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에 대한 세 가지 질문
아래는 회교국가에서 주로 무슬림을 상대하는 일을 해야 하는 분께서 이멜로 개인적으로 주신 질문에 대해 메모 방식으로 간단하게 답변 드린 내용입니다. 함께 나누고자 올립니다.
1. “무슬림들도 Allah를 믿고 기도하지만 그들의 Allah와 하나님이 같은지에 대해서 혼란스러운 점이 많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은 분명 한 분뿐임, 그래서 각 종교마다 그 명칭만 다르지 같은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라고 일반인들은 주장하고 신자마저 간혹 오해하는 경우가 있음,
그러나 불교는 사실상 창조주 하나님이 없고 스스로 부처가 되는 종교임, 힌두교(뉴에이지의 원류)는 전생의 죄로 후생에 동물로 환생하기에 죄 사함의 구원이 실제로는 없으며(환생 그 자체가 심판이자 구원이기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다 신이라고 숭배함, 이 둘은 벌써 같은 하나님을 믿는 종교가 아님,
반면에 창조주 유일신을 믿는 종교는 그나마 유대교, 이슬람, 기독교(구교, 신교) 뿐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구약성경을 셋 다 인정함, 그러나 유대교와 이슬람은 신약성경을 믿지 않음, 그리고 유대교는 유대인들만 선민으로 율법을 받았기에 구원을 받는다고 함, 아직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데 유대인들만을 위한 메시아가 온다고 함, 이슬람은 코란만 믿어야 하며(신구약 성경과 무관) 구원도 코란에 기록된 대로 종교적 도덕적 행위를 해야만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침, 만약에 이 세 종교가 같은 하나님이라면 구원의 길을 서로 다르게 가르치실 리가 없음, 역으로 따지면 절대로 같은 하나님이 아님.
결국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과 그렇지 않은 하나님의 구별이 필요함, 다른 말로 세상 모든 종교는 1)인간을 불쌍히 여겨 하나님이 내려오신 구원과 2)인간의 공적으로 하나님의 기준에 합격하려고 인간이 올라가는 구원의 두 종류로만 나뉨. 일부 개신교와 천주교마저 후자에 속함, 최근에는 극히 일부 보수복음주의 교단만 전자를 고수함.
모든 종교의 구원의 길이 타당하다고 인정하거나 인간이 어떻게 둘 중 하나가 확정적으로 옳다고 판단할 수 있느냐고 여길 문제는 결코 아님, 그럼 결국 모든 종교에 구원이 가능하며 또 그렇게 되면 아무 종교나(심지어 힌두교나 사탄숭배 종교) 믿기만 하면 되고 나아가 종교를 전혀 안 가져도 됨, 전부가 정답이면 답이 없는 것과 같음, 그럼 하나님도 구태여 존재할 의미가 없음, 아니 존재하지 않는 것과 방불함, 한 분 하나님이라면 반드시 한 가지 절대적 구원의 길을 인간에게 분명히 알 수 있도록 제시해 주어야 함. 하나님 당신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임.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을 믿는다는 의미는 결국은 죄에서 사함을 받는 구원 즉, 사후의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 받고자 하는 것임. 사후 영생이 없이 이 땅의 삶만 주관하는 하나님이라면 아무 의미가 없음,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임, 종교도 그런 풍요를 얻고자 하는 보조 수단으로 전락함.
이 질문의 해답은 결국 종교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달렸음, 크게 보아서 1)종교란 사후 문제와 상관없이 (혹은 주로) 이 땅에서 인간끼리 도덕적 정신적 성장을 이루어 상생 발전하는 일에 도움만 주면 된다는 생각이라면 불교나 힌두교도 가치가 있음, 2) 종교는 반드시 사후의 구원을 제공해야 하는데 인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라면 복음주의 개신교를 제외한 다른 모든 종교도 가치가 있음, 3) 인간 스스로는 도저히 구원을 이룰 수 없기에 하나님이 구원해 주셔야 한다는 철저한 인식이 있으면 예수님 밖에 없음, 또 이 셋의 하나님을 결코 같은 범주에 묶을 수 없음
2. “예수님이 오신 후부터는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부정하고 있습니다.”
타 종교에서 예수님을 인정하느냐의 여부는 교리의 우월성을 비교 검토한 결과가 아님, 세상 모든 종교와 사람들이 예수를 위대한 성인으로는 인정함, 그러나 그분을 하나님으로는 인정하지 않음, 그마저도 성육신과 동정녀 탄생과 여러 이적과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교리를 부인하는 것이 근본적 원인이 아님, 나아가 종교마다 자기들 구원의 길을 유일 내지 최고의 길로 내세우려니까 다른 종교의 그것을 부인할 수밖에 없는 것조차 이유가 아님.
모든 인간이 아담의 원죄로 인하여 영적으로 완전히 타락했기에 스스로는 도저히 의를 이룰 수 없다는 성경 고유의 인간 상태에 대한 진단 때문임, 또 성경은 사실은 예수님이 오신 후부터가 아니라 오시기 전 구약 시대의 구원원리도 동일하다고 가르침, 아브라함이 마누라를 두 번이나 팔아먹고 처첩과 아이들 관리도 잘못한 죄인이지만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분에게 순종했기에 구원 받았음, (요8:52-59 참조)
말하자면 타 종교가 기독교의 진리를 잘 알지 못함, 단순히 예수도 한 인간으로서 부처 무하메드처럼 스스로 깨우치거나 계시를 받아 종교를 스스로 만든 것으로 오해함, 그래서 모로 가도 서울을 갈 수 있는 여러 길 중의 하나를 예수가 제시했다고 생각함, 그러니까 예수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간다는 교리를 부정할 수밖에 없음,
이는 종교 간 교리의 합리성과 우월성의 경쟁으로 볼 주제가 결코 아님, 만약 인간 스스로 도저히 하나님의 의에 미치지 못할 것 같으면 하나님이 구원을 베풀어야 하고, 가능하다고 여기면 인간이 임의로 종교를 택해서 믿으면 됨, 그것도 알라 같은 유일신 창조주이자 숙명적인 순종을 요구하며 도덕적으로 아주 우월한 종교이면 더 좋게 여겨질 수 있음,
성경은 인간을 사단에 묶여서 스스로는 하나님의 의에 도저히 미칠 수 없다고 진단함, 그래서 성령을 보내 주어서 거듭나야 한다고 함,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에 죄를 짓는다고 함, 하나님이 죄는 저주하되 죄인은 불쌍히 여기기에 독생자로 죄의 저주를 감당하고 그 형벌을 다 지우신 은혜를 믿는 자를 구원해주심, 다 같이 점수로 치면 빵점이기에 십자가 앞에 엎드리는 자만 구원함,
주의할 것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해서 인간이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는 종교적 선택이 아님,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라고는 철두철미 썩어서 진동하는 죄악뿐임을 진정으로 겸비하게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그 믿음의 출발임, 또 그런 자신의 영적 실태를 너무나 애통하게 여기는 자여야 함,
그런데 그런 인정마저 인간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간섭으로 일어난 것임, 실제로 구체적 일시와 방식은 사람마다 다 달라도 성령의 간섭을 받은 체험이 있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이전의 자기와 전혀 달라졌음을 철저히 자각할 수 있음,
따라서 정말로 성령으로 거듭난 증거는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종교적 모습이 아님, 그 인생관이 완전히 뒤집어진 것임,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가 사실은 실재임을 확신하기에 영생을 소망으로 삼아서 이 땅에서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게 됨, 고달픈 이 땅을 탈출해 천국으로 도피하겠다는 사상이 아님, 하늘의 보물을 이 땅에 옮겨와 심는 존재가 됨, 쉽게 말해 한시적인 이 땅에서의 먹고 마시는 문제는 더 이상 인생의 근본 목적이 될 수 없음, 단지 자기가 하는 일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보조 수단이 될 뿐임.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은 그래서, 살아 역사하시는 거룩한 하나님과 절대적이고도 인격적인 관계를 그분과 개인적으로 이 땅에서부터 유지 발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뜻임, 신자가 예수 믿어 현실적 삶에서 더 복을 받는 것이 아님. 예수님과 동행해야만 참 인간답게 진정으로 아름다고 거룩하게 살 수 있는 길이라는 뜻임,
타 종교의 구원의 길이 조금이라도 그런대로 타당해 보인다는 뜻은 인간의 상태에 대한 성경이 말하는 바에 대한 이해 부족이거나,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죄인임을 자각하지 못하거나, 그런 중생의 체험이 없다는 뜻일 수도 있음, 십자가 구원과 다른 모든 구원의 길은 영생을 소망한다는 면에선 출발 장소는 동일하되 서로 등을 지고 다른 방향으로 출발하는 셈임. 자연히 가는 길도 다르며 도착지도 완전히 달라짐,
3. “쿠란에서 계시의 취소/진전이라는 것이 있는데 상충되는 쿠란의 내용은 다음 계시나 더 나은 계시에 의해서 대체되었다고 합니다. 메카에서 받은 계시와 메디나에서 받은 계시가 상충되는 점이 있습니다. 메카에서는 아직 무하메드가 기반을 닦기 전이어서 그런지 유대교, 기독교를 모두 인정하고 친구처럼 지내도 좋다는 계시가 있고 계시를 하기 위하여 천사 가브리엘을 보낸 것은 그 전의 것들을 확증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하지만 메디나에서는 기반을 닦은 후이기 때문이어서 그런지 기독교인들과 친구처럼 지내서는 안 된다고 함”
모든 종교는 인간이 만든 것이며 예수님은 하나님 본체로서 이 땅에 구원을 주러 오신 것이 근본적으로 다름, 따라서 기독교는 종교의 범주에 드는 것이 아니라 참 생명임. 또 그래서 모든 사람을 전도 대상으로 함, 교세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참 구원을 주고자 안타까워하는 것임.
오히려 종교 간에 관용하며 서로 전도를 자제하자는 것은 진리가 여럿임을 인정해주면서 자기 교세의 테두리를 지키려는 종교간 기득권 싸움임, 기독교가 배타적이거나 교세확장에 광분하는 것이 결코 아님, 타 종교는 진리에선 관용적이고 교세에선 배타적인 반면에 기독교는 진리에선 배타적이고(참 진리라면 그럴 수밖에 없음) 누구라도 그 진리를 받아들이라고 권하므로 교인의 전제 조건에선 관용적임
진리가, 그것도 하나님의 구원을 주는 진리가 수정 가감 취소가 되면 애당초 진리가 아님, 성경이 말하는바 진리는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음, 그것을 해석한 인간들의 교리가 바뀌는 경우는 많았음, 그러나 성경은 마지막에 성경에 더하거나 빼면 안 된다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음(계22:19)
진리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상대적이고(상대주의), 여럿이며(다원주의), 바뀔 수 있으며, 어느 누구도 절대적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인본 및 자유주의)고 주장하는 이유는 그 진리를 인간이 고안해 낸 것이기 때문임, 인간 존재 자체가 조변석개하기에 당연히 그러함, 그러나 하나님의 진리는 그럴 수 없음, 그럼 아예 진리가 아님,
우선 기독교인과 친구처럼 지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알라가 바른 하나님이자 바른 종교일 리는 없음, 성경은 죄는 철저히 저주하되 죄인은 철저히 사랑하라는 것임, 십자가의 뜻도 바로 그러함, 나아가 모든 이들을 사랑으로 대하라고 함(고전5:9,10 참조), 타종교인과 영적인 일에 동참은 못해도 교제하고 사랑해야 함(재차 강조하지만 진리에는 배타적 사람에는 관용적)
기독교도 구약 율법과 신약 계명이 달라졌다고 오해하면 안 됨, 율법과 예수님 가르침에 담긴 근본적인 하나님의 뜻 즉, 진리는 절대 변함이 없음(마23;23 참조) 단지 당시의 시대 상황에 맞춘 적용만 다른 것임,
모든 세대의 시대 상황이란 죄에 빠진 인간들이 하나님의 뜻에 거슬리거나 임의로 판단하여 조성해낸 불완전한 상태에 불과함, 하나님은 그 상황을 강제로 독단적으로 뒤엎지 아니하고 그 연약한 상태를 그대로 두신 상태에서 당신의 뜻을 점진적으로 이뤄나가심. 예컨대 구약시대에 일부다처나 종을 인정한 것이나 이스라엘에 왕정제도를 허락한 것 등임, 그럼에도 결국에는 노예폐지는 기독교인이 이뤄냈음, 성경만이 유일하게 수천 년 전부터 이미 모든 인간은 남녀 인종 문화 등에 관계없이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다는 사상을 드러내고 있음,
성경의 인간 저자가 40여명에 이르고 근 2천년에 걸친 저작이라는 점이 바로 절대적 하나님의 계시라는 것을 나타냄. 만약 한 위대한 선지자가 깨우친 내용 즉 인간이 고안한 종교라면 한 권으로 족하고 그렇게 오랜 시대가 필요 없음, 성경이 오랜 시대 많은 저자들의 책의 집합체임에도 전체를 꿰뚫는 진리에서 한 가지 주제로 일관하면서 전혀 변함이 없음, 바로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인간 저자에게 기록한 당신의 말씀이기 때문임,
실제로 지난 역사에 수도 없이 성경을 말살하려고 인간들이 시도했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음, 사람이 변해도 진리는 변할 수 없음, 진리가 변하거나 상대적이거나 여럿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야 말로 인간의 말임, 또 현 시대의 가장 큰 특징으로 진짜로 예수님 재림이 다가온다는 여실한 증거임,
1/16/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