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나무다리에서 원수를 만난 신자.

조회 수 472 추천 수 24 2009.11.17 01:25:29
외나무다리에서 원수를 만난 신자.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 강도를 만나매 (제사장과 레위인은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사마리아인이 도와주었는데)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눅10:25-37)


예수님이 선한 사마리아 인의 비유를 들게 된 기사를 대폭 줄여서 인용했습니다. 신자 불신자를 막론하고 그 내용을 잘 알고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너무나 많은 신자가 이 비유가 등장하게 된 전후 사정과 연결해서 예수님이 강조하고자 하는 초점을 정확하게 따지지 않고 너무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체 문맥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핵심만 골라서 인용했습니다.

요컨대 이 비유가 선행과 구제를 강조하는 내용으로만 이해되어선 안 된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것이 이 비유가 드러내는 가장 일차적인 뜻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이해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라는 계명은 어느 종교에나 다 있으며 심지어 초등학교 도덕교과서, 그것도 일학년용에도 나오는 내용입니다. 아니 도덕과 종교의 가르침을 받지 않아도 양심의 깨우침만으로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이 단순히 신자더러 선행과 구제에 힘써 이웃을 사랑하라는 뜻을 강조하려고 이 비유를 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한 율법사가 제기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동원한 비유이기에 질문의 내용과 또 그 질문의 숨겨진 의도가 무엇인지 먼저 따져보아야 합니다.  

율법사와 예수님 간에 이뤄진 문답의 흐름은 간단합니다.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습니까?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면 된다. - 그러면 그 이웃이 누구입니까? - 길가다 강도만난 자를 도와준 사마리아인이다.” 따라서 질문의 핵심 내용은 사람이 구원을 얻는 방도이며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그 방도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에 관한 부연설명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선행과 구제를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 셈이 됩니다. 그럼 복음서와 성경 전체에 흐르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역행되는 내용이 아닙니까?  

그래서 이 비유를 정확하게 해석하기 위해선 질문(자)의 숨겨진 의도를 꼭 파악해야 한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우선 질문한 자는 율법사였습니다. 그가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서 영생의 방도를 물었고, 또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이웃이 누구인지 물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율법을 잘 지켜야 영생을 얻는다고 이미 확신하고 있는 자인데다 자신도 아주 잘 지키고 있다고 자부하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침은 율법 준수보다 당신과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 영생을 얻는다고 하니까 과연 어떤 길이 영생을 얻는 바른 길인지 예수님과 논쟁을 벌이려고 질문한 것입니다. 그 의도를 눈치 챈 예수님은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느냐. 네가 어떻게 읽느냐”라고 되물은 것입니다. 율법사들은 세세한 율법의 규정을 다 지켜야만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치지만 예수님으로선 율법 안에도 하나님의 십자가 구원의 방도가 나타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가장 중요한 두 강령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사람은 가장 먼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이웃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율법의 강령이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당신의 가르침과 결코 모순되지 않을 뿐 아니라 사실은 같은 의미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고 율법사의 대답을 정답으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율법사로선 예수님이 당신을 믿어야만 구원을 얻는다는 대답을 하리라 기대했는데 율법대로 지키면 된다고 하니까 논쟁이 싱겁게 끝날 판이 되었습니다. 그로선 율법의 세세한 규정을 다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또 그것을 빌미로 논쟁을 이어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마침  이웃 사랑을 아주 잘하고 있다고, 그것도 율법의 세세한 규정대로 정확하게 하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했던지라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인지 물었던 것입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예수님이 죄인과 중병환자 등과 교제하며 그들을 이웃으로 삼고 있는 것이 율법의 규정에 어긋난다는 것을 꼬투리 잡고 싶었던 것입니다. 즉 그런 자들은 성전 제사에도 참석 못하기에 구원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예수님께 시비를 걸려는 뜻이었습니다. 나아가 자기는 그런 이웃과는 사귀지 않고 율법을 잘 지키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정말 성심껏 사랑하고 섬긴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율법사가 질문한 ‘내 이웃’이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의 범위를 따져보자는 뜻이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확실히 해둘 것은 율법에 문둥병자나 이방인이나 핸디캡 장애자들이 성전제사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해서 구원 자체에서 제외되었다는 뜻은 구약 성경 아니 모세 오경 어디에도 명시적 규정이 없습니다. 말 그대로 성전 제사를 정결하게 드리기 위한 제사절차 상의 문제로 단지 제사에만 참석 못하는 것뿐이지 구원에서 제외 된 적은 없습니다.  단적인 예로 문둥병자가 그 병이 나으면 제사장에게 검사 받고 결례를 드리도록, 아니 치료 자체를 제사장에게 받도록 규정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제사장과 율법사들은 자기들의 종교적 기득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임의로 율법의 세세한 규정을 다 지켜야만 구원을 얻는다고 왜곡하여 가르쳤던 것입니다. 이는 신구약 성경 전체에 흐르는 뜻이 분명히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은혜로 받아들이는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인데도, 카토릭은 교회의 절차를 따라야만 된다고 가르치는 잘못과 동일한 것입니다.  

이제 사마리아인의 비유의 핵심 내용에 거의 근접해 갑니다. 율법사의 ‘내 이웃’에는 제사장과 레위인인들은 두 말할 것 없이 포함되고 민족의 배반자로 이방인과 결혼하여 난 자식들인 사마리아인은 당연히 빠져야, 아니 예수님이 거론하리라고는 아예 꿈도 못 꾸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비유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율법사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제사장과 레위인은 빠지고 엉뚱하게도 사마리아인이 포함되었지 않습니까?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다 듣고 난 율법사의 심경을 헤아려 보십시오. 한 마디로 완전히 당했다는 기분 아니겠습니까? 자기가 옳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내용들이 단 몇 마디 비유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휴지조각으로 변했습니다. 그런데도 어떤 말로도 반박할 재간이 도무지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그렇게도 당당하게 강조하고 또 잘 하고 있다고 자부한 이웃 사랑을  예수님도 똑 같이 강조하는 데는 반론을 펼 여지라고는 단 한 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동일한 이웃사랑이지만 자기 의견의 정반대가 옳은 것이 되어버렸지 않습니까?  

이 논쟁의 이면에 예수님의 영생을 얻는 길에 대한 너무나도 올바른 가르침이 숨겨져 있음을 이해하실 수 있겠습니까? 사단의 사주를 받은 한 교만한 율법사와 예수님간의 눈에 안 뜨이는 영적 전투가 격렬하게 진행되어진 과정을 이제 볼 수 있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내린 결론의 뜻은 무엇입니까? 인간이 구원을 얻는 데는 선행과 구제에 열심이어야 하는 것과는 직접적 연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율법사는 구원의 범위를 율법을 잘 지키는 자로 한정할지 몰라도 당신에게는 절대로 그런 제한이 없다고 분명하게 선언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뜻은 오직 하나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11;28-30)

영생을 얻는 자격에는 아무 제한이 없다고 합니다. 이 땅에서 죄와 사단과 사망의 멍에에 눌려 있는 자들은 누구라도 겸비하게 그 사실만 인정하고 당신께로 나오라고 합니다. 자기의 죄와 허물과 온갖 문제들이 세상의 어떤 방도로도 해결되지 않아 정말 죽고 싶은 너무나도 연약하고 비참한 존재라는 것만 진정으로 고백하고 십자가에 드러난 하나님의 무한하고도 조건 없는 긍휼을 간절히 소원하면 영생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율법사의 이웃은 자기들과 동류들뿐이었고 또 그들과만 함께 천국 가려고 했습니다. 마치  이 땅에서 기득권을 천국까지 연장시켜 자기들은 남들보다 의롭고 선하다는 것을 하나님 앞에서마저 자랑하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천국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뜻은 전혀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이웃에는 율법사의 원수들도, 세상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지옥으로 몽땅 떨어져야만 하는 자들 모두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하신 말씀은 단순히 구제와 선행에 열심을 내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네가 영생을 얻는 방도에 대한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즉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면, 절대로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이웃도 제대로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엄밀히 따져서 율법사는 자기들이 이 세상을 즐기며 살아가는, (그들의 구제도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었음), 방식을 자기들 나름대로 만들어 즐겼던 것뿐입니다. 다른 말로 오늘날의 교회 안에도 꼭 이단이 아니라도 여전히 인간적인 생각으로 성경과 다른 규정을 만들거나, 성경을 왜곡하여 자기들 기득권을 즐기며 그 기득권 안에 들어 와 있는 자들끼리만 천국으로 가려고 하는 자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려 오셨습니다. 특별히 인간 사회에서 아무 쓸모도 없고 심지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들이라고 간주되었던 자들을 하나님 당신께선 단 한 번도 그렇게 한 적이 없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다른 말로 율법사와 동일한 생각을 가졌던 자들을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그 생각을 뜯어 고쳐 주려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철천지원수처럼 미워하는 바로 그 사람에게 영생을 주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두 팔을 벌리고 죽었습니다. 두 팔을 활짝 벌릴 만큼 그 원수를 너무나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그가 비록 예수님 당신과도 원수처럼 지냈던 자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랬던 자가 사실은 우리 모두이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혹시라도 아직도 주위에 천국에 가서 만날까 두려운 사람이 남아 있습니까? 그럼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바로 그 두려운 사람을 진짜로 천국에 가서 만날 수 있습니다. 흔히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자기는 지옥에 떨어져 정말 자기 소원대로 그 원수를 영원토록 만나지 못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면 어떡하지요?

1/9/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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