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11:23) 거짓 목사 판별법

조회 수 1132 추천 수 33 2008.02.20 20: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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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목사 판별법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 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고후11:23)



큐리 부인은 엑스레이를 발견하여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최초의 여인이 되었고 그 후 화학상도 받았습니다. 그 발견이 인류복지에 끼친 공은 도저히 측정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납니다. 반면에 자신은 방사선에 너무 오래 노출 되어서 결국 백혈병으로 죽었습니다. 지금도 그녀가 친필로 쓴 연구 논문을 보려면 방사능이 묻어 있어서 보호 장구를 착용해야 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희생으로 이제는 어느 누구도 방사능에 직접 노출되는 우를 범하지 않고도 유익하게 활용하게 되었습니다.  

지도자란 항상 자신을 따르는 추종자를 둡니다. 따르는 자가 아무도 없다면 지도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이가 자신을 따른다는 것은 지도자가 지도하고 있는 분야의 일만은 반드시 먼저 나서서 행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요컨대 자기가 가르친 것을 솔선수범하는 자라야 지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치를 길게 풀어서 다시 언급하는 이유는 말로만 가르치고 행하지 않는 지도자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지금 자신을 음해하는 거짓 사도들을 향해서 과연 너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인지 따져보자고 합니다. 그런데 그 기준을 무엇으로 제시했습니까? 한 마디로 여러 번 죽을 뻔 했는지 여부입니다. 자기가 그들보다 수고를 더 많이 하고 여러 번 감옥에 갇힌 것을 자랑하고자 하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거짓 사도는 자신이 겪은 그런 고통을 절대 당할 리가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도자란 자기는 앞장서고 제자들은 등 뒤에서 따라오게 하는 자입니다. 항상 처음 가는 미지의 길로 들어서야 하기에 위험과 수고가 따를 수 있으며 때로는 생명마저 희생해야 합니다. 큐리 부인처럼 지도자는 당연히 선구자, 탐험가,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제자들의 등을 뒤에서 떠밀고 있는 자일뿐입니다.  

바울은 사십에 감한 매를 다섯 번, 세 번 태장, 한 번 돌로 맞음, 세 번 파선, 일주야를 깊은 물속에 표류, 강, 강도, 동족, 이방인, 시내, 광야, 바다, 거짓 형제, 자지 못함, 굶고 춥고 헐벗음, 심지어 다메섹에서 광주리 타고 탈출하는 등, 수도 없이 생명의 위협을 느꼈습니다. 그야말로 그는 죽음을 바로 곁에 두고 친구 삼았습니다.      

거짓 사도가 그런 위험을 겪지 않은 이유가 단순히 바울처럼 선교 여행을 다니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은 결코 앞장서지 않았던 것입니다. 전인미답의 미지의 길에서 겪을 수고와 위험을 외면했습니다. 당시 우상을 숭배하고 세상 향락을 추구하며 공의를 어기는 죄악 가운데 완전히 빠져 있던 세상 사람에게 십자가 복음은 금시초문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바울이 고난을 겪은 근본 이유도 선교를 다녔다기보다는 사람들이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생전 처음 들었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해 그는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최초로 갔던 것입니다. 세상을 향해 너희는 죽을 수밖에 없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니까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으라고 외쳤습니다. 신에게 치성과 열심을 드린다고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대신 달리신 예수를 구세주로 받아들이라고 권했습니다. 자연히 지혜를 구하는 헬라인과 표적을 찾는 유대인들, 즉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 생각에는 미련해 보이는 십자가의 도에 격렬히 반발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단순히 종교적 핍박을 받은 것으로 참 사도의 기준으로 삼았다면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오늘날의 선진제국에선 그 기준은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그야말로 바울이 자기 자랑한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나아가 만약 그렇다면 지금도 이슬람 지역으로 생명을 걸고 선교를 가는 자만이 참 사도가 된다는 무리한 결론에 이릅니다.

기독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의 왕국을 소망하는 종교입니다. 그 왕국을 이 땅에서 실현하기 위해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기준만이 신자의 삶과 인생의 준거가 됩니다. 당연히 눈에 보이는 일시적인 물질의 왕국을 추구하는 세상과는 완전히 대치되기에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준거는 사람들에게 거추장스러운 걸림돌이 될 뿐입니다.

바꿔 말해 지금도 기독교 진리를 제대로 선포하면 종교적 핍박은 없을지라도 반드시 세상과 충돌할 수밖에 없고 사람들의 반발과 비방을 받게 됩니다. 반면에 진리를 있는 그대로 선포하지 않으면 충돌은 면하고 그런 수모를 겪을 일도 없습니다. 바울 당시 거짓 사도도 온전한 복음을 전하지 않았기에 바울이 겪은 위험과는 아예 거리가 멀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멸시와 비방과 핍박만 받았습니다. 한 시도 머리 둘 곳이 없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서 가장 앞장서서 골고다로 향해 걸어 가셨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따르는 자 또한 그럴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들이 따를 수 있는 본을 몸소 보였습니다. 비겁한 겁쟁이 베드로에게도 성령의 권능을 덧입혀 십자가를 지는, 그것도 거꾸로 달리는 자리에까지 인도하셨습니다. 제자가 스승의 모습을 재현 아니 능가해 보인 것입니다.

영적 지도자는 사단과의 전투에 가장 앞장서는 자입니다. 십자가 복음 선포의 최전선에 서서 세상과 충돌할 때에 그 충격을 가장 먼저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앞장서면 설수록 현실적 영적 유혹과 시험은 더 집중되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목회자도 연약한 인간이니까 넘어질 수도 있다는 핑계를 댈 수는 없습니다. 그 반대로 죄와 사단과 사망과 피 흘리기까지 싸워 이기는 모범을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더더욱 보여 주어야 합니다.

물론 목회자도 연약한 인간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예수를 따르려는 성도와 달리 예수의 본을 재현 내지 능가해 보여야 하는 지도자가 넘어지는 모습을 보인다면 누가 그를 따를 수 있겠습니까? 어쩔 수 없이 넘어졌다 해도 최소한 지도자의 자리에서, 일시적이든 영구적이든, 물러나 철저하게 회개하는 모습은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이(어떤 전투 사령관이라도) 사단과의 전투 앞자리에 쉽게 지는 자를 결코 세우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는 특별히 성도가 시험에 자주 넘어가는 부분에 더 강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하자면 재물과 세상 쾌락의 유혹을 하나님만 의지하여 당당히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과 재물 중에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삶이 확연히 드러나야 합니다. 인간 능력이나 세상 수단에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됩니다.

그렇다고 목사는 무조건 가난하게 살면서 고생해야 한다는 단순한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워 준 자리에서, 그 자리가 부요하든 궁핍하든 상관없이 진리만 담대히 선포해야 합니다.  진리 선포에 가장 합당하기에 자기를 그 자리에 하나님께서 세워주었다는 확신의 바탕 위에서 말입니다. 쉽게 말해 언제 어디서나 때를 얻든 못 얻든 십자가만 전하라는 것입니다.  

목회자라고 다 영적 지도자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인류 구원의 유일한 길이자 소망임을 말과 행동으로 가장 앞장서서 증거하는 자여야 합니다. 당연히 그 인생은 세상과 충돌하기 마련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빠진 궁핍이든 부요든, 쉽게 말해 큰 교회 혹은 작은 교회의 목사이든 참 지도자의 길과는 거리가 멉니다. 골고다의 십자가 빼고는 세상 어떤 것도 사람들이 비슷하게나마 다 겪어본 혹은 볼 수 있는 일이라 지도자가 구태여 앞장 서야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2/21/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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