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15:4)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먼저 요구하시는 말씀은 내 안에 거하라 는 말씀이죠.
우리는 이 말씀에서 깊은 의미를 들을 수가 있습니다.
사실은 가장 기본적이며 기초적이며 놓쳐서는 안되는
신앙의 본질과도 같은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에게 제자들에게 원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잘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일까요?
이것을 우리가 나누는 것입니다.
저는 이미 여러분들도 알고 있겠지만
어떤 방법이나 원리적인 측면이 아니라 관계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신앙은 관계성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이런 관계성은 땔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관계성은 긍정과 부정적으로 맺어집니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모든 면에서 우리는 관계를 맺으며 맺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창조후에 아담안에서 죄와 관계를 맺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는 인정하든 부인하든 죄와의 관계에서
출생을 하고 죄와함께 살고 뒹굴고 죄와함께 결국은 멸망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좀더 심각하게 말한다면 이미 육신적으로
태어나는 순간에 영적으로 죽은자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51;5)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인 다윗의 고백입니다.
이 고백은 그냥 하는 회개의 말이 아니라 영적인 통찰력으로
성령안에서 나오는 탄식인 것입니다. 우리의 본질을 정확하게
직시하는 자만이 성령으로 거듭난자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이런 고백을 자연인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유대의 랍비이며 공회의원인 니고데모조차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햇다는걸 기억하십시오.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진리의 말씀을
듣고 당황하지 않습니까? 거듭남이나 새로 태어난다는 의미를
알아듣지를 못합니다. 그것이 진실입니다.
이런 일은 영적으로만 볼 수 있습니다.
바울로 변화되기 이전의 사울도 그 많은 학문과 지식으로도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것을 옳다고 생각할 뿐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은혜의
복음을 못알아 들었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바울이 멸시하며 우습게 여기며 죽어 마땅한 이단집단이라고
확신했던 예수 믿는 아나니아에게 성령으로 기도를 받고서야
눈이 열려져서 예수님의 귀한 증인으로 일생을 달려갓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의 많은 서신서에서
죄에 대하여 분명하게 밝히고 이전에 자기도 그 가운데 불신앙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았다고 고백하지 않습니까?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는다면
인간적으로 아무리 인격적이고 도덕적이고 모범적이라 해도 그는
자연인일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하게도 교회안에 있다해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무조건 적인 구원의 방주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다시한번 분별해야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구원과 상관이 없는가?
상관이 있습니다만 교회 공동채에 속해있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구원이 적용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모세와 함께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분명 홍해를 건너서 광야 교회를 함께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세대는 광야에서 애굽의 종살이를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대들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영적인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는 불필요한가?
그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예수안에 사는 자들, 즉 구원얻은자들,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교회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성전입니다.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그래서 예수님은 스스로를 이렇게 증거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2:19~21)
예수님의 피와 몸을 먹고 마시는 자가 곧 성도이며 곧 성전입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전6:19)
그렇습니다. 교회는 성도들입니다. 구원얻은 여러분 들이 교회요
성전입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살아가는 자들이 교회이며
예배당에서 함께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을 예배하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비록 불완전한 교회(건물로서) 영적인 건물로서 연결되어져 가는 지체입니다.
눈으로 보는 지금의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는 분명 교회로서의 기능을
해야하며 하고 있는 교회가 맞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본질을 잃어가고 세속화로 달려가는 작금의 현실을 볼 때
말씀과 성령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과연 우리는 교회안에 있다해도
어쩌면 구원과는 상관이 없는 관계로서 머물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존재해야 하며 존중 받아야 합니다.
계시록에 일곱교회가 모두 불완전하여서 주님으로부터 칭찬과 경고를
받은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비록 타락하고 주님 보시기에 미흡한
교회라 해도 거기 내 백성을 지키시며 보호하시며 건지시겠다는
주님의 말씀도 기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랍니다.
마지막 추수 때까지 기다리신 답니다.
지금 가라지를 뽑아버릴까요라는 말에 가만 두어라 하신 주님의
마음을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과연 예수님 안에 거하는 가를 살펴야만 합니다.
그것은 관계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자가
곧 예수님을 사랑하는자이며
계명을 사랑하는 자 이며
말씀안에 거하는자
즉
예수님과 언제나 함께 하는자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과의 관계는 말씀을 들음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말씀을 개인적으로 언제나 어디서나 들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다시 말해서
내가 진실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기를 간절하게 소원하는가입니다.
내가진정 원하고 추구하고 찾고자 하는 소원이 무엇인가요?
거기에 내 마음이 있습니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고
찾고 추구하는것이 무엇인가를 살핀다면
비로소 내가 지금 주님 안에 거하는가 아닌가를 알수 있습니다.
돌이켜서 함께 묵상해 봅니다.
그래서 만일 주님안에서 멀어졌다고 생각하신다면
지금이 기회입니다.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주님의 말씀으로 살고 주님의 말씀으로 풍성하게 소원을
주시기를 간구하십시오. 기도하시면서 간절하게 구하십시오.
내가 지금 주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오니 내 마음을 여시고
생명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기를 소원하십시오.
결코 이러한 간절한 기도를 외면하시지 않으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008-08-02.주님과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