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78:23-25) 정말 권세 있는 자의 떡을 먹고 있는가?

조회 수 1107 추천 수 43 2009.06.14 19: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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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권세 있는 자의 떡을 먹고 있는가?

그러나 저가 오히려 위의 궁창을 명하시며 하늘 문을 여시고 저희에게 만나를 비같이 내려 먹이시며 하늘 양식으로 주셨나니 사람이 권세 있는 자의 떡을 먹음이여 하나님이 식물을 충족히 주셨도다.”(시78:23-25)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모세가 광야로 이끌자 먹고 마실 것이 없다는 불평불만이 비등해졌습니다. 편하고 빠른 길을 택할 수도 있었지만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출13:17)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바로 며칠 전까지 애굽을 벌한 열 가지 재앙과 홍해가 갈라지는 이적을 직접 목도했습니다. 세계 최강 군대가 모든 무력과 수단을 다 동원했어도 양치기 노인의 낡아빠진 지팡이 하나를 감당하지 못하고 11전 전패를 당했습니다. 지팡이 뒤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그렇게 생생하게 체험하고도 당장 눈앞에 보이는 환경에 매달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부족한 믿음과 짐짓 당신을 배역하는 심정을 훤히 알고도 하늘 문을 여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반석에서 생수를 내셨습니다. 본 시편 기자의 표현대로 “사람이 권세 있는 자의 떡을” 먹었습니다. 참으로 위대하며 사랑이 넘치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자꾸만 그런 떡이 먹고 싶어집니다. 특별히 요즘 같은 어려운 시기에는 더 그렇습니다. 그러나 잠시만 다시 생각해 봅시다. 신자라면 누구나 사실상 하나님의 권세 있는 떡을 항상 먹고 있는 것 아닙니까? 별로 실감이 나지 않습니까? 그럼 현재 먹고 있는 떡이 사단이 마련해준, 아니면 스스로 만들어낸 떡입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건강한 신체와, 재물을 얻을 여건과 능력을 하나님이 주셨다는 너무나 당연한 신앙 원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진리를 새삼 상기시키려는 의도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당장 먹을 것 마실 것 없으면 지금껏 체험했던 하나님의 큰 능력을 까마득히 잊어버릴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체험을 회상하며 그분의 능력만 붙들고 빨리 구원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힘들수록 그분을 의지하는 믿음과 열성은 자연히 더욱 뜨거워집니다. 아니 솔직히 힘들어야만 기도하지 않습니까? 거기다 불평과 의심이 스치듯 들면, 또 혹시 죄를 지으면 기도 응답에 방해될까 전전긍긍하지 않습니까? 요컨대 우리의 믿음은 환난이 닥쳐야 비로소 바로 섭니다.

그런데 오늘날 신자들이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의 믿음을 경시하지만 사실 그 속내는 그들과 하나 나을 것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설마 굶겨 죽이려고 먹고 마실 것 하나 없는 광야로 이끌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너무나 간단한 진리에 생각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실제로도 광야로 우회시켰지만 목적지 가나안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는 여정이 아니었습니다. 갖고 있던 가축을 잡아 끼니를 때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엘림 같은 오아시스를 만나게도 해주실 것입니다. 무엇보다 설령 며칠 굶어도 인간은 그리 쉽게 죽지 않습니다.

신자라고 환난을 겪게 하시는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까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허기와 갈증에 시달리다 못해 완전한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는 최소한 그분의 섭리와 권능을 결코 잊어선 안 됩니다. 그것이 바로 불신자와 다른 점이지 않습니까?

심지어 이유 없는 죽음이 닥쳐도 그분만의 온전한 뜻이 있고 더 큰 화액 전에 데려가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신자가 죽는 죽음의 방식은 셋뿐입니다. 소명을 실천하다 핍박받아 죽는 순교입니다. 아무 불평 없이 오히려 감사하며 죽을 것입니다. 병이든 사고든 의식도 못하고 졸지에 죽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평이 개입될 여지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죽을 때까지 그런대로 의식이 있는 것입니다. 생전에 아무리 힘든 일만 겪었다 해도 하나님께 자신의 영혼을 전적으로 의탁하며 죽을 것입니다.  

결국 신자에겐 어떤 죽음이 닥쳐도 억울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오직 하나님의 은혜 안에 붙잡혀 있고 죽음으로 오히려 그 은혜는 완전해집니다. 죽음에 대해 미리 염려할 것도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바꿔 말해 신자는 단지 살아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오직 그분께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장의 고통 때문에 감사가 쉽게 나오지 않아도 최소한 현재 그분의 권능과 은혜 아래 있음을, 아니 그 동안에도 단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식사 기도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기독교의 한 의식이자 신자의 의무입니까? 범사를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는 고백입니까? 그 모든 것을 넘어서 “감히 인간인 주제에 권세 있는 하나님이 주시는 밥을 실제로 먹고 있다”는 온전하고도 체험적인 실토여야 합니다. 그렇다고 이전에 큰 은혜를 주신 것과 비교해 보니 이만해도 감사하다는 정도가 되어선 안 됩니다. 하나님은 절대 나를 당신의 기분 내키는 대로 다루지는 않는다는 확신의 고백이어야 합니다.

요컨대 단지 죽지 않고만 있어도, 사실은 죽음에 이르렀어도 그래야 하지만, 감사해야 합니다. 너무나 힘들어 기도를 오래 동안 했는데도 도무지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 도져가고 있어도,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의심과 불만이 나도 모르게 나와도 여전히 감사해야 합니다.

정말 엄밀하게 불신자와 비교해 보십시오. 아니 믿기 전의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평가해 보십시오. 어려움을 겪기는 지금이나 그 때나, 또 지금의 다른 불신자와 대동소이하지 않습니까? 앞으로도 어려움이 계속해서 닥칠 것도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신자와 확실하고도 가장 크게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이제는 권세 있는 자와 화목한 관계가 되었고 또 그 관계가 절대 취소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지 않습니까? 어쨌든 권세 있는 그분을 믿고 그분과의 관계를 깨고 싶지 않으니까 비록 의심과 불만이 따르더라도 기도하는 것 아닙니까? 심지어 신자가 죄악에 빠져 넘어져 있어도 그분의 권세 안에서 넘어진  것이지 넘어진 후에야 그분의 권세가 발동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더 견고한 믿음과 더 진정한 기도가 필요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어려운 때는 따로 배우거나 훈련하지 않아도 자연히 그렇게 됩니다. 정작 필요한 것은 통상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아무 이유 없이 굶겨 죽일 리는 절대로 없다는 너무나 자명(自明)한 진리를 확고하게 붙들어야 합니다. 사탄이 자꾸만 신자의 눈을 주위 환경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 간단한 진리 이상 사실상 신자에게 큰 은혜와 위로가 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참 권세는 일용할 양식에 있지 오병이어 같은 엄청난 기적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그런 기적은 두 번만 일으켰는데 믿음을 견고케 할 목적이었지 배불리 먹이는 것에 뜻이 있지 않았습니다. 가장 군급한 환난 중에 필요한 것도 사실은 일용할 양식이지 대박 같은 은혜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와 메추라기만 소망하는 것은 자신은 놀고먹는 대신에 하나님을 종으로 부려먹자는 심보거나, 더 맛있고 화려하고 푸짐하게 먹으려는 욕심 둘 중 하나일 뿐입니다. 당신은 지금 혹시 큰 환난 가운데 있습니까? 그럼에도 정말 권세 있는 자가 주시는 밥을 먹고 있다는 확신이 있습니까?

6/14/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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