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이 쓴 “거지의 강냉이”라는 짧은 글(예화)을 읽었습니다. 대박 터트릴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놓친 거지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내용입니다. 거지의 실패를 거울삼아, 하나님께는 예물을 듬뿍 드림으로써, 대박 터트리자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흔히 들을 수 있고 또 무척 은혜로운 것 같지만 실상은 대단한 착각이 내재된 오해입니다.
첫째, 논리의 일관성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거지는 욕심에 사로잡혀 적게 내어 적게 받은 것’ 같지만, 사실은 수 천 배의 이득을 봤습니다. 강냉이 다섯 알과 금덩이 다섯 알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대박으로 보상받은 것입니다.
반면, 본문으로 인용한 막14:3절의 ‘옥합 여인’은 1년 연봉에 해당되는 고액의 향유를 드렸으나 단 한 푼의 보상도 받지 못했습니다. 막12:42절의 두 렙돈 과부도 결코 4 렙돈으로 되돌려 받지 못했습니다. 두 여인 모두 쪽박 찬 것과 진배없습니다.
또한, 거지는 더 큰 대박 기회 놓친 것을 후회하고 있으나, 옥합 여인(이후 두 렙돈 과부 포함)은 후회도 원망도 없습니다. 드린 그 자체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끝으로, ‘적게 낸 것이 문제’라고 하다가,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양의 많고 적음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 버립니다. 앞뒤의 강조점이 대립됩니다.
결국 거지와 옥합 여인은 상호 비교의 대상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전혀 다른 논리의 인물들입니다. 비교할 수 없는 인물들을 억지로 엮으려다보니 논리성이 상실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투자를 빙자한 투기의 조장’입니다. 강냉이 다섯 알이 금덩이로 바뀐 것은 가치증대(이윤창출)이므로, 가진 것을 몽땅 투척하여 대박 터트림이 옳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결코 ‘투기’를 강조하지 않습니다! 이런 생각이라면 전재산 헌납을 강요하는 일부 이단들의 주장이 더 그럴듯합니다.
셋째, 한국인의 못 말리는 ‘지극정성’의 마력을 십분 활용하고 있습니다. “단지 정성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정성을 다하면 귀신도 감동시킨다는 무속정신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전형적인 인과응보 사상에 근거한 ‘욕심’입니다. 그럴듯한 설명을 하려 하지만 속뜻은 하나입니다. ‘돈 놓고 돈 먹기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며, 뭐가 됐든 많기만 하면 된다는 다다익선의 사고방식’입니다. ‘욕심충만의 사상’일 뿐입니다.
짧은 예화 하나에 의미를 둘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유아적인 헌금관(정성이 담긴 고액의 헌금이 최고라는 생각=록펠러 예화)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면, 이는 무척 허무하고 서글픈 일입니다. 왜냐하면 추악한 욕심 감춘 이들에게 속아 넘어가기 십상이며, 좋게 말하더라도 젖이나 구걸하는 저차원적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물질관에 얽매여 우왕좌왕한 것은 지난 2천 년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나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할을 무력화시키려는 의도에 관한 것입니다.
위와 같은 헌금관이라면, 하나님은 투입된 정성과 물질의 양에 상응하는 보상 외에 달리 아무 할 일이 없으십니다! 하늘의 보물창고나 지키고 계시다가, 들어온 양에 얼마를 더 얹어 되돌려 주실 수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을 이 단순 창고지기 역할로부터 자유롭게 해 드리면 안 될까요?
온통 황금에만 마음 쏟고 계시는 분으로 오해케 만드는 이러한 헌금관에서 하루빨리 탈피하고, 좀더 성숙되어, 참 자유 누리게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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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거지의 강냉이
막14:3(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인도의 어떤 왕이 궁전에서 나가다가 한 거지를 만났다. 거지는 손을 내밀면서 무엇을 달라고 구걸했다.
그때 왕은 그 거지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네가 나에게 무엇을 주면 나도 너에게 주겠다.”
거지는 가만히 생각을 해 보았다.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옆집에서 강냉이 한 봉지를 얻은 것 뿐이었다. 그래서 거지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거지가 가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얼마 전 옆집에서 얻은 강냉이가 있는데, 그 강냉이도 다 먹고 지금 주머니에는 다섯 알 밖에 없습니다. 이거라도 받으시겠습니까?”
왕은 그것을 받더니 웃으면서 하인에게 명령을 했다.
“여봐라! 이 강냉이 알만한 금덩이 다섯 개만 꺼내서 주어라!”
그러면서 왕은 거지에게 말했다.
“내가 강냉이를 받은 대신 이 금덩이를 너에게 줄테니 받아라!”
물론 거지는 감사하게 받았다. 그러나 속으로 탄식을 했다.
‘내가 그 강냉이 주머니를 그대로 다 드렸더라면 금주머니 째로 내가 다 받았을텐데….’
거지의 순간적인 욕심으로 인해 적은 양의 금을 받은 것처럼 언제나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는 것이다. 적게 심고서는 많은 것을 거두고자 하는 사람은 어리석을 뿐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에 어떤 예물을 드려야 할 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각자의 생활 형편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렇지만 양의 많고 적음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단지 정성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