보니 자연스레 여유도 생겼습니다. 삶에 여유가 없다고 만나는 선생님들마다 들었거든요....(물론 그렇게 여유를 생기게 하기전에 고1당시 엄청난 도움을 주신 은사님이 있었습니다. 근데 더 전율이 돋는게 저는 항상 좋은 친구 좋은선생님을 달라고 매번 기도했던겁니다. 사실 전 중학교3학년 당시 공부를 안하고 30분만 놀아도 손을 떨정도로 강박증이 있는 환자였습니다. 전국어딘가에선 저말고도 공부하는애가 있을거같았거든요.... 지금 돌아보면 정신적으로 많은 아픔이 있었네요. 강박증 조울증 ADHD....참고로 현재 저는 ADHD를 장점으로 이용할 꿈을 찾고있습니다..)

저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만나는 선생님들, 어르신들, 매우친한친구들에게 생각이 깊다....라는 말을 자주듣곤합니다.(하지만 자만할수 없었습니다. 스스로 돌아보는 자보다 뛰어난 자는 저보다 앞선 경험자들이며,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어봄으로 인해서도 저보다 잘난자가 더욱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눈물이 흰자를 대신할 정도인 가난이 오히려 연민과 동정, 거대한 목표에 도움되고, 성격이 괴팍한 아버지가 저를 엄청난 성찰의 길로들어서게 했으며(부모의 성격을 자식은 무의식적으로 따라하게 된다는 심리학 보고를 알게되고서 피나는 성찰 중입니다.) 얼굴에 난 여드름과 스스로의 자만함 모두가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기회가 되고 성숙이 되고 내가 기도하는대로 결국은 이루어졌단 말입니다.

기도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기본에 대해서 잘 말씀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매번 감사인사를 쓸때마다 쓴글이 ENTER누르면 너무길게써서 다 날라가더라고요.(시간이 오래되면 자동로그아웃되나봐용)

사실 지금 이글도 다 다시쓰는글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중도에 빠뜨린게 있는데 기억이안나요....ㅋㅋㅋㅋ
감사를 전달해야하는데 한시간 이상 쓴 글이 매순간 다날라가니깐 결국....한글문서에서 작성하는중이에요. 에휴 잠자야하는데 늦었네요.

아 기억났다.ㅋㅋㅋㅋㅋㅋㅋ

하나님아버지께서 박신 목사님과 김상욱(마음의 사막)님을 제게 보내신거라고도 생각되요.
현재 교회에 불가피하게 못나가고 있는데 믿음을 유지하기위해 그리고 궁금증을 해소시켜주기 위해 보내신걸지도몰라요. 아무래도 신자여도 어리다보니 성경을 읽다보면 정말 글자그대로 읽혀지는게 많거든요....^^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힘든일이 있으면 하나님아버지라면 어떻게 해결하셨을까를 먼저생각하는 편이어서요. 근데 저혼자서 생각하다보면 판단력도 흐리고 보다 인간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다보니 그게 맘에안들었어요.

하나님아버지의 지혜로 일들을 해결하고 싶었거든요. 솔로몬에게 지혜를 줬을때 그 전이나 후로나 너보다 지혜로울 자가 없을 것이다고 하신걸로 보아 하나님아버지가 가장 지혜롭다고 생각하니까요.

그치만 직접 응답을 받기엔 부족하고 해서 목사님이라면 성경을 많이 공부하셨으니깐 목사님께 고민 질문을 드리는거에요. 적어도 성경적으로 말씀해주실것을 믿었으니까요.
내 스스로의 판단보다는 그분(주님)의 판단이 뛰어남을 믿으니깐요.


그 예로 들어서 저번에 목사님께서 미쳐 못보시고 지나가셔서 대답못하신

지혜를 부탁합니다 내용에는 나는 혼전순결을 지켰는데 여자친구는 혼전순결을 지키지 못했을때에는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해서 지혜를 구한거거든요.

남자의 정복욕을 생각했을때에는, 그리고 나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서 혼전순결 했는데.... 라는 그러한 불공평함때매 그냥 헤어지거나 이런 안좋은 쪽(무자비함)으로 생각을 했는데

그냥 계속 곰곰이 생각해봤죠. 어떻게 하면 성경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물론 성경에는 그 처녀에게 처녀인 증표가 없다면 돌로 쳐 죽이라는 말도 있지만 하나님아버지는 용서치않는 걸 더 안좋아하는 거같아서요.(하나님 아버지는 성경말씀을 인용해서 사람이 사람을 용서치않는것을 안좋아하시는것 같아서요. 지옥 간증책에서 읽었거든요.)

그래서 왜 혼전순결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근본 이유를 생각해보니깐

내가 혼전순결을 해야하는 이유는 하나님아버지께서 깨끗한 몸을 더 좋아하시고 주님의 가슴을 아프지 않게 함이지 내가 혼전순결을 했음으로 인해서 상대도 하길 바라는 단순한 이유가 아님을 깨닫게되죠. 즉, 목적이 같다고 그 이유마저 같지는 않을거라는 것을 생각해냈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만 보고 살것도 아니고, 다음 여자를 만났을 때라 해도 그 여자마저도 순결하다는 보장이 없다는 여러지식인 분들의 의견도 일가견했고요.

그리하여 저는 남자의 정복욕을 초월하게 되었습니다.

말이 너무길었네요.

쌓이고 쌓이던게 드디어 답변을 하게 되니 후련합니다. 고맙습니다.

자세히 말씀해주셔서요 매번. 샬롬^^!

신수홍

2014.10.19 02:46:29
*.89.32.3

맑고 깨끗한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과거의 죄로인해서 오히려 주님을 다시 찾게된 이 죄를 주신것도 감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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