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종교와는 상종도 말라

조회 수 789 추천 수 73 2009.11.03 20:02:29
타종교와는 상종도 말라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민이 그 분향하는 신들에게 가서 부르짖을찌라도 그 신들이 곤액 중에서 절대로 그들을 구원치 못하리라  유다에 네 신들이 네 성읍의 수효와 같도다 너희가 예루살렘 거리의 수효대로 그 수치 되는 물건의 단 곧 바알에게 분향하는 단을 쌓았도다.그러므로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거나 구하지 말라 그들이 그 곤액을 위하여 내게 부르짖을 때에 내가 그들을 듣지 아니하리라.”(렘11:12-14)


에레미야 시대 유다의 영적 타락이 얼마나 심했는지 성읍 숫자만큼 신들이 많다고 합니다. 또 동네마다 바알을 위한 단을 쌓았다고 합니다. 바알만 섬기면서 바알의 단이 많았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닙니다. 섬기는 우상 신들의 종류도 그 만큼 많았고 또 바알은 당연히 공통적으로 섬기되 나름대로 온갖 상상을 다해 각종 미신과 절차를 스스로 만들어 섬겼다는 두 가지 의미가 다 있습니다.

한 마디로 동네마다 그 동네의 섬기는 신이 따로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스스로 신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참 하나님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여호와께 부르짖어도 구원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외에 신이 있을 리가 없으므로 실제로 존재하는 신들도 아닙니다. 그러니 아무리 부르짖을찌라도 자기들이 섬기는 신들조차 그들을 절대 구원하지 못합니다.

인간들이 너무나 어리석지 않습니까? 하나님에게도 아예 버림 받고 또 열심히 섬기는 우상들도 인간에게 등을 돌렸지(?) 않습니까? 고립무원의 상태가 되었습니다. 어느 곳에서도 도움을 받을 길이 없습니다. 동네마다 신들이 있었다는 것은 동네마다 어려움이 너무 많고 또 그 지역 특유의 어려움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사람들로선 그런 어려움을 해결 받고자 안간 힘을 써보지만 사실은 하나도 해결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일 뿐 아니라 사실은 스스로 자초한 것입니다. 우상은 존재조차 하지 않으니 우상이 사람들로부터 등을 돌릴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우주만물을 주관하시는 참 하나님께 등을 돌리는 바람에 정작 그분의 인도를 전혀 받지 못합니다. 당연히 온갖 환난과 문제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잘못한 것들을 여전히 어리석고 죄 많은 인간들이 스스로 우상을 고안해 내어 그 문제들을 해결하려니 해결될 리는 전혀 없습니다. 마치 방정식을 전혀 모르는 학생이 수학 시험 빵점을 먹자 자기 스스로 방정식 해법을 만들어 내어 그 방정식을 풀겠다고 덤빈 꼴입니다. 결론은 빤합니다. 영원토록 망하는 것입니다. 참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한에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예 기도조차 하지 말라고 했으니 이제 더더욱 큰일입니다.

에레미야 시대의 이야기만 아닙니다. 바로 오늘날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동네마다 신들이 있다는 것은 바로 민족, 종족, 국가, 지역 마다 다 다른 종교나 토속적인 신을 섬긴다는 뜻입니다. 요즘 대다수 지성인들과 심지어 기독교 진보주의자들마저 목청 높여 외치듯이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타 종교를 포용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런 현상 아닙니까?

그럼 그런 종교를 믿는 자들이 어떻게 됩니까? 참 하나님에게도, 그들이 믿는 신들에게도 구원을 받지 못하는 데, 말하자면 멸망으로 가는데 그것이 옳고 선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꼴이지 않습니까? 다른 말로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멸망으로 이끌 책임이 종교인들에게 있다는 것이며 또 그것이 아주 숭고하고 위대한 일처럼 자랑하고 있지 않습니까? 한편으로 어리석고 너무나 한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쌍하다 못해 가슴이 답답해지기만 합니다.

타종교를 인정해 주고, 타 종교인들도 존경해 주어야 하고, 타종교와 합동으로 인류의 복지와 평화를 위해서 협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말을 바꾸어 봅시다. 멸망으로 가는 종교를 인정해주고, 멸망으로 가고 있는 사람도 존경해야 하고, 기독교도 타종교와 힘을 합해 함께 멸망으로 갑시다. 도대체 이것이 말이 됩니까? 아니면 그들이 멸망으로 가는 길이 외로울까봐 멸망 직전까지 동행해주고 거기서 작별하고 돌아올 셈입니까? 그런데 그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아니 하나님이 잘하는 짓이라고 인정해 주겠습니까?

타종교는 절대 인정해 주면 안 됩니다. 타종교인들도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타종교와는 종교 외적 행사에 그것도 주관자가 종교단체가 아닐 때에만 함께 참석해야 합니다. 예컨대 광복절 기념식에는 한국이 해방 된 것을 국가가 주관이 되어 기념하는 행사라 각 종교계의 대표가 다 같이 참석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초파일에 기독교가 참석하거나 축하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이왕에 그런 메시지를 전하려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해야 합니다.

인류 복지와 평화는 절대로 인간끼리 그것도 사단의 종이 되어 있는 사람과 협력하여 이뤄지지 않습니다. 그들이 우리보다 악하고 죄가 많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그들 중에 신자보다 선하고 의로운 자 많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참 하나님의 주권적인 거룩한 통치를 믿지 못하고 심지어 인정도 하지 않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선한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까? 나아가 모든 인간이 아무리 선하고 의로워 보여도 어디까지나 인간의 기준에서 그렇지 실제로 그 영혼은 썩어서 어느 누구도 참 다운 선을 제대로 행할 능력이 아예 없습니다.    

성읍마다 신들이 있었다는 것은 사람마다 신들이 있었다는 것보다 차라리 더 나쁜 결과를 갖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우선 각 지역 특유의 문제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이유는 사람들이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보았거나 한 동네의 특출한 지도자에게, 그가 옳든 그르든, 군중심리로 맹종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오히려 후자의 경우가 더 많습니다. 알기 쉬운 예로 나찌나 공산 독재도 하나의 종교요 우상이요 신이었지 않습니까?

여러 종교(신)들이 서로 협력을 잘 해나가다가도 만약 국가적, 민족적, 종족적, 지역적 이해관계가 상충되면 어떻게 됩니까? 그 때는 인류 전체의 복지와 평화는 절대로 뒷전이고. 오직 우리 성읍의 안전만 먼저 찾습니다. 역사에서 수도 없는 실례가 있었고 지금도 TV의 국제정세 뉴스 시간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 생생한 예들이 보도되고 있지 않습니까?

역으로 말해 자기 성읍의 안전부터 생각하다보니 성읍마다 신들이 다 다르게 된 것 아닙니까? 만약 인류 전체의 복지와 평화부터 우선적으로 고려했다면 각 성읍에 다른 신들을 두는 것부터 안했어야 합니다. 이 또한, 말하자면 다른 종교들도 인정해 주자는 움직임도 방정식을 전혀 모르는 자가 스스로 방정식해법을 만들겠다는 꼴입니다.

인류 전체의 복지와 평화는 인류 전체를 지으셨고 주관하시는 분이 배제되어서는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이런 간단한 논리조차, 절대로 고매하고 신령한 진리가 아닌데도, 모르니 참으로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것도 최근에 신학을 한 아주 젊고 유능하여 기독교 차세대 리더로 꼽히는 자들이 그러니 말입니다.      

본문의 경우에도 가나안 족속이 그런 것이 아니라 유다 백성이 그랬습니다. 가나안 족속은 그래도 종교다원주의 단계에만 머물렀지만 유다는 종교혼합주의까지 흘러가버렸습니다. 전자는 인간 세상 안에서 인간의 의를 두고 서로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후자는 하나님 앞에서마저 인간의 의가 맞다고 오히려 소리 높였고 동시에 인간 세상에서도 존경 받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들이 인간들에게 왕따 당하는 것을 싫어하고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기독교는 왕따를 당하는 종교여야 맞습니다. 그 말은 신자들도 당연히 아니 기꺼이 세상과 사람들로부터 왕따 당해야 합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이렇게 말하는데 어떻게 세상에서 왕따 안 당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기독교는 왕따 종교가 될 것이라고 미리부터 선언했지 않습니까?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더 구체적으로 아예 환난을 당할 것을 각오하라고 했습니다. 나아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11:25,26)라고 세상에서 죽을 각오까지 하라고 했지 않습니까?

그래도 타종교인들을 만나야 복음을 전해 그들을 변화시킬 기회가 있지 않겠는가라고 반발할 것입니다. 그들을 상종조차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그들은 사단에 붙잡힌 죄의 노예들이기 때문입니다.

되풀이 말하지만 그들이 우리보다 도덕적인 죄를 더 많이 짓는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그들에게 종교 다원주의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아무리 설명해주어 봐야 그들 스스로의 지정의로는 결코 못 알아먹는다는 뜻입니다. 사단에게 그 지정의 자체가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이 사단과 협력하는 법이 결코 없지 않습니까? 사단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말로 인류의 복지와 평화를 위해 종교끼리, 종교인끼리 협력하는 일이 우선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참 하나님을 배제하고는 그 일이 절대로 불가능하니까 그들을 참 하나님에게로 돌이키게 하는 일이 먼저입니다.

요컨대 그들을 억매고 제 멋대로 조종하고 있는 사단의 권세부터 깨트려야 합니다. 그 일은 하지 않고 사단의 졸개와 사이좋게 놀려고만 합니다. 사단의 졸개들이 장악하고 있는 세계에 살고 있으니까 그 졸개들의 눈치가 보여서 그들을 따르고 싶거나, 아니면 우리마저 무엇이 진리인 줄 몰라서 그렇습니다.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진리가 비진리와 타협하거나 혼합하면 둘 다 진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하나도 남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불신자나 타종교인과 교제는 하되 공적으로 그들의 종교를 인정해주는 어떤 행위도 해선 안 됩니다. 방정식의 해법 자체를 모르는 사람에게 이미 나와 있는 해법을 가르쳐 줄 생각은 않고 오히려 너희 생각으로도 어떻게 하다보면 문제가 풀릴 테니 잘 노력해 보라거나, 우리 다 같이 다른 해법을 만들어보자고 덤비는 꼴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더 중요한 경고를 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됩니다. 유다 백성이 이방 족속들과 결혼하거나 교제하는 일들도 물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다 왕국 자체는 단일 민족으로 이뤄진 일종의 폐쇄 사회로 말하자면 여호와 신앙이라는 단일 종교를 가진 공동체였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도 온갖 우상을 동네마다 다르게 섬겼다는 것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어떻게 됩니까? 종교다원주의 사회와 교류하는 문제와 상관없이 다 같이 참 하나님을 믿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마저 우상숭배로 흘렀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까? 돈, 사회적 지위, 직분으로 나뉜 파워 그룹, 온갖 교단과 교파의 교리, 심지어 예배 형식, 성경공부 세미나, 나아가 다른 것은 다 그나마 무형의 우상인데 담임 목사라는 눈에 보이는 인간 우상마저 생겼습니다. 가히 성읍마다 신을 따로 두고 단도 따로 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유다를 두고 하나님이 예레미야더러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아예 그들을 위해서 기도도 해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 자기들의 곤액을 인하여 부르짖더라도 듣지 않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분노가 극한치에 갔다는 표현입니다. 도저히 더 이상 참을 수 있는 경지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당신의 이름을 아는 유일한 백성들을 완전히 포기할 리는 없을 것입니다. 도대체 성읍마다 우상이 너무 많으니까 어느 것부터 처리해야 할지 하나님마저 난감하게(?) 된 것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지혜나 분별력이 모자라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제 특단의 조치가 아니면 회복이 안 될 정도로 교회 안에서조차 우상숭배가 만연해졌다는 뜻입니다.

그럼 이제 하나님의 심판만 남았습니까? 아닙니다. 신자들마저 자신들의 형통과 유익만을  위해서 스스로 만든 자기 성읍들의 신들을 다 버리기만 하면 됩니다. 요컨대 세상과 사람으로부터 왕따를 당할 각오를 하고 또 정말 당해야 합니다. 비진리와는 절대 타협하지 말고 오직 진리만 증거하여 환난을 받아야 합니다. 언제 어디에서든 그런 환난과 예수 안에서 맛보는 평강을 맞바꾸어야 합니다. 궁극적인 승리는 오직 예수 안에서만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일으킨 종교개혁의 모토는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o)"으로 되돌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기독교 진리를 성경대로 정립하자는 것입니다. 또 그러기 위해선 그 때까지 카토릭 사제들의 전유물이었던 하나님 말씀을 평신도와도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제 2의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합니다. 지금은 평신도들도 성경을 얼마든지 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오직 예수에게로(Sola Christos)" 돌아가야 합니다. 십자가 복음이 없는 교회는 다원주의와 혼합주의로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십자가는 오직 하나뿐입니다.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 외에 어느 것도 하나님의 십자가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당신이 직접 지신 십자가 외에 과연 어떤 것이 구원의 방주가 되겠습니까?

정말 생명을 걸고 아니 성경을 걸고 다시 말씀드립니다. 다른 종교와는 상종도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다른 종교인들은 진심으로 애처롭고도 안타깝게 여겨야 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요12:24,25) 기독교와 신자가 세상에서 왕따를 당하지 않으면 천국의 열매는 절대 못 맺힌다고 했지 않습니까?  

신자는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있기만 하면 됩니다. 종교적 업적과는 아무 상관없이 가는 곳마다, 하는 일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만 드러내면 됩니다. 세상에선 아무 이름과 영광이 없어도 아주 작은 소자 한 사람부터 그것도 당장 가능한 주위 사람부터 십자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오직 예수에게로 돌아오라고 초대해야 합니다. 다른 종교를 상종하지 않는 대신에 그 종교인을 불쌍히 여기기 위해선 그렇게 하는 길 외는  없지 않습니까? 고립무원에 빠진 이 어리석고도 어리석은 인간들을 살려낼 수 있는 분은   예수님뿐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골고다 언덕을 걸어가고 있습니까? 혹시라도 성읍마다 신을 두고 있으면서 입술로는 하나님께 울부짖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귀를 막고 있는 것도 모르고 말입니다.

9/16/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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