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엘리야가 선지자의 대표인가요?
[질문]
성경은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 두 사람을 만났고 또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각각 율법과 선지자의 대표인 줄은 압니다. 그런데 구약의 대선지서를 기록한 이사야나 예레미야 등이 있는데 엘리야를 대표로 내세운 특별한 의미나 이유가 있는가요? 지엽적인 문제일 것 같지만 계속 궁금합니다.
[답변]
대체로 쉽게 넘어가는 지엽적인 문제인 것 같으나 성경을 자세히 살피면 신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의미들이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 백성을 지도하는 직분으로는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 셋을 들 수 있는데, 예수님은 그 셋을 다 겸임한 완전한 하나님이셨습니다. 무엇보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당신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한 사역만 하셨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왜 모세와 엘리야가 구약에서 하나님의 종의 대표가 되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예수를 닮은 선지자 모세
구약 인물 중에서 그 세 직분을 나름대로 다 감당했던 자는 모세입니다. 그는 우선 제사장을 맡은 레위 지파 출신으로 그 형 아론이 초대 대제사장이었습니다.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 거룩한 율법을 수여받은 선지자로서 백성들을 가르치고 실현하도록 이끌었습니다. 하나님의 지시대로 모든 행정 입법 체계를 완비함으로써 이스라엘을 정식 국가로 설립했기에 초대 왕이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셨습니다.(출33:11) 하나님께 직접 계시받은 진리를 선포했으며 하나님을 대신하여 수많은 이적으로 백성들을 보호 인도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먹을 것이 없는 광야에서 생활하는 동안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서 백성들로 굶지 않게 해주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1500년 후에 예수님은 광야에서 남자 장정만 5천 명이나 되는 무리를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풍족히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나 남겼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모세의 광야 만나 기적을 회상하고 그를 왕으로 삼으려 했으나 주님은 현실을 풍요케 해주는 것이 아니라 죄에서 구원해주려 오셨기에 무리를 피해 떠남으로써 그 요구를 거절했습니다.(요6:15)
모세는 또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이적도 베풀었습니다. 애굽 노예에서 동족을 구출하던 날 밤, 비록 바로와 애굽을 심판하려는 목적이긴 하지만, 죽음의 사자가 어린 양의 피가 발라진 이스라엘 백성의 집은 넘어가며(踰越, passover) 죽음에서 건져 주었습니다. 이스라엘도 애굽과 동일하게 하나님께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이었므로 문에 양의 피를 바르지 않았거나 문밖에 나갔더라면 당연히 죽었을 것입니다. 이 때도 이스라엘이 어린 양의 피로만 구원받았던 것입니다. 이는 주님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 제물로 십자가에 바쳐져서 이루신 대속 구원을 예표하는 이적이었습니다.
모세가 구약의 율법을 상징하는 인물이긴 해도 이처럼 예수님을 가장 닮은 자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신18:18)라고, 모세와 같은 자가 장차 메시아로 올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또 이 말씀 때문에 오병이어 기적 때에 백성들이 주님을 왕으로 삼으려 시도한 것입니다.
예수의 오심을 예고한 선지자 엘리야
엘리야는 말씀하신 대로 구약에서 선지자의 대표였습니다. 모세는 선지자이긴 하지만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로서, 미국으로 치면 워싱턴 대통령 같은, 역할을 더 많이 감당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는 일에 전념하는 최초의 선지자는 사무엘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 또한 다윗을 왕으로 세우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죄에 빠진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사명을 감당한 자는 엘리야입니다.
물론 이사야나 예레미야가 선지서를 훨씬 더 길게 저작했고 엘리야는 성경을 저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은 엘리야처럼 백성들을 보호해주는 이적을 베풀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엘리야에겐 모든 선지자의 대표가 될 만한 다른 선지자들과 구별된 특징 셋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북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가 절정에 이른 아합 왕 때 바알 선지자 400명과 갈멜 산에서 혼자서 상대해서 큰 승리를 이루고 바알의 종들을 백성들과 함께 전부 죽여버리는 심판을 감행했습니다. 그런 믿음의 담대한 승리로 하나님이 북왕국을 징벌할 목적으로 내린 삼 년간의 극심한 기근을 끝내 주었고, 또 하나님이 남겨두신 7천 명의 당신의 백성을 아합과 이세벨의 폭정에서 보호해 주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에 그 소식을 전하도록 엘리야를 보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4:5.6) 엘리야를 직접 보내겠다는 것이 아니라 구약 선지자의 대표로서 그의 이름을 거론한 것이라 엘리야 같은 선지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당신께서 이미 엘리야를 구약 선지자의 대표라고 지정한 셈입니다.
하나님은 또 메시아가 오기 전에 엘리야 같은 선지자를 먼저 보낼 것이라고 훨씬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도 예언해 놓았습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사40:3) 이는 일차적으로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귀환에 관한 계시이지만, 구약 예언은 이중적인 의미를 갖기에 메시아 도래 전에 그의 오심을 외치는 소리가 있을 것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엘리야와 비슷한 차림을 하고서 주님의 오심을 외쳤습니다. 주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라고 최초로 선포했기에, 마태는 그가 바로 이사야와 말라기의 예언을 성취한 인물이라고 기록했습니다.(마3:1-4) 무엇보다 예수님이 직접 말라기가 말한 엘리야가 요한이라고 제자들에게 확인해 주었습니다.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마11:14)
셋째는 그는 육체적 죽음을 겪지 않고서 바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 전에 자신의 후계자로 엘리사를 세우고 갑절의 영감을 부어주고서 사역에 대한 지침을 가르쳤습니다. “그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왕하2:11) 이는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천국 보좌로 승천하신 일을 예표합니다. 간단하게 살펴보아도 엘리야는 구약 모든 선지자의 대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변화산의 두 사람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메시아가 마지막 날에 올 엘리야 선지자가 될지 또는 엘리야가 와서 메시아 오심만 선포할지는 몰라도 엘리야 선지자 또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네 복음서 모두에 유대인들과 산헤드린 공회원들 사이에 예수님의 공사역 중은 물론 십자가 처형 후까지도 주님이 모세와 같은 그 선자자인지 아니면 엘리야인지 설왕설래가 많았다고 기록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한 것은 유대인 제자들에게 당신의 정체성을 밝혀주려는 뜻이었습니다. 당신이 바로 모세와 같은 선지자요, 요한이 엘리야 역할을 하면서 곧 오리라고 선포했던 바로 그 메시아라고 말입니다.
나아가 모세는 광야의 모압 땅 골짜기에 묻혔으나 그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신34:6) 엘리야는 에녹처럼 죽지 않고 산 채로 곧바로 승천했습니다. 주님이 그런 두사람을 천국에서 불러 내린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는 정도를 넘어서, 그 두 사람이 다 영생을 얻어 천국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려는 뜻이었던 것입니다. 앞으로 십자가에 이루실 대속 구원을 순전히 믿고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는 자는 누구나 이 두 사람과 같은 영광을 누리게 된다는 진리를 눈으로 똑똑히 보도록 해준 것입니다.
바꿔 말해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이지 단순히 인간 선지자, 왕, 제사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니고는 영계에 있던 모세와 엘리야를 절대로 지상으로 불러내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그 세 분이 거할 초막 셋을 지으려 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 보좌에 좌정해서 모든 인간사를 다스릴 분이며, 모세와 엘리야는 그 보좌 앞에서 주님을 향해 찬양과 경배를 올려야 할 신분입니다. 그 셋은 동일한 초막에 거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세 초막을 짓겠다고 말하자 곧바로 하늘에서 예수님의 신분에 대해 다시 확인해 주었던 것입니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마17:5) 다시 강조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나 모세와 엘리야는 하나님께 쓰임 받은 인간 종이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도 주님과 모세를 이렇게 비교했습니다.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히3:5,6)
구약성경 전체가 예수님이 창3:15의 원시 복음대로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서 인간을 죄에서 구원해 주신다고 여러 선지자를 통해서 계속 계시해 주는 내용입니다. 그 중에 특별히 모세는 어린 양의 피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는 유월절 이적을 보였고, 엘리야는 사탄의 종들을 완벽하게 패배시켰으며 주님처럼 죽음을 이기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각기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를 상징하고 대표하는 자이지만 그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 사역까지 예표하기에 구약의 가장 대표적인 두 종이었습니다. 살펴본 것처럼 질문자님도 앞으로는 모든 성경 말씀을 반드시 예수님의 인류 구속사와 연관해서 성경 전체를 연결해서 해석 이해하는 습관을 들이시길 바랍니다.
(12/18/2024)
개인적으로 물어온 질문으로 모두가 잘 아는 내용이나 조금 더 체계적으로 정리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