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침례교가 이단인가요?

조회 수 2589 추천 수 28 2011.01.01 02:59:32
재침례교가 이단인가요?


[질문]


제 직업은 교도관인데, 우연히 기독교 교도소선교단체 '세진회'라는 홈페이지에서 어떤 글을 보았습니다. 그 홈페이지 관리자가 [재침례교도. 아나뱁티스트]를 긍정적으로 언급하면서 글을 쓴 것을 보았습니다. '재침례교'라는 명칭이 무척 낯선데, 혹시 이단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답변]

한마디로 답부터 드리자면 종교개혁 운동의 한 분파로서 당시 그 중 일부가 이단적, 극단적 움직임을 보였지만 재침례파 자체는 이단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정신은 현재의 침례교 교리의 바탕이 되었을 정도로 성경적으로 아주 건전하며 개혁적입니다. 간단하게 그 역사적 배경과 함께 그들의 교리적 주장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역사적 배경

스위스의 종교개혁자 쯔윙글리는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의 일환으로 젊은이들에게 원어로 성경을 가르치며 함께 연구했습니다. 그를 추종하던 일단의 젊은이들이 쯔윙글리와 기존의 개혁가들에게 실망을 느끼고 따로 떨어져서 더 급진적인 개혁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신학적인 면에선 개혁가들과 의견을 거의 같이 했지만, 교회정치(Church Polity) 면에서의 개혁이 성경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고 여긴 것입니다.  

이 새 분파는 그중에서도 본인의 진정한 신앙고백이 생기기도 전에 교회가 주는 세례로 구원이 보장된다고 주장하는 로마교회의 유아세례야말로 완전 반(反)성경적이라고 여겼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초대교회에선 분명히 믿는 자에게만 세례를 주었습니다. 유아세례를 베풀었다는 기록이나 지지하는 언급이 없습니다. 예수님도 지상명령에서 제자를 삼은 후에 세례를 주라고(마28:19)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중생의 경험이 있는 자가 그 신앙을 자발적으로 고백할 때에 한해 세례를 주자고 주장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의 종교개혁자들도 세례로 구원의 효력이 발생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에는 동의했지만, 여전히 신앙공동체에 속하게 되었다는 의미로 유아에게 세례를 행하고 있었기에 그들과도 결별을 하게 된 것입니다.

1525년 1월 콘라드 그레벨의 주도로 열두서너 명의 동조자들이 쯔윙글리의 문하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이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재침례교(Anabaptist)라는 명칭도 콘라드가 그 중 유아세례를 이미 받은 한 명에게 침례를 주고 그 후 서로 침례를 줌으로써 생겼습니다. 헬라어로 Ana가 again(다시)의 뜻입니다.(*)

또 종교개혁가들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는 원리는 인정하되, 여전히 일반 제후의 도움을 받고 힘을 합쳐 개혁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개혁가들로선 정치와 종교를 함께 장악한 무소불위의 로마교회와 대항하려면 정치 사회적 보호막이 필요했었고 또 시민사회를 성경적으로 개혁하되 가능한 온건한 방식으로 하려는 입장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완전한 정종 분리와 빠른 개혁을 주장했던 재침례파는 이런 면에서도 개혁가들과 함께 갈 수 없었습니다.

나아가 중생자만 침례 받아야 한다는 교리와 연결하여 믿는 자만 교회 회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교회정체(政體)의 개혁도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들은 로마당국은 물론 개혁가들과도 이런 저런 의견 차이는 물론 국가기본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들로 오인되어서 배척당했습니다. 요컨대 신구교 양쪽에서 다 심한 핍박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런 핍박의 반동으로 재침례파 중에서도 극도로 과격한 그룹이 생겼습니다. 1525년 농민전쟁을 주동한 토머스 뮌쩌는 가톨릭교의 도시인 뮌스터에 지상천년왕국을 건설한다는 명목으로 사유재산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완전한 공산주의적인 학정을 시행했습니다. 중생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목사와 교인을 잡아서 무참히 처형했습니다. 종말이 임박했다는 것과 정신과 육체의 분리라는 교리적 이단으로도 흘러 나체로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등, 온갖 괴상한 행태가 자행되었습니다. 1535년 이 도시는 가톨릭 연합군에 의해 함락되었고 필연적으로 엄청난 학살이 따랐습니다.

이 뮌스터의 재난으로 인해 다른 모든 재침례파들에게도 호전적, 공산적, 종말론적 극단주의라는 오명이 붙어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성경적 개혁정신은 곳곳에서 조용히 계승 발전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네델란드의 멘노 사이먼의 경우, 개혁운동은 그대로 이어가되 재침례파라는 명칭이 주는 부정적 편견을 없애려고 형제들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길 원했습니다. 성경대로 경건한 생활을 실천하며 서로 사랑으로 섬기는 공동체로서의 신약교회 모습을 회복하려는 그의 운동은 지도자의 이름을 따 메노파(Mennonites)로 불렸습니다.

메노파는 이후 온건한 Waterlanders 파, 중도적이면서 조금 엄격한 Friesians 파, 매우 엄격한 Flemish 의 세 지역적 유파로 발전했습니다. 여전히 이들은 네델란드에서 1531-97년 사이에 순교한 자의 3/4을 차지할 정도로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조용히 박해를 견디며 검소한 생활을 하였고 평화주의, 정치불간섭 및 경건주의를 신실히 지켜나갔습니다. 비슷한 성격의 체코의 모라비안 형제단이나 오스트리아의 후터(The Hutterites)파 등도 재침례파의 분파입니다.

또 이후에 영국 국교회에서 분리주의자로 몰린 존 스미스가 네델란드에 피신해 와있는 동안에 메노파에 큰 영향을 받아 재침례파가 되었고, 1612년 고곡으로 돌아와서 오늘날의 침례교의 선조가 되는 교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현재에도 서구에는 메노나이트 계열의 교회들은 재침례파라는 명칭은 사용하지 않아도 그들의 후손이라고 보면 됩니다. 한국에는 별도의 공식적 교단이나 교회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최근 재침례교의 정신을 가르치고 실현하려는 취지로 KAC(Korea Anabaptist Center - www.kac.or.kr)라는 단체가 결성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교리적 주장

뮌스터 사건 같이 일부의 극단 분파를 제외한 거의 모든 재침례파의 신론과 기독론은 정통 개혁주의자와 맥을 같이 합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그들은 신학적 차이보다는 교회정체적인 측면에서 쯔윙글리같은 개혁자들과 의견을 달리하는데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감리교 배경을 가진 교회역사가 F. Litte는 “재침례파-메노파들은 ‘문화적 종교’ 안에서는 교회가 국가나 세속적 가치들과 너무나 한 통속이 되었기 때문에 교회의 진정한 성실은 왜곡되어버렸으므로 진정한 교회의 배상(賠償)을 시도했다”고 평했을 정도입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신약교회의 모습을 성경대로 회복하자는 목적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핵심적 주장을 열거하면:

- 오직 성경만을 최종 권위로 인정하며 기독교는 성경대로 돌아가야 한다.
- 제자 훈련과 경건생활을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 유아세례에 반대하며 믿는 자에게만 침례를 주어야 한다.
- 믿는 자들에게만 교회의 회원이 되는 자격을 주어야 한다.
- 정치와 종교는 완전히 분리해야 한다.
- 각 개인의 종교의 자유도 완전히 보장되어야 한다.
- 교회 내에 만인제사장직분을 완벽히 시행해야 한다.
- 모든 교인들이 동등한 자격과 신분에서 사랑으로 섬기는 공동체를 실현해야 한다.

따라서 현대 교회들이 지향하는 제자훈련, 개인적인 성경읽기와 묵상, 회중 중심의 민주주의적 교회정체, 개별교회주의, 전도와 선교의 활성화 등은 이들에게서 기원 내지 영향을 입은 바가 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신자가 보면 너무나 지당하며 또 거의 모든 교단에서 실제로 시행되고 있는 주장들이지 않습니까? 대표적 예로 지금도 유아세례를 시행하는 교단들이 있지만 그 의미를 구원과는 무관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믿는 부모를 통해 기독교 공동체의 일원이 된 아기를 부모가 기도와 말씀으로 양육하고 경건의 본을 보이며 살겠다는 헌신의 징표로 시행합니다. 침례교도 그런 의미로 유아침례 대신에 헌아례(獻兒禮) 의식을 거행합니다.

출발 당시에는 재침례파가 이런저런 정치, 종교, 사회적 이유로 급진적이라고 오해 내지 매도되었지만, 최근 그 운동과 정신을 정확히 재평가하여 올바르게 구현하자는 움직임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작금의 교회의 비리와 부패를 뜯어고치고 정체된 기독교 성장세를 부흥세로 되돌리려면 재침례파 정신을 적극적으로 이어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각주:

(*) 세례와 침례의 차이는 본주제와 상관없기에 언급하지 않기로 함, 영어로는 baptism 이라는 단어 하나뿐인데 그 어원상 의미는 물에 잠긴다는 뜻임. 두 용어를 혼용해 사용했지만 동일한 의미로 이해해주시기 바람.  

(**) 로버트 토벳트 저작, 허긴 번역, “침례교회사” (침례신학대학출판부 1982) 28 p.

참고:

최근에 기독교 인터넷 신문인 뉴스앤조이(www.newsnjoy.com)에 신광은 목사가 교회 개혁을 주제로 “아나뱁티스트로부터 배우기”라는 시리즈를 현재 5편까지 연재하고 있습니다. 들어가서 읽어 보시면 재침례파 이해에 더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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