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독교는 정치적으로 보수인가요?
[질문]
요즘 한국에서는 서울시장 보궐선거로 방송 신문 할 것 없이 매일 뜨겁습니다. 그런데 교회나 주변 크리스천들은 항상 보수 후보를 지지하는 성향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번뿐만 아니라 지난 지방선거 때도 제 주변의 믿음이 좋다는 크리스천들은 어르신들뿐만이 아니라 젊은 층의 사람들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는 데는 성경에서 말하는 이유가 있나요?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미국에서도 공화당의 강한 지지 세력 중 하나가 기독교도라고 들었는데... 저는 진보 진영 측에서 주로 내세우는 현재 자본주의 체제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발언들과, 동성애 지지 등 사회 개혁적인 색깔이 문제가 되는 건가 생각했는데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크리스천이라면 반드시 보수적 정치관을 가져야 한다, 보수 색채의 정당을 지지해야 한다, 이런 건 없다고 생각했는데(공산주의 같이 명백하게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상을 띤 정당이 아니라면), 혹시 이러한 경향에 성경적 근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진보 측의 일부 주장에는 반대하지만 주로 진보 진영에서 추진하는 적극적인 복지 정책 때문에 진보 측에 지지표를 던진다면 문제가 될까요?
한동안 말이 나왔던 기독교 정당 창립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크리스천의 이름을 내걸고 (특별히 목회자 분들이) 정치를 한다는 것이 하나님 뜻에 합당한 일인지, 혹시 세상과 타협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합니다.
[답변]
아주 민감한 질문을 주셨네요. 또 언젠가 한 번은 이런 질문이 들어올 줄 알았습니다. 먼저 밝힐 것은 저도 인간인지라 나름대로의 개인적인 정치적 성향 혹은 호불호가 있지만 오직 중립적인 입장에서 성경에서 말하는 바대로만 답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역사는 누가 움직이는가?
신자라면 가장 먼저 확신하고서 두고두고 잊지 말아야 할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현실에선 어떤 정책을 가진 정파가 정권을 잡아 정치를 하든 궁극적으로 역사를 움직이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점입니다. 영어표현(history=His Story) 그대로 역사는 하나님 당신께서 당신의 뜻과 계획대로 이끌어가는 당신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바꿔 말해 신자들이 기독교인 출신이 꼭 정권을 잡아야만 한다고 너무 적극 후원하거나, 혹은 그러지 못했다고 노심초사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신자 대통령이 현실적으로 큰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 할지라도 어디까지나 세상의 평가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영적 차원에서 영원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관점에선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정치적 활동은 물론 종교적 조직마저 전?형성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이 처한 환경을 풍요롭게 만들기 이전에, 죄에 찌든 인간 존재 자체를 당신을 닮은 형상으로 온전히 회복시켜 거룩해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당신의 그런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미국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보수와 진보 세력이 정권을 번갈아 잡게 만듭니다. 또 전 세계적으로는 히틀러 나치정권이나 마르크스주의 공산국가마저 허용하셨습니다. 아직도 북한 김정일 정권이 건재한 데는 당신만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인간이 아무리 나쁜 짓을 저질러도 하나님은 당신의 하실 바를 다 하신다는 것입니다. 죄는 반드시 언젠가 당신만의 방식으로 심판하실 것이며, 선은 또 동일하게 보상하십니다. 역으로 말해 인간이 선을 행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더더욱 풍성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신자의 책임으로 맡겨져 있습니다.
기독교 정당의 출현에 대해?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가르쳤습니다.(마22:21) 일차적으로는 신자도 납세의 의무를 져야 한다는 뜻이지만, 실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 원칙을 천명한 셈입니다. 신자도 세상 권력에게 순종할 책임이 당연히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뜻일 뿐 아니라, 세상 권력제도 자체도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롬13:1-3)
정치 제도는 악한 일을 다스리게 하는 목적이라고 합니다. 역으로 말하면 세상 권력이 악을 다스리기는커녕 악을 조장 내지 조성하면 거역해도 된다는 뜻이 됩니다. 물론 그에 항거할 방법론에는 여러 논의가 필요하지만 그 권력에 굴복할 근본적 이유는 없습니다. 이에 대해선 성경문답 사이트 #224 “악한 권세에도 굴복해야 하는가?”의 글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정당은 세상 권력제도의 가장 대표입니다. 그런데 성경적으로 따져 정치권력의 가장 기본적 의무가 악을 다스리고 심판하는 것인데 꼭 신자가 그 일을 감당할 필요가 있을까요? 만약 세상 권력이 100% 완벽하게 다스리지 못한다 해도, 그 의도나 동기에서 여전히 악을 다스리고 공동선을 지향한다면 그 부족분은 하나님이 채워주지 않겠습니까?
독일의 경우 기독민주당이 존재합니다. 출발 당시(1945년)에는 기독교(구교와 신교를 합친 개념)가 국교나 다름없었기에 그 출현에 아무런 반감이 없었습니다. 또 진보를 표방하는 사회민주당과 번갈아 정권을 잡고서 적절한 대결과 협력을 통해 전후 독일의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라인 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적 발전은 기독민주당의, 복지제도와 통일의 기틀이 된 동방정책은 사회민주당의 대표적 업적입니다. 그러나 기민당이 처음에는 보수적 기독교 이념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아주 진보적으로 바뀌어 이름만 기독당이지 아무도 기독교 이념을 실현하는 정당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미국의 경우는 역대 대통령 모두가 카톨릭이든 개신교든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세부적으로 비성경적 정책을 수행하고 그 중생마저 의심스럽다 해도 스스로 신자라고 말하고 교회도 출석했습니다. 청교도 후예가 세운 나라이기에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기독교 이념을 표방하되 그 실현 방법에서만 차이가 났던 것입니다. 지금도 민주당 스스로 무신론적, 안티 기독교적이라고 말하는 법은 절대 없습니다. 오바마의 예에서 보듯이 기독교 신자이긴 해도 자유주의 노선을 따를 뿐입니다. 여전히 기독교가 제일 강세인 나라이기에 구태여 기독당이 필요치 않을 뿐 아니라, 독일식으로 따지면 공화당과 민주당 둘 다 기독당인 셈입니다.
한국은 사정이 많이 다릅니다. 기독교 교인이 많긴 해도 인구 전체로 보면 여전히 소수입니다. 거기다 개신교 중심의 당이기 때문에 가뜩이나 개신교가 비난을 받고 있는 판에 종파적 세력을 확장하려 든다고 더 큰 오해만 받을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세워도 한국인의 정서상 흔쾌히 받아들여지기 힘들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당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정당의 가장 큰 존재 목적은 바로 선거를 통한 권력을 쟁취하는 것인데 실제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일에 자원, 시간, 노력을 경주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거기다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은 예수를 믿어 거듭난 자들로 이뤄진 영적으로 거룩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입니다. 정치 사회적 제도 관습 몇 개 바꾼다고 그 나라가 더 크게 확장된다는 법은 없습니다. 오해는 마십시오. 신자라면 반드시 성경적 가치관을 최대한 실현하고 또 불신자들의 눈에 보이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일을 신자 개개인이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고 또 한 알의 밀알로 썩어 없어지는 방식으로 이루라고 당부했습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지 않습니까?
말하자면 기독정당의 목표와 이념이 잘못되었다기보다는 방법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설령 플러스적 효과가 어느 정도 드러난다 해도 마이너스 부작용이 더 크다면 비가시적 우주적 하나님 나라의 확충이라는 관점에서 추진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성경의 정치적 이념은?
예수님이 정종분리의 원칙을 가르쳤다고 앞에서 살펴보았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성경이 정치적으로 과연 어떤 노선을 가르치는지 살펴볼 필요는 있습니다. 제일 먼저 하나님이 소원하는 바는 완전한 신정(神政, theocracy) 정치입니다. 하나님이 왕이고 모든 사람의 그분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당신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출애굽시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이주시킨 후에 온전한 지상천국을 건설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원론적인 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담에게 자유의지를 주어서 당신만 경배하기를 바랐지만 동시에 그가 거역할 것도 아셨던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며”(딤전2:3), 또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벧후3:9)
문제는 그분을 거역 대적하는 인간의 죄입니다. 하나님의 소원과는 달리 인간은 자기가 이 땅의 주인이 되어 제멋대로 하기만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정과 선택을 전제로 전도라는 미련한 방식을 통해 당신의 절대적으로 완벽한 뜻에 따라 구원을 선물로 주십니다. 예컨대 이방인을 먼저 구원하여 당신의 선민이었던 이스라엘로 하여금 시기케도 만드십니다. 말하자면 모든 이의 구원은 하나님의 소원이지만, 그분의 예정 밖에서 구원 받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책임이라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신정정치를 소원하긴 하지만 이스라엘에게 왕정제도를 허락하셨고, 또한 지금도 종족과 나라마다 처한 환경에 따라 온갖 다양한 정체를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이 땅의 인간 공동체의 보존과 발전만을 도모하는 현실정치와, 개별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당신의 궁극적 목적과는 별개이기 때문입니다.
최초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이후로 인간에게 그 어떤 것도 당신의 힘으로 강요하지 않으시기에 그분은 민주적인 분입니다. 이스라엘에 백부장, 천부장을 세운 제도에서 보듯이 대의정치(代議政治) 제도를 지지합니다.(출18:13-27) 나그네, 고아, 과부, 종, 노예, 이방인들을 사랑하라는 계명에서 보듯이 만민평등주의, 이타적 박애주의를 표방합니다. 3천5백 년 전에 이미 여성에게도 상속권을 허락했다는(민36장) 면에서 남녀평등을 옹호합니다.
또 제사장 족속인 레위지파를 제외한 모든 자에게 땅을 분배했습니다. 사유재산 제도를 인정한 것입니다. 제사장인 레위지파에게도 자신이 거주할 집은 허락했습니다. 단 그 생계를 다른 이의 십일조에 의존하도록 했으므로 정치 종교의 분리는 물론 종교적 재산에 오늘날 비과세하는 원칙과 부합됩니다. 그러나 레위인도 받은 십일조에서 십일조를 바치게 했으므로 종교인의 소득에까지 비과세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말합니다.(살후3:10) 바울사도도 열심히 사역하면서 장막 만드는 직업에 종사하며 스스로 선교 비용을 충당했습니다.(행18:3) 열심히 일하는 만큼 몫이 돌아가야 하며 맹목적 무상복지는 금한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복지는 십일조 제도, 구제 헌금, 안식년, 희년 규정 등에서 보듯이 여럿이 힘을 합쳐서 별도의 기금 내지 제도를 만들어 실시토록 하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공동으로 분배하는 공산주의는 반대합니다. 초대교회가 공산주의를 시행했다고 오해해선 안 됩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는”(행2:44,45) 공동체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먼저 물건 즉, 여러 도구나 일용품을 서로 통용했습니다. 재산과 소유를 팔긴 했지만 각 사람의 필요가 생겨서 그런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모범이 된 구브로의 요셉의 경우도 밭만 판 것이지 집마저 판 것이 아닙니다.(행4:37) 비록 하나님을 속인 죄를 범하긴 했어도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땅을 팔았습니다.(행5:4) 한때 예루살렘 교회가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것으로 오해하고 재산을 다 팔고 공동체로 모이자 극심한 기근이 닥쳤고 마게도니아 교회들이 구제 헌금을 보내주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각자가 열심히 일하여 벌되 가난한 자가 생기면 서로 가진 것을 팔아서라도 도우라는 것이지 완전한 공산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원치 아니한다는 뜻입니다.
결국 성경은 기본적으로 사유재산제, 자본주의, 민주주의, 대의제도, 개인의 인권과 자유가 보장되는 자유주의 등을 지지합니다. 기본적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세부적으로 믿는 사람끼리는 이자를 받지 말라는 가르침도 있으며, 안식년과 희년 같은 오늘날에는 적용하기 까다로운 개념도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공산주의는 하나님을 부인한다는 특성 이전에 경제적 원리만으로도 인정될 수 없습니다.
참고로 공산주의가 이론적으로만 따지면 아주 이상적인 것 같지만, 인간의 탐욕과 나태함이라는 근본 죄성이 전혀 감안되지 않았기에 실현 불가능한 제도입니다. 인간에겐 남보다 앞설 목적으로 일할 욕심이 생기는 법이며, 똑 같이 살게 만들면 아무도 일하지 않으려 듭니다. 또 공산을 실현하기 위해선 독재 권력이 필수적인데 독재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입니다.
진보와 보수
이런 성경의 정치적 입장이 현실정치에선 진보와 보수 어느 쪽에 해당됩니까? 한마디로 꼭 집어서 말하기 힘듭니다. 한국이나 미국의 진보와 보수는 둘 다, 자본주의 민주주의 대의제도 자유주의 등을 근간으로 하고 공산주의와 전제주의는 배격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진보와 보수에 대한 이해를 조금 더 넓게 가질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진보에는 공산주의자체를 지향하려는 의도가 없으며, 보수도 사회를 발전시키지 않고 그 자리에 정체하거나 기득권만 보호하려는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둘 다 공동체를 보존 발전시키려는 목적은 같되 그 구체적 방법만 다른 것입니다. 예컨대 진보나 보수 둘 다 북한 공산정권과 평화통일을 목표로 교류 협력은 하되 그 방법론에서 인권신장과 전쟁억지 중에 어느 것을 중시하느냐의 차이가 있듯이 말입니다.
보수는 전통적 가치관과 방식이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시킨다고 여기는 것이며, 진보는 새로운 가치관을 포용하면서 기존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세부적인 측면에서 때로는 진보가 더 보수적이고 보수가 더 진보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으며, 또 말의 표현만 다르지 그 핵심 내용이 같은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어느 일방도 자기들만이 절대 선인양 주장해선 안 되며 항상 대결 보완 협력하여 시너지 효과를 도출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진보와 보수를 나눌 수는 있을 것입니다. 첫째, 경제적으로 보수는 경제 활동을 확충시켜 소득을 늘려서 사회를 발전시키려 드니까 기업환경 개선에, 진보는 어려운 사람부터 구제해주어 공평하게 발전시키려 드니까 이미 생긴 과실을 더 골고루 분배하는데 역점을 두는 것입니다.
경제 원리로는 분배만 강조하면 생산이 위축되고, 생산만 강조하면 분배가 등한히 되기 쉽습니다. 한쪽만 더 우월하다고 단정지어서 편들 수는 없습니다. 한 쪽이 경제를 발전시킨 후에 다른 쪽이 나서서 분배를 하다가, 다시 경제가 위축되면 성장 위주로 나가는 식으로 정권을 번갈아 잡는 것이 좋습니다. 역사적으로 미국이 지금껏 그랬고 한국도 그런 추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또 실은 벌써부터 보수 측에선 수정자본주의, 진보 측에선 수정사회주의 식으로 생산과 분배를 균형되게 발전시키려 강구하고 있습니다.
둘째, 사회 윤리적 측면에서 보수는 전통적 도덕관을 중시하는 반면에 진보는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는 특징이 두드러집니다. 단적인 예로 낙태를 보수는 생명을 중시한다는 관점에서(pro-life) 반대하고, 진보는 인간의 개인적 선택이라는 맥락에서(pro-choice) 찬성합니다. 간음도 가정을 파괴하여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기에 법으로 정해 벌주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 보수라면, 반면에 진보는 성적취향은 개인의 자유에 해당되기에 간음죄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런 윤리적 측면에서마저 보수와 진보를 정확히 구분 짖기가 이제는 힘들게 되었습니다. 우선 미국 같은 경우는 간음죄가 없습니다. 보수도 간음을 죄로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또 공화당 국회의원이라도 프로 초이스를, 민주당 국회의원이라도 프로 라이프를 지지하는 경우도 왕왕 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정치경제적 혹은 사회윤리적 측면이든 완전한 보수나 완전한 진보는 없다는 뜻입니다. 또 설령 그런 자가 있다 해도 현실적으로 자기 사상을 완벽하게 구현하기도 힘듭니다. 일반적인 사상과 가치관에서도 그럴진대 성경적으로 따지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예컨대 현재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미트 롬니는 보수적 윤리관을 유지하지만 몰몬교라는 분명한 이단종파 출신입니다. 신자마저 어디에다 기준을 두고 선택해야할지 혼돈됩니다. 나아가 아무리 믿음 좋은 보수적 인사가 정권을 잡아도 성경 가르침대로 완전히 실현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범기독교계 내에서도 성경을 자유주의적(개인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정치적 의미가 아니라, 성경을 인간의 저작으로 보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입장을 말함)으로 해석하여 인간중심적 정책을 지지하는 계파가 많습니다. 노동신학과 해방신학 등은 자본주의를 배격하고 공산주의 쪽으로 많이 기울며, 자유주의신학과 여성신학에선 낙태, 간음, 동성애 등을 죄로 보지 않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보수와 진보는 물론, 기독교와 비기독교, 성경적인 것과 비성경적인 것의 구분 기준마저도 사람들 사이에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거기다 기독교 신자가 지도자가 되었다 쳐도 그 본인은 여전히 연약하며 무지하고 인간적 의와 욕심이 생생히 살아 있는 죄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그 전에 그 사람의 신앙을 온전히 속속들이 알 수도 없습니다. 대통령 같은 지도적 위치라면 타종교인과 무신론자가 절대 다수인 국가공동체의 유지 발전이 우선이기에 기독교적 가치관만 주장할 수 없는 입장에 처합니다. 요컨대 역사를 주관하는 이는 하나님 한 분일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정작 신자가 취할 태도
그럼에도 성경이 확실하게 가르치는 사실은 가족 중심, 성적 순결 강조 같은 전통적 가치관이 하나님의 뜻과 부합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동성애나 낙태를 자유롭게 용납하는 것처럼 인간의 자유를 최대한 허용하는(men-oriented) 일은 하나님 중심주의인(God-oriented) 성경의 뜻과 위배되는 경우를 자주 노정합니다. 결론적으로 다시 말하지만 성경은 민주자유주의를 지지하되 공산전제독재는 철저히 배격하며, 하나님의 창조섭리와 당신의 절대적 도덕적 기준 안에서 당신만을 믿고 따르기를 요구합니다.
따라서 신자는 성경적 기준에 가장 근접한 지도자를 선택하되 그 지도자와 나라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보다 인간 중심의 사상을 가진 지도자가 선출되었다 해도 그에게 더더욱 협력하고 기도도 갑절로 해야 합니다. 신자가 기독정당을 만들어서 직접 정치에 나서는 것이나, 신자 지도자에게 투표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중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신자들이 하나님께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세상 사람들 앞에 그리스도의 사신(使臣)으로 거룩하게 서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를 자신의 존재와 삶과 인생을 통해 최선을 다해서 최대한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땅을 당신의 뜻에 맞게 아름답게 바꾸는 일을 정치 지도자보다 신자 개개인에게 더 우선적으로 맡겨 놓았다는 뜻입니다.
예컨대 간음이나 동성애를 정죄하기 보다는 성적으로 순결한 삶과 정상부부가 얼마나 아름답고 거룩하며 즐겁게 살 수 있는지 실제로 보여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아무리 믿음 좋은 신자 후보자에게 투표하고, 성경적 정책을 수행하는 기독정당을 만들어도 또 다시 말만 앞서는 기독교라는 비난만 살 뿐입니다.
10/31/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