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현실의 형통과 구원을 얻는 문제는 별개입니다. 나아가 구원도 기독교만 편애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모든 죄를 당신께 자복하고 정말 겸비하게 나오는 자라면 누구라도 용서해주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무릎 꿇고 자기 옛사람을 죽이며 진심으로 회개하면 하나님은 인종, 문화, 관습, 언어, 아니 종교와도 관계없이 다 사랑하시고 구원을 주십니다.”
어떤 분이 "하루를 열며" 사이트의 "#566 (창창39:5) 발락의 신탁(神託)만 붙드는 신자"의 글 가운데 윗부분을 보시고 제 신앙 노선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다시 보니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는 식으로 오해의 소지를 충분히 줄만한 것 같습니다. 늦게나마 그런 오해를 갖게 된 분들에게 사과를 드리며
나름대로 해명을 드리오니 너그럽게 양해 바랍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당부 드립니다. 이처럼 문제가 될 만한 소지가 있는 글, 표현, 단어, 등은 하시라도 댓글, 혹은 개인적 이멜로 예리하게 지적하시고 따끔하게 질책해 주시기 바랍니다. 매일 글을 쓰고 또 어떤 때는 시간에 쫒기다 보면 본의 아닌 표현들이 등장할 가능성이 항상 있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제 사이트에 방문하셨던 분들은 제가 어떤 성향의 신학을 갖고 있는지 다 알고 계십니다만, 최근에 가끔 방문해주시는 분들 가운데는 미처 모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또 특별히 이글처럼 어떤 주제를 강조하려다 보니까 표현상에 오해를 줄만한 부분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인터넷 상에 공적으로 글을 올리려면 정말 단어 하나, 관용구 하나, 말투까지 일일이 신경을 써야겠습니다.
우선 저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 외에는 절대 구원 받을 수 없다는 진리만큼은
세상 어떤 분보다도 더 강력하게 붙들고 있다고 감히 자부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강남 박사의 책을 반박하는 책을 지었고
또 이 시대에 진정한 복음으로 돌아가고자 이 사이트를 개설했습니다.
어제 “하루를 열며”의 글(꽉 찬 때 안에 들어와 았는가?)에도 제 그런 뜻을 새삼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기의 글에선
기독교는 신자더러 자기부터 복을 받기보다는 불신자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눠주는 제사장적 삶을 살기를 요구하는 반면에,
다른 모든 종교는 발락의 신탁처럼 신에게 자기만 받는 복을 기원하는데
요즘은 기독교 신자마저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그래서 현실적 형통이나 환난의 문제에선 하나님이 신자와 불신자와 특별히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이 주제였습니다.
또 그 주제를 강조하려다보니 현실의 삶에 베푸는 일반 은총 뿐 아니라
구원에서도 하나님은 혈통, 문화, 인종, 심지어 종교의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좀 과격한(?) 표현이 나왔습니다.
제가 말하는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무릎 꿇고 옛사람을 죽이고 진심으로 회개해야 한다는 뜻이 바로 하나님의 칭의의 은혜를, 즉 예수님의 의가 아무 자격 공로 없는 죄인에게 전가되었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 무릎 꿇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한다는 뜻이며, 옛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진정한 중생을 했다는 의미이며, 그래서 진심으로 회개하는 것은 이전 믿음과 가치관을 완전히 버리고 참 하나님과 그 구원의 길인 예수께로 회심한다는 것입니다.
또 그런 자들은 종교에 상관없이 구원해 주신다는 것은
타종교인이 진심으로 그렇게 회심하여 예수를 영접하면, 실질적인 의미로는 개종임,
이전에는 비록 다른 종교를 가졌지만 구원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계속 다른 종교를 갖고 있는데 구원을 주신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나아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단순히 의로운 행위로 인정하고 자신도 그렇게 의롭게 살려고만 하는 자는 아무리 기독교인라고 해도 구원과는 거리가 멀다고 제 모든 글에서 재삼재사 강조했습니다.
다시 한 번 제 신앙노선은 오직 예수, 죽어도 오직 예수, 나아가 오직 성경임을
강조하오니 오해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일 뿐입니다. 샬롬!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