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나요?

조회 수 540 추천 수 8 2012.02.01 01:59:58
WCC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나요?
(세상에서 천주교는 호응을, 개신교는 비난 받는 이유는?)


[질문]


신자 친구가 제기한 질문들에 제가 답변을 제대로 못하겠습니다. “자기 가게 손님 중에 천주교인들이 많은데 같은 하나님을 믿는데 왜 우리랑 화합이 안 되느냐?, 천주교에서는 불교와도 잘 지내지 않느냐?, 왜 기독교는 오히려 지탄받는 일만 하느냐? 심지어 천주교로 개종하고 싶은 생각도 든다.”는 등입니다.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나름대로 설명해주긴 했지만 온전히 납득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의 우림과 둠밈이라는 카페에 가끔 세계단일정부나 에큐매니칼운동 같은 동영상에 천주교에 대한 것이 올라와서 들어가 봅니다. 그에 따르면 천주교가 사탄종교이며 세계단일정부를 위한 밑 작업(?)에 같이 하는 것 같아 저는 천주교가 무섭던데(?) 그걸 믿고 그대로 이야기해 줘야하는지를 모르겠어요. 널리 알려진 일이 아닌지라....  WCC도 잘 모르겠구요. 지지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의 주장을 온전히 구분하기가 어려워요 .

[답변]

먼저 본 성경문답 사이트에서 천주교와 관련된 아래 두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또 그 친구 분에게도 읽어보시라고 프린트해서 전해 주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 152 “천주교인을 전도하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요?”
# 21 “통일교, 몰몬교, 천주교에도 구원이 있는가요?”

억울한 기독교인

이런 의문이 생기고 또 그에 대한 답변을 제대로 못하는 이유는 믿음이 없거나 교리를 잘 모른 탓은 아닙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 논리적 합리적으로 따져 나가지 못한 까닭이 더 큽니다.

신앙의 문제를 논리로 푼다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영적인 차원이라고 해서 맹목적으로 믿어선 오히려 잘못이 더 많이 생길 수 있습니다. 자신이 믿는 내용을 스스로 정확히 알고 또 누가 물어도 답변을 잘할 수 있을 정도로 정리가 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말하자면 종교라는 체계, 그 종교가 가르치는 내용, 절대 불변의 영원한 진리, 또 그 종교를 믿는 신자 등등으로 구분해서 생각해야 함에도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의문과 혼동이 생기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들을 뭉뚱그려 하나로 간주해버립니다. 쉽게 말해 목사나 신자가 잘못하면 무조건 기독교나 예수님이 욕을 먹습니다. 기독교 진리 자체나 예수님에게 잘못이 있기는커녕 처음부터 끝까지 전혀 변화가 없는데도 말입니다.

정 그렇게 하려면 종교마다 정기적으로 잘못을 범하는 통계를 내어서 발표를 해야 공평합니다. 실제로는 세상 선행(善行)의 상당한 부분을(신자 숫자를 전체인구에 대비한 선행 지수는 기독교가 제일 높다는 뜻임) 이름 없는 기독교인들이 하고 있지만 그런 부분은 전혀 부각되지 않습니다. 기독교로선 억울한 측면이 많습니다. 억울하다는 것은 공평성과 합리성이 결여되었다는 뜻입니다. 제기하신 의문을 해결할 수 있는 요체도 이런 억울함을 바로 잡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물론 기독교인들이 많은 잘못을 행하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기에 우리는 세상의 비판 앞에 겸허하게 서서 자성과 갱신의 계기로 삼아야만 합니다. 그러나 내부적 회개와 변화는 계속해서 성실히 행해야 할 우리들의 몫입니다. 반면에 외부의 잘못된 반응에 대해선, 그들이 납득하든 안 하든, 그 오류를 올바른 이해로 바꿔줄 필요는 분명히 있습니다.  

생전 처음 듣는 기도

이전에 목회할 때의 일입니다. 천주교인이었던 한 자매가 개신교로 개종하여 저희 교회에 출석하면서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처음에 개신교인들 구역예배에 가서 기도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라기도 하고 많이 쑥스러웠다. 당장 현실에서 개인적으로 겪고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다 설명하면서 도와달라고 하는데 마치 자기 아빠에게 이 것 저 것 부탁하는 것 같더라. 하나님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천주교에선 그런 기도를 해본 적이 없다.”

놀랍지 않습니까? 천주교에선 사전에 작성 인쇄된 기도문에 따라 읽는 것이 기도입니다. 자의(自意)에 따라 자신의 현재의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달라고 하나님 아버지에게 구체적으로 아뢰는 기도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개신교와 천주교의 기도에 드러나는 이런 차이가 함의(含意)하는 바는 상당합니다.

무엇보다 두 종교가 인식하는(각 신자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의 속성이 다릅니다. 개신교의 하나님은 각 개인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간섭 인도하는 분입니다.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의 모든 요구 사항에 대해서 항상 귀를 열어 놓고 들어주시며 또 당신의 뜻에 합당하다면 그대로 응답해주십니다. 한마디로 신자 곁에서 항상 함께 하시며 그 삶을 선하고 거룩하게 이끌어주시는 아주 친근한 하나님입니다. 실제적인 아버지와 같은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반면에 천주교의 하나님은 멀리 떨어져 있는 하나님입니다. 신자 개인의 구체적인 사정에 별반 관심이 없습니다. 신자가 바치는 미사만 받고 있습니다. 물론 천주교인들도 자신의 구체적인 죄를 회개하는 기도는 합니다. 그러나 고해성사에서 보듯이 반드시 신부를 통해서 고백해야 합니다. 사전 인쇄된 기도문이 갖는 성격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정해준 대로 모두가 똑 같이 신앙적으로 거룩한 헌신의 고백만 올려드립니다. 신자와 하나님과의 구체적인 교통이 없습니다. 신자의 일상사에 관심이 없다면 살아있지 않는 하나님과 방불합니다. 아니면 반드시 교회와 사제를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그것도 회개이든 미사든 뭔가 바치기 위해서만 잠깐 만날 수 있는 하나님에 불과합니다.  

그럼 이 두 분이 동일한 한 하나님인데 단지 종교가 다르기 때문에 다르게 가르치는 것일까요? 아니면 서로 다른  두 분의 하나님일까요? 원칙적으로 서로 다른 두 분의 하나님이 있을 수는 결코 없기에 무조건 그 두 분은 같은 분이라고 믿어야할까요? 아니면 두 분 중에 한분은 맞고 다른 분은 틀렸다고 봐야할까요?

정확하게 분간이 안 되십니까? 그 판단 기준이 있지 않습니까?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에 대해서 어떻게 말합니까? 일차적이고 개략적인 답은 둘 다 옳다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 개인의 일상사를 세밀히 인도하는 사랑과 세상의 죄악을 다스리는 공의는 하나님을 대표하는 두 속성입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천주교에선 사전 인쇄된 기도문을 따라 기도하라고만 가르치니까, 그 자매가 놀랐듯이 인간이 하나님께 개인적으로 친밀한 기도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신자들이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평생을 그런 기도를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두 하나님 중에 한쪽의 하나님만 아는 셈입니다. 물론 교회에서 하나님의 두 속성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신자가 항상 접하는 하나님은 반쪽 하나님일 뿐입니다.  

반면에 개신교는 당연히 두 하나님을 동시에 배울 뿐 아니라 기도도 두 가지 측면에서 다 하고 있습니다. 개신교인들도 사전에 인쇄된 기도문을 읽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랑의 인도를 바랄 뿐만 아니라, 자기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가 개인과 세상에 드러나길 원하는 기도도 당연히 합니다. (상기에 말씀드린 두 종교 간의 하나님 대조는 자매의 간증에 드러나듯이 기도에 대해 상호 다른 인식을 쉽게 설명한 것일 뿐입니다.)  

예수님이 이루신 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을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 10:19,20)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은 반드시 대제사장의 동물희생의 지성소 피 뿌림을 통해서만 속죄함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일 년에 일차씩 매년 그래야만 했습니다. 지성소에는 백성은 물론 일반 제사장들의 접근조차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 막는 큰 휘장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이 골고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영단번(永單番, once-for-all)의 완전한 제물로 바쳐졌습니다. 또 그 순간 중간을 가로막고 있던 그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겨졌습니다.(마27:51,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찢었다는 증거입니다.) 제사장과 동물 희생 제도를 바탕으로 하는 율법의 속죄 수단은 하나님에 의해서 폐지된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만 구원이 가능해졌습니다.

그와 동시에 이제는 십자가 은혜 안에 들어온 자는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이든 지성소 즉,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개인적으로 기도하고 교제하게 된 것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3,14)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 4:6)

사제(司祭)를 통해서만, 혹은 천주교회가 작성해준 기도문으로만 기도한다면 예수님이 이루신 십자가 구원의 열매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교회와 성직자가 그분의 공로를 가로채는 것입니다. 또 천주교가 이단인 가장 큰 이유는 교회에서 행하는 7대 성사를 거쳐야만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은혜의 구원이 아니라 행위구원일 뿐 아니라, 구약의 제사장 제도로 복원하는 셈입니다.  

한마디로 사실상 예수님이 부인되는 셈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성경보다 교황의 가르침과 교회의 전통을 더 우선시 합니다. 모든 이단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를 믿어야만 구원을 얻는다는 대명제는 입술에 붙어 있습니다. 그들이라고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추가로 인간적 공로가 필요하다고 가르칩니다. 예컨대 통일교만 해도 예수를 믿고도 문선명과 피 갈음을 해야 하며, 몰몬교도 성경 외에 몰몬경도 믿어야 한다고 합니다. 천주교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믿은 위에 교회의 7대 성사도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거짓 가르침을 두고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다른 복음”이라고 지칭하면서 아주 통렬하게 야단치고 있습니다. 바울 당시에도 그곳 지역의 유대주의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의를 믿되 할례나 안식일 제도 등을 추가로 꼭 지켜야만 구원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갈1:7,8)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외에 어떤 것이라도 추가로 더 필요하다고 가르치면 심지어 천사나 사도가 전해도 저주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천주교가 경건해 보이고 의로운 일을 많이 하고 윤리적으로 선하게 가르쳐도 성경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다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는 셈입니다. 바울은 다른 복음이라고 했지만, 통칭 이단(異端)이라고 말합니다. 출발은 분명히 예수님의 은혜로만 구원을 얻는다고 했지만 추가로 다른 것을 갖다 붙이기 때문에 끝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천주교는 예수님의 은혜 외에 교회가 정한 7대 성사는 물론, 때로는 더 강조함, 최근에는 성모 마리아의 중보까지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출발은 같되 끝이 다른 이단 중의 이단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표현이 혹시라도 거슬리면, 어쨌든 성경을 성경대로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성경보다 교회를 우위에 두기 때문입니다. 또 성경을 성경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엄밀히 말해서 기독교가 아닌 것입니다.

과연 같은 하나님인가?

자식이 잘못을 하면 일일이 벌만 주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또 미리부터 자식이 잘못했다고 하나에서 열까지 회개를 해야만 그것도 엄마를 통해서 미리 용서를 구해야만 비로소 대화를 시작하는 아버지입니다. 반면에 평소에 자식이 잘못을 해도 알고도 모른 척하면서 아이가 깨닫도록 가르치다가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없으면 야단을 치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것도 상처 안 받게 사랑으로 잘 용서하면서 말입니다. 거기다 자식이 어떤 형편에 있던 엄마를 통하지 않고 직접 대화를 할 수 있는 아빠입니다.

이 두 아버지가 과연 한 아버지일 수 있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지금 한 아버지가 때와 장소에 따라 바뀐다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두고 그런다는 비유입니다. 그럼 서로 다른 아버지이며 아들도 각기 다른 아들입니다. 첫째 아버지라고 해서 무조건 나쁜 아버지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다른 아버지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천주교와 기독교에서 가르치고 믿는 하나님 아버지가 바로 이 비유처럼 구분될 수 있습니다.

더 알기 쉽게 말하겠습니다. 문선명이 가르치는 하나님과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은 전혀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성경대로 가르치지 않는 천주교의 하나님도 성경의 하나님은 아닙니다. 앞에선 천주교에선 하나님의 이대 속성 중에서 하나만 가르친다고 설명했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아버지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절대적 진리”는 하나님은 한 분으로 사랑과 공의의 양대 속성을 지녔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만 구원을 주시며, 구원 후의 신자에게는 성령을 내주케 하시고, 또 언제든 개인적으로 그를 만나주시고 그 기도를 들어주시는 아버지 같으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신교는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의 성삼위 하나님을 믿으며 영원토록 절대적 진리인 십자가 복음을 선포합니다.

따라서 개신교나 천주교라는 “종교 체계”(이 용어는 교단이나 교파로 대체 혹은 세분될 수 있음)에서 가르치는 내용은 서로 다릅니다. 또 두 아버지 비유에서 보듯이 동일한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개신교는 성경에 계시된 살아계신 하나님의 진리를 그대로 믿는 참 기독교이며, 천주교는 그 진리를 인간적 사상으로 왜곡하고 추가해서 믿는 기독교의 이단입니다.

다른 말로 목사나 개신교인이 온갖 금전적 비리를 저지르고 여신도와 간음을 하는 등의 잘못을 해도 개신교 체계와 그 가르치는 진리는 그대로 옳은 것입니다. 잘못은 목사나 교인이며 그들에 대한 구원과 심판 여부는 오직 하나님과 그들의 영적 관계에 달린 것입니다. 말하자면 아무리 개신교 종교체계에 속해서 바른 진리를 배웠다 하더라도, 그들이 성령으로 온전히 거듭나지 않고 단지 머리로만 그 진리에 동의하여 입술로만 예수님을 주라고 시인했다면 구원 받지 못할 수는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신부나 천주교인이 아무리 사회악을 제거하려 노력하며 선행을 베푸는 선한 삶을 산다고 해서 천주교 체계와 그 가르치는 진리는 성경과는 반(反)하는 것입니다. 그 종교체계나 천주교인이 베푼 선행은 칭찬 받아 마땅하나 그들의 영원한 운명은 천국과는 반대 방향으로 정해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들 가운데도 개인적으로 성경대로의 진리를 믿고 오직 예수님을 완전한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여 성령으로 거듭난 자라면, 이 또한 하나님의 절대적 예정과 주권에 달린 것이지만, 구원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천주교가 불교와 화합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의미는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간단히 말해서 죄는 철저하게 미워하시되 죄인은 끝까지 용서한 것입니다. 죄와 죄인을 구분해서 대한 것입니다. 신자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단을 대할 때는 이단종교와 그 종교인은 구분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성경의 절대적 진리, 각 종교가 가르치는 내용, 각각의 종교체계와 그 신자들을 구분해서 생각해야 하는 원리가 이 질문에도 적용된다는 뜻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성경에 계시된 절대적 진리를 양보, 타협, 굴절, 변개할 수는 결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진리를 온전히 믿지 못하는 이는 사단에 그 영이 미혹되어 있기에(고후4:4) 불쌍하고 안타깝게 여겨야 합니다. 종교인이라면 그가 믿는 종교적 체계가, 무종교인이라면 그가 가진 철학이나 사상이, 신자의 그런 불쌍함을 전하는 데에 장애가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모두가 십자가 복음을 시급히 전파해야할 전도대상입니다.(고후4:5) 요컨대 그 종교나 사상(죄)과, 종교인이나 무종교인이나 그 사람(죄인)을 구분해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모든 신자가 분명히 아셔야 할 것은 절대적 진리란 본질상 절대적 배타성을 이미 내포하고 있습니다. 진리가 아니면 비진리인 것입니다. 진리 비슷해도(이단이나 타종교) 사이비 진리이지 진리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최대한 양보해서 성경이 말하는 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신께서 십자가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다고 절대적 유일성을 명확하게 표방했습니다.(요14:6) 말하자면 성경이 말하는 개신교의 진리는 배타적인지라 필연적으로, 목사나 신자의 선행 혹은 악행과는 별개로, 다른 종교와 다른 종교인들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길만이 인간이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임을 확신하기에 개신교 밖의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와 그 진리에선  결코 타협하지 않되 다른 종교인들과 교제는 하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도 그러지 않으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하고(고전5:10), 그보다는 그들 모두를 하나님과 화해시킬 소명을 우리는 받은 것입니다.(고후5:18) 하나님 당신께서 그들을 더 불쌍히 여기기 때문에 사랑으로 섬기며 어떤 방식으로든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천주교는 이와는 다르게 행합니다. 불교와 이슬람과 몰몬교 등에도 구원이 있다고 봅니다. 천주교 자체가 행위 구원을 표방하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착한 사람이라면 종교와 상관없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종교와 상관없다는 것은 위에서 설명 드린 대로 그 가르치는 내용이 다르며, 결과적으로는 그 종교가 믿는 하나님이 서로 완전히 다른데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각 종교마다 구원의 길이 있다는 것은 각 종교마다 하나님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정하다보면 나중에는 사탄을 믿어도 되며, 전혀 신을 안 믿어도 구원은 얻을 수 있다는 결론에까지 이릅니다.

결국 천주교는 불교인들이나 통일교도나 잘못된 길로 가더라도 관여치 않는 것입니다. 이는 너무나 모순되고도 잘못된 일입니다. 종교끼리 서로 관용을 베풀자고 합니다. 언뜻 겉모습만으로는 아주 의롭고 포용적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보면 그들이 지옥으로 떨어져도 관여치 않겠다는 것입니다. 각 종교끼리 자기들 교인에 대해서 서로 간섭하지 말자고 일종의 불가침조약을 맺은 것일 뿐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자기들 교세에 대해선, 다른 말로 자기들 신자들을 움켜지고 놓지 않으려는  면에선 아주 배타적인 반면에, 자기들이 전하는 진리에 대해선 아주 관용적입니다. 구원의 길이 여럿이니 각자 믿는 대로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각자 옳다고 믿는 것을 믿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의 구원의 길이 인간이 고안해 낸 것이기에 그들로선 논리적으로 당연한 귀결입니다.

반면에 개신교는 전혀 다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절대적 하나님이 계시한 말씀의 종교입니다. 실제로 살아계신 하나님이 인간을 향한 당신의 뜻을 직접 밝힌 것입니다. 이외에는 그분의 말씀은 없습니다. 그 유일하시고 절대적인 창조주 하나님은 종교, 사상, 문화, 인종, 신분 등에 전혀 구애 받지 말고 누구든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독생자 예수의 십자가 앞에 나오면 구원해 준다고 약속합니다. 그 외의 구원의 길은 아예 불가능합니다.

개신교는 구원에서의 예수의 유일성이라는 진리에선 전혀 타협하지 않으나 당신께로 나오는 사람들에 대해선 완전히 오픈해서 100% 포용적입니다. 개신교가 전도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기독교의 교세를 확장하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사단에 미혹된 영혼이 너무 불쌍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라고 초청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멸망으로 가는데 어찌 불교, 이슬람, 몰몬교, 통일교, 천주교인들을 그대로 두겠습니까? 여기서도 예수님의 죄와 죄인을 구분하는 십자가의 원리가 적용되는 것입니다. 잘못된 길로 가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잘못된 종교는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왜 기독교만 지탄 받는가?

사실은 이 질문이 가장 중요하며 또 질문 자체가 지닌 뜻을 진지하게 살펴야 합니다. 서두에 합리적 논리적으로 접근해야 주신 질문에 대해 답변이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또 지금껏 그런 측면에서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타종교인들, 특별히 천주교인들이 제 변증을 듣고 조금 색다른 견해라는 정도는 인정할지 몰라도 개신교로의 개종은커녕 심지어 자기들 잘못도 절대 선뜻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15:18,19)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요17:14) - 개신교와 신자는 예수님께 속했기에 예수님을 미워하는 세상으로선 당연히 함께 미워한다고 합니다.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요3:20) “세상이 너희를(아직 예수를 믿지 않았던 그 형제들임, 예수님의 제자가 아님)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함이라.”(요7:7)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요15:23) “그러나 이는 저희 율법에 기록된바 저희가 연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함이니라.”(요15:25) - 세상이 예수님마저 미워하는 까닭은 주님이 그들이 악하다고 선언했고, 그들 또한 어둠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기에 빛을 싫어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주목할 것은 세상이 "연고 없이" 예수님을 싫어한다고 합니다. 싫어하는 이유가 전혀 타당치 않다는 뜻입니다. 세상은 정말로 그러합니다. 예수, 하나님, 개신교, 개신교에서 가르치는 내용, 목사와 신자들을 하나로 묶어서 그저 그냥(비논리적으로 비합리적으로) 미워합니다. 간혹 예수는 좋은데 목사 신자들은 싫다고는 합니다. 그럼 예수만 믿으면 되지 않느냐고 따지면 이젠 그것 또한 싫다고 합니다. 근본적으로 그들은 아담이 타락한 이후의 원죄 아래 있기에 하나님을 찾고 또 그분 뜻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 싫다는 뜻입니다.  

현실적으로 엄밀히 따지면 개신교만 지탄받아선 안 됩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세상 선행의 대부분을 실제로는 개신교인들이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최근에 영화로 소개된 톰스 신부 같은 일생을 보내는 개신교 선교사는 세계 곳곳에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이름도 빛도 없이 행하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입니다.

개신교의 잘못이 유독 두드러져 보이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아셔야 할 것은 잘못은 다른 종교에도 동일하게 있으며 때로는 개신교보다 더 심한 잘못들도 범합니다. 예컨대 천주교 사제들의 성적 아동학대는 오래 동안 공공연한 비밀이 되다시피 했고 최근 미국과 서구에선 고액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불교도 종단의 밥그릇 싸움할 때 보면 각목이 난무하여 마치 조폭들의 전쟁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다른 모든 종교는 교단 본부에서 중앙집권적인 통제가 철저히 이뤄집니다. 조금이라도 사제나 승려에 문제가 있으면 근신이나 해직 처분을 내립니다. 반면에 개신교는 거의 모두가 개별 교회 우선주의입니다. 목사나 교회의 비리가 아무런 통제 없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거기다 가장 개방된 종교체제를 유지하다 보니까, 그 이유는 앞에서 말한 대로 모두에게 십자가복음을 전해야 하기에, 아직 믿음이 없거나 사태의 본질을 모르는 교인들에 의해서 가감 없이 때로는 허위 과장된 모습으로 교회 밖으로 유출됩니다.      

개신교가 미움을 사는 진짜 이유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개신교만이 진리의 절대적 배타성을 주장하니까 여타 종교인들 모두가 개신교를 미워합니다. 간혹 이슬람이나 유대교에도 그런 배타성이 드러나지만 개신교만큼 전도 활동을 하지 않으니까 그들은 별로 미워하지 않습니다. 정말 성경 말씀대로 연고 없이 개신교와 개신교인들을 미워합니다. 성경과 그 진리는 미워하지 않아야 함에도 하나님 그분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기에 싸잡아서 미워합니다. 개신교의 비리는 아주 훌륭한 뉴스거리가 되지만 다른 종교의 비리들은 서로 끼리끼리 눈감아 주는 측면도 있는 것입니다.

개신교에 대한 변명만 늘어놓으려는 뜻이 아닙니다. 유독 개신교만 비난받는 배경에 흐르는 영적 혼탁 현상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에는 모든 이가 스스로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서 자기 멋대로 인생을 살기 원합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종교도 자기가 선택해서 조금 도덕적으로 반성하는 것으로 때웁니다. 과연 어느 쪽이 영원한 구원의 길인지 생명을 걸고 씨름하지 않습니다. 빛이신 예수님이 세상에 왔으되 어둠이 더 좋은 것입니다.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17:9,10 & 16,17)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세상(다른 모든 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제자들은 당신처럼 세상에 속하지 아니했기에 진리로 거룩하게 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이 성육신하여 실현된 예수님과, 그분의 인간을 향한 뜻이 계시된 성경은 영원불멸토록 절대적 진리라는 것입니다. 그 진리는 타협 변개 될 대상이 절대 아닙니다. 그리고 성령의 거듭남으로 그 절대적 진리 안에 들어온 자는 하나님과 예수님께 속하여지기에 어느 누구라도 아무 차별 없이 거룩한 자가 된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 예수님 없이는 인생에 아무 소망이 없음을 확신하는 자에게는 상기 질문이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물론 그 믿고 따르는 바는 주님의 십자가 공로 외에는 어떤 것도 보태선 안 된다는는 참 복음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다른 복음이 결코 아닙니다.  자신이 완전히 죽었다 다시 산 자 즉,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도 예수를 절대로 놓칠 수 없다는 자는 그분의 진리 되심 안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자유와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바꿔 말해 지금 드리고 있는 설명이 사실은 신자들이 신앙을 제대로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지 믿음 밖에 있는 자들에게는 이해도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천주교를 비롯한 기독교의 이단종파나, 다른 종교나, 완전무신론자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논의입니다. 그들은 자기들도 진리에 속하거나, 진리는 여럿이라고 믿고 있기에 절대적 배타적 진리 자체가 전혀 납득되지 않습니다. 예컨대 세계 단일정부 운동 같은 미확인된 지엽적 사안으로 천주교인들에게 겁을 주거나 설득시키려 해봐야 더더욱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

정작 문제는 범(凡) 개신교 진영 안에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그야말로 교회 안에 숨어 들어온 거짓 교사들입니다. 그들을 구별하고 속지 않기 위해서 일반 신자들도 성경을 정말로 열심히 올바르게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WCC 에 대한 성경적 이해

마지막으로 올해 한국에서 열리는 WCC(세계교회협의회)로 대변되는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성경적 입장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참 복음의 정의부터 다시 정확히 정리해야 합니다. 또 서두에 말씀드린 여러 범주로 나눠서 합리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범 기독교 진영에 속하는 교단들을 바울이 말하는 다른 복음의 정의에 따라 정확히 구분하기는 아주 미묘합니다. 복잡다단하고 예민한 요소들을 다 적용하려면 상당히 어렵습니다. 지금 그런 구분을 시도하겠다는 뜻은 없습니다. 원칙적으로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 외에 어떤 인간적 보탬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참 복음이며 그렇지 않으면 다른 복음입니다. 성경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사도나 천사라도 저주할 자라고 분명히 선언해 놓았습니다. 그럼 다른 복음에 속한 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자연히 발생합니다.

흔히들 WCC 찬성 동참과 반대 불참의 둘로만 나눠서 생각합니다. 그러나 상기에 말씀드린 맥락 즉, 종교와 종교인의 분리 원칙에 따라 각기 둘 씩, 넷의 입장으로 나눠서 살펴야 합니다.

먼저 찬성 쪽에는 완전히 다른 복음의 교단과 참 복음을 전하면서도 참여하는 교단이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대 명제에 반대하는 자들은 아무도 없으며 어느 누구도 스스로는 다른 복음이라고 결코 인정하지 않습니다. 또 그래서 정확하게 구분한다는 자체가 미묘한 문제이며, 설령 구분해도 격렬한 반발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원론적, 논리적으로 이런 두 가지 입장으로 구분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참 복음을 전하면서 참여하는 쪽의 명분은 어쨌든 힘을 합쳐 복음의 진보를 이루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범 기독교의 교세를 확장하자는 것이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계속해서 다른 복음을 전할 것이기에 앞에서 지적한 대로 신자들을 미혹해서 잘못된 길로 끌고 가는 결과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참 복음으로 개종케 하거나 조금이라도 참 복음으로 영향력을 끼치자는 뜻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 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습니까? 저 개인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아래에 설명하겠습니다. 참 복음을 가르치는 교단이 진짜 이런 동기로 참여한다면 그런 선의 하나는 인정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WCC 반대 진영에도 논리적으로 두 가지 입장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참여하는 교단이나 그 교인들 전부를 백안시하여 배척하는 입장입니다. 완전하고도 절대적인 분리주의자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참 복음은 절대적으로 유지하되 입장이 다른 모든 이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섬기고 복음을 전할 대상으로 보는 것입니다. 온건한 분리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데 복음의 뜻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WCC를 보는 견해에서 쉽게 간과하는 점이 있습니다. 기독교를 종교 체계나 교단 차원에서만 접근하고 있습니다. 절대적 진리를 따르고 수호하는 복음과 그러지 못한 다른 복음으로 정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 WCC를 기독교 교세를 확장하는 일에 힘을 합하자는 차원으로만 이해 적용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는 교단이나 종교의 구분은 없습니다. 심지어 우상숭배자나 귀신들린 자나 동성애자 등의 구분조차 없이 오직 하나님의 참되고도 유일한 생명의 길을 따르는 자들을 늘리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현재 WCC에 참여하는 쪽 대부분과 반대하는 쪽 일부의 공통된 오류는 “성경이 말하는 절대적 진리”가 아닌 “기독교라는 종교 체계”로 모든 사안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범 기독교 진영이니까 무조건 교단끼리 화합하자는 것은 비성경적이며, 참여해서 개혁하겠다는 것은 너무 순진한 시도라는 뜻입니다.  

현 상황에서 신자가 취할 바른 태도

개신교의 모든 사역자와 신자는 참 복음을 위해서, 다른 말로 사나 죽으나 나를 대신해 죽은 예수를 위해서만, 모든 말과 행동을 구분해서 해야 합니다. 특별히 공개적, 공식적으로 기독교를 대변하는 입장에서 행할 때는 더더욱 그래야만 합니다. 실은 모든 신자가 그리스도의 사신이기에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행해도 예수님이 행하신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모든 불신자들을 종교, 문화, 국경, 인종, 지역, 언어 등에 차별을 전혀 두지 말고 십자가에 완전하게 구현된 살아계신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앞에 항복시키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선 어떤 핍박과 환난을 겪어도, 실은 그런 고난을 겪을수록 더더욱, 십자가 진리 안에서 거룩해지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들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는 지상명령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초점은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는 것보다, 당신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데 있습니다. 또 그것이 바로 제자를 삼는다는 뜻입니다.  

요컨대 “복음의 절대적 진리가 포기된 채로 종교와 교단 간의 화합과 관용”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대신에 복음의 절대적 진리 아래 어느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로 바꾸는 것이 “하나님이 바라는 사람들 사이의 진정한 화합과 관용”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강조하지만 신자들은 WCC 참여와 반대를 교단 간의 화합이냐 배척이냐는 인본주의적 기준이 아니라, 참 복음과 다른 복음이라는 성경적 기준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전자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용어들은 종교, 교단, 교파, 화합, 관용, 교세, 종교자유, 인권, 평등, 배타성 등입니다. 반면에 후자에는 하나님, 예수님, 성령의 거듭남, (참)복음, 진리, 하나님의 뜻, 절대성, 유일성 등입니다.            

최근 다른 복음이 아닌 참 복음 안에 들어온 신자들마저 그 절대적 진리에 대한 확신과 자부와 감사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거기다 그들의 삶에서 참 복음이 참되게 구현되지 못하고 있으니까 더 큰 문제입니다. 세상은 다른 복음을 지닌 자들이 선행을 하면 당연히 그들의 믿는 바도 옳을 것이라고 쉽게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천주교가 세상에서 더 존경 받고 또 작금 인간 중심 사상을 강조하고 개인의 선택하는 자유를 증진시키는 개신교단들이 더 호응을 받는 까닭입니다.

개신교인들은 십자가 복음을 성경대로 온전히 배우고 전해야할 뿐 아니라 반드시 그대로 살아야 합니다. 지금 드리는 이 답변 글도 천주교를 비롯한 다른 종교에 대한 반박, 변증을 넘어서 실은 우리가 정말로 정신 차리고 성경의 절대적 진리를 수호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 그러려면 신자가 전파하는 내용과 그의 실제 행동이 일치되는 모습이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1/30/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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