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 우리 안에 든 신자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고전4:9)



바울은 자신이 겪은 온갖 고난과 박해를 당시 관습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습니다. “죽이기로 작정한 자같이 미말(尾末)”에 두셨다는 표현은 로마의 개선장군과 군사들이 환호와 갈채를 받으며 앞장서고 맨 뒤에는 이제 곧 군중들 앞에서 사형시킬 적군 포로들이 사슬에 묶여 끌려가는 모습을 말합니다. 그야말로 사람의 구경거리가 되었는데 당시 사도들의 형편이 그랬다는 뜻입니다. 또 천사 즉, 사단과 그 졸개들마저 세상에서 참담하게 실패한 사도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그렇게 작정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럼 어떻게 된 것입니까? 사단과 사람은 사도들을 박장대소하며 조롱거리로 삼는 것이 최상의 즐거움인데 하나님은 오히려 그렇게 되라고 내버려 둔 것 즉, 그들의 장단에 맞춰준 셈이지 않습니까?  

물론 사도들이 당장 순교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도들에 대한 진짜 작정은 딴 데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가 가신 길을 따르게 해서 그분을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을 승계토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목적은 물론 사람들에 대해 당신께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씻어서 당신의 거룩한 통치 아래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사람으로 사단의 완전 반대편에 서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바꿔 말해 사도로 사단과 사람의 조롱거리로 만드는 것은 하나님이 사도가 복음을 전하는 방식으로 작정해 놓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의 형통과 안락만을 목표로 삼습니다. 사단도 사람들이 하나님 쪽으로 향하지 않도록 세상 즐거움을 다양하게 제공합니다. 로마 개선행진은 세상에선 최고 영광스런 성공을 달성한 대표적 예입니다. 그것도 승리자로서 패배자를 조롱하는 그야말로 견줄 바 없는 쾌감까지 구비한 성공입니다.

그럼 신자답게 올바르게 살고 있는지 점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간단합니다. 자신이 현재 사단과 사람의 조롱거리가 되어있는지 여부입니다. 신자니까 세상에서 무조건 궁핍하고 비참하게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현실적 형편이 어떠하든 간에 예수로 인해 영원한 참  승리를 얻었기에 즐거워하는 모습을 사람들 앞에 보이는 것입니다. 도대체 저 사람은 나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궁핍한데도 오히려 더 안온하고 진짜 행복해 보인다는 평을 들어야 합니다. 가장하는 것이 아니기에 한 결 같이 그래야 합니다. 사람들로 대체 어떻게 하면 저럴 수 있는지 호기심과 궁금증을 자아내게 해야 합니다.  

요컨대 세상 사람들로 자기들이 살고 있는 삶의 방식에 대해서 한 번 쯤은 재고하도록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현재 붙들고 있는 인생의 목적이 아무래도 잘못된 것 같다는 의구심이 들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지금껏 어떤 수를 써도 자신에게는 참 만족과 평강이 없었다는 깨우침이 생기게 해야 합니다. 신자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빛을 발견하게 되어야 합니다.  

한 번 가정해 보십시오. 로마 개선행진의 미말에서 끌려가는 사람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후회와 창피와 두려움에 휩싸여 제대로 고개도 들지 못할 것 아닙니까? 이제 곧 사형장의 이슬로 변할 텐데 시쳇말로 오줌을 줄줄 싸지만 않아도 다행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미말에 서있는 자가 싱글벙글 웃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오히려 관중들이 더 헷갈리지 않겠습니까? 관중이 나타내 보일 반응은 두 가지뿐입니다. 우선 너무 두려워서 이젠 완전히 정신이 돌았나보다 간주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행동거지가 정상인데다 말을 시켜보니 올바른 정신이 박혔고 더 지혜롭기까지 하다면 어떻게 됩니까? 도대체 뭘 믿고 죽음 앞에서도 저렇게 당당할 수 있는지 궁금할 것입니다. 나아가 단지 전쟁에 졌다는 이유만으로 저런 인격자를 모욕하며 조롱하고 있는 자신들이 별로 나을 것이 없고, 아니 더 문제라는 사실을 문득 깨닫지 않겠습니까?        

물론 첫 번째 반응을 보이는 자가 거의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러나 드물긴 해도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참 인간답게 사는 것인지 심사숙고하며 자신의 실체를 되돌아보는 후자의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당신의 자녀는 항상 소수입니다. 실제로도 인생에서 진정한 승리를 맛보는 자는 소수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구원 주기를 꺼려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구원의 가치가 소중하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사단과 세상이 주는 가시적 일시적 쾌락이 사람을 그만큼 강하게 붙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본문에선 바울이 자신의 처지를 하나님이 작정하여 죽이려고 미말에 둔 것 같다고 비유만 했지만 나중에 똑 같은 경우를 실제로 겪습니다. 사슬에 묶인 채 세상 군왕과 방백들 앞에 재판을 받으며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오히려 더 당당했습니다. 자신을 구경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노이다.”(행26:29) 예수 없는 왕보다는 차라리 예수 있는 사형수가 낫다는 것입니다. 구경거리가 된 자가 도리어 구경하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격입니다.

사람들은 동물원 우리에 든 원숭이를 보고 놀립니다. 그러나 원숭이는 전혀 괘념치 않을 뿐 아니라 때로는 사람들을 거꾸로 놀리기도 합니다. 신자는 천국가기까지 세상이라는 우리에 갇혀 사단과 사람의 구경거리가 되어 있는 신세입니다. 그러나 구경당하는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닐뿐더러 오히려 바울처럼 그들을 십자가 우리 안으로 들어오라고 청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목표는 세상 즐거움이 결코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깨닫게 만드는 것입니다. 당신의 품 안에서 당신과 동행 하지 않는 한 결코 참 된 평강을 누리지 못하며 그 품 안으로 들어오는 유일한 길이 그리스도의 연고임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사단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원수 편에 서있었다 해도 십자가의 긍휼 앞에 진정으로 엎드리면 영원토록 사단의 우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로 거듭나게 해줍니다.    

인생으로 먹고 마시는 것의 풍족으로는 절대 구원받을 수 없고 나아가 구원 받은 표시도 아니라고 가장 정확하게 깨우치게 하려면 구원 받은 자가 죽임을 당할 자처럼 미말에서 조롱 받는 길 말고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골고다 십자가에 죽은 것이 마치 사단의 장단에 맞춰준 것 같았지만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완벽한 작정이었지 않습니까? 사도가 그 길을 가게 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미말에 선 사도를 보고 조롱하는 사단과 사람들을 도리어 당신께서 하늘에서 보고 웃으실 만큼 완벽한 작정입니다.

그런데도 작금 교회나 신자는 미말에는 죽어도 서기 싫어하고 오히려 개선장군이나 최소한 행렬을 구경하는 자만 되려고 합니다. 그것도 예수 믿는 믿음을 그렇게 되는 최고로 효율적인 수단으로 동원토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 아닙니까?    

12/1/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