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25:21) 정말 순수하게 믿고 있는가?

조회 수 1359 추천 수 67 2009.01.05 21:5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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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순수하게 믿고 있는가?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하고”(마25:21)



성경은 잘 믿으면 그 잘 믿은 만큼 비례해서 하나님께 복 받을 수 있다고는 가르치지 않습니다. 또 그런 기복적 신앙은 거의 모든 교회에서 부인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골적으로 드러내놓고 가르치지는 않지만 내용적으로 그와 같은 경우는 왕왕 있습니다. 영적인 분별력이 없으면 그대로 속고 맙니다. 아니 신자 스스로 그런 기대를 갖고 있기에 눈치를 채고도 짐짓 모른 체 하고선 함께 아멘으로 맞장구치는지도 모릅니다.

반면에 미리부터 복 받으려는 동기를 갖고 열심을 내어선 안 되지만 진심으로  믿고 성실히 섬기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고 많은 복을 주신다고는 가르칩니다. 그리고 이런 가르침은 별다른 이견(異見)이나 반발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과연 그러할까요?

우선 신자라도 개인적인 안위와 형통을 소망하는 본성이 뿌리 깊게 남아 있는데 일단 그런 가르침을 받고서도 과연 완전히 순수하게 믿고 섬기는 것이 가능할까요? 아무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그래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보상하리라는 일말의 기대가 생기지 않을까요? 아무리 이해타산 없이 섬겨도 돌아오는 보상이 없으면 섭섭해지는 것이 인지상정 아닙니까?

나아가 혹시 그런 기대가 생기면 무조건 그런 생각을 지우고 순수해지려 노력할 것입니다. 노력해서 순수해지려는 것은 벌써 순수라고 할 수 없습니다. 보상은 안 바라지만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겠다는 생각도 사실 업어 치나 매어 치나 같습니다. “하나님의 기쁨=돌아오는 보상”이라는 공식을 머리에서 종내 지울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대부분의 신자가 여전히 죄의 본성에서 완전한 풀림을 얻지 못했기에 이처럼 불완전하고 어리석다는 뜻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신자에게 진짜로 주시기 원하는 복이 훨씬 다른 차원이라고 말합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들이 정말 아무 보상을 바라지 않고 종으로서의 본분을 지켜 각기 받은 만큼 남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받은 보상이 무엇입니까? 순수하게 믿으면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시기에 “따로 보상을 준다.”는 언급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실제로 받은 칭찬은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였습니다. 분명 많은 것이라고 했으니 수적으로는 다섯과 두 달란트 이상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이 네게 “주리니”라고 하지 않고 “맡기리니”라고 말했습니다. 주는 것은 소유권의 이전이지만 맡기는 것은 잠시 빌려주는 것으로 소유권은 여전히 주인에게 있습니다.

아니 종이라는 신분 자체가 자기 소유는 하나도 없이 주인의 소유만 대신 맡아서 주인이 맡긴 일을 대신하는 자이지 않습니까? 어떤 일에서든 산출된 이익 또한 전부 주인의 소유로 다시 돌아가는 법입니다. 본문은 이 착하고 충성된 종에게 주인이 실제로 준 보상은 단지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지 않습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후5:18,19)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4:1,2)

모든 신자는 그리스도의 일군이 되어서 세상을 하나님에게 화목케 하는 직책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그 직책을 잘 수행하라고 하나님이 각 신자마다 고유한 재능과 은사를 맡겼습니다. 신자가 할 일은 오직 충성뿐입니다. 재능과 은사도 자기 것이 아니요, 그것들로 이뤄낸 결과는 더더욱 자기 것이 아니요, 또 결과를 잘 이뤄냈다고 따로 보상을 더 주는 것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아무리 사심 하나 없이 순수하게 했더라도 말입니다.    

그럼 신자가 그렇게 수고하고 희생한 대가는 대체 무엇입니까? 천국 가는 구원을 얻은 것뿐입니까? 또 신자마다 천국에서 받을 보상이 수고에 따라 각기 달라집니까? 그곳에서 다섯 달란트를 낸 자는 보너스로 다섯을 더 받아 열 달란트를 주십니까? 아닙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이 땅에서 하나님 일을 하는 동안에 그분이 누리는 즐거움에 신자도 동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되찾아 오는 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세상이 당신과 화목하게 되는 것이 그분에게 가장 큰 기쁨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반드시 신자를 통해서 이루십니다. 신자더러 그분의 기쁨을 느끼고 누리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신자가 진짜로 받을 보상은 이 땅에서부터 더 많은 일을 맡게 되는 것입니다. 종은 끝까지 종이며 주인은 영원히 주인입니다. 세상의 인간관계에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신자 사이에선 그렇습니다. 신자가 화목케 하는 직책에는 구원 받은 이후 천국 갈 때까지 변경, 감소, 취소 어느 것도 해당 되지 않습니다. 모든 세대 모든 신자에게 해당되는 유일한 소명입니다. 신자로서 신자가 된 이후에 살아야 할 삶의 태도도 마땅히 오직 충성일 뿐입니다.

안식도 없이 생명을 걸고 선교나 전도에만 나서라는 뜻이 아닙니다. 인생의 목표와 삶의 방식이 완전히 뒤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이전의 목표와 방식으로는 결코 돌아가선 안 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돌아갈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아야 합니다. 때로는 싫증나고 지치고 힘들지라도, 심지어 순간적으로 그만 둘까라는 마음이 스쳐 지나가긴 해도, 주님을 바라보며 의지하는 방향에선 절대 전환이, 흔들림은 몰라도, 없는 것입니다.

역으로 이야기 하면 하나님의 기쁨에 한 번이라도 참예하여서 진정으로 그 기쁨을 누려본 자는 자꾸 더 누리고 싶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보상에 대한 기대도 하지 않으며, 심지어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더 기쁘게 해드릴지 염려도 하지 않게 됩니다. 자기에게 맡겨주신 일을 종으로서 충성만 하고 있으면 자연히 세상의 기쁨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따라 온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너무나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또 바로 그렇게 되는 것이 순수하게 믿는 믿음의 본질이자 상태입니다.

믿은 만큼 복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당연히 틀렸습니다. 나아가 보상을 바라지 않지만 열심히 하면 보상이 따라온다고 믿는 것도 엄밀히 말해, 결과적으로 그런 모습이 있긴 하지만, 틀린 것입니다. 신자에게는 열심히 믿고 성실히 섬기는 것 자체가 보상입니다. 왜냐하면 정말 진정으로 그러는 순간 자연적으로 하나님의 기쁨에 동참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자에게는 하나님이 당신의 일을 더 맡기시고 또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은사와 재능도 더 주십니다. 하나님은 신자의 믿음에서나 맡기신 사명에서나 절대 강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일을 기쁘게 하는 자에게만 당신의 일을 맡기시고 당신의 능력과 은혜를 나눠주십니다. 믿은 후라도 인간은 가뜩이나 불완전하고 무지하며 죄가 여전히 살아 있는데, 마지못해 억지로 하는 자에게 당신의 일을 맡겼다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을 순수하게 믿고 있습니까? 단순히 보상을 바라지 않고 믿고 섬기고 있는지 묻는 뜻이 아닙니다. 소위 교회에서 말하는 뜨거운 믿음을, 눈물로 기도하고 열심히 섬기고 말씀을 줄줄 외우는 것 같은,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심지어 믿음의 내용이 십자가 복음에 바탕을 두었는지 여부도 아닙니다. 그런 믿음조차 억지로 믿으려는 노력이 포함되거나 자기는 의식을 하지 못해도 잘못된 동기나 과장된 위선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정말 모든 것이, 자기가 지닌 재능과 은사뿐 아니라 모든 소유가 주님께로 왔으며 오직 주님의 맡기신 일을 위해 사용되어져야 한다고 확신하고 실천하고 있는지 묻는 것입니다. 요컨대 주님은 나의 영원한 주인이며 나는 그분의 영원한 종이기에 그분이 시키는 일만 하느냐의 여부입니다.

1/5/2009

김순희

2009.07.24 12:14:47
*.254.209.141

그냥 하늘 아버지를 기뻐하는 그 자체가 보상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
그런데
가끔 지쳐서 쓰러져 버리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누워서 일어나기 싫을 때가 정말 있습니다.
그럴때 마다 주셨던 그 기쁨을 기억하며 다시 툭툭 털고 일어서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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