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과연 믿을만한 책인가?

조회 수 990 추천 수 10 2012.08.21 22:2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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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과연 믿을만한 책인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기독교의 창조주 신앙    

지금껏 기독교가 미처 모르고 범해온 잘못 아닌 잘못이 하나 있다. 거의 모두가 간과하고 있지만, 언제나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믿어라.”고만 권해온 것이다. 전혀 잘못된 진술이 아니다. 영원불변의 절대적 진리다.

그러나 그 권면을 듣는 불신자로선 하나님부터 안 믿어지는데 그가 세상을 창조했다는 사실은 더더욱 안 믿어질 것 아닌가? 도무지 수긍 안 되는 사안 두 개를 겹쳐놓았다. 자기 생각은 아예 무시하고 맹목적인 믿음만 강요한다 싶어 더 반발할 수 있다. 조금 과장해서 비유하자면 현대문명과 접촉이 전혀 없던 아마존 미개인에게 이젠 스마트폰이 휴대용 컴퓨터를 대체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라고 권하는 것과 같다. 전화기도 모르는데 스마트폰과 컴퓨터는 더더욱 감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젠 불신자에게 창조주를 소개하는 순서를 조금 달리할 필요가 있다. 그분을 믿으라 하기 이전에 창조와 진화 중에 하나를 먼저 확실히 하라고 말이다. 창조가 확실하다면 그 배경에는 필연적으로 절대자 창조주가 있는 법이다. 그럼 하나님을 믿어라 말라 권할 것도 없이 창조주도 함께 믿게 된다. 물론 진화가 옳다고 믿으면 하나님은 부인될 수밖에 없다.  

기독교 진리의 전파를 위해 창조에 대한 더 세밀한 논증과 변증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다행스럽게도 최근에는 그런 부분이 많이 보완되어지고 있다. 문제는 예기치 못한 또 다른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창조가 확실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데, 다른 말로 진화가 틀렸다는데 너무 초점을 맞추다보니까 소모적인 과학 논쟁으로 흐르게 된다는 것이다.  

진화와 창조 둘 다 과학적으로 완전하게 입증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물론 진화론자의 얼토당토 않는 주장이나 궤변에 대해선 구체적인 과학적 자료를 갖고 반박해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사항은 기독교가 말하는 창조주 그분에 대한 올바른 소개가 반드시 따라야만 한다. 불신자가 기독교신앙을 처음부터 올바르게 접할 수 있도록 말이다.
    
대표적 예로 창조한 후에 만물이 운행되는 법칙만 자연에 심어놓은 뒤에 손을 놓고 있는 조물주는 기독교가 말하는 창조주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세상사에 전혀 관계치 않다가 죽은 후에 선행여부로 심판만 하는 신과도 전혀 다르다. 그런 조물주나 심판주는 이 땅에 사는 동안의 인생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인간이 신으로 경배할 의미나 가치가 없다. 많은 지성인들이 창조는 수긍하면서도 신에 대한 이해가 그런 수준으로 그치니까 기독교의 하나님을 구태여 믿을 생각을 못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창조주는 영원토록 살아 역사하는 절대자다. 모든 인간의 모든 차원을 전적으로  주관하는 절대자다. 정말로 그분께 겸손히 마음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인으로 받아들이면 그분의 거룩하고 온전한 통치를 현실의 삶에서 세밀히 체험할 수 있다. 성령의 간섭으로 그분의 뜻도 분별하여서 순종하며 아름답게 살 수 있다.

창조주는 태초에만 계시지 않았다. 바로 지금 이 순간과 앞으로도 계속해서 모든 신자 개개인과 일일이 의사소통하는 분이다. 그분은 인간을 향해 말씀하고 계시며 인간도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 그런 대화는 이미 기록된 말씀인 성경을 통하는 경우가 가장 빈번하다. 거기다 내면에서 들리는 미세한 음성이 성령의 간섭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인지 판별하는 기준도 성경이다.

요컨대 성경을 읽지 않으면 기독교 신앙을 가질 수 없다. 그 반대로 성경대로 믿지 않는 믿음은 창조주 하나님과 아무 관계없다. 창조주 하나님과 아무 관계가 없다면 구원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성경을 통해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이 말하는 바대로의 구원이 아니면 구원으로서 아무 효력이 없다.    

창조를 변증하지 않는 성경

성경은 창조가 옳다고 구태여 변증하지 않는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고 맨 처음 시작하는 단 한 구절의 선포로 그친다. 한마디로 창조는 절대적 진리라는 것이다. 창조에 대해 논리적 과학적 증거, 비교, 분석, 판단이 전혀 필요 없다는 뜻이다.

창조는 과학 이전이자 초월이다. 과학 차제가 창조로 인해 생겨난 것이다. 창조를 과학더러  증명하라는 것은 엄마 배에서 난 아이더러 당장 엄마가 되어보라는 것과 같다. 그런데도 기어이 그 증거를 찾고 싶다면 창조된 피조물 전체에 드러나 있는 그분의 신성을 보면 된다.  그래서 진화가 틀렸고 창조가 옳다고 판단되면 구태여 창조주에 대한 증거를 따질 것도 없이 창조주를 믿으면 되는 것이다.  

만물은 한분 하나님의 창조에 의해서 이 땅에 존재케 되었다. 무에서 유가 창출된 것이다. 무에서 유를 만들 수 있는 분은 오직 그분뿐이다. 하나님은 만물의 근원이자 만물이 만물로서 존재할 수 있는 힘도 오직 그분으로만 공급받는다.

창조에 대해 성경이 구체적인 변증 없이 선포만 한다고 해서 무조건 믿고 보라는 뜻이 아니다. 모든 인간더러 자신의 기원에 대해 정말로 심각하고 진지하게 숙고해보라는 것이다. 자신이 태초부터 항상 존재해 있었던 물질에서 발전되었기에 여태껏 아무 목적 없이 그저 존재만 하는 물질에 불과한지를 말이다. 그래서 자신의 마지막도 물질로써 그저 썩어 없어져야만 하는지도 말이다. 아니면 자신이 이 땅에 존재케 된 분명한 목적과 의미와 가치가 따로 있음을 믿고 그것이 과연 무엇인지 따져보고 싶은지를 말이다.

성경의 첫째 구절은 아무 변증 없는 창조 선언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인간은 절대로 우연히 물질에서 출발해 물질로 끝나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창조에 대한 것은 한절로만 그쳤지만 앞으로의 모든 구절에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성경은 창조주와 창조된 피조물, 그 중에서도 특별히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책이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창조만 해놓고 손을 놓고 있는 신이 결코 아니다. 인간 역사에 실제로 개입할 뿐 아니라 각 개인의 존재와 인생에도 당신만의 특별한 계획을 갖고 일일이 간섭하시는 분이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계시해놓은 책이 바로 성경인 것이다.

그럼 성경이 과연 그러한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 또한 객관적 증명이 가능한 문제는 아니다. 하나님이 과학적 입증이 안 되기에 그분의 말씀 또한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창조가 확실하다면 창조주도 확실하듯이, 성경이 말하는 창조주 하나님이 정말로 인간의 경외를 받을 만한 이유와 근거와 가치가 있다면 성경도 마땅히 그분의 살아 있는 말씀이 된다. 또 성경이 정말로 인간의 정체성을 바르게 밝히고 있다면 자신의 참 정체성을 알고 싶은 자들에 가장 적합한 책이 될 뿐 아니라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도 확정된다.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야말로 인간에 대해 가장 정확히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이 정말로 하나님 말씀인지 따지기 전에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과연 성경이 믿을만한 책인가? 아주 오래 전에 저작된 데다 수십 명의 저자에 의해 쓰여졌다. 또 후대 기독교인들이 인위적으로 고안해 낸 종교적 계명이나 사상에 불과한지, 혹시라도 자기들 믿음을 변호키 위해 고의로 변조된 부분은 없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또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은커녕 인간이 지어낸 황당한 이야기라는 외부의 비판이 바른 것인지 살펴야 한다.
  
가장 신뢰할 만한 책 성경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1440년경 활판인쇄술을 발명하기 전까지 서구(西歐)에서 읽혀진 모든 책은 손으로 필사(筆寫)된 것이다. 파피루스, 양피지, 종이에 잉크로 기록된 원본을 두고 여러 권으로 베껴 쓰는 형태로 보관, 배포되어 왔으며 성경도 예외는 아니다. 거기다 성경시대에 씌어졌던 책들의 원본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현존하는 책 모두가 필사본이다.

필사본은 복사과정 중에 크고 작은 오류가 발생하게 마련다. 변조 및 개작의 가능성도 있으므로 오래된 책의 정확성 여부는 필사본의 진위여부에 달려 있다. 우선 원저자는 얼마든지 자기 저작을 개정할 수 있는 반면에 필사자가 의도적으로 개작하는 것만 문제가 된다.  

그럼 필사본간의 불일치가 발생하고 반드시 여러 사본 중 어느 것이 진짜인지 논란이 되기 마련이다. 필사자가 원본을 수중에 넣었거나, 그 원본이 없어진 것을 확인하지 않고는 함부로 고칠 수 없다는 뜻이다. 고대의 한정된 자재와 필사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 등을 감안해 볼 때 필사자가 구태여 원본을 개작할 이유는 현실적으로 별로 있을 법하지 않다.

어찌 되었던 필사본은 고의든 실수든 오류 내지 개작의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 진위 여부를 가리려면 두 가지 요소를 감안해야 한다. 첫째, 현재 소지하고 있는 최고로 오래된 필사본 연대가 원본과의 시차(時差)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오류나 변조의 확률도 당연히 낮아진다는 점이다. 둘째, 믿을만한 필사본의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상호 비교하여 무엇이 오류이며 어디에 변조되었는지 찾기 쉽다는 점이다.

서양 문화사의 시초이자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호머의 '오디세이'의 경우를 보자. 집필은 BC 900년경에 이뤄진 것으로 보는데, 최고(最古)의 사본은 BC 400년경으로 그 편차가 500년 정도다. 플라톤의 '대화'는 집필은 BC 400년경인데 반해 AD 900년경의 필사본이 최고이므로 무려 1,300년의 시차가 있다.

이에 비해 신약 성경은 27권 모두 완성된 것이 AD 100년경인데 AD 200년경의 필사본이 완간 상태로 남아 있으며, 부분적으로는 AD 125년의 것도 남아 있다. 최초 집필 후 한 세대가 채 지나기 전의 것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필사본의 숫자로 살펴보아도 완간 혹은 부분 다 합쳐서 '일리어드'는 643, '대화'는 7인데 반해 구약성경은 약 10,000개, 신약성경은 약 5,000개 남아 있다.

유대인과 기독교인이 성경을 필사할 때의 원전에서 단 하나라도 더하거나 빼지 않으려고, 아주 조심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바 대로다. 구약을 필사했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도 함부로 부르지 않았고 다른 별칭을 사용했다. 구약을 필사하다 그 이름이 나오면 붓을 빨고 옷깃을 바로 잡았다. 그런 자들이 필사에 오류나 임의 개작을 했을 리는 만무하지 않는가?

신약성경을 필사한 기독교인들도 초기엔 유대인들로서 마찬가지로 신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고 아주 두렵고도 신중하게 대했다. 거기다 신약성경 자체가 필사의 오류에 대해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22:18,19) 한마디로 오류를 만드는 필사자는 하나님이 지옥 형벌로 심판하겠다는데 어찌 최선을 다해 필사하지 않았겠는가?

성경 필사본의 숫자가 다른 책에 비해 많은 까닭도 교회나 수도원들이 돌려가며 회람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라도 필사자들이 더 엄격하게 복사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어떤 독자가 한 곳에서 읽었던 성경 내용이 다른 곳의 그것과 다르다고 문제를 제기하면 그 필사자에게 책임이 돌아갈 것은 불 보듯 빤하지 않는가?

물론 성경 필사본에도 분명 어느 정도 오류는 있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 필사상의 오류가 전부다. 계속되는 단순한 작업에 지치거나 주의력이 산만해져서 생기는 실수로 알파벳에 점을 빠뜨렸다든지, 다른 철자로 오인해서 적었다든지, 숫자를 잘못 보았다든지, 같은 단어를 두 번씩 적었다든지 하는 것들이지 내용상에 해석이 달라질 만한 것들이 아니다. 혹시라도  심각한 오류가 발견되어도 그 많은 필사본을 서로 대조해보면 어느 것이 옳은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요컨대 성경에는 오류라고 할 만한 오류는 없다는 뜻이다.

이처럼 어느 모로 따져도 성경은 원저자의 원본 그대로 필사되어 전수되었을 가능성이 현존하는 고대의 어떤 책보다 가장 높다. 성경의 진위나 개작 여부를 문제 삼으려면, 오히려 호머,·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세네카 같은 고대 현자들의 저작 모두는 더더욱 의심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네 자신을 알라'는 격언은 소크라테스의 말이라는데 하등 의심하지 않으면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라고 한 예수님의 말은 끝까지 지어낸 이야기라고 우긴다.  

진위여부에서 가장 신뢰할만한 성경을 두고 오히려 시비가 가장 많다는 사실은 참으로 흥미롭다. 모든 인간에게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무조건 부인하고픈 마음이 있다는 뜻이다. 인간이 이 땅 주인으로 행세하고 싶은 것이다. 자기 멋대로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데 하나님더러 훼방 놓지 말라는 것이다. 거기다 물질에서 진화된 물질로써 그냥 아무 의미 없이 살다가 죽겠다는 뜻이다.

이 두 생각 다 성경이 말하는 바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또 그처럼 인간의 정체성을 정확히 진술하는 종교경전은 성경 말고는 없다. 그 원본에 대한 신뢰성은 물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성경의 자증적(自證的) 선언에 대한 신뢰성도 너무나 분명한 책이 성경이라는 말이다.  

8/2/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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