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범사에 형통하고 싶은가?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食料)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창39:6)
요셉은 하나님이 함께 하여 범사에 형통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이 그가 비록 보디발의 가정총무가 되었지만 여전히 노예 신분이었다는 사실은 잊고 있습니다. 그가 이방 땅의 언어, 문화, 관습 등을 정말 죽기 살기로 익혔으며 또 그런 성실성과 정직성이 주인의 마음을 흡족케 했으리라는 것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음에도 아예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대신에 하나님은 자기들과도 함께 하니까 단지 믿음으로 뜨겁게 기도했다는 사실 하나로 신자로서 할 일을 다 했으니 이제는 당신께서 자기들을 형통케 해줄 책임이 있다고 우깁니다.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5절)라는 성경의 명시적 기록조차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복을 받은 자는 보디발이었지 요셉이 아니라고 합니다. 형통한 범사는 주인의 일이었고 자신은 단지 그 일을 수행해 준 종이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신자로 인하여 불신자가 복을 받게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정작 의도하신 바라는 뜻이 됩니다. 그렇다고 신자가 자신의 형편이야 어떻게 되든 무조건 모든 것을 희생하며 불신자의 재물을 늘려주고 병을 고쳐주라는 뜻은 아닙니다.
보디발이 요셉에게 청지기 직분을 맡기면서 어떻게까지 했습니까? 자기 식료 외에는 전혀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워낙 일처리가 매끈하니까 모든 것을 맡기되 혹시 독을 탈까 걱정해서 식료만은 자기가 주관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럼 온전히 믿은 것도 아니요 배반이 두려워 다른 일조차 전혀 맡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식료는 개인적 취미와 선호도를 말합니다. 자기의 감정과 기분에 따라 매끼 먹고 마시는 것이 바뀔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아무리 신뢰하는 종이지만 메뉴 선택의 권한까지는 주지 않았다는 뜻일 뿐입니다.
역으로 말하면 모든 일을 계획하고 시행하고 결과를 정리하는 것까지 아예 전적으로 요셉에게 맡겨버렸습니다. 개인 금고의 열쇠를 맡긴 정도를 넘어서 그 재산을 자기 마음대로 결정해 투자 관리하고 결과만 보고하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요셉은 죽으면 죽었지 절대로 게으름을 부리거나, 개인적인 이해타산을 따지거나, 어떠한 위계나 사기도 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온전히 믿은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다른 인간에게 무한대의 신뢰를 보였습니다. 말하자면 마치 하나님을 믿는 정도와 방불했습니다.
그러나 몇 번 강조했지만 단순히 성실과 정직만 산 것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그가 하는 일마다 마이다스의 손처럼 결과가 남들보다 빼어났습니다. 그가 하는 일 뒤에 하나님의 크신 권능이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방인 보디발의 눈에도 여실히 보였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보디발은 요셉보다는 그와 항상 함께 하는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인간 요셉을 마치 하나님 믿듯 한 차원을 넘어서 실제 하나님의 존재성과 그 권능을 확실히 믿은 것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세상과 사람들 앞에 서는 자입니다. 그분이 아브라함더러 복의 근원으로 삼아주겠다는 언약에 동참한 자입니다. 제사장으로 불신자를 하나님과 화목시키는 직분을 맡았습니다. 요컨대 불신자가 신자의 존재와 삶과 인생에서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꿔 말해 신자는 세상 속에서 생명을 걸고 하나님의 진리를 따르며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불신자가 식료 외에는 모든 것을 신자에게 맡길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신자가 하나님께 받을 복이자 또 복의 근원으로서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줄 복입니다. 당신은 정말 범사에 형통하고 싶습니까? 다른 말로 생명을 걸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진리대로 살고 있습니까? 아니 그것이 신자에게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함으로써 범사에 형통한다는 진정한 의미임을 알고는 있습니까?
6/25/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