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13:9,10)너무나 교만한 신자들

조회 수 1295 추천 수 80 2006.09.20 19: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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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이같이 썩게 하리라 이  악한 백성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하고 그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며 다른 신들을 좇아 그를 섬기며 그에게 절하니 그들이 이 띠의 쓸데없음같이 되리라.”(렘13:9, 10)


신자란 사나 죽으나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당연히 그분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분의 뜻을 알려고 정말 열심히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경험하듯이 그분의 음성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좀체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가 힘이 빠지고 차츰 그분의 뜻을 묻는 일이 줄어들게 됩니다.

그럼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우리에게 밝혀주기 싫은 것인가요? 아니면 우리가 간절한 마음도 없이 가식으로 기도한 것인가요? 둘 다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일을 자꾸 점쟁이 식으로 생각하려는 신자들의 근본 인식이 문제입니다. 꼭 특정한 일에 대한 특정한 진로를 선택하는 일에만 그분의 뜻을 알아야겠다고 덤빕니다. 물론 중요한 결정은 그분의 구체적인 인도를 받아야만 합니다. 그러나 신자가 그에 우선해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신자는 평소에도 범사를 항상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든 그분의 관점과 시각으로 분석하고 판단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말하자면 하나님 안에서  세상적인 가치관과는 다른 성경적 가치관을 확고하게 정립해 놓으면 무슨 일이 생겨도 따로 그분의 뜻을 물을 필요 없이 그 가치관에 맞추어 판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그 좋은 예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교만과 우리가 생각하는 교만이 전혀 다르다고 합니다. 신자들은 교만해지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노력합니까? 남들 앞에서 말과 행동을 예의 바르게 하고 나서서 잘난 척 하지 않으려고만 조심합니다. 교만은 자기 잘난 것을 남들 앞에 자랑하는 것이고 반대로 겸손은 익은 벼가 고개 숙이듯 자기 실력을 속에 감추고 남에게 먼저 양보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는 말씀이 본문에 조금이라도 나와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신자가 된 후에도 세상 윤리에서 가르치는 가치관에 붙들려 있는 신자가 너무 많습니다. 세상 윤리가 틀렸다는 뜻이 아닙니다. 신자도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지당합니다. 신자란 신자이기 이전에 상식적으로도 올바른 인간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자는 상식적 인간을 넘어서(반대가 아닌) 하나님의 사람도 함께 아니 먼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교만을 어떻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습니까? 인간들이 자신의 말을 안 듣고  자기 마음대로 하며 나아가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신자가 하나님 뜻대로 살지 않는 것이 교만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씀 같지만 그렇게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신자는 세상 속에 살되 세상과는 구별된 자입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신자에게는 ‘상식적 인간’과 ‘하나님의 자녀’라는 두 가지 정체성을 갖습니다. 그래서 항상 그 두 신분에 적합한 가치관과 행동 기준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신자가 하나님 뜻을 따라야 한다고 해서 세상을 아예 무시해도 된다는 법은 결코 없습니다. 그 두 정체성이 서로 상충될 때에만 하나님의 뜻을 우선적으로 따르면 됩니다.  

교만에도 두 가지 측면이 있어서 사람과 하나님 앞에서 똑 같이 잘난 척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 앞에 잘난 척 하는 습성 내지 약점을 고치기 위해서 하나님의 도움은 열심히 잘 구합니다. 그런데 비록 기도해서 그런 자신의 품성과 행동을 겸손하게 고쳤다 할지라도, 만약 하나님 앞에서의 교만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면 신자이면서도 여전히 세상을 향해 산 것뿐입니다.

제가 지금 무엇을 말하려는지 이해하시겠습니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선 항상 겸손했고 또 그분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 앞에서 교만해본 적이 없기에 이제 사람들 앞에서만 겸손하면 된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또 다시 우리의 가치관이 얼마나 하나님 중심적이 되어있지 않은지 확연한 표가 납니다. 하나님 앞에서 태도나 생각으로 교만한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말하자면 신자는 인간관계에 적용되는 겸손을 하나님 앞에서도 항상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교만해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솔직히 하나님 앞에는 불신자라도 천벌이 두려워서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는데 하물며 신자이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지 않으려면 그런 인간적 겸손 말고 반드시 하나님이 생각하는 겸손한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겸손의 참 뜻대로 말입니다.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느냐 안 듣느냐의 문제에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것을 일반적으로 불순종으로만 가르치지만 본문에선 교만이라고 했습니다. 역으로 그분의 뜻대로 사는 것은 순종도 되지만 바로 그것이 겸손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특이하게도 우상숭배를 배교나 죄악 이전에 교만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와서 바알을 숭배하게 된 원인을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따져보면 농경민족으로 바뀌는 과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그전까지 애굽에서 4백년간 노예 인부였고 광야 40년은 유목을 하며 방랑했습니다. 한 곳에 정착해서 농사를 짓는 지식이 없었습니다.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와 현지인들의 풍요와 다산의 신들을 보게 되니까 자기들도 그런 우상을 섬기면 농사가 잘 될 줄 단순하게 판단했던 것입니다.

이해해줄 만한 측면도 어느 정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자기들 임의로 판단해서 스스로 잘 살아보려 노력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땅에 들여보내면서 율법을 주고 당신만 따르라고 했는데도 자기들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눈에 보이는 현재 상황에만 집착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한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자기기 세상의 주인이 되어 마음대로 하겠다는 교만한 마음이었습니다. 또 그 교만은 사단에게 무릎 꿇는 결과를 낳았지 않습니까?

다른 말로 하면 신자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아니해서 나타내는 반응이 다 교만이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닙니까? 부모가 시키는 일과 마련해 준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자식은 부모에게 너무나 버릇없는 것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허락하는 환난과 고통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못마땅해 하면 하나님 앞에 얼마나 교만한 것입니까?

하나님이 신자를 보호하고 인도하는 일에는 때를 기다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방법이 다를 때도 있습니다. 나아가 세상에는 의인이 고통을 당하고 악인이 형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재앙과 억울한 죽음도 많습니다. 심지어 인간이 얼마나 힘들어 하는 줄 알고도 세상을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사단의 권세 아래 두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일들이 이해가 안 되는 정도를 넘어 의심과 불만이 앞서면 바로 그것이 하나님 앞에 교만인 것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자신을 향한 계획과 현재 자기에게 베풀어 놓은 모든 여건에 대한 세밀한 뜻까지 이해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핑계로 다른 길로 가면 즉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든지 인간적 수단을 동원하면 바로 그것이 교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려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5:6,7)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 맡기고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면 겸손하지 않은 것입니다.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신자의 교만입니다.

그런데도 신자들은 사람들 사이에 자신이 겸손해지도록 하나님의 도우심만 구합니다. 심지어 세상사람 앞에 교만을 떨기 위해 하나님 앞에선 겸손을 가장합니다. 신자가 세상에서도 형통해야 하나님 영광이 올라가고 당신 이름에 손상 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말투만 겸손하지 사실은 완전히 협박입니다. 아니면 아예 울부짖으며 떼를 씁니다.

많은 신자들이 세상사람 앞에 세울 자신의 위치 때문에 하나님 앞에선 온갖 교만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만 겸손을 떨면 된다고 착각하면서 말입니다. 신자란 그 전에 하나님, 특별히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겸손해져야 합니다. 아니 그렇게 된 자가 신자입니다. 나아가 주님의 십자가를 제대로 통과한 자는 하나님 앞에서 먼저 겸손해져서 세상과 사람 앞에도 자연히 겸손해집니다. 따로 겸손을 구할 것이 없습니다.  

아주 위급하거나 중대한 일이 아닌 다음에는 신자가 평소에 성경에 기반을 둔 가치관을 확고히 갖추고 있다면 그대로 판단해서 시행하면 됩니다. 어떤 것이 참 교만과 참 겸손인지 알고 있는 신자는 때가 될 때까지 범사를 능하신 그분의 손 아래에 맡기고 기다리면 됩니다. 또 그런 자는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와 권능에 대한 소망을 온전히 붙들고 있기에 감사하고 즐거워하면서 기다립니다. 억지로 진통제 맞아가며 참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가 어디로 행하든 가는 곳마다 밟는 땅마다 차지하게 해 줍니다.

다시 한 번 물어봅시다. 지금 당신은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겸손합니까? 하나님 앞에 교만한 적은 없습니까? 주일날 최고 좋은 옷을 입고 성경을 심장 가까이 경건하게 들고 만면에 웃음을 띠고 목청을 높이지 않고 부드럽게 사람들을 대하며 거룩하게 예배를 드렸다고 혹시라도 겸손했다고 생각합니까?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하나님이 지금 현재 자기에게 허락해 놓은 일에 한 치라도 불만과 의심이 든다면 그것만큼 교만한 것이 없습니다. 요컨대 저를 비롯한 우리 모두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하나님 앞에 교만하게 서 있으면서도 종교적인 겸손을 떨었다고 그 분 앞에 교만하지 않았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그런 착각만큼 교만한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신자로서 할 바를 다 했으니 이젠 하나님이 뭔가 보상을 해주어야 할 차례라는 기대가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느니 말입니다. 자기 눈앞에 어떤 환난과 핍박이 있더라도 주님이 베푸시거나 허락하신 것임을 결코 잊지 않고 주님의 때를 기다리지 않고 있다면, 세상에서 내가 교만해지기 위해서 하나님에게마저 떼쓰거나 협박하고 있다는 증거일 뿐입니다.  

9/20/2006

칭 찬

2006.09.21 01:03:26
*.178.134.200

아 ~멘.
말씀을 보면 지금까지 저가한 신앙생활이 너무 무지했다 하는 생각입니다.
좋은 말씀으로 깨우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문수

2006.09.21 02:40:00
*.91.200.66

아멘!!!!!!!!

허경조

2006.09.21 03:20:53
*.80.180.106

아멘 아멘

국중후

2006.09.22 12:39:03
*.147.161.122

김광찬

2006.09.23 11:40:26
*.8.157.37

아멘 †
저는 교만으로 꽉 채워진 교만 덩어리입니다.
또 다시 주님의 십자가 앞에 무릎 꿇고 주님만 바라봅니다.

날마다순종

2021.01.12 14:10:22
*.14.99.253

우리 신자에게 매일 매순간 내 중심이 정말로 오직 주님만을 향해 있는지, 혹 종교적 행위로 겸손을 가장하여 착각하며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야 할 너무나 중요한 말씀입니다. 요즘 근심과 염려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어제와 오늘 이렇게 돌아보게끔 해주시는 말씀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순간순간 치솟는 불안감에 휩싸옇던 진토같은 저를 용서해 주옵소서. 형편이 어떠하든 항상 주님의 때를 감사와 기쁨으로 기다릴 줄 아는 저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 되도록 늘 이끌어 주옵소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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