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의 이중직(二重職)에 대한 성경적 입장은? 

 

[질문] 

 

많은 이들이 목사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며 목회 사역에 전념해야 하는 데다 그분이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실 것을 믿고서 세속적인 직업을 가져선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에 바울이 천막 사역했던 일을 근거로 다른 직업을 가지고서 평균의 혹은 그 이상으로 안락하게(?) 살아도 된다고 반발합니다. 바울이 장막을 직접 지으며 자비량(自備糧) 선교를 했던 일이 성직자의 이중직을 뒷받침하는 성경적 근거가 되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세상과 인간을 어떻게 통치하는지, 그에 대해 인간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등에 관한 영적인 진리를 계시한 책입니다. 그래서 많은 책이 전반은 하나님의 진리를, 후반은 그 진리를 삶에 실천하는 일에 관해 가르치는 형식을 취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로마서는 1-11장은 이신칭의의 교리를, 12-16장은 그렇게 은혜로만 구원받은 신자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칩니다. 에베소서도 같은 차원으로 1-3장과 4-6장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문제는 후반부의 믿음의 실천을 가르치는 부분도 대부분 영적인 진술이라는 것입니다. 현실 삶의 개별적인 상황과 사건을 적시해서 구체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행해야 한다 혹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계명 형식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도덕적 종교적 맥락에서 이분법적으로 성경을 접근 이해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거기다 성경이 저작되었던 당시의 사회, 경제, 정치, 문화 상황이 지금과는 너무 달라 만약 구체적 계명이 있어도 오늘날 그대로 대입 적용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구약 율법은 아예 신약 성경 자체가 꼭 그대로 할 필요가 없다고 금지합니다. (골2:16-17, 히9:9-10) 실제로 오늘날 시시비비가 많은 담배, 마약, 낙태, 전자오락, AI 등은 성경의 저자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사안들이었습니다. 

 

성경을 어떤 구체적 상황에 대입해야 할 때는 그래서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완전한 뜻과 그 영적 원리를 먼저 찾으셔야 합니다. 그 후에 자신이 처한 상황, 위치, 능력을 고려해서 그분의 뜻에 최대한 합당하게 믿음의 수준에 따라 판단 결정 시행하면 됩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12:3)

 

목사의 이중직 문제도 그러한데, 다행히 성경은 바울의 천막 사역이 하나님의 뜻에 대한 결정적 힌트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행18:2,3)

 

가장 위대한 사도였던 바울도 고린도에서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선교를 수행했습니다. 그렇다고 목사라면 누구나 항상 이중직을 가져도 된다고 쉽게 단정지어선 안 됩니다. 이 일은 이차 선교 여행 중 있었던 일로(AD52-54), 비교적 바울의 사역 초기에 해당합니다. 우선 그곳에 새로 온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함께 살며 그들을 도와주려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본인이 설립한 교회에 자신의 생계 문제로 부담을 주기 싫어서 손수 일했다고 스스로 밝혔기에 자비량 선교를 위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편이 타당합니다.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고후11:7)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살후3:8,9) 사도로서 충분히 그럴만한 자격이 있음에도 사례를 받지 않았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복음 전파 초기에는 자비량 선교가 오히려 사역에 도움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때 이후로는 바울이 천막 만드는 일을, 사실은 가죽을 무르는 일로 봄, 계속했다는 성경 기록이 없습니다. 선교하러 각지로 돌아다녔기에 그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에베소에 2년 정도 머물면서 사역했으나(AD 59-60), 당시는 성경을 저작하고(고린도전후서, 로마서 등) 또 복음을 가르치느라 도무지 짬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선교 경비는 거의 헌금에 의존했다는 뜻입니다. 각지에 든든히 세워진 교회들과 그가 머무르던 에베소 교회가 바울의 생계를 충분히 책임져 줄 형편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바울의 예에 비추어보면 자비량 선교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밝혀졌습니다. 처음에 교회가 연약할 때는 교인들에게 부담을 주면 안 되므로 목사도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야 합니다. 그러다 교회가 충분히 여력이 되면 가능한 생업을 그만두고 목회에 전념하는 편이 이상적입니다. 그러나 이도 본인의 상황과 사역 방침과 교회 사정에 따라서 더 적합한 쪽을 택하여서 시행하면 됩니다. 어느 한쪽만 성경적으로 옳고 다른 쪽은 그르다고 주장할 문제가 아닙니다. 

 

참고로 미국 교회의 예를 들면 대체로 담임 목사가 일주일에 주일 설교 한 번만, 많아야 수요 예배까지 두 번 정도만 합니다. 새벽기도회는 아예 없으며 심방이나 성도들 행사에 예배를 주관하는 경우도 거의 없습니다. 성도들이 목사에게 첫째로 바라는 일이 깊이 있는 성경적 설교와 교육을 해달라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목사가 이중직을 갖는 문제에 대해서 전혀 심각하게 따지지 않습니다. 각 사역자가 자기 형편에 따라서 시행하되, 자기가 맡은 설교와 교육에 부족하지 않게 헌신하면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감히 제 경우도 들자면 바울처럼 교회가 연약할 때는 제가 자비량 사역을 했습니다. 나중에 교인이 늘어서 조금 바빠졌으나 유학생교회여서 여전히 충분히 책임져 줄 수 없었기에 아내가 대신 파트타임 일을 해서 부족분을 충당했습니다. 이는 사역자가 정말로 하나님만 온전히 의지하면서 주변 상황과 경제적 형편에 흔들리지 않고 복음만 순전하게 전하고 가르칠 수 있느냐의 문제일 뿐입니다. 

 

바울의 이 고백을 보십시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1-13) 자신이 궁핍하든 부요하든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고 합니다. 마음의 중심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붙들려 있는 목자라면 이중직이라도 문제없을 것이며, 그렇지 않은 목자라면 아무리 교회가 부족하지 않게 채워줘도, 아니 그럴수록 더 나태하게 될 것입니다. 

 

제 경우와 주변 목회자들의 체험에 비추어보면 두 경우 다 각기 장단점이 있습니다. 먼저 자비량 사역을 할 때는 성도들 눈치를 전혀 볼 필요 없이 목회자 소신대로 사역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직접 돈을 버니까 신자들이 바치는 헌금이 얼마나 귀한지도 체감할 수 있습니다. 대신에 자칫 자기는 하나님과 성도들 앞에 떳떳하다는 영적 교만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자기처럼 되지 못하는 교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꾸짖어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교회에 전적으로 의지하면 개척 초기의 궁핍한 가운데도 하나님이 채워주는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목회에만 전념하게 되길 원하는 기대와 달리 현실은 그리 녹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움도 한두 번에 그치고 교회 성장은 예상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릴 수 있습니다. 목회자가 너무 힘들어하면 바울이 염려한 대로 신자들에게 경제적 정신적 부담을 주므로 성도와 목회자 간의 영적 교제와 관계가 온전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목회자가 돈 많은 교인의 눈치를 보는 경우마저 생깁니다. 물론 교회의 재정이 넉넉해지면 목회자는 굳이 다른 직업을 가질 필요 없이 목회에만 전념하면 됩니다. 부족함이 없기에 때로 나태해지거나 혹은 자기 능력이 뛰어나서 그렇게 되었다고 교만해지지 않도록 항상 조심하면서 말입니다.  

 

바울은 경제적 형편에 자기 사역이 좌우되지 않는다고 고백한 후에 빌립보 교인들을 이렇게 격려했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빌4:14) 이어지는 15-19절을 살펴보면 교인들이 바울의 쓸 것을 부족하지 않게 공급해 주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19절)고 그들에게 다짐해 주었습니다. 사역자를 경제적으로 후원하는 것도 그 사역에 큰 몫으로 참여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이 반드시 그에 상응한 축복을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결론을 맺자면, 하나님이 목사에게 원하시는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쳐서 성도들로 그 복음으로 거룩하게 살아가게 하며 불신 이웃들을 복음으로 초대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게끔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 일에 목회자가 온전히 전념하고 교회도 목회자의 사역에 온전히 후원 참여할 수 있도록, 개별적 케이스마다 가장 적절한 방안을 택하여 함께 힘을 합쳐 시행하면 됩니다. 

 

목사도 가정을 가지고서 자녀들의 양육과 교육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입니다. 사역자의 경제생활에 대한 성경적 원리는 평균 수준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열한 지파가 십일조로 레위 한 지파를 먹여 살려야 하므로 레위인의 생활 수준은 수치상 평균이었습니다. 나중에 열 명의 가정만 있으면 회당을 세웠는데 마찬가지로 그들이 십일조 헌금을 잘하면 회당장은 평균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교회는 목사에게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그 지역 사회의 평균 수준의 수입은 보장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아직 연약해 그 수준에 못 미치면 목회자가 목회 사역에 방해받지 않는 차원에서 직접 해결해야 합니다. 

 

(8/20/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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