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지나가는 시간들 입니다.
잠시라도 한 눈을 팔면 금새 엉뚱한 곳으로 빠져버리죠.
요즘은 워낙 다양하고 복잡하고 변화가 빨라서 그야말로
어디가 어딘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목적지를 분명하게 잡고
출발하지 않게되면 거의 그곳까지 도착 하기가 쉽지 않을만
큼 환경은 급속히 변화무쌍하며 또한 우리를 붙잡고 놓으려
하지 않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환경에 우리는 지배를 받고 살고 있
지만 그럼에도 너나할것 없이 현대적인 구조의 환경을 떠나고
싶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다시 아침이면 이 환경과 더
불어 익숙해져서 어떤이는 행복하게 또 다른이는 힘겨워 하면
서 그렇게 하루를 지나 갑니다.
이미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각자의 시대속에 환경에 적응을
하도록 본능적으로 교육을 받고 배우고 경험하면서 살기에
사실은 며칠만 도회지를 떠나서 시골에 지내면 금시 불편해서
도심으로 빨리 돌아오고 싶어하는 변덕을 부리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의 환경은 우리를 이미 강력하게 잡고 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의미에서 볼 때 신앙의 길로 가는 그리스도인들
에게는 참으로 쉽지 않은 세상살이 입니다.
예수를 알지 못했더라도 물론 세상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차라리 몰랐다면 훨씬 살아가기가 쉽지요. 왜냐하면
모두들 가는 그곳으로 열심히 휩쓸려 가다 보면 그래도 방향은
놓치지 않기 때문에 쉽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알고 그 안에서 부름을 받고 사는 인생들에게는 이
세상이 결코 최종 목적지가 아니기 때문에 어려운 것입니다.
세상 모두가 달려가는 그곳과는 반대로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갈릴리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았던 제자들은 그 바다를 뒤로
하고서 일상적인 유대인들의 삶을 뒤로하고서 예수님의 뒤를
향하여 달려 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각기 제 갈길로 갈때 제자들은 십자가의 길로
좁은 길로 좁은 문으로 기꺼이 걸어 갔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의 길이란 믿음의 삶이란 십자가의 길이
며 찾는이가 적으며 좁고 협착한 길이라고 분명히 가르칩니다.
어떤이들은 힘주어서 말합니다.
그러면 예수 믿고 믿음으로 사는자는 전부 가난하고 어렵게
살아야만 하는가 하면서 코웃음을 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인색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복을 받기를 원하시고
세상에서도 부자로 살기를 원하신다고 주장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부요함이란 세상적인 것이 아님은
성경전채가 자세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
가 여기가 아니라 저기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믿음의 선진
들은 다 세상에서의 삶을 나그네처럼 살았다고 증거합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최상의 복을 받았던 솔로몬왕이 남긴 전도서
는 우리에게 많은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누릴수 있는
모든 복을 넘치도록 받아 누렸던 사람의 고백입니다. 그처럼
많은 재물과 권세와 영광과 장수와 인간이 누릴수 있는 온갖
쾌락을 맛보았던 솔로몬의 탄식이 "헛되도다"라는 것이죠.
하나님이 주신 복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세속적인 부와 명예와 권력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이었는데도 그가 헛되다고 합니다.
이 고백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하나님이 믿는자에게 원하시는 것이 죽도록 고생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솔로몬이 누렸던 것만으로 행복하지
않다는것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선하게 복을 주셨지만
인간의 부패함과 연약함이 그만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결과인 복에게 매여서 타락해 버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즘들어 심심치않게 간증들을 들어 봅니다.
십일조를 철저히 해서 온 가족이 복을 받아서 잘 살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축하하고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은혜를 받는것은 아니기에 그것을 기준으로 당신들도 나처럼
해서 복받아라 한다는 것은 너무 오버한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기준을 삼게 되면 초대교회 사도들과 그들이전한
십자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살았지만 순교하며 고생하며
가난하게 살다가 주님앞으로 올라간 성도들은 전부 믿음 없는
사람들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분명 제자들에게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을 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
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런 주님의 가르침은 어떻게 생각하
시는지 자꾸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아서 가난하고 부요한
복을 못받았다고 주장한다는 것은 이해가 안갑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길을 사도들처럼 살가가는 삶을 말하면
'너희들은 고상하고 거룩하게 믿어라' 하고 비웃으면서
'우리는 속되고 수준 낮게 믿어서 부자로 복받겠다'고 조롱
합니다. 이것은 초대교회 사도들을 무시하는 말과 다름없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삶 마져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발상은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성경의 믿음의 사람들을 말하는것이 성경을 왜곡한다고 까지
합니다. 기복주의를 반대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비틀어
서 한쪽으로 치우친다고 반박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성경대로 살아간다면 한쪽으로 치우쳐야 합니다.
너희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하셨습니다.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물질의
힘을 충분히 알고 계셨기에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 시대의 맘몬
은 돈입니다. 모든 권력과 부패와 탐심이 돈과 관련이 되어 있
지요. 그걸 부인할 사람들 있습니까?
나는 안그런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로또복권에 당첨된 부자들의 삶이 결과적으로 온전하지 못한
것은 그 사람이 미련해서도 아니고 멍청해서가 아닙니다.
그만큼 돈이 갖고 있는 힘이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바꿔버린
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인들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믿음 좋은 사람도 엄청난 돈 앞에서는 흔들릴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아니라고 하겠지만 욥을 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욥은 그렇게 많은 재물과 엄청난 복을 받았지만
그 자녀들이 날마다 잔치하고 즐겼다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욥의 믿음이 아무리 좋아도 자녀들을 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욥이 할 수 있는 것은 자녀들을 불러서 혹시 마음으로 범죄하였
을까봐서 제사함으로 속죄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하나님앞에
자기의 의로움과 자기의 생각으로 이렇게 내가 겸비하고 자녀
들의 잘못을 자복하는 나름의 장치를 했기 때문에 벌을 받거나
재앙을 당하지 않을거라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전혀 모른 무지함이었습니다.
욥의 친구들과는 좀 다른 신앙일지 몰라도 결국은 욥도 자기
생각으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조종하려는 것에서는 별로 다를게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결국 엄청난 시련과 고난을
계속 당하자 스스로 입을 열어서 자기생일을 저주하기 까지
합니다. 내가 왜 태어 났을까하면서 차라리 낙태된자가 부럽다
하며 왜 살려 주셔서 이 고난을 당하게 하시는가 하나님을 원망
하는 것입니다.
제가 욥을 비난한다고 보십니까?
욥은 스스로 의롭고 하나님의 기준으로 봐서도 범죄하지 않았
다고 항변하는 것입니다. 나는 무죄하지만 전능자의 무자비함
으로 심문을 당해서 힘이 없어서 고난 당한다는 원망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힘이 있으시지만 악인과 의인을 구별하지 못하는 지혜에 있어서는 자기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처럼 의롭게 살고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지 않았
지만 다른 범죄자들처럼 이방인들처럼 똑같이 심문하신다는
항의 입니다. 내가 힘이 없어서 전능자가 맘대로 폭력을 가해서
어쩔 수 없이 당하고 있지 나는 죄 없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면
결국 욥의 주장대로라면 하나님은 인격도 없는 무식한 폭군이며
힘만 있는 이방신과 다름이 없다는 것이 아니겟습니까?
인간의 수준 정도가 아무리 높아봐야 욥정도까지 입니다.
그러니까 자꾸만 욥을 인내의 화신이며 믿음의 거장이라고
설교하는 것은 정말 성경을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마지막 장에 가서 욥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질문합니다.
그 질문에 대답할 말이 있으면 해봐라는 것입니다.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동이고 질문에 대답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때 욥이 뭐라고 했습니까?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
에서 회개하나이다
(욥42;1`6)
역주행이라고 아시지요.
모두가 일방 통행을 당연하게 지키면서 열심히 달려 갑니다.
그러다가 가끔식 반대쪽에서 달려오는 것을 보고서 깜짝 깜짝
놀랍니다.
"저런...정신없는 놈 !"
"죽을려고 작정을 했나!"
아주 드믈게 역주행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둘 중 한부류 입니다. 정말 미쳤거나 잘못을 알고
살기위해서 거슬러 오는 이들입니다.
이들도 처음에는 모두 가는 그 길을 잘 달려 갔습니다.
그러다가 이 길이 아니라는걸 알았습니다. 내가 잘못 가고
있었다는걸 알았습니다. 그래도 가야 합니까? 그 길의 끝이
벼랑인데요? 낭떠러지로 가는 길인걸 알면서 계속 갈까요?
알았다면 돌아서야 합니다.
반대로 돌아서서 가는 것입니다. 목숨 내 놓고 가는 길입니다.
이들을 세상에서는 조롱하듯이 이렇게 부른답니다.
아하~
저기 그리스도인이 보이는군
모두 손가락질 하며 낄낄 거립니다.
놔두세. 미친 사람들이니까...
우리는 그렇게 놀림을 당하는 그리스도인들 입니다.
2008-08-29.주님과함께
주님께서 정말 함께하셔서 나오는 글들이기에 그런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기대하며 소망하며 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