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3:10-12 롯이 범한 진짜 잘못

조회 수 582 추천 수 16 2010.05.17 01:4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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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이 범한 진짜 잘못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창13:10-12)


아브라함은 갈 바 몰랐으나 하나님께 순종하여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 떠남에 처음부터 동행했던 조카 롯은 그를 본받아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을 수 있었음에도 무참히 실패한 인생으로 끝났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물어보지도 않고 눈앞에 보이는 환경에만 집착하여 인간적 선택을 하였기 때문입니까?  

물론 맞습니다. 그러나 목자라면 물이 많은 땅을 선택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 선택 자체는 합리적입니다. 오히려 따져야 할 것은 삼촌에게 그 땅을 먼저 양보했는지 여부여야 합니다. 비록 성경은 침묵하고 있지만 만약 롯이 그러지 않을 정도였다면 그 인격성부터 의심받을 문제입니다. 말하자면 그가 땅을 잘못 선택한 일은 차후의 실패의 직접적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지만 그의 근본적 잘못은 딴 데 있었다는 것입니다.

매번 감탄하지만 성경은 너무나 정밀한 기록입니다. 본문에 그 힌트가 여실히 드러나 있습니다. 요단 들이 “애굽 땅과 같았더라.”고 합니다. 또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고 말합니다. 뭔가 집히는 내용이 없습니까? 그가 소돔의 향락문화에 마음이 차츰 빼앗겼다고 판단됩니까?

이 또한 옳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선 이유가 훤히 보이지 않습니까? 그가 요단 들을 택할 때에 물이 많은 것만 보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애굽 땅과 같아” 보여서 선택했다고 말합니다. 애굽 땅 같으려면 두 가지 가능성 밖에 없습니다. 나일 삼각주처럼 비옥해서 곡물 농사짓기에 아주 적합하든지, 아니면 당시 세계 최강 국가로서 화려하고 번창한 도회적 분위기입니다. 롯은 이 둘 중에 후자 즉, 도시를 꿈꾸며 땅을 골랐던 것입니다.      
  
땅을 고르는 그 장소에서 소돔과 고모라가 보였다는 뜻은 물론 아닙니다. 지금 아브라함과 헤어지게 되는 계기는 순전히 목축에 필요한 초지와 물이 모자랐기 때문이었습니다. 롯이 농사에 적합한 땅인지 목축밖에 못하는 땅인지 분간 못할 리는 결코 없습니다. 따라서 그가 요단 들을 보면서 현대식 댐을 지어 농경지로 개간하겠다는 초현대적 비전이 없었던 한에는 애굽 도시들을 떠올리며 소돔 쪽을 선택했다는 의미일 수밖에 없습니다.    

목축을 전문으로 하려면 들판에, 최소한 아주 작은 소읍에, 장막을 쳐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삼촌과 헤어지자마자 그는 평지 성읍에 머물렀습니다. 목축은 하인들에게 맡겼고 자신은 소도시에서 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드디어 아예 장막을 걷고서 소돔이라는 대도시로 거주지를 옮긴 것입니다.  

분명 목축업을 더 크게 키우려는 의도로 헤어져 놓고 아예 업종을 바꿨거나 본업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처음부터, 최소한 땅을 선택하는 이 시점부터 대도시 소돔에 마음이 가있었던 것입니다. 가장 잘 봐주어야 목축을 주업으로 하되 생활은 도시에서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한 마디로 롯은 인생의 온전한 목적과 굳건한 믿음도 없이 쉽게 세상 유혹에 빠지는 타입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그가 아비가 돌아가시자 어쩔 수 없이 삼촌을 따라 나서긴 했지만 두고 온 갈대아 우르의 풍요와 안일과 향락을 못내 잊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 세속적 욕심을 아브라함 앞에서 내색을 못하고 있었던 것뿐입니다. 그러다 기근을 만나 애굽으로 피신하는 바람에 다시 도회적 향기(?)를 실컷 마시게 되었고 마음이 갈대처럼 심하게 흔들렸던 것입니다.

그러다 목자들 사이에 물과 초지로 다툼이 일어나 삼촌과 헤어지기로 하자 그에겐 울고 싶었는데 뺨을 때려준 격이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합리적으로 물이 많은 들판을 택하는 것처럼 하면서도 기실 속마음은 콩 밭에 가있었던 것입니다. 물이 많은 데다 애굽과 닮은 소돔이 가까우니 완전히 꿩 먹고 알 먹게 되었다고 내심 쾌재를 불렀을 것입니다.

참으로 신기하지 않습니까? 성경 기록이야 당연히 정미하지만 그보다는 사단의 속임수가 말입니다. 사단이 사실은 롯을 소돔으로 끌어들이면서도 겉으로는 목축에 적합한 땅을 선택의 구실로 삼을 수 있도록 했지 않습니까? 말하자면 사단은 신자를 항상 경건하고 의로운 일인 양 일단 속여 놓고 실제로는 더러운 죄악이 발동되도록 유도한다는 것입니다.  

요한 사도가 지적한 대로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요일2:16) 사단은 신자로 이생의 자랑처럼 착각하게 만들면서 실상은 육신과 안목의 정욕을 추구하게 만듭니다. 일단 신자가 되면 도가 넘쳐 죄라고 확실히 인식되는 일에는 그리 쉽게 넘어가지 않습니다. 육신과 안목과 이생에 다 좋아 보이니까 속는 것입니다. 아니 이미 그런 거짓된 정욕이 신자의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으니까 사단이 그 약점을 건드리는 것입니다.

거기다 더 신기한 일은 하나님은 사단이 신자에게 그런 치사한 시험과 유혹을 하도록 묵인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신자더러 영적 분별력을 온전히 갖추라는 뜻입니다. 스스로 그런 시험을 이기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자신의 속에 펄펄 살아 있는 육신과 안목의 정욕을 죽이고 이생의 자랑만 추구하는 뿌리 깊은 습성을 없애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 당신을 자발적으로 기꺼이 힘을 다하여 순전하게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그 말씀 바로 앞에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2:15) 인간이 궁극적으로 사랑할 대상은 하나님과 세상(물론 그 배후에는 사단) 둘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 하나를 사랑하면 다른 하나를 미워하는 것이고, 또 하나를 미워하면 다른 하나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요컨대 롯은 하나님 뜻을 물어 땅을 고르기 이전에 이미 세상을 향한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가 여호와 하나님을 몰랐을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알기는 알았지만 그분을 순전히 사랑하여 믿고 따를 생각이 없었던 것입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그의 몸은 빠져 나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그곳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전혀 달랐습니다. 몸과 마음 둘 다 갈대아를 완전히 떠났습니다. 물과 초지의 많고 적음과는 상관없이 하나님과 함께라면 어느 곳이라도 좋았습니다. 당연히 소돔 쪽은 관심이 없었을 뿐 아니라 설령 소돔에 어쩔 수 없이 살게 되더라도 절대 그에 물들지 않을 믿음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애굽에서 범한 자신의 죄악을 하나님은 다 용서해주시고 오히려 은혜를 더 부어주셨음을 생생하게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아브라함은 애굽의 실패를 오히려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는 방향으로 활용한 반면에, 롯은 더 멀어지는 방향으로 선택했습니다. 그들이 겪은 경험의 모든 외적 상황은 동일한데 그것을 이해, 해석, 적용하는 데는 정반대가 되었습니다.

무슨 뜻이 됩니까? 롯의 믿음이 아브라함의 것보다 미숙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단지 열등한 믿음이라면 덜 선한 모습으로 나타나야지 정반대가 될 수는 없습니다. 롯의 믿음은 아브라함과는 실제로 정반대였던 것입니다. 사단을 숭배했다는 뜻은 물론 아닙니다. 여호와를  따르려 했지만 그 믿음의 본질이 반대였기에 반대의 결과를 낳았던 것입니다.

그는 아브라함과 달리 자기가 걸어가는 방향을 일직선으로 잡지 못하고 계속 오락가락했던 것입니다. 인생 목표가 분명하게 서있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로 했고 롯은 이리 저리 떠돌아 다녔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목축을 하는 아브라함이야말로 들판 곳곳으로 장막을 옮겨 다녀야 했지만 롯은 소돔에 정착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아브라함은 목축만, 롯은 소돔에서 닥치는 대로 여러 일을 했다는 뜻도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뜻만 따르기로 했지만, 롯은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동원하거나 형식적으로 믿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주위 환경이 어떻게 되던 그분을 따르는 데에 문제가 없었습니다. 나아가 자기 가진 것으로 그 순종에 활력을 더 보태는 일에 사용했습니다. 롯은 자기 주변에 묶여 순종이 방해 받았습니다. 아니 그분께 순종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주변에 묶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전에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의 모습을 이루는 데에만 자기 가진 것을 동원했습니다.    

오해는 마셔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죄를 전혀 안 짓거나, 롯이 의로운 행동과는 완전히 담을 쌓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알다시피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버리고 애굽으로 피신한 것은 아브라함의 잘못이며 롯은 그저 삼촌을 따라갔을 뿐입니다. 또 롯도 소돔의 형편을 살피러 온 하나님의 사자를 정성껏, 너무 과도(?)했지만, 대접했지 않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신의 잘못을 곧바로 뉘우쳤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한 헌신이 그 잘못을 범하기 전보다 더 성숙하고 견고해졌습니다. 인생의 방향이 그분만 따르기로 완전히 고착되어 있었기에 모든 활동이 그 방향 안에서 이뤄졌습니다. 실수와 잘못도 그분과 함께 걸어가는 도중에 일어났기에 오히려 그분의 은혜와 축복으로 변환될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롯은 화려하고 안락한 도시적 삶을 살려는 소원에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이 없었습니다. 오죽 하면 소돔이 멸망한 후에 작은 성읍도 피하고 산속 동굴로 피신했겠습니까?(창19:30) 인생 방향이 하나님과는 아예 반대쪽을 향해 있었습니다. 아무리 의로운 일을 행해도 하나님의 뜻과 전혀 상관없는데 그가 저지르는 실수와 잘못은 더할 나위 없었습니다. 자신이 성숙해지고 하나님 은혜도 더 깊어지는 일은 아예 불가능했습니다. 이미 죄와 허물로 가득 찬데다 또 다른 잘못이 보태지니 비참한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롯의 잘못을 비난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신자 가운데도 마음은 완전히 제사 밥에 가있으면서 형식적으로 제사 드리는 자들이 꽤 많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믿으려 하지만 자신의 인생 목표를 오직 자기 뜻에만 붙들어 맨 것입니다. 살던 죽든 자기를 대신하여 죽으신 주님의 뜻대로 따르겠다고는 그 방향을 전혀 전환하지 않은 것입니다.

또 많은 신자들이 롯의 잘못을 단지 땅을 잘못 선택한 행위에만 돌리는 것 같은 오류를 범합니다. 믿음으로 주위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주님만 따르라고 합니다. 이는 엄밀히 따지면 순서가 잘못된 것입니다. 정말 인생의 방향을 오직 주님만 따르기로 확정하여 흔들림이 없다면 막상 주위환경에는 시선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물론 방향이 바로 선 신자도 연약한 인간인지라 수시로 흔들리고 때로 실패도 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자기 잘못을 깨닫고 주님께 더욱 헌신하는 모습으로 다시 바뀝니다. 바꿔 말해 주님을 향한 인생 방향을 매번 수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잘못 가운데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권능을 더욱 깊이 알아갈 수 있습니다. 주위 환경을 바꾸는 일에 믿음의 경주를 하지 않고 주님을 이미 붙들고 있는 손에 힘을 더 주는데 믿음을 동원합니다. 한마디로 신자는 언제 어디서나 자기 믿음이 센지 따질 것이 아니라 과연 내 인생 방향이 진짜로 이전과 정반대로 바뀌어있는지 점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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