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이 운영하는 가게에 가지 말아야 하는지요?

조회 수 1355 추천 수 22 2011.03.28 20:33:52
이단이 운영하는 가게에 가지 말아야 하는지요?


[질문]


다이소라는 천 원짜리 물건 파는 매장이 웬만한 동네에 한 군데 씩은 다 있을 정도로 성업 중입니다. 알고 보니 일본 남묘호렌교에서 운영한다고 합니다. 통일교에서 취급하는 맥콜이나 안식교에서 하는 삼육두유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다이소마저 일본 이단종교에서 하는 것인지는 얼마 전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멋모르고 지불한 돈으로 회사 운영하는 비용에도 쓰겠지만 종교단체니 분명히 전도활동에도 사용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 주위 친척 친구 이웃에 그 이단이 와서 전도한다고 생각하니 무섭더군요. 반면에 내가 똑바로 살지 않으면서 이런 것에만 집착하면 너무 율법적인 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어떤 이는 불신자 물건도 사는데 뭘 그러냐고 합니다만 불신자와 이단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불신자와 이단 모두 우리가 사랑해야할 대상이지만 이단은 경우가 틀리다고 생각합니다. 이단은 말 그대로 영혼을 상하게 하는 심령들이어서 불신자와 비교하는 건 좀 그렇죠. 몰라서 먹거나 사는 경우야 어쩔 수 없다지만 알고 나니 찜찜합니다. 그냥 안가고 안 먹고 넘어가기엔 불안합니다.

[답변]

정말 많은 신자들이 갖고 있는 궁금증입니다. 질문자님이 지적한 대로 너무 따지자니 율법적인 것 같고, 그냥 계속 그 물건을 사주자니 이단의 포교활동을 도와주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신자가 운영하는 기업이나 가게만 골라서 찾아 가면 너무 배타적이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문 밖에만 나가면 곧바로 마주치는 문제이지만 뾰족한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성경적으로 정리도 안 되어서 일부러 관심을 두지 않으려 할 뿐입니다.

답변을 드리기 전에 먼저 이단과 불신자를 확실하게 구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질문자님도 그랬지만 의외로 이단의 정의(定意)를 잘 모르시는 신자가 꽤 됩니다. 또 이 주제에 대한 성경에서 말하는 원리를 정확히 알자면 조금 더 세분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단과 불신자.

이단(異端)이란 한자어의 원래 뜻은 끝부분만 조금 다르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기독교라는 같은 뿌리를 가졌거나, 최소한 기독교와 거의 같은 모습을 띄고는 있는데 그 가르치는 내용의 일부가 성경이 말하는 바와는 다른 것입니다. 물론 그 다른 일부는 핵심적 내용으로 구원여부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그런 본질이 아닌 지엽적 차이는 단지 성경 해석에 이견(異見)이 있다고 표현하며 교단 혹은 교파로 나뉠 뿐입니다.  

불신자라고 했을 때는 넓게는 이단과 타종교인을 포함한 모든 비개신교인을 의미하거나, 좁게는 범기독교(천주교와 기독교 이단을 포함한) 진영 밖의 모든 사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통상적으로는 세밀하고도 정확한 기준 없이 교회에 출석하지 않은 사람 전부를, 때로는 비종교인이라고 하기는 복잡하니까 종교를 갖지 않는 자마저 지칭합니다.

그러나 엄격하게 따지자면 성경이 말하고 종교개혁주의자들이 해석한 바탕의 신앙을 갖지 않은 자들 전부를 의미해야 합니다. 겉으로 교회 안에서 어떤 중직을 맡았든지 간에 심지어 목사라도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았다면 사실상 불신자(不信者)인 것입니다.  

이렇게 따져보는 이유는 타종교인은 불신자이지 이단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기독교에서 떨어져 나간 종파가 아니고 일본에만 있는 불교의 한 종파인 남묘호렌교는 이단이 아닙니다. 통일교, 몰몬교, 구원파, 신천지, 안식교(일부 이론이 분분하지만 질문자님이 예를 들었기에), 등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성경은 종교에 관해 이처럼 복잡한 분류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불신자를 정의한 것처럼 오직 예수님을 믿느냐(신자), 믿지 않느냐(불신자) 두 종류의 사람으로만 나눕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에 속한 자녀와 사단에 미혹된 영혼 오직 둘 뿐이지, 다른 신들 혹은 그 중간에 속한 자는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바리새인들더러 거짓의 아비요 살인하는 자인 마귀의 자식이라고 야단쳤지 않습니까?(요8:44)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마12:30)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15:6)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16:9)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4:4)

따라서 불신자에 대한 신자들의 인식이 조금 달라질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와 기독교와의 관계라는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눠봐야 합니다. 우선 구원에 관한 시각입니다. 이단보다 선하거나 경건해 보인다는 외적인 판단만으로 타종교인이 사단과 거리가 멀고 구원에 더 가까운 것은 절대 아닙니다. 사단에 미혹된 영혼이긴 똑 같습니다.

둘째로 타종교인은 기독교를 반대 비방은 해도 종교 간의 관용 내지 불간섭을 요구하지만, 이단은 신자와 정통교회를 대상으로 직접적으로 훼방합니다. 그래서 이단은 신자가 직접 대적해 물리치거나 아예 없애버려야 할 대상처럼 여겨집니다. 물론 이단이 교회에 가만히 침투해 신자를 빼앗아 가거나 넘어트리므로 큰 폐해이긴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는 데는 일차적으로 기존 교회가 올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이유가 가장 큽니다.  

요컨대 원론적인 측면에서 타종교인이나 이단이나 불신자이긴 동일하며, 기독교와 갈등 방해되는 정도도 사실상 큰 차이가 없습니다. 또 이미 말씀드린 대로 정통 교단에 속한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고 있어도 여전히 사단에 미혹된 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반대로 이단에 속한 자라도 개인적으로 십자가 복음을 순수하게 믿는다면 내용적으로는 신자인 것입니다. 타종교인은 구원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반면에 이단은 그 숫자는 미미해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이 전체 불신자에 대해서 언급하는 내용을 조금 더 세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최초의 이단

재차 강조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선 오직 당신의 긍휼만 바라는 신자와 그러지 못한 불신자로만 나뉩니다. 신구약 성경에는 불신자에 관한 이런 일관된 원칙은 지켜지되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준으로 각기 다른 맥락으로 언급하고 있음을 주지해야 합니다.  

먼저 예수님 오시기 전에는 창조주 유일신 여호와 신앙을 가진 자들은 이스라엘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상에서 유일한 종족입니다. 종교적으로 따져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정통신앙은 여호와 신앙뿐이었습니다. 나머지 모든 종족들의 모든 종교는 하나님과는 전혀 무관한 우상숭배 종교였습니다.

말하자면 여호와 신앙 안에 어떤 다른 분파 즉, 이단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와 가나안 신들을 함께 섬기기는 했어도 종교들 간에 타협 융합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또 여호와를 믿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도 사울 왕이 그 대표적 예이듯이 온전한 믿음을 가지지 못한 자는 개인적으로 구원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쨌든 구약시대는 참 종교와 그러지 못한 타종교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는 '이단'이라는 단어가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면서 어떤 종교적 변화가 생겼습니까? 죄인을 구원해 주는 하나님의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구원의 원리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닙니다. 인간 구속 계획에 관한 계시가 명확하게 밝혀진 것입니다. 구약율법이 십자가 은혜로 대치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죄책을 감당하시고 당신의 무한하신 긍휼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죄와 죄인을 다루시는 당신의 공의와 사랑이 완전히 성취된 것입니다. 한마디로 신약시대 이후로는 종교 간의 구분은 없어지고 예수 믿는 자와 믿지 않는 두 종류의 사람들로만 나뉜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교회 안에 인간으로 오신 예수를 부인하거나 십자가 외에 다른 것을 보완해야만 구원받는다는 성경외적인 주장을 하는 그룹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전자는 영지주의자로 요한 사도가 적그리스도라 지칭했으며(요일2:22), 후자는 유대주의자로 바울 사도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정죄했습니다.(갈1-4장) 즉 기존의 우상숭배를 하는 타 종교에 이단들이 추가된 것입니다. 당연히 이단이라는 용어는 신약성경에만 등장합니다.

흥미롭게도 이단이란 용어는 바울이 초대교회를 향해 가장 먼저 사용했습니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행24:5) 예수님을 이단의 괴수라고 지칭했습니다. 바울이 유대교에 열심이었을 시절에는 율법과 상관없이 당신을 믿기만 하면 구원 얻는다는 가르침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새로운 종교 그룹은 구약성경의 창조주 유일신 여호와를 믿었던 유대인들에게서 시작되었기에 유대교와 끝이 다른 이단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나중에 그가 예수를 믿고 회심한 후에는 유대교가 오히려 이단이 되었지만 말입니다.
  
신약성경에 우리말 '이단'이라고 번역된 헬라원어 '하이레시스의 원래 뜻은 ‘선택'으로 다른 교리를 채택한 분파, 당파, 이단의 의미로 전용되었습니다. 영어로는 앞에 인용한 행24:5에서만 유대교에서 떨어져 나갔다는 문맥상의 의미를 강조하려고 “sect”로, 나머지는 전부 헬라어 어근에서 이단의 뜻으로 발전한 영어 heresy로 번역되었습니다. 반면에 구약성경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다른 종교는 전부 idolatry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단을 옹호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이단과 타종교에 대한 이해를 정확히 하자는 뜻일 뿐입니다. 기독교의 입장에선 타종교는 전부 우상을 숭배하는 종교입니다. 참고로 유대교와 이슬람(그 신의 이름은 다르지만)은 창조주 유일신을 믿는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인정하지 않기에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이단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로만 기독교가 완성되고 그 이전은 기독교가 아니기에, 엄밀한 의미에선 타종교입니다. 남묘호렌교를 비롯한 타종교는 믿는 대상이 참 하나님이 아니기에 우상숭배 종교입니다.

물론 우상숭배 종교와 이단 모두가 구원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5:20,21) 이제 이단과 우상숭배자들을 신자가 어떻게 대해야 할지 성경이 말하는 바를 살펴봅시다.

이단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 하라."(딛3:10)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벧후2:1)

이단에 대해 성경이 직접적으로 경고하는 내용은 생각보다 적습니다. 이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경고하는 내용도 이 두 구절과 앞에 인용한 갈5:20이 전부입니다. 반면에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는 비교적 많이 나옵니다. 이 거짓 교사들이 바로 이단입니다.

그런데 거짓 교사에 대한 제일 강력한 경고라고 할 수 있는 벧후 2장의 경우에도 그들을 직접 대적하여 분쇄하라고 권면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경고로 그칩니다. 갈라디아서에서도 다른 복음을 전하면 천사라도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만 말합니다. 그나마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삼차로 방문할 것을 편지로 예고하면서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는 맹세가 가장 엄중한 편입니다.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갈 터이니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 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저가 너희를 향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고후13:1-3)

그러나 바울은 삼차 방문을 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바울이 너무 분노하고 흥분해서 잘못을 저지를까 성령님이 미리 막으셨는지도 모릅니다.) 설령 다시 방문했다 하더라도 직접적인 다툼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본문에도 그런 의향을 이미 비쳤듯이 복음의 진리를 다시 선포하고 교회 전체의 의견을 물어서 치리했을 것입니다. 또 방문이 무산되었어도 이 편지가 교회 안에 회람 낭독되었기에 교인들이 거짓 교사의 그 잘못을 절감했을 것이기에 그에 대한 정죄도 행해진 셈입니다.  

말하자면 이단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한두 마디 타이르다가 제대로 말을 듣지 않으면 아예 상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섣부른 토론은 분쟁만 일으킵니다. 대신에 십자가 복음의  진리를 온전히 선포하고 성경대로 정확히 가르치면 됩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이겨야 하는 원칙은 이 문제에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교회 안의 가라지는 추수 때까지 그냥 두라고 했지 않습니까?(마13:30) 물론 거짓교사가 설치는 것까지 그냥 두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아직 온전한 믿음 안에 들어오지 못했거나 잘못된 동기로 믿는 교인들은 참 믿음 안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반면에 바리새인 같은 이단 지도자들은 봉사가 봉사를 이끌어 함께 멸망케 하는 꼴이므로 당연히 배척해야 합니다. 이익을 경건의 재료로 삼는 삯군 목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대적하는 무기는 오직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어야지 세속적 수단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주목할 것은 예수님은 유대 종교지도자들 외에는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일반 백성은 물론  타종교 및 이방인에 대해선 결코 판단, 정죄, 심판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하라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 모두를 불쌍한 죄인이자 구원할 대상으로 본 것입니다. 종교적으로 복음과 상호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들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셈이 됩니다.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 본체로서 인간이 고안해낸 철학이자 사상에 불과한 타종교에 대해선 아예 거론할 필요나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바울도 세상 모든 지식을, 당연히 철학 종교도 포함됨, 배설물로 여긴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오늘날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단은 상대할수록 오히려 그들을 세워주거나, 최소한 순진한 불신자들로 그들에게 관심을 돌리게 만드는 역기능이 일어납니다. 신자는 진리 안에서 한 알의 밀알로서 자신부터 썩어 없어져야 합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역할만 감당하면 됩니다. 바울이 묘사했듯이 초대 교회의 나사렛 이단 즉, 복음이 염병처럼 번져나가듯이 십자가 진리로만 살고 죽는 신자의 삶으로 이단과 대결하면 됩니다.        

우상에 바쳐진 고기마저 먹은 바울

마지막으로 실제적인 문제 즉, 질문하신 주제에 대해 성경이 어떻게 말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바울은 우상 신전에 바친 고기마저 사서 먹어도 된다고 했습니다. 단 믿음이 연약한 신자로 시험에 들게 하거나(고전8:12,13), 불신자로 기독교에 대해서 오해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면(고전10:27-33) 먹지 말라고 합니다. 오직 복음의 확장이라는 한 가지 목표로만 모든 사고, 말, 행동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당시의 모든 고기가 다 우상에 바쳐진 것은 아니지만 시장에서 파는 것은 거의 다가 그랬습니다. 바울은 그런 줄 빤히 알지만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기에 그에 바쳐진 것을 먹는다고  해서 문제 될 것 하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신자가 기독교인이 우상에 바쳐진 고기를 먹느냐고 공개적으로 따지고 들어오면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바울이 모든 신자더러 자기처럼 오직 복음으로만 살고 죽으라고 권면한 것은 아닙니다.  

"내가 너희에게 쓴 것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 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고전5:9-11)

아주 놀랄만한 진술입니다. 음행하는 자와 사귀지 말라는 것이 불신자나 타종교인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상숭배하는 불신자와는 사귀어도 된다고 합니다. 대신에 교회 안에 그런 자와는 사귀지도 함께 먹지도 말라고 합니다. 단순히 교회의 기강을 확고히 세우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우선 관심은 당신의 백성에게 가있다는 것입니다. 교회 내에 죄에 빠진 자로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려는 택한 자를 향한 당신의 끝없는 사랑의 표출인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기독교적 입장에선 이방인 같은 우상숭배자들과 바리새인 같은 이단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들과 전혀 상종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과 식사 교제도 구원도 행했습니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문화, 사회, 경제, 정치 구조 안에서 먹고 마시고 생활했습니다. 기록에는 안 나와 있지만 이방인 가게에서 음식이나 일용품을 샀을 수도 있습니다. 사도들이 에베소의 우상형상의 기념품이나 점치는 책들은 모아서 불태웠지만 말입니다.

오늘날에 이단과 타종교인들이 영업하는 가게에 일절 출입하지 않으려면 진짜로 세상 밖으로 나가야만 할 것입니다. 단적인 예로 석유 수입부터 중단해야 합니다. 국가에서 수입하는 문제까지 신자가 어쩔 수 없다면, 최소한 자동차 운전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묘호렌교에서 운영하는 천 원짜리 가게에 돈을 보태주는 것과 자동차 운전하여 이슬람 국가에 들어가는 돈 중에 어느 것이 더 많겠습니까? 또 작금 기독교에 훼방을 놓는 것으로 따지면 이슬람과 남묘호렌교 둘 중에 어느 쪽이 더 심각합니까?
  
불신자나, 타종교인들이 운영하는 가게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신자가 운영하는 가게나 기업 중에 주님 뜻대로 온전히 따르는 곳은 너무 드뭅니다. 탈세, 부정, 부패를 예사로 자행합니다. 교회 안에도 얼마나 가라지가 많습니까? 구원의 확신도 없이 순전히 영업에 도움을 받으려고 열심히 섬기는 자도 많습니다. 또 그런 자가 돈으로 장로 직분을 사고 일반 신자도 단지 장로가 운영하는 가게라고 묻지도 않고 불량품에 바가지를 쓰면서도 마치 하나님 나라 확장에 일조(一助)하는 듯이 착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세상의 두 왕국

모든 사람을 예수 믿는 신자와 그러지 못하는 불신자 오직 둘로만 나누듯이, 세상도 하나님의 왕국과 사단의 왕국 둘로만 나뉩니다. 그런데 사람은 (비교적) 그 구분이 확실하게 보이지만 두 왕국은 그 실체를 분명하게 구분 짓기 힘듭니다. 세상 속에 눈에 보이지 않게 혼재(混在)하고 있어서 칼로 두부 쪼개듯이 나눌 수 없습니다. 이는 예수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참 신자들의 모임인 참 교회를 제외하고는 세상은 모두 공중권세 잡은 자의 농간 아래 있습니다. 구태여 이단, 타종교, 불신자 식으로 구분지어서 각기 다르게 대우할 의미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관심도 사람을 구원하는 것에 있지, 사람이 속한 환경을 바꾸는 것이 우선 목표가 아닙니다. 구원 받은 신자로 불신자를 복음으로 초대하고 또 세상을 거룩하게 변화시키라는 뜻입니다. 십자가의 뜻도 죄는 심판하되 죄인은 용서해주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단이나 불신자도 그 사람들을 복음으로 살려내어야지, 그들의 생업마저 망하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결코 아닙니다.

간단히 말해 세상의 거의 모든 기업은 우상숭배자들이 운영하며, 신자의 것이라고 해서 온전히 성경적으로 운영되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일일이 분간해서 상대한다는 것 자체가 도무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합리하고도 불필요한 일입니다. 나아가 그런 기업에서 생업을 유지하는 사람들의 처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입니다. 선의의 피해자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습니다. 역으로 가난한 신자에겐 천 원짜리 가게가 오히려 고마울 수도 있습니다.

신자가 상대할 것은 이단의 교리와 그 지도자들, 그중에서도 교리입니다. 십자가 진리가 더 확장되고 무엇보다 신자로 그 진리 안에 붙들려 살게 만들어야 합니다. 알기 쉽게 말해 신자가 운영하는 가게나 회사에선 부정부패, 탈세, 임금착취, 바가지, 불량품제조, 속임 등을 절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종업원이나 회사원도 그런 일에 협력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으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롬14:17-20)

하나님 나라가 먹고 마시는 것에 있지 않다고 합니다. 단순히 식음료(食飮料)에 국한된 말씀이 아닙니다. 그 문맥의 일차적인 뜻은 우상숭배 음식에 관한 것이지만 넓게는 신자의 자유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먹고 마시는 일은 모든 일상의 현실적 삶을 의미합니다.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이뤄지는 하나님 나라와 대비된 것입니다.

바꿔 말해 복음 안에서 성도의 새로운 삶의 목표는 성령에 의한 눈에 보이지 않는 거룩한 품성의 변화여야지, 눈에 보이는 현실세계에서의 종교적 변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두 가지 계명을 지키기보다는 전인격적 존재 자체가 뒤집어져야 합니다. 또 그렇게 바뀐 신자를 통해서 불신자들을 하나님과 화목시킴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야 합니다.    

기독교가 욕을 먹는 이유

만약에 자기 양심에 자꾸 찔린다면 이단으로 확실히 알려진 가게에 출입하지 않으면 됩니다. 특정 물건이 그 가게에만 판다든지 밤늦게 멀리 갈 수 없는 것 같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그 가게에 들어가면 이단의 무너짐과 종업원들의 구원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면 됩니다. 그와 반대로 전도하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일부러 그런 가게에서 물건을 사주면서 종업원들과의 교제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단 교리는 미워해도 이단에 속한 자나 선의의 피해자는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예컨대 최근 이슬람 금융법 같은 경우에 신자 국회의원이라면 당연히 반대해야 합니다. 그러나 강제적,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끝까지 싸우는 것은 잘못입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 대로 세상은 불신자들이 만들어 놓은 구조 안에서 움직이게 되어 있으며 또 그 가운데 선한 것도 분명히 있습니다.(신학적으로 일반은총이라고 합니다.) 민주적인 대의제도가 바로 그것으로 그 법이 다수결로 통과되면 신자 국회의원이라도 그에 순복해야 합니다.  

물론 그 법이 통과된 후에 신자가 그런 금융기관에 취직하거나 협조할 수는 없습니다. 이 또한 절대적 원칙은 아닙니다. 그 안에 들어가 순교할 각오로 한 알의 썩는 밀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남묘호렌교에 가입하거나 그런 가게에 종업원으로 취직해선 안 되지만 정말 그 안에서 순교를 각오하고 전도하겠다면, 무엇보다 절대로 그들의 꾐에 넘어가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가능한 것입니다. 아무리 재림이 내일 모래 닥쳐도 불신자 남편이나 아내와 갈리지 말고 전도하라고 했지 않습니까?(고전7:14) 그런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 것조차 하지 않겠다면 아예 세상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누차 강조하지만 예수 안에선 사람은 신자와 불신자로만 나눠집니다. 불신자든 이단이든 동일하게 사단의 미혹된 영이며 직간접으로 그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조종당하고 있습니다. 신자가 몸담고 사는 현실 세계 또한 공중권세 잡은 자의 수중에 있습니다. 예수님 다시 오셔서 그분께서 직접 거룩하고 아름답게 새 나라로 바꿀 것입니다. 교회 안의 가라지조차 그 때까지 그냥 두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오직 진리와 비진리의 싸움에 달렸습니다. 신자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거룩한 삶의 빛과 향기가 불신자가 사단에 농간 당하는 추한 모습을 완전히 덮고도 남아야 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성경은 세상이 거짓 진리가 마지막 때까지 왕성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아니 갈수록 더 번창할 것이라고 합니다.

신자가 지금 당장 이단 세력 하나를 직접 없애는 싸움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런 은사와 소명을 받은 이단 전문가에게 맡기시면 됩니다. 그 외의 모든 신자나 사역자는 온갖 이단 세력이 설치는 한 복판에서부터 각자 스스로 그리스도의 빛을 온전히 드러내는 일에만 전무하면 됩니다. 이 일이 아니고는 이단이든 불신세상이든 이겨낼 방도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도 바로 그것입니다.    

역으로 신자들이나 특정 교회와 기독교 단체가 남묘호렌교가 운영하는 가게라서 불매 운동을 벌인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얼마나 배타적이고 편협한 종교라는 욕을 들어 먹겠습니까? 기독교가 타종교를 포용, 인정, 타협해선 안 되지만 기독교인은 타종교인과 화목, 교류, 거래해야 합니다. 이런 구분을 명확히 하지 않고 오히려 거꾸로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좌파에선 종교 간의 진리가 통한다,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다 등을 주장하고 있고 또 그러는 것이 깨이고 지성적인 기독교인 것처럼 착각합니다. 반대로 우파에선 이단이나 타종교인들과는 상종도 말라는, 예컨대 그런 가게에는 가지도 말라는 식으로 가르치고 실현하고 있습니다. 분명 바울은 명시적으로 사귀라고 했는데도 말입니다. 한두 번 상대하고 멀리하라는 것은 교리로 논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컨대 개독교라는 들어 먹을 필요가 전혀 없는 욕을 현재 듣고 있는 것은 기독교의 자업자득인 것입니다. 물론 이런 일보다는 신자들 스스로 참 신자답게 살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3/28/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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