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모든 것이 풍족하여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을 인하여 네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모든 것이 핍절한 중에서 여호와께서 보내사 너를 치게 하실 대적을 섬기게 될 것이니 그가 철 멍에를 네 목에 메워서 필경 너를 멸할 것이라”(신28:47,48)
신명기 28장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많은 복을 약속한 장입니다. 심지어 가축의 새끼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는다고 할 정도로 소산이 풍부해지며,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6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1절) 그렇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마치 순종하면 복을 받고 거역하면 벌을 받는 조건부 하나님을 섬기는 기복 신앙처럼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직 어린양의 피의 공로에 의지하여 출애굽을 했고 홍해의 물세례를 거쳤습니다. 말하자면 이미 구원 받은 백성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구원 받은 성도가 이뤄나가야 할 하나님의 나라이며 또 그분의 품 안에서 누릴 복락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 신명기 28장을 포함한 모든 율법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법도일 뿐 아니라 또 그렇게 지키는 것 자체가 유익이자 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글에서도 예를 든 적이 있습니다만 “조건부 복”과 “마땅히 누려야할 복”의 차이를 쉽게 이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공원에 11시까지 오면 바비큐를 주겠다고 하면 반드시 11시까지 도착하는 것이 조건입니다. 그러나 회사야유회를 가면서 “공원에 11시까지 오시오. 그러면 바비큐를 즐길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는 11시까지 모였기 때문이 아니라 회사 직원이라서 바비큐를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몸이 아파 가지 못하거나 일이 생겨 늦게 가거나 다른 공원을 찾아가면 아무리 회사직원이지만 바비큐를 먹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은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그 법도대로 살면 자연히 복을 누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당연히 복을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은 바로 그런 뜻을 재차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깊은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풍족하여도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48절 이하의 벌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풍족하게 되었다는 것은 46절까지의 설명으로 인하면 하나님의 법도를 지켰기에, 다른 말로 순종의 결과로 복을 받은 상태입니다. 최소한도 하나님이 직접 복을 베푸셨거나 인간이 추구한 복을 허락하셨기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더 이상 다른 벌을 부과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감사와 경배가 따르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받은 것에 대해 고맙다고 인사하지 않으니까 괘씸해서 벌을 준 것입니까? 시쳇말로 실컷 주어 놓고는 다시 빼앗아 가는 꼴 아닙니까? 아니면 또 다시 감사와 경배가 복과 벌을 받는 조건으로 제시된 것입니까?
우선 신자가 당신의 법도를 지켜서 도덕적 삶을 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근본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이미 당신의 백성이 되었기에 당신의 품 안에서 당신이 주시는 모든 은혜와 권능을 누리게 하되 그 누릴 수 있는 수단이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조건부 기복신앙은 신구약 성경의 어떤 말씀과 사건에도 결코 적용되지 않습니다. 언제나 당신의 주권적 선택과 일방적 구원이 선행된 후에 당신의 영광을 맛보게 해주십니다.
그런데 순종하여서 풍족을 누렸는데 또 다른 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럼 무슨 뜻이 됩니까? 하나님이 신자에게 바라는 것 가운데 순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신자가 가나안에 들어가 누려야할 하나님의 복 중에 가장 중요한 복이 따로 있는데, 바로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역으로 말해 신자가 진정한 기쁨과 즐거운 마음 없이도 여호와를 섬기거나 순종하는 모습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법도를 오해하여 기복 신앙, 조건부 축복으로 지킬 수도 있지만 당신께선 절대로 그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진심으로 기꺼이 섬기지 않는 순종은 오히려 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신자를 향한 궁극적인 뜻은 오직 당신을 기쁨으로 경외케 하는 것입니다. 신자더러 단순히 도덕적 생활을 하게 하거나, 또 그런 자에게 복을 주고자 하는 것도 아니며, 심지어 자신을 순종하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당신과 개인적인 친밀한 관계를 온전하게 세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관계를 맺는 수단이 순종이며, 순종의 결과로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 복이며 불순종의 그것은 벌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풍족한 가운데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섬기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의미심장하지 않습니까? 모든 것이 다 나쁠 때는 간혹 원망과 의심이 들 수는 있지만 그래도 그 나쁜 상황을 호전시키기 위해서라도 하나님을 진심으로 찾습니다. 반면에 모든 것이 좋은 것뿐일 때에 당연히 그것을 주신 하나님도 좋아 보입니다. 그런데 그 좋은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다 없어진다고 해도 그분이 가장 좋은가 나아가 유일한 기쁨이 되는지 진지하게 따져 보라는 것입니다.
당신의 계명을 지키면 조건부로 복을 준다든지, 그 결과로 복이 보장된다든지 하면 어느 누구도 안 지킬 바보는 없습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그런 식으로 절대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구태여 당신께서 주권적으로 택하시고 일방적으로 구원하실 이유도 없습니다. 가만히 두어도 당신께 순종하는 백성들이 많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이 예정하여 택하신 신자를 도달시키기 원하는 단계는 따로 있습니다. 풍족하게 누리고 있는 모든 복을 일순간에 포기하라고 했을 때에 기쁨으로 순종하고 그래서 하나님 외에 다른 모든 좋은 것을 다 잃어버리고도 그분 한 분 만으로도 기쁨과 즐거움을 잃지 않는 자리입니다.
신자를 일부러 고생시키려고 하는 뜻이 아닙니다. 고난을 거쳐야만 신앙이 성숙되어진다는 영적 필요 때문만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땅의 모든 백성과 나라들 앞에 당신 자신만이 증거 되기를 원하시지 당신이 주신 복이나 벌이 증거 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그 일을 하도록 부름 받은, 아니 구원 받은 자가 신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에게는 이런 담대한 고백과 함께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3:7-9)
모든 것이 나빠 보일 때에는 하나님마저 나빠 보일 수 있습니다. 반면에 모든 것이 좋아 보일 때에는 하나님이 안 좋아 보일 신자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바로 그 때에 그 모든 것을 다 포기하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신다면 순종할 수 있습니까? 혹은 당신께서 그렇게 강권적으로 몰고 가실 때에도 기쁨과 즐거움으로 그분만 섬길 수 있습니까? 순종보다 경배를 먼저 하고 그래서 경배하기에 순종하십니까? 아니면 단지 순종하는 것으로 경배하는 표를 내십니까?
8/15/2006
(이건 김문수 형제님의 전매특허인데, 형제님 몰래 컨닝하는 것이니만큼, 절대 알려주지 마시기 바랍니다) ^^
목사님, 항상 시원한 생수로 목을 추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