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그루터기 소망

조회 수 1668 추천 수 65 2009.07.04 12:04:40

사6:9-13<…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13절)>


30여 년이 넘는 신앙생활 동안, 현실교회(주변의 제도교회를 지칭합니다)의 난맥상에 관하여, 부정적 경험을 참 많이 했습니다. 요즘에 이르러서는 교회에 대한 기대를 접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지배적일 정도입니다. 현실교회의 모습들이 성경의 보증과 완연히 다름을 부정하지 못하겠습니다.

글쓰기를 중단하고 쉬는 몇 개월 동안 개혁성향의 카페들을 자주 들러 보았습니다. 자칭 개혁주의자들의 주장 중에는 공감되는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어쩌면 성도들이 꼭 알아야 할, 성공한 제도교회들과 그 지도자들에 관한, 진짜 실상일 수 있습니다. 부끄러움 말입니다.

반면 자칭 정통보수주의자들이, 개혁주의자들의 주장을 ‘사단의 책동’으로 단정하여, 눈과 귀를 철저히 막아 버리는 실태도 보았습니다. 물론 그들은 ‘무한용서와 하나님의 직접 심판’이라는 전가의 보도 휘두르기를 결코 잊지 않습니다(이것이 아주 치졸한 변명에 불과할 뿐임을 깨달으려면 관점을 달리 해야 합니다).

아무튼, 개혁주의자들과 정통주의자들의 날카로운 대립을 보면, 개혁주의자들의 열세를 부인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개혁주의자들이 ‘소수’의 위치에 있다 하겠습니다.

왜 그런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으나, 개혁주의자들의 성토 대상인 기득권자들(기존의 성공한 제도교회들과 일부 지도자들)이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기득권층은 아무리 강한 어필에도 눈 하나 깜박이지 않습니다(마11:17). 시종일관 철저하게 무시하거나 외면할 뿐입니다. 성경을 교묘히 왜곡하여, 빠져 나갈 길(신학이론으로 포장된 변명) 마련해 놓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비록 심증적으로 개혁주의자들의 주장에 공감하는 바가 큼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 진영의 명백한 우세를 선언할 수는 없었습니다. 양 진영 모두 ‘지엽적인 성경이해’(자기 입맛에 맞게 각색한 불완전한 이해)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양비론(兩非論)만은 아닐 것입니다.  

아무튼, 이러한 영적 방황 가운데 성령님께서 은밀히 깨우쳐 주셨습니다. ‘개혁주의든 정통주의든, 다수에 대한 기대는 절대적으로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직 소수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세미한 음성을 들려 주셨습니다(은사/오순절 계열이 말하는 ‘하나님의 음성’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시종일관 ‘주류(다수)가 아닌 비주류(소수)’에 중심을 두고 있었을 뿐입니다. 항상 소수만을 지향했습니다. ‘소수’는 달리 말하면 ‘남은 자’입니다!

성경의 어느 시대든, 하나님의 뜻을 떠난 것은 항상 ‘다수’였습니다. 단지 소수(남은 자)만이 하나님의 뜻을 더듬어 찾으려 애썼을 뿐입니다(성경대로 솔직히 표현하면, ‘찾으려 애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찾지 않을 수 없도록 몰아가셨다.’입니다).


오늘 본문도 그러한 보증 구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사야의 사역이 시작되기 전, 하나님께서 밝히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9절 말씀은, 그냥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아도 알지 못한다.’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실제 의미는 ‘의도적으로 귀를 막아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 이사야의 경고를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10절은 ‘의도적인 거절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실제적으로 영의 눈이 멀게 될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간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11-12절은 선지자 이사야의 한탄(어느 때까지)에 이은, 하나님의 답변입니다. 그 내용인즉슨, ‘거의 전멸에 이를 때까지’일 것이랍니다.

13절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남은 십분의 일마저 몽땅 삼키워 없어진다고 합니다. 거의 100% 사라지는 것입니다.

완전한 절망 같아 보이는 13절의 말씀 속에는, 그러나 놀라운 반전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바로 “그루터기”라는 소망이 말입니다!

그루터기(stump)란 (히)‘맛체바’로서 기둥(pillar)의 뜻이라 합니다만, 문자적 의미에 연연할 필요는 없으리라 봅니다. 그냥 ‘남겨진 나무 등걸’이 가장 정확한 뜻일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지상에 남은) 것은 거의 없고, 겨우 땅 속에 조금 남아 있는 나무 끌트러기가 곧 ‘그루터기’입니다.  


한편, 성경에 기록된 신앙역사를 되새겨 보더라도, 신앙의 명맥이 결코 자격있는 유능한 인재들에 의해 이어져 오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역사는 하나님의 뜻에 붙잡힌 무능한 인재들의 발자취에 대한 기록일 뿐입니다. ‘그루터기들의 증언’인 것이지요.

성경을 거시적 안목으로 읽으면 금방 이해됩니다. 노아 시대의 8명, 엘리야 시대의 7천 명, 주님 당시의 10여명(사갸라와 엘리사벳, 세례 요한, 마리아와 요셉, 시므온과 안나, 동방박사들, 목동들)은 모두가 ‘그루터기들’이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성경의 맥을 정확히 짚었기에, “이제도 남은 자가 있다.”(롬11:5)며, 소망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항상 ‘그루터기 즉, 남은 자’와 함께 하십니다! 의미는 ‘소수’입니다!


이제 이러한 성경의 비밀 한 자락을 붙잡았으니, 오늘날의 현실에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서두에 개혁주의자들과 정통주의자들 모두 결정적 승기를 잡은 것은 아닌 것 같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개혁주의자들이 ‘소수’로 몰리는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아마도 사실일는지 모릅니다. 개혁주의자들은 매우 과격한(때로는 파격적인) 주장을 합니다. 그리고 오래 신앙생활을 한 이들이 수용하기 힘든 변화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연히 말이 투박하고 거칩니다. 별로 호감이 가지 않습니다. 결정적으로 ‘소수’입니다!

하지만 정통주의자들은 자못 다릅니다. 우선 말이 매끄럽습니다. 잘 아는 성경 말씀을 인용하므로 은혜롭게 느껴지기 십상입니다. 목소리도 크고 확신에 차 있습니다. 매우 호감이 갑니다. 결정적으로 ‘다수’입니다!

하지만 매끄럽게 말한다고, 목소리 크다고, 은혜롭게 여겨진다고, 진리의 편일 수는 없습니다. 아울러 사람 숫자가 많다고 진리일 수도 없습니다.


횡설수설했습니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오늘 묵상 속에는 이러한 외침이 담겨 있습니다. 개인적인 평소 소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개혁주의냐 정통주의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진영에 속하였든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관심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그들의 일부는 개혁진영에 속했을 것이며, 다른 일부는 정통진영에 속했을 수 있습니다. 당연히 어느 진영에 속했든, 그 숫자는 미미할 것입니다. ‘소수’일 것입니다.

결국 이는 “좁은 문”(마7:13)으로 연결되고 맙니다. 좁은 문을 지향하는 이는 항상 ‘소수’일 수밖에 없고, 소수가 들어가는 곳은 반드시 ‘좁은 문’일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단 한번도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는 넓은 문이 어디인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하나님께 소속된 자들만 찾으셨습니다. 한 마디로 주님의 관심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소수’에 있었을 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나의 소속이 개혁이냐 정통이냐?’ 또는 ‘지지자들이 많으냐 적으냐?’ 따위로 핏대 세우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소수로 남겠다.’는 결심이 요구된다 할 것입니다. ‘그루터기 소망’을 붙잡아야만 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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