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12;14) 스캔들에 혹하는 신자들

조회 수 1011 추천 수 38 2008.03.11 19:3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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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에 혹하는 신자들

“보라 이제 세 번째 너희이게 가기를 예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나의 구하는 것은 너희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이에 부모가 어린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고후12:14)



바울은 고린도 교회로부터 억울한 모함을 많이 받았습니다. 비록 그 발단은 바울을 시기하고 성도들을 자기들 수하에서 조종하려는 교회내의 거짓 교사들로부터였지만, 교회 내에 여러 파로 나뉘어 분쟁한 사실만 보아도 많은 교인들이 함께 부화뇌동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이 편지를 쓸 무렵에 유대에 큰 기근이 일어났습니다. 마침 바울 일행은 마케도니아 지역을 선교 여행하면서 겸사해서 예루살렘 교회를 도울 구제 헌금을 모금했습니다. 알다시피 바울은 천막을 만드는 부업을 통해 자급자족하며 여행했습니다. 일부 교회에서 자원한 헌금을 받기도 했지만 나서서 자기 개인적 용도로 헌금을 거둔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적대자들은 바울이 교회에서 정식 사례비를 받지 않고 자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술수를 잘 쓰는 교묘한 자인지라 구제 헌금 같은 명목으로 돈을 거두어 착복한다고 주장했습니다.(16절) 아마도 이전부터 바울을 모함할 근거를 찾던 중에 마침  구제헌금으로 모인 액수가 거액인지라 좋은 핑계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평소부터 재정적 문제에 대해선 철저할 정도로 깨끗하게 처신했습니다. 교인과 교회에 폐 끼치지 않으려 헌금을 요구하지 않았고 이번 구제 헌금도 세 사람을 보내어 관리하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심부름한 자들도 그와 동일한 원칙을 지켰습니다.(18절)

바울이 설립한 교회의 믿고 따르던 자들마저 그 선동에 넘어가 본문 표현대로 하자면 어린아이가 부모를 배반하고 칼을 겨눈 꼴입니다. 혹시라도 이상하게 여겨집니까? 전혀 이상할 것 없습니다. 우리 모두 여태 체험했다시피 인간이 가장 시험 들기 쉬운 부분이 돈 문제입니다. 구제하라고 생활비를 아끼고 쪼개서 헌금했더니 개인적 용도로 그것도 호사스럽게 놀러 다니며(사실은 온갖 위험과 궁핍을 무릎 쓰고 하는 선교 여행이었는데도) 낭비한다고 지나가는 말로 슬쩍 던져만 놓으면 금방 엄청난 스캔들로 커집니다. 발단은 성냥불이지만 던져진 곳이 기름 창고이기 때문입니다.  

타락 이후의 인간은 본성적으로 스캔들을 좋아합니다. 스캔들이란 진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남의 잘못이나 허물이 과대 포장되어 떠도는 이야기입니다. 쉽게 말해 함께 모여서 다른 사람의 흉을 보며 수군대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신들의 죄가 감춰지거나 관심 밖에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또 남을 깎아 내려야 자기들이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스캔들에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열광하는 이유는 거짓의 아비인 사단의 영이 모든 인간에게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인간은 진실보다 오히려 거짓을 더 좋아하는 존재입니다. 진정한 실체보다 꾸며진 허상을 추구합니다. 이왕이면 아주 공교하게 치장되어서 흥밋거리가 많은 스캔들일수록 더 좋아하고, 심지어 더 확실한 진실인 양 믿고 따릅니다. 완전히 공중 권세 잡은 자의 장난질에 놀아나고 있습니다.

돈과 관련된 스캔들이 파괴력이 더 큰 이유는 모든 인간이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바로 돈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의 안락과 형통만을 목표로 하는 인생인지라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만 염려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거룩하고 영원한 세계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거나 혹시 있어도 돈에 비해 영 뒷전입니다. 재물을 자신의 주인으로 이미 모셨기에 하나님이 주인 되는 것을 거절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적 사단을 주인으로 삼은 것입니다.

신자라도 그것도 아주 믿음이 좋은 신자라도 성령의 전신갑주를 입고 무시로 기도하지 않는 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경건하고 믿음이 좋은 목사와 장로와 안수집사들이 왜 돈 문제만 생기면 피 터지도록 싸우는 일이 그리 빈번합니까? 바울이 모함 받은 것은 요즘의 사태에 비하면 정말 시쳇말로 새 발의 피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교회에 세 번째로 방문하겠다고 합니다. 여전히 폐를 끼치지 않을 작정이라고 선언합니다. 그 이유는 “나의 구하는 것은 너희 재물이 아니라 오직 너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스캔들을 퍼트린 장본인만 처벌하고 너희 모두는 용서해주겠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너희도 그동안 벌렸던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중상함과 수군수군하는 것과 거만함과 어지러운 것이 있을까 두려워하고”(20절)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회개하라고 권합니다. 교회의 지도자가 마땅히 취해야 할 자세를 보인 것입니다.

목회자라면 바울처럼 오직 복음을 전하는 것에만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지 개인적인 안락과 명성을 추구해선 결코 안 됩니다. 또 복음이 단 한 사람에게라도 제대로 전파될 수만 있다면 자신은 어떤 모함과 핍박과 궁핍을 당해도 기꺼워해야 합니다.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이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었고 하늘에서조차 큰 잔치가 벌어지는데 어찌 자신의 어려운 형편에 연연할 수 있겠습니까? 목회자가 평생을 두고 해야 할 일은 그야말로 예수님이 베드로를 부를 때에 명한대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입니다.  

요컨대 목회자도 아니 신자들도 최우선적으로 돈에 관해 바울처럼 깨끗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많은 신자 아니 목회자들마저 쉽게 간과하고 있는 잘못이 하나 있습니다. 돈의 유혹을 자신의 도덕적 품성을 의지적으로 함양해서 이겨 보겠다는 아주 순진한 생각입니다. 돈은 절대로 그리 녹녹한 상대가 아닙니다. 바울이 돈에 대해 철저하리만큼 깨끗해진 이유도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대신에 그는 스캔들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온전한 지식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담이 타락하게 된 발단도 사단이 물고 온 스캔들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거짓 풍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먹지 못하게 한 이유가 인간의 눈이 밝아져 당신처럼 될까 염려하고 시샘하기 때문이라고 부추겼습니다. 왜 네가 세상에서 최고로 높아져 이 땅의 주인이 될 수 있는데도 바보 같이 가만히 있느냐고 꼬드겼습니다.

죄는 본질상 공범자를 저절로 찾아가는 습성이 있어 자연히 염병처럼 번져 나갑니다. 사단도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 자리에 오르려는 자기 죄악에 인간을 함께 동참시키려 한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단은 자기나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에는 도저히 오를 수 없음을 이미 잘 알기에 인간이라도 하나님 대신 자기 수하에 묶어두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단이 자기가 꾸며낸 스캔들에 인간이 꼬박 속아 넘어가게 만드는 통로로 동원한 것이 바로 돈이었습니다. 달러 지폐가 아니라 무엇을 먹고 마시며 입느냐의 과제로 유혹했다는 뜻입니다. “왜 가장 맛있어 보이는 저 과일은 따 먹지 않고 별로 맛도 없는 것들만 먹고 있느냐? 나만 따르면 얼마든지 세상에서 최고 맛있고 최고 시원하고 최고 멋있는 것으로 먹이고 마시우고 입혀 줄 텐데...” 하나님의 정반대 편에 서있는 자기는 완전히 감추고 그 자리에 뱀의 탈을 쓴 돈을 세웠습니다. 필연적으로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이 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닌 재물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울과는 정반대로 “너희가 아니라 재물을 구하는 자”로 전락했습니다.

바울은 인간 영혼의 그 부패한 실상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자기가 부모의 심정으로 양육한 성도들이 말도 안 되는 아니 도저히 있을 수도 없는 스캔들에 그리 쉽게 넘어가는 것이 그들의 도덕성과 종교성, 심지어 자신에 대한 의리에 문제가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았던 것입니다. 내 사랑하는 성도들이 지금 사단의 장단에 춤추고 있으니 그 북을 치고 있는 자들, 사단의 졸개들만 제거하면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아니 그들도 불쌍한 자들인지라 사단의 흉계만 밝혀 드러내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 용서해줄 테니 회개하라고 촉구한 것입니다. 그들이 자신을 비방하고 모함한 잘못을 자기에게 사과하고 화해를 청하라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돈에 관한 스캔들에 쉽게 넘어간 이유가 바로 하나님을 잠시 떠나 있었기 때문임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은 아담의 때부터 그랬던 존재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왜 하나님과 재물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기지 못한다고 말했습니까? 논리적으로 따지면 하나님과 사단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기지 못한다고 해야 맞지 않습니까? 사단은 그야말로 거짓의 아비이자, 원흉이자, 발단입니다. 끝까지 자기를 숨기고 돈을 앞세우는 거짓으로만 일관합니다. 다른 말로 인간이 가장 쉽게 속아 넘어가는 거짓이 바로 하나님보다 돈이 자기를 더 안위하고 형통케 해 준다는 것입니다. 돈 쪽에 안전과 만족과 행복의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 보이게 만드는 것이 사단의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가장 강력한 흉계입니다.

성경이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돈 자체가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것이 악이라고 합니다. 즉 돈을 주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역으로 말해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고 그 자리에 사단을 앉힌 셈입니다. 그러니 인간의 영혼을 구하는 데는 자연 관심은 사라지고 재물만 따르게 됩니다. 교회에서 돈 문제로 분쟁이 발생하면 연약한 성도들이야 실족하든 말든 무두가 눈이 벌게집니다. 사단의 흉계에 완전히 휘둘려서 허우적거리는 꼴입니다. 교회는 사단의 줄에 매달린 꼭두각시놀음 판이 되어버립니다.  
  
예수님은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라 둘째는 이와 같으니 이웃을 너희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사단을 사랑하지 않는, 아니 미워하는 자입니다. 사단이 던지는 재물의 유혹이 과대포장 아니 속이 빈 상자를 겉만 화려하게 포장한 허무맹랑한 거짓에 불과한줄 확신하게 된 자입니다. 그래서 바울처럼 돈의 시험에 넘어가지 않는 자 즉 너희 재물을 구하지 않고 오직 너희를 구하게 된 자입니다. 지금 바울 같은 위대한 사도가  아니라 바로 우리 같은 평범한 신자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신자가 윤리적 훈련이나 종교적 실력을 쌓는다고 재물의 유혹을 쉽게 이겨내지 못합니다. 돈의 실체를 정확히 알아야만 합니다. 돈이 가져다 주은 유익이 자신에게 아무 쓸모가 없어져야 합니다. 최소한 하나님이 주는 유익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헛되고 일시적이라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또 그러기 위해선 하나님이 주시는 유익을 풍성하게 체험해야만 합니다. 어느 쪽이 더 좋은지 비교해 주인으로 삼고는 실제로 따르고 있어야 합니다.  

이 부분에서 또 다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긴 하되 그분이 주시는 돈을 사랑하기 시작하면 도로 아미타불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입니다. 그럼 진짜 사랑하는 대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자기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 충실한 종이니까 좋아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좋아하고 돈은 사랑하는 신자가 됩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은 경히 여기고 돈은 중히 여기게 되므로 돈이 진짜 주인의 자리에 오릅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신다고 해서 아주 신령하고 경건해지라는 뜻이 아닙니다. 사단에 사로잡힌 세상 사람들은 재물을 구하기에 이웃과의 관계도 오직 돈에 의해 좌우 됩니다. 반면에 하나님에 사로잡힌 신자는 재물을 구하지 않기에 이웃과의 관계는 돈이 아닌 신자가 모시고 있는 주인에 의해 영향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쉬운 말로 신자가 진정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의 비밀을 안다면, 그래서 바울처럼 인간의 타락상과 그 원인에 대해 잘 안다면 자연히 이웃을 하나님 사랑하는 것 같이 섬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으로 따져서 과연 지금 여러분의 주인은 누구이며 또 무엇을 구하고 있습니까? 요컨대 이웃과 돈 중에 어느 쪽을 더 사랑하는지 묻고 있는 것입니다.

3/12/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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