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새 계명을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여러분이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옛 계명을 써 보냅니다. 그 옛 계명은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그 말씀입니다. 8 나는 다시 여러분에게 새 계명을 써 보냅니다. 이 새 계명은 그분에게도 참되고, 여러분에게도 참됩니다. 그것은, 어둠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일2장)
마태복음5장은 예수께서 직접 가르친 새 계명에 대한 중요한 부분입니다.
마치 시내산에서 홍해를 건너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를 통하여 주신 십계명을 받는 장면을 연상할수 있습니다. 분명히 구약과 신약은 전체적인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하나이지만 다름을 알수 있습니다. 옛 언약과 새 언약이 같을 수 없습니다. 옛 사람과 새 사람이 같을 수 없습니다. 빛과 어둠이 같을 수 없듯이 우리는 분명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그에게 나아왔다. 2 예수께서 입을 열어서 그들을 가르치셨다.(마태복음5장) 1 이 모든 말씀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다. 2 "나는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출애굽기20장)
예수와 율법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18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은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신약의 성도들이 이 말씀에 근거해서 여전히 십계명의 정신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이 잘못이다거나 틀리다는것이 아닙니다. 말씀에 근거해서 사람이 도저히 지킬수 없고 이룰 수 없는 율법을 예수께서 홀로 완성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다 이루었다" 하셨습니다.
5 이전에 우리가 육신을 따라 살 때에는, 율법에 따른 죄의 정욕이 우리 몸의 지체 안에서 작용해서, 죽음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6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우리를 얽어 매던 것에서 죽어서, 율법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문자를 따르는 낡은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성령이 주시는 새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로마서7장)
우리가 스스로 율법을 완성함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완성하심 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은 율법에서 죽었다는 것이며 벗어났다고 바울이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자꾸만 율법을 폐기하자는 말인가? 하며 달려 듭니다. 의문에 쓴 증서를 십자가로 도말하시고 다시 새로운 증서를 예수께서 성도들에게 주셨습니다. 이렇게 말해야 좀더 이해하기가 쉽겠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새 법이 무엇인가?
마태복음5장 21절부터 48절의 내용입니다.
( http://www.bskorea.or.kr/infobank/korSearch/korbibReadpage.aspx?version=GAE&book=mat&chap=5&sec=1&cVersion=SAE^COG^&fontString=16px&fontSize=2 )
사도 요한의 증언도 이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7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새 계명을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여러분이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옛 계명을 써 보냅니다. 그 옛 계명은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그 말씀입니다. 8 나는 다시 여러분에게 새 계명을 써 보냅니다. 이 새 계명은 그분에게도 참되고, 여러분에게도 참됩니다. 그것은, 어둠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일2장)
요한사도가 말하는 옛 계명이 어떤것일까요? 그 옛 계명은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그 말씀이라 했는데 요한 사도의 수신자들이 이미 신약의 성도라는것을 볼 때 그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에 대한 말씀입니다. 복음의 말씀입니다. 제가 원문을 도저히 알수 없는 처지이기에 공동번역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7 내가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새로운 계명이 아니고 여러분이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옛 계명입니다. 그 옛 계명은 여러분이 줄곧 들어 온 그 말씀입니다.(공동번역.요일2장)
백번을 양보해서 성도들이 원래부터 들었던 구약의 모든 말씀이라고 해보았습니다. 그렇다 해도 여전히 다음에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율법, 즉 십계명을 지지하기 보다는 새 계명에 대한 증거임을 알수 있습니다. 사도의 다음의 증언이 율법을 들어온 그대로 계속해서 옛 계명(십계명)을 지키라는 말이 아닙니다.
8 나는 다시 여러분에게 새 계명을 써 보냅니다. 이 새 계명은 그분에게도 참되고, 여러분에게도 참됩니다. 그것은, 어둠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일2장)
예수께서 산상수훈을 가르치시고 십계명과 새 계명을 "21 "옛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살인하지 말아라. 누구든지 살인하는 사람은 재판을 받을 것이다' 한 것을 너희가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성내는 사람은, 누구나 심판을 받는다. 자기 형제나 자매를 모욕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의회에 불려 갈 것이요, 자기 형제나 자매를 바보라고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지옥 불 속에 던짐을 받을 것이다." 이렇게 비교하셨습니다.
구약이 오실 그리스도의 그림자라면 신약은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입니다. 그림자와 실체는 다릅니다. 이것을 마치 구약의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다르다는 것으로 이해를 해버리면 더이상의 논의는 불가할 것입니다. 실체이신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그 법이 이제는 성도들이 따라야할 법이라는 것입니다. 성전과 제사장들이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까지 하나님의 구속의 방편으로서 은혜의 수단이었다면 예수께서 오셔서 다 이루신 것을 알고도 , 계속해서 성전이 있어야 하고 제사장들에게 속죄제사를 부탁해야 하고 할례를 행하여서 하나님의 백성의 의무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과 같습니다.
바울이 그러므로 율법주의자들과 투쟁한 것입니다. 사실 가장 어려운 싸움은 유대인들과의 대립이었습니다. 예수 믿고 신앙하는 예루사렘의 수 많은 유대인들은 계속해서 할례를 해야하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베드로와 바나바역시 안디옥에서 이방인으로 성도가 된 지체들과 식사를 하다가 야고보로부터 온 사람들을 보고서 식사를 중단해 버리자 바울이 그자리에서 책망한것입니다.
11 그런데 게바가 안디옥에 왔을 때에 잘못한 일이 있어서, 나는 얼굴을 마주 보고 그를 나무랐습니다. 12 그것은 게바가,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오기 전에는 이방 사람들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자, 할례 받은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그 자리를 떠나 물러난 일입니다. 13 나머지 유대 사람들도 그와 함께 위선을 하였고, 마침내는 바나바까지도 그들의 위선에 끌려갔습니다.
14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똑바로 걷지 않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 앞에서 게바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유대 사람인데도 유대 사람처럼 살지 않고 이방 사람처럼 살면서, 어찌하여 이방 사람더러 유대 사람이 되라고 강요합니까?"(갈라디아서2장)
얼마나 전통과 의식이 뿌리 깊숙하게 박혀있었는가를 알 수 있는것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것은 오늘날까지도 여지없이 교회사를 통해 전해내려 왔다해도 과언이 아닐것입니다. 그렇게 사도들이 개혁하고자 바른 복음의 진리를 전하였지만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듯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신앙이라는 옷을 입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많은 교회의 전통과 형식주의는 진정한 의미의 영으로 주님을 섬기는 길을 곳곳에서 방해하였고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럴것입니다.
요한 사도는 자기의 생이 얼마 남아있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요한일서를 작성하는 사도의 마음이 어떤마음이었을까요? 사도는 서신 첫 머리에 이렇게 말합니다.
1 이 글은 생명의 말씀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은 태초로부터 계신 것이요, 우리가 들은 것이요, 우리가 우리의 눈으로 본 것이요, 우리가 자세히 살펴본 것이요, 우리가 손으로 만져 본 것입니다. 2 이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영원한 생명을 여러분에게 증언하고 선포합니다. 이 영원한 생명은 본래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우리와 서로 사귐을 가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또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귐입니다. 4 우리는 우리의 기쁨이 차고 넘치게 하려고 이 글을 써 보냅니다.
요한의 다음 글은 우리가 새 계명안에 있다는것을 확인시켜줍니다.
9 빛 가운데 있다고 말하면서도, 자기의 형제자매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직도 어둠 가운데 있는 사람입니다. 10 자기의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가운데 머물러 있는 것이니, 그 사람 앞에는 올무가 없습니다. 11 자기의 형제자매를 미워하는 사람은 어둠 가운데 있고, 어둠 가운데서 걷고 있으니,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어둠이 그의 눈을 가렸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살인한것이라 하심을 그대로 요한역시 전하고 있습니다. 형제를 자매를 사랑하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만일 십계명의 정신을 그대로 보완해서 완성한것으로 인정한다면 예수께서 따로 주실 필요가 있었을까요? 어느 율법사가 자신을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물었습니다. 어느 계명이 제일 크니이까? 그때 말씀하시기를 요약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심처럼 오늘도 우리에게 그것을 강조하시면 충분합니다.
23 이것이 하나님의 계명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24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께서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심을, 그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압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새로운 신분으로 옮겨졌습니다. 의문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성령의 법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명에 순종하는자로 살아야 합니다.
28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30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34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나의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율법보다 더 크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독생자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죽이심까지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그 사랑을 아는 자로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새로운 계명입니다. 우리의 복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 몸을 우리를 위한 대속의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 피로 우리를 사셨습니다.
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사람이며 새것이 되었습니다.
요한사도의 증언처럼 새 로운 계명을 다시 쓰는것은 우리로 하여금 영생이 있다는것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삶이 곧 그리스도안에 사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는 심령마다 그리스도의 계명을 기쁨으로 순종할 것입니다. 그의 계명은 곧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2009/02/06.ⓒ주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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