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 행7:4(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 문제의 제기

어느 목사님이 쓴 ‘우리가 잘 모르는 것들 성경에는 있다’라는 책에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좀 길지만 원문을 그대로 인용하겠습니다.

  『창세기를 좀더 눈여겨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정식으로 부르신 때가 데라가 하란에 정착한 이후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가 아닌 하란에 있던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12:1)라고 명령하신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미 데라가 온전한 순종을 이룰 인물이 못된다고 판단하셨음을 알 수 있다. 그의 결단은 하란까지만이었기에 하나님은 잔을 옮겨 그 아들 아브라함에게 기대를 거시고 영광스러운 제안을 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도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또 있다. 좀 부담스러운 말이지만, 사도행전의 스데반 선생이 이 부분을 오해하고 계셨다. 사도행전 7장 4절을 보면, 스데반 선생은 아브라함이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데라]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아브라함]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가나안]으로 옮기셨느니라”라고 설교하고 있다. 진심으로 존경하는 스데반 선생의 마지막 설교에 딴지를 걸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에 분명히 그 아버지 데라는 살아 있었다.  데라가 아브라함을 낳았을 때의 나이는 “70세”였다(창11:26). 그리고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의 나이는 “75세”였다(창12:4).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 데라는 145세(70+75세)로 아직 정정하게 살아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데라는 “205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기 때문이다(창11:32). 그러니까 데라는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난 후에도 자그마치 60년이나 더 생존했던 것이다.』(pp.202-203).    
  
▣ 아브라함은 데라의 장자(맏아들)인가?

창11:26절은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데라가 70세에 아들 3명을 낳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 십상인데, 이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려 할 때 빠지기 쉬운 함정일 수 있습니다.

사실 한글개역성경만 읽는다면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공동번역은 더 그렇습니다). 그러나 영어성경만이라도 신경 써서 읽으면 다소 보완이 가능합니다. 대표적 영어성경인 KJV와 NIV를 인용하겠습니다.

  ○ KJV : And Terah lived seventy years, and begat Abram, Nahor, and Haran.
  ○ NIV : After Terah had lived 70 years, he became the father of Abram, Nahor and Haran.
  ※ RSV와 NRSV는 After 대신 When을 사용했지만 다른 단어는 NIV와 동일합니다.

이제 이 문장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KJV는 좀 모호합니다만 NIV/RSV 등은 아주 명확합니다. “데라는 70세가 될 때까지 산 다음에, 아들들을 낳기 시작하여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의 아비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즉 “데라는 70세에 (누가 되었든) 맏아들을 낳고 그 이후(상당 기간에 걸쳐) 총 3명의 아들들을 낳았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문제는 아브람(아브라함)의 이름이 가장 먼저 나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맏아들을 먼저 거명하기 때문에 맨처음 기록된 아브람이 데라의 맏아들일 것이라 여기곤 그냥 넘어갑니다. ‘아브람 장자설’이라 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데라의 맏아들이 아니라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일부 주석에도 나오는 견해입니다). ‘하란 장자설’이라 합니다.

개인적으로 ‘하란 장자설’을 지지하기 때문에, 지지 이유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9절을 보면 아브람의 아내는 사래이며(그녀는 아브람의 이복누이동생입니다) 나홀의 아내 밀가는 하란의 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나홀은 자신의 조카딸(생질녀)과 결혼했습니다.

그렇다면 나홀이 데라의 맏아들일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오히려 하란이 나홀의 형일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그것도 형 하란과 동생 나홀의 나이차이가 엄청나게 크다고 보아야 합니다. 삼촌과 조카의 나이가 비슷한 경우란, 형과 아우의 나이차이가 클 때라야 가능한 현상임은 분명합니다(오늘날 우리 주변에서도 이러한 경우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결국, 하란이 나홀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야만 나홀과 밀가의 결혼이 가능해집니다. 역현상(하란이 나홀의 동생일 상황)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 그리고 31절에 보면 하란에게는 롯이라는 아들이 더 있습니다. 이 롯은 이후 아브라함과 함께 등장하는 바로 그 롯으로서 아브라함의 조카입니다. 그가 할아버지 데라와 함께 갈대아 우르를 떠날 당시 그의 나이는 제법 들었을 것입니다. 대부분 학자들의 견해처럼,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의 아브라함의 나이를 60세였다고 볼 때, 아마도 롯은 60세에는 이르지 못했더라도 적어도 30-40대 정도는 되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하란의 형일 가능성을 부인하는 증거가 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결국, 하란이 아브라함보다도 나이가 더 많을 가능성을 훨씬 높다 할 것입니다!  

  ○ 28절을 보면 하란은 그 부친 데라보다 먼저 갈대아 땅에서 죽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사망원인을 밝히고 있지는 않으나 사망원인이 중요한 쟁점은 아니므로, 더 이상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하란이 사망할 당시, 이미 그에게는 장성하여 결혼한 딸(동생인 나홀의 아내인 밀가)과 역시 장성한 아들(롯)이 있었다는 점입니다(롯의 결혼시기에 대해서는 조금 후에 살펴볼 것입니다). 이러한 정황은 그만큼 하란의 나이가 많았음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하란은 3형제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을 가능성이 제일 큰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겠습니다.

  ○ 이 항목의 소결론은 이것입니다. 모든 정황으로 볼 때, 하란이 아브라함이나 나홀에 비하여 나이가 많은 것 같아 보이며, 따라서 데라의 아들들은 하란-아브라함-나홀의 순서일 것입니다. 물론 이 형제 서열 자체는 추정입니다만, 하란의 장자 가능성을 부정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창5:32도 참조바랍니다).

앞에서, 롯과 삼촌인 아브라함의 나이차이가 별로 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견해를 말했는데, 성경을 조금 살펴보겠습니다.

  ○ 창12:10절 이후부터는 가나안에서의 아브라함과 롯의 삶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삶의 성공과 실패 기사는 직접 성경을 참고하시기 바라며, 여하튼 18장에 가면 아브라함의 나이 99세 때의 사건이 나옵니다. 이삭을 주시겠다는 약속에 이어, 도덕적 타락이 극에 달했던 소돔과 고모라 멸망의 예고가 나옵니다. 그리고 19장에서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합니다(아마도 아브라함 99세 때의 사건일 것이며 그렇다면 가나안 정착 24년 후의 일입니다). 그런데, 창19:30-38절에는 매우 민망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버지 롯과 두 딸 사이의 근친상간 사건이 그것입니다. 여기서 이 사건의 의미를 살펴보려는 것은 아니고, 단지 롯의 두 딸이 자신들의 결혼을 걱정했다는 점이 이번 묵상과 조금 관련되기에 이를 짚어보려는 것입니다.  

  ○ 아버지를 술에 취하게 하여 성관계를 가질 당시, 두 딸의 나이는 기록되지 않았으나 모든 정황을 고려할 때, 아마도 결혼 적령기를 지났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고 최대 양보하더라도 적어도 20세 이상은 되었을 것입니다(이는 롯의 결혼시기가 하란에 거주할 때이거나 또는 가나안 이주 직후라고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자, 이 시기는 아브라함의 나이가 99세 때(가나안 이주 24년 후)라 하였습니다. 롯의 두 딸의 나이를 20세로 가정하고, 롯의 나이를 추정해 보겠습니다. 롯의 나이는 ‘가나안에서의 24년 + 하란에서의 15년 + 갈대아 우르에서의 ?년’으로 계산됩니다. 여기서 ‘?표’ 나이가 문제인데, 저는 앞에서 이를 30-40세로 보았습니다. 자, 이제 롯의 실제 나이를 말씀드립니다. 아마도 69세(24+15+30) 내지 79세(24+15+40)일 것입니다. 이 정도의 나이는 되어야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31절)라는 롯의 딸들의 걱정이 이해됩니다. 롯의 나이는 삼촌 아브라함과 겨우 20-30년 차이였을 것입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60세였다면, 당시 롯의 나이가 최소한 30-40대 정도는 되었을 것이라는 앞에서의 추정은 어느 정도 타당하다 할 것입니다.  

  ○ 이 항목의 소결론은 이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조카인 롯과의 나이 차이가 최대 20-30년이라면(어쩌면 그보다 적을 수도 있습니다), 하란(롯의 아버지)이 아브라함의 동생일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란이 아브라함의 형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논리적입니다.

지엽적이기는 하지만, 아브라함과 나홀의 서열(누가 형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 이제 수십년이 더 흘러, 이삭의 나이 40이 되었습니다. 외아들 이삭의 결혼을 걱정하던 아브라함이 결단을 내립니다. 며느리는 자기가 살고 있는 가나안 지방의 이방여성이 아닌 친족 중에서 간택하겠다고 말입니다(창24:4). 그리하여 가장 신뢰하는 하인을 친족들이 살고 있는 하란 지방으로 파견합니다. 충실한 종은 주인의 명령을 성실히 실행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삭의 배필을 쉽게 만납니다.

  ○ 이 배필은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24:15)의 손녀인 리브가입니다. 리브가의 아버지인 브두엘(24:24)은 이삭의 4촌 형입니다. 그러므로 이삭과 리브가는 5촌 당숙질 사이가 됩니다. 이때 리브가의 나이는 알 수 없으나 아미도 이삭(40세)보다는 조금 어리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는 쉽게 추정할 수 있는 사안입니다. 즉, 형인 아브라함은 늦게까지 아들이 없었지만 동생인 나홀은 일찍 아들을 낳았고 더 나아가 손녀까지 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 여유가 있었습니다.  

  ○ 아무튼 24장 15절에서 이미 문자적으로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이라고 되어 있으므로 이는 거의 정확할 것입니다.

  ○ 결국 이 항목의 소결론은, 나홀은 아브라함의 동생이라고 보는 것이 논리적입니다!

지금까지 장황하게 성경을 살펴보았습니다. 결론이 무엇이었습니까? 비록 성경은 데라의 아들 순서를 ‘아브라함-나홀-하란’으로 기술하고 있으나,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는 ‘하란-아브라함-나홀’의 순서로 보는 것이 타당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아브라함은 결코 데라의 장자가 아니라는 점만큼은 부정할 수 없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데라의 둘째 아들일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 그렇다면 이제, ‘데라는 과연 몇 살 때 아브라함을 낳았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것입니다. 개인적 추정을 하나의 제안으로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 앞에서 묵상한 대로, 하란이 데라의 장자라고 한다면, 하란은 데라가 70세 때 출생했습니다. 이는 거의 명확하다 하겠습니다.
  
  ○ 그러나 성경은 애석하게도 아브라함의 출생 시기를 명확히 밝히지는 않고 있습니다. 다만 창11:32절을 근거하여 추정한다면, 아브라함은 아마도 데라의 나이 130세에 출생했을 것입니다(205세-75세). 그리고 나홀은 이보다 수 년 후에 태어났을 것입니다. 물론 아브라함의 경우, 겨우 100세에 이삭을 낳았는데도 아주 노년이라고 표현하면서, 데라는 그보다 30세가 더 많은 130세 이후에까지 아들을 낳았다는 점이 조금은 걸립니다.  
  
  ○ 하지만 완전한 억측만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창25:1-2절을 보면 아브라함과 후처 그두라 사이에서 출생한 시므란 등 6명의 아들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기록된 순서도 그렇고, 분위기로도 그렇듯이, 이 사건은 이삭이 탄생하기 이전의 일은 아닐 것입니다. 사라가 죽은 후의 일일 것입니다. 사라는 137세에 죽었으므로 아브라함이 147세 이후의 일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데라와 아브라함의 나이차이 130세가 마음에 걸려서인데, 147세 이후에 낳은 아브라함의 서자들 6명의 경우에 비추어 본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 결국 데라는, 70세에 장자 하란을, 130세에 차자 아브라함을, 130세 이후에 3남 나홀을 낳았으며, 190세(아브라함 60세) 되던 해에 친속들을 거느리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까지 이주했고, 하란에서 15년간 지체하다 205세 때에 하란에서 사망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아버지 데라가 사망한 그 해(75세 때) 가나안으로 이주했다는 것이 성경의 설명일 것입니다.

▣ 나가기

오늘 검토한 내용은 문자적인 해석의 불일치를 짚어본 것입니다만 명확한 결론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보다 전문적인 성경지식이 요구되지만 현재의 제 수준을 크게 넘는 주제이므로 이 정도에서 마무리합니다.

결론적으로 비록 ‘하란 장자설’을 지지하지만, ‘아브람 장자설’을 지지하는 이들 또한 만만치 않다는 점을 인정하겠습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일 것입니다.  



※ 이 글의 초안을 가지고 저자 목사님과 토론했더랬습니다. 끝까지 서로의 주장 즉, ‘아브람 장자설’과 ‘하란 장자설’을 양보하지는 않았습니다. 초안이 워낙 조악했었던지라 목사님께 크게 지적을 받아, 줄거리는 살리되, 표현은 아주 많이 수정하여 올립니다.  ♣

정순태

2009.06.27 12:54:37
*.75.152.144

"필승!!! 맑은바람은 그간 오랜 잠수생활을 마치고 귀홈하였기에 이에 신고합니다! 필승!!!"

너무 오래 적조했기에 귀대 신고로써 글 2개를 동시에 올립니다.
두가지 모두 이선우 형제님께서 질문하신 것으로서
하나는 이미 목사님께서 자세하고도 정확히(제 견해와 일치하는) 답 해 주셨습니다.
같은 견해이기에 굳이 올릴 필요는 없을지 몰라도
평신도 입장에서 다른 목사님과 토론했던 내용이기에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다른 하나는
이새의 아들들은 몇 명인가에 관한 것으로서
이선우 형제님께서 들었다는 목사의 견해와는 다소 상충되는 내용입니다.


앞으로는 가급적 주기적으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무더운 여름
주님의 보호하심에 힘 입어
건강하게 지내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샬롬!!!

운영자

2009.06.27 14:32:48
*.104.231.60

할렐루야 !!!!
이 홈피의 단골 방문객들의 힘찬 환영의 박수소리가 절로 들리는 것 같습니다.
저도, 특별히 제 집사람이, 무더운 여름에 시원한 빗줄기를 만난듯 다시 힘이 납니다.
오랜 잠수를 끝내고 다시 육지로 올라오셨으니
그동안 상어를 포획한 무용담 보따리를 많이 풀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

이선우

2009.06.28 07:43:44
*.223.6.207

웰컴 백!! (Wilkommen zurueck) 독일에서도 환영합니다.
또한 귀환 기념으로 무지몽매한 제 질문부터 실어 주시니 감개무량, 감사합니다.
지난 번 얘기한 것처럼 저는 경공으로 따지면 초상비 수준인데,
정순태 형제님은 능공도허를 넘어선 육지비행술의 경지시니...^___^
휴~ 앞으로 자주 배우겠습니다.

상혁

2009.06.28 13:37:23
*.104.231.60

돌아온 맑~고 뚜루루룽~~
아이조아~ 아이조아~ 꾸벅꾸벅^^
그라고 선우쌤도 홧팅!!

김형주

2009.06.30 16:46:23
*.216.87.235

할렐루야!!!
반갑습니다. 드디어 나타나셨군요.
샬롬!!!

정순태

2009.07.04 12:11:47
*.75.152.239

일주일에 한 번만 로그인하려다 보니 늦었습니다!

오랫동안 결석했음에도 너그럽게 넘겨 주시니 감사합니다!!!

아주 작디 작은 것이나마 형제자매님들과 함께 나누고
목사님 사역에 걸림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조심하고 또 애쓰겠습니다.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1 [목자상] 02. ‘목사’ 직분의 개관(Ⅰ) 정순태 2009-10-24 942
120 [단상] 믿어지십니까? [2] 정순태 2009-10-17 898
119 [묵상] 정말 미련한 십자가의 도 정순태 2009-10-09 991
118 [서평] '내 안에 심겨진 가시나무'를 읽고(원의숙 집사) 정순태 2009-09-26 987
117 [묵상] 하나님의 진짜 마음은? [3] 정순태 2009-09-19 1215
116 [묵상] 교회는 목사만큼 큰다? [2] 정순태 2009-09-12 1086
115 [펌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엿장수 가위 정순태 2009-09-05 1000
114 [단상] 거지 강냉이 - 대박인가 쪽박인가! 정순태 2009-08-29 1027
113 [묵상] 목사 예복(예배복) Ⅱ [3] 정순태 2009-08-15 1536
112 [묵상] 난 항상 하나님 편이다! 정순태 2009-08-08 1030
111 [단상] 이게 정당한 요구였다고요? 정순태 2009-07-31 967
110 [묵상]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 정순태 2009-07-24 1076
109 [묵상] 보낼만한 자 [1] 정순태 2009-07-18 1094
108 [단상] 헤아려 알지 못함. 정순태 2009-07-10 803
107 [묵상] 그루터기 소망 정순태 2009-07-04 1668
106 [이의] 이새의 아들은 7명인가 8명인가? 정순태 2009-06-27 8209
» [이의]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 데라는 살아 있었는가? [6] 정순태 2009-06-27 4128
104 [목자상] 01. 시작의 변(辯) - 듣기 좋은 꽃노래도… [2] 정순태 2008-12-27 1310
103 [단상] 역설(逆說)의 소망 정순태 2008-12-20 1202
102 [단상] 그런 부흥은 없다! [3] 정순태 2008-12-13 1317

로그인

로그인폼

로그인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