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뉘우치셨다니 이해가 안 됩니다.

조회 수 151 추천 수 0 2015.02.05 00:2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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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뉘우치셨다니 이해가 안 됩니다.


[질문]


성경을 읽다보면 하나님께서 후회하셨다. 돌이키셨다. 뉘우치셨다는 표현을 읽을 때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구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심에 따라 신실함을 보이시는 것이고 사람에 대한 한없는 사랑이라고 생각해 이해를 해 보았지만 또 몇 몇 구절에서는 솔직히 이해가 잘 안되었습니다.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 곁에 있는지라.”(삼하24:16)

다윗이 인구 조사를 한 것은 잘못이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결과로 백성들이 죽음을 당하는 일에 있어 백성들이 그 일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지만 그들이 죄 없는 무고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들은 죄인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죽임을 당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하나님은 후회가 없으시다고 배웠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고 인생이 아니라 식언을 하지도 않으신다고 배웠습니다. 그 모든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의지하고 있고 지금도 그 모든 것을 의지하면서 제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항상 감사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예전에 담임 목사님께도 여쭤보았지만 시원한 대답을 해 주시지 못하고 주석서를 한참 찾아보신 뒤에 목사님께서도 고민해 보겠다고 하셨지만 아직까지 답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주석서를 찾아보면 하나님께서는 변개하심이 없다는 진리와 함께 하나님께서 악에 대하여 탄식하셨다는 표현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이 말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고민해 보면서 만약 하나님께서 뉘우치셨다는 부분을 다른 부분들처럼 하나님께서 슬퍼하셨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도 이 일로 인해 죽음을 당한 백성들이 안타깝고 그들이 부당하게 죽임을 당했다고 인정하시는 것이 되는 것은 아닌지 싶어 생각이 복잡합니다. 나름대로 이 구절에 대하여 답을 찾아보려고 여러 가지로 고민하고 있지만 하나님이 후회하셨다는 말씀이나 뉘우치셨다는 말씀들을 읽을 때마다 고민이 되었는데 이 부분이 이번에는 너무 걸림이 되어 질문 드립니다.

[답변]  

하나님이 이해하기 힘들 때는?



많은 신자들이 곤혹스러워 하는 점을 질문해주셨습니다. 성경에서 특별히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대하여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을 때에 그 의문과 곤혹을 쉽게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부모님, 육신의 아버님과 어머님을 대입하여서 묵상해보는 것입니다. 동일한 상황과 여건에서 과연 부모님은 나에게 어떻게 행하셨는지 곰곰이 따져보라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부모는 이런 저런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도 동일한 잘못을 계속 범하면 처음에는 훈계하다가, 다음에는 가볍게 징계하다가, 그럼에도 누적되면 그 때는 앞으로 또 그러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고, 심지어 그럼 호적에서 파내버릴 거라고 엄포(?)를 놓습니다.

엄포라고 표현한 이유는 아무리 자식이 그 후에 또 잘못을 범해도 이실직고하고 용서를 빌면 부모로선 용서해줄 작정이기 때문입니다. 또 자식이 제 발로 가출하지 않는 한 부모는 쫓아내지도 않으며, 자식이 친자확인 소송을 걸지 않는 한 부모 쪽에서 먼저 호적에서 파내지도 않습니다. 친자가 확실하기에 그런 소송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요컨대 부모는 이미 용서해줄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서도 자식에게는 절대로 용서 않는다고 단단히 이릅니다. 벌을 주거나 정죄할 뜻이 아니라 순전히 자식을 훈육할 목적입니다. 또 다시 자식이 잘못하고 용서를 빌면 어떻게 말합니까? “이번 한번만 원래 계획을 수정해서 용서해줄 테니 다음에는 절대로 그러지 말라!”고 합니다.

그럼 아버지가 뜻을 뉘우친 것입니까? 계획을 번복한 것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자식에게만 아버지가 뉘우치고 번복한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아버지로선 처음부터 아무리 강하게 경고해도 자식이 잘못을 범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 또 용서해줄 준비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식의 도덕적 상태와 사리를 판단하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 맞추어서 말해준 것일 뿐입니다.

제가 부모라고 하다가 갑자기 아버지라고 호칭을 바꾼 까닭은 이런 일은 주로 아버지가 도맡아서 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벌은커녕 엄포도 못 놓고 한없이 용서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버지는 하나님의 공의를, 어머니는 하나님의 사랑을 대변합니다. 따라서 상기의 의문은 하나님에게 공의와 사랑이라는 두 속성이 있는데 사랑에만 비추다보니 혹은 사랑에 우선을 두고 생각하다 보니 생길 수밖에 없는 착오 내지 오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뉘우친(?) 최대의 사건      

상기 질문에 인용한 사건은 하나님이 뉘우친 것으로는 약과에 속합니다. 다윗과 그 신하들은 이미 인구조사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선지자 갓을 다윗에게 보내어 세 가지 형벌, 기근과 전쟁과 염병(구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보편적인 세 방식)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했습니다. 벌을 받을 자에게 벌의 종류를 고르라고 하는 것은 징계의 목적을 다하면 벌을 멈추겠다는 뜻을 벌써부터 갖고 계심을 은연중에 시사(示唆) 한 것입니다.  

이보다 더 엄청난 하나님의 번복 사건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의 아론과 금송아지 사건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율법을 전수 받고 있는 사이에 산 밑에선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 앞에서 춤추고 먹고 마시며 음란하게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출32:9,10)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전부를 멸하고 모세만 살려서 모세의 후손으로 새로운 큰 나라가 되게 하겠다고 합니다.

아브라함더러 큰 민족이 되게 해주겠다는 언약(창12:2)이 취소될 판입니다. 모세가 바로 그 언약을 상기시키며(13절)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12절)라고 간절히 호소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14절)고 번복했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인간처럼 하루에도 뜻을 이렇게 저렇게 쉽게 바꾸는 분입니까? 금방 화를 냈다가 금방 풀릴 정도로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분입니까? 당신의 백성이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면 못 이긴 척하고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분입니까? 인간이 치성만 많이 바치면 하나님의 뜻마저 바꿀 수 있는 것입니까? 모세가 어떤 반응을 보이나 시험해보려고 한 번 떠본 것입니까? 그 어느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스라엘을 진멸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당신을 외면하고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는 데도 그랬습니다. 아브라함과 언약한 내용을, 그 전에 아담에게 주신 원시복음을, 추호도 가감 변경 포기하실 분이 결코 아닙니다. 그분은 영원토록 신실하신 분입니다. 정말로 식언치 아니하시고 후회가 없으십니다. 아브라함부터 우상을 숭배하는 중에 불러내었고 그 후에도 여러 잘못을 범해도 끝까지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을 그를 통해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숭배 죄에 대해서 그만큼 진노하셨다는 뜻입니다. 정말로 진멸하실 정도로 자기 백성의 죄를 저주하셨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은 정말로 당신의 백성이자 자녀였기 때문입니다.

다른 집 자식이 잘못하면 친부모가 아닌 이상 야단칠 수도 없고 그냥 혀만 쯧쯧 차고 치웁니다. 반면에 자기 자식은 회초리로 엄하게 다스리는데 그 목적은 올바르게 자라서 온전히 자신을 책임질 줄 아는 성인이 되라는 뜻입니다. 피로 맺어진 관계이기에 자식이 아무리 잘못해도 또 부모가 아무리 자식에게 화를 내어도 그 관계 자체가 변질 되지 않습니다. 세상 어떤 것도 그 관계를 훼손시킬 수 없습니다.

다윗에게 하신 말씀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다윗은 이미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노라”(삼하24:14)고 했습니다. 벌을 받더라도 하나님께 직접 받겠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성경은 “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온역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15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온역의 범위와 시기를 정해놓고 벌을 주었습니다. 화가 불같이 치밀어서 온역을 주어놓고 너무 심했다 싶어서 뉘우치고 그 뜻을 돌이킨 것이 아닙니다.    

신인동형법(神人同形法)

성경은 성령의 영감(靈感-inspiration)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啓示-revelation)를 받아 인간 저자가 기록한 책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세상만사와 인간 개인을 주관하시는 당신의 뜻과 계획을 알게 하려고 인간의 말로 인간의 수준에 맞추어서 말씀해주신 것을 받아 기록한 책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수준 맞춤에는 하나님이 직접 당신을 인간 수준에 낮추어서 당신의 뜻을 표현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인간이 하나님을 자신들의 수준에 따라 체험한 반응을 기록하는 표현도 있습니다.

이런 표현을 전문용어로 신인동형법(神人同形法-anthropomorphism)이라고 합니다. 가장 쉬운 예로 신들이 인간과 동일한 행동과 감정을 보여주는 그리스신화를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신들은 인간이 범하는 모든 죄를 동일하게 자행합니다. 모략, 술수, 사기, 간음, 폭행, 도적, 살인 등을 일삼습니다. 하나님과 전혀 관계없이 인간의 상상으로 지어낸 판타지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성경의 신인동형법에 따르면 하나님에게 전혀 하자가 없습니다. 질문자께서도 유일하게 의아해 하는 “그분의 뉘우침도” 사실은 뜻을 바꾸거나 후회한 것이 아님을 상기에서 설명 드렸습니다. 그분은 인간이 아무리 죄에 찌들어 타락했고 하나님의 백성들조차 반복해서 동일한 죄를 지어도 오직 당신의 완전하신 공평과 정의로만 다스립니다.

이런 신인동형법 표현은 성경에서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어떤 사건이나 만남을 통해 직접 교통하는 모습을 설명할 때에 주로 동원됩니다.(상기의 삼하24:16, 출32:9,10) 반면에 절대적인 영적 진리를 선포할 때는 신인동형법은 사용되지 않습니다.(민23:19의 경우) 이 둘을 같은 선상에 두고 이해하니까 혼동이 생기는 것입니다.

또 말씀드린 대로 인간이 하나님과 교제하며 체험한 내용을 기록할 때에도 많이 사용됩니다. 예컨대 시편에서 하나님이 자기 기도를 듣지 않는다고 불평하지만 그분이 성도의 기도를 듣지 않을 리는 없는 것입니다.

최대의 신인동형적(神人同形的) 사건

이처럼 성경기록의 상당 부분이 신인동형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하나님의 계시가 실제로 그랬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인간에게 당신의 실체를 그대로 보여줄 수 없습니다. 그분은 더러움과 죄와는 절대 공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이 그분의 실체를 보는 순간 즉시로 소멸되어버립니다.

나아가 그분의 그분다우심과 그분의 절대적 진리도 인간에게 전부 다 정확히 설명해주지 못합니다. 그래봐야 인간은 절대로 그 전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분은 전지전능하고 완전하십니다. 인간이 이해 수용 가능한 범위 안에서만 당신을 계시하셔도 당신께서 드러내고자 하는 절대적 진리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으며 또 그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신인동형적 계시 중에 절정을 이룬 것이 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8)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본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라.”(요12:44,45)

하나님 독생자가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완전한 인간 제물로 십자가에 드려져 영단번의 대속제사를 이뤘습니다.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게 하려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죄를 심판하는 공의와 죄인을 용서해주는 사랑 둘 다 완벽하게 성취되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성육신하지(신인동형법을 사용) 않고 그 본체로 왔다면 인간은 그분과 가르침, 치유, 교제를 전혀 이루지 못합니다. 주님을 쳐다보기도 전에 아예 다 진멸될 뿐입니다. 인간을 구원하러 인간으로 오신 것입니다. 반면에 재림 때는 신인동형법을 사용치 않고 당신의 영광을 입은 채로 오시기에 인간역사를 심판과 구원으로 종결짓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약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신인동형법으로 이스라엘 백성과 교제하고 때로는 야단치고, 엄포(?) 놓고, 그러다 뉘우치며 번복했던 모든 일(기록)들은 바로 이 최대의 신인동형법인 십자가의 예표였던 것입니다. 그런 표현을 하나님의 사랑만으로는 온전히 납득이 안 가지만 부모자식 간의 관계에 입각해서 그분의 공평도 함께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요컨대 하나님으로선 “인간을 위해서” 실제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고 또 그것을 그대로 기록한 성경도 그런 방식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경의 기록이 인간 이해 수준으로는 그래보여도 하나님의 성품, 권능, 신실함에서 단 한 치라도 변개, 수정, 가감이 있었던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럼 아예 하나님이 아니지 않습니까?

1/16/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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